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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6화

Author: 십일
하린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올리버가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알아. 그때 상황에서 올리버 마음이 약해진 것도 이해해. 언니가 없을 때, 올리버가 곁에 있어 준 게 좋았어. 최소한 방 안에 틀어박혀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는 날은 줄었으니까.”

더 중요한 건...

“올리버를 용서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과의 화해이기도 해. 나에게는 새 삶이 필요하고, 올리버는 용서가 필요해. 그래서 속죄할 기회를 주는 거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리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근데, 너 안 무서워? 올리버가 평생 널 못 잊을 수도 있는데?”

하린은 단호하게 말했다.

“못 잊는 게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사람한테 가장 소중한 게 추억이잖아.”

그 순간, 리아는 순수하기만 했던 동생이 처음으로 낯설었다.

“언니, 왜 그렇게 봐? 내가 너무 심했어?”

“아니.”

리아는 손을 휘둘렀다.

“내 동생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린은 웃으며 언니 어깨에 기대었다.

리아는 시선을 내려, 그 기대어 오는 무게를 온전히 받아주었다.

지언은 두 사람 뒤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리아는 내 어깨에 저렇게 기댄 적은 없는데...’

‘나한테 그런 눈길을 준 적도 없는데...’

“큼, 헉!”

지언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게 헛기침했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듯 따가웠지만, 리아와 하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를 마치 병풍 취급했다.

하린이 작게 속삭였다.

“언니, 형부 좀 소심해 보이는데?”

리아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네 형부 원래 저래. 신경 쓰지 마.”

“그건 안 되지.”

하린은 몸을 바로 세우며 웃었다.

“형부 눈빛이 칼 같아서, 나 그 칼에 썰리는 스테이크 조각이 되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언니, 이제 형부한테 돌아가.”

그 말을 남기고 하린은 갑판을 떠나 배 안으로 들어갔다.

지언은 재빨리 리아 옆으로 다가섰다.

“자기야, 나...”

“감기 걸렸어?”

“아, 아니.”

“근데 왜 자꾸 콜록거려?”

“아, 그게... 어제 방 창문을 안 닫고 잤나 봐.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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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791화

    “민슬아, 너 도대체 뭐가 그렇게 걱정되는 건데?”지훈의 시선은 날카로웠다.마치 슬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나 점 봤어. 우리 미래가... 별로 안 좋아.”“점?”지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그래, 그럼 내가 물어볼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도 점으로 나왔어? 지금 이 순간, 내가 너한테 느끼는 이 반응도 다 봤고?”“못 봤지?”“그런데 말이야, 너 일단 옷 좀 입으면 안 돼? 나도 입어야 하고...”“안 돼! 너도 입지 마!”슬아는 말문이 막혔다.‘이 사람 진짜 무슨 병 있어?’말은 그렇게 해놓고, 결국 지훈은 가운을 걸쳤다.그리고 옷장으로 가서 잠옷 한 벌을 꺼내 직접 슬아에게 건넸다.“입어.”“너 뒤돌아 있어.”“어제 다 봐놓고 지금 와서 뭐가 부끄러워?”“뒤돌아!”“알았어, 알았어. 안 볼게. 어차피 어젯밤에 볼 건 다 봤으니까...”“너 진짜...!”...슬아는 결국 아침을 먹지 못했다.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배고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 화가 났다.옷을 입고 다시 대화를 해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지훈은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했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슬아는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안 흔들렸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그 작은 흔들림보다... 슬아를 더 괴롭히는 건... 고동건이 말했던 ‘미래’였다.‘나랑 조지훈이 같이 있으면, 좋은 결말은커녕... 괜히 주변까지 휘말리는 거 아닐까...’게다가 또 하나.‘조지훈이 정말 큰 운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내가 이 사람한테 인생을 걸어버리는 건... 결국 운명도 못 바꾸는 거잖아?’‘진짜 마지막에 잘못되면 어떡해...?’‘그런데 그렇다고 사귀자고 해놓고, 나중에 다른 남자 만나러 가는 것도 말이 안 되지. 그건 너무 쓰레기잖아...’‘...’슬아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결국 홧김에 슬아는 ‘은리’에게 지훈을 내쫓게 했다.왜 직접 안 쫓았냐면... 슬아는 밀어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예전엔 몰랐는데,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790화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다.겨울치고는 드물게 햇살이 얼굴을 내밀었다.부드러운 빛이 유리창을 통과해 창가에 내려앉았다.마치 흩뿌려진 금박처럼 잘게 부서져 반짝이며, 따뜻하게 퍼졌다.슬아는 더위에 잠에서 깼다.팔을 조금 움직이며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손끝에 닿은 건 따뜻한 체온의 가슴이었다.슬아는 번쩍 눈을 떴다.정신이 번쩍 들었다.옆에 누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기억들이 역류하듯 한꺼번에 밀려들었다.‘어젯밤에... 조지훈이 왔고...’‘조지훈이 나를 부축했고... 나는... 조지훈 등 뒤에 토했고...’‘옷을 빨아주겠다고 하다가, 내가 셔츠를 찢어버렸고...’‘조지훈이 욕실에 들어갔다가, 가운 입고 나왔고... 그리고...’‘세상에!!!’어젯밤 슬아의 모든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그때, 남자의 팔이 자연스럽게 슬아의 허리를 감쌌다.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 옆에서 울렸다.“깼어?”“응. 그, 그런데... 손 좀 풀어줄 수 있어?”“왜?”“나...”슬아는 침을 한 번 삼켰다.“좀 더워.”“알겠어.”지훈은 순순히 팔을 거뒀다.슬아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지훈이 이불 한쪽을 훌쩍 들춰 올렸다.“아! 너 뭐 해?!”슬아는 반사적으로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덥다며. 열어두면 바람 좀 통하잖아.”그 말을 하며 지훈은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그 바람에 이불 사이의 틈은 더 벌어졌고, 남자의 상반신이 그대로 슬아의 시야에 들어왔다.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채로.슬아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왜? 부끄러워?”지훈이 가까이 다가왔다.숨결이 귀 옆에 멈췄다.웃는 것도, 아닌 것도 같은 목소리였다.친밀함과 장난기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슬아의 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슬아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돌려 지훈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어젯밤에...”“알아. 우리 잤어.”“나 술에 취해서...”지훈은 곧바로 말을 끊었다.“술김에 저질렀다는 말은 하지 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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