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김한규가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없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조심스러웠어요.”...결국 지언은 김한규를 정말로 끌고 가진 않았다.앞으로 김한규를 미끼로 삼아, 배후의 진짜 인물을 낚아야 했기 때문이다.재석이 말하자 지훈도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우린 드러나 있고, 상대는 보이지 않게 숨어 있지. 뒤에 또 뭐가 준비돼 있을지 모르겠어.”지언이 응답했다.“그래도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는 아니잖아. 미리 대비하면 덜 당하긴 하지.”지훈은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보고 양손을 털듯 힘주어 말했다.“야, 그렇게들 우울해할 거 없어. 제일 중요한 건 어머니가 건강하시다는 거잖아. 재발 아니라고. 내일이면 드디어 우리랑 같이 집 가서 설 지내실 수 있어.”그 짧은 몇십 분 동안 지훈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보다 더 심하게 오르내렸다.‘아까는 심장이 진짜 터지는 줄... 이건 재판보다 더 스릴 있네.’정은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이게 큰 소식이죠.”그때까지 침묵하던 조기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동안 네 엄마가 자꾸 악몽 꾸던 것도... 그놈이랑 관련 있는 건가?”재석이 답했다.“아마 그럴걸.”지훈이 인상을 찌푸렸다.“근데 왜? 보고서 조작도 그렇고 악몽 만드는 것도 그렇고... 둘 다 어머니한테 당장 생명 위협을 주는 건 아니잖아. 그 사람이 이렇게까지 공들여서 뭘 얻는 건데?”‘그냥 겁주고 싶어서?’그건 아니었다.말한 순간 모두 침묵에 잠겼다.정은이 입술을 눌러 물었다.“여러분...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상대가 하는 행동이 서로 충돌해요. 마치... 정말로 큰 해를 끼칠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진짜로는 손대기 싫은 것처럼요.”그 말은 묘하게 가슴에 걸렸다.일관성 없는 행동.그리고... 마치 누군가를 해치려다, 막판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처럼.“싫어한다?”지언이 눈썹을 치켜올렸다.“그 말... 왜 떠올랐는데?”정은은 고개를 저었다.“글쎄요. 그냥... 직감?”상대가 한 모든 행동이 강서원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여긴 병원이에요! 공공장소라고요! 감히 절 함부로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왜 못 데려가?”지언의 눈엔 노골적인 경멸이 어렸다. 시선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말투는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조씨 집안의 영향력, 그리고 내가 SP그룹 대표이사라는 걸 고려하면, 당신 같은 사람 하나 처리하는 건 개미 밟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지.”“공공장소면 뭐? 내가 오늘 병원 사람들 전부 보는 앞에서 당신을 끌고 나가도, 내일 이 병원 직원들이 한목소리로 말할걸. ‘그런 일 본 적 없습니다.’ ‘김한규 교수요? 그날 병원에 안 왔는데요?’”김한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그는 두려워했고,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지언은 느긋하게 셔츠 소매를 다듬었다.“재벌이 왜 재벌인지 알아? 돈이 우리 목적을 뭐든 이뤄주니까. 만약 못 이룬다면? 돈이 부족해서겠지. 근데 우리한텐 그게 가장 넉넉하거든.”그 순간, 지언은 마치 생살여탈권을 쥐고 사람 목숨을 장난처럼 굴리는 최상위 포식자 같았다.목소리, 표정, 분위기... 전부 완벽히 맞물려 있었다.그 모습에 리아조차 눈을 동그랗게 떴다.‘얘, 조지언... 이런 얼굴도 있었네?’‘집 가면 연구 좀 해봐야겠다.’지언이 턱을 움직여 신호했다.“자, 밖으로 끌고 가.”“잠깐만요!”김한규의 얼굴이 몇 번이나 뒤틀렸다. 겁이 너무 나서 숨소리까지 떨렸다.“말할게요! 전부 말할 테니까... 제발 저를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지언이 피식 웃었다.“하... 죽기 직전까지 와서도 조건을 붙여? 좋아. 교수님이 뱉는 정보가 개 한 마리 살려둘 가치라도 있는지, 들어보고 판단하지.”김한규는 얼굴을 감싸 쥐고 거의 오열하듯 말했다.“저, 저도... 사람한테 해 끼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근데 제 아내가 아파요. 지금 큰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재석이 물었다.“누가 시켰어?”“저도 몰라요. 어느 날 야간 근무할 때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강 여사님 상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재석의 눈빛은 완전히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시선이 곧장 김한규에게로 향했다.김한규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지훈과 지언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지금 둘 사이엔 말이 필요 없었다.형제 간의 묘한 합이 폭발하며,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한 명은 문을 닫고, 다른 한 명은 창문에 달린 커튼을 잡아 내렸다.리아는 그걸 보자마자 앞으로 나와 김한규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정은과 조기봉도 상황을 뒤늦게 이해한 듯 움직였고, 곁에 있던 두 명의 간호사는 금세 통제됐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그 누구도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김한규가 자신이 붙잡혔다는 걸 인지했을 땐 이미 병실은 철통같이 봉쇄돼 있었다.그와 함께 있던 두 명의 비서도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였다.“이... 이 사람들 뭐 하는 겁니까?”김한규가 분노와 당황이 뒤섞인 목소리로 고함쳤다.재석이 앞으로 걸어 나섰다.“그 말, 제가 해야겠네요. 검진 센터랑 짜고 검사 결과를 위조해서, 환자에게 암이 재발했다고 속여서 대체 뭘 하려는 겁니까?”“조 교수님, 지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김한규는 진짜 모른다는 얼굴이었다.“무슨 공모, 무슨 조작입니까? 전 하나도 모르겠는데요?”“그래요?”재석은 비웃음을 흘렸다.그리고 김한규가 가져왔던 검사 보고서를 번쩍 들어 올렸다.“같은 샘플로 검사했는데, 왜 제가 외지의 다른 세 군데에 보낸 검사 결과는 전부... 우리 어머니에게 암 전이 징후가 전혀 없다고 나왔을까요?”“조재석, 그게 진짜야?”지훈의 눈이 확 뜨였다.지언도, 조기봉도 동시에 재석에게 시선을 돌렸다.“야, 너 샘플 언제 보냈어?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재석이 말했다.“나도 그냥 느낌이 좀 이상해서. 괜히 먼저 말해서 다들 헛된 희망 품게 하기 싫었고. 그래서 혹시 몰라 샘플 네 개 준비했어. 하나는 김한규 교수님을 통해 보내고, 나머지 셋은 내가 직접 외지의 검진센터로 보냈지.”결과는
지훈은 그제야 오늘이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그 결과로 강서원에게 정말로 암이 재발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가 판가름 난다.‘그러니까 다들 온 거구나...’지훈은 먼저 ‘퇴마부’ 얘기와 슬아, 한설의 정체를 모두 설명해 주었다.“그래서 지금 안에서는... 어, 법사 같은 거 하는 거야?”지언은 단어 하나하나 고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이건 지언의 지식 범위를 한참 넘어가는 일이었다.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이해해도 돼.”의외로 리아는 잠깐 놀란 눈을 하다가 금세 차분함을 되찾았다.지언이 물었다.“리아 씨는... 뭐야, 왜 이렇게 담담해?”“뭘?”“아니, 이게... 믿을 만한 일인가 해서.”“세상에 희한한 일 많아. 과학으로 설명 안 되는 영역도 분명히 있지.”지언은 말을 잃었다.리아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왜? 내가 틀린 말 했어?”“아냐, 그냥... 민슬아 씨라는 이름이 어디서 좀 들어본 것 같아서.”“옛날 연인?”“무슨 소리야?”지언은 입꼬리를 씰룩였다.“설령 그랬다고 쳐도, 그건 지훈이 문제지, 나랑 상관없다고.”“...”재석은 가져온 탕국을 보온병째 들고 정은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정은은 궁금한 듯 안쪽을 힐끗 봤지만, 문의 유리창에는 신문지가 덮여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십여 분쯤 지났을까, 문이 열렸다.슬아와 한설이 나왔고, 지훈은 바로 달려가 물었다.“어때?”슬아가 대답했다.“다 끝났어. 앞으로 사흘 동안은 찹쌀이랑 차 마시는 거 피하고.”“알겠어.”“너 들어가 봐. 나랑 선배는 먼저 간다.”그 말을 남기고 슬아와 한설은 돌아섰다.지훈은 뭐라 하고 싶어 입을 열었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두 사람의 뒷모습이 계단 모퉁이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병실 안.강서원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마치 그동안 못 잔 잠을 몽땅 보충하기라도 하는 듯 고르고 깊은 숨소리가 들렸다.그때, 문이 열리고
한설의 얼굴빛이 살짝 변했다.“조지훈한테 ‘퇴마부’ 준 거... 나 때문만이 아니라 선배 때문이기도 해.”한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민슬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슬아는 한설이 얼마나 똑똑한지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을 조금만 주면 스스로 판단을 내릴 거라는 걸.그리고 마침내, 한설이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잡아 줘.”“응.”슬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몽염주술... 시킨 사람이 자기 피를 써서, 직접 대면해서 풀어야 한다.’...다음 날.슬아는 한설과 함께 병원 병실로 향했다.지훈은 슬아와 한설이 들어서는 걸 보고 바로 다가왔다.“진짜로 우리 어머니 도울 방법이 있는 거야?”슬아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어젯밤 강 여사님 잠은 좀 잘 주무셨어?”지훈은 순간 멍해졌다.어젯밤, 슬아네 집에서 나온 뒤 그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도착했을 때 강서원은 이미 잠들어 있었지만, 한눈에 봐도 편히 자는 잠은 아니었다.지훈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라는 심정으로 슬아가 준 부적을 베개 밑에 넣어두었다.강서원은 어젯밤 웬일인지 푹, 편안하게 밤새 잠들어 있었다.의료진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조기봉은 자기가 절에서 받아온 평안부 덕이라며 베개 아래를 손으로 더듬더니, 부적이 두 개나 나온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어? 왜 하나가 더 있지? 어디서 난 거야?”지훈은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말했다.“크흠... 제가 넣었어요. 어머니 베개 밑에...”“너도 절 다녀왔어?”“아니에요. 전 민... 어, 그쪽 일을 잘... 아시는 분한테 받아왔어요.”조기봉은 기분 좋아 보이게 말했다.“보니까 내 부적이 효과 본 것 같은데.”지훈은 지지 않고 말했다.“제 것이 낸 효험일 수도 있잖아요?”부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슬아와 한설이 병실 앞에 도착했다.그제야 지훈은 올블랙 차림의 한설이 오늘은 챙 모자를 쓰지 않은 걸 눈치챘다.그리고 다시 한번 자세히 보더니...‘와, 이 사람... 여, 여자였어?!’슬아
한설은 슬아의 외할머니, 한경미가 데려온 아이였다.어느날 밤, 한경미가 한설을 집에 업어 왔을 때, 아이의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귀와 얼굴은 살갗이 거의 벗겨져 있었으며,사지는 동상으로 부르트고 갈비뼈는 세 대나 부러져 있었다.슬아는 커튼 뒤에 숨어 한경미가 한설을 치료하는 과정을 차마 보지도 못했다.반년 넘게 돌보고 치료한 끝에야 한설은 겨우 사람의 형태를 되찾았다.슬아는 나중에 들었다.한설은 한경미가 묘지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그날 밤은 마침 눈이 내렸다.그래서 한경미의 성을 따라 한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그 후 한경미는 한설을 제자로 삼아 온갖 술법과 주술을 가르쳤고, 한설은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보이며 10대에 이미 이씨 가문의 귀빈이 되었다.세상 누구도 알지 못한다.한설이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이씨 가문의 신뢰를 어떤 방식으로 얻었는지...어쨌든 한설은 단 1년의 수행 끝에 마을 사람들이 10년을 벌어도 못 모을 돈을 벌었다.한설은 부자였다.말도 안 되는 찐 부자.그래서 슬아에게는 이 강하고 완벽한 선배에게 ‘힘들다’, ‘바닥이었다’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응, 네가 생각한 그거 맞아.그 사람을 만난 건... 스승님으로부터 구조받기 전.”한설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한설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려졌다.그곳은 슬럼가였다.어떤 노부부가 거둬 5살까지 길렀고 비록 가난하고 열악했지만, 5살 전까지만큼은‘굶지 않고 살았다’.그러나... 그 노부부는 빚 문제에 휘말려 거리에서 처참히 살해당했다.한설은 순식간에 완전한 고아가 되었고, 그때부터 떠돌며 살았다.“배고프면 훔치고, 뺏고... 들키면 맞고,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또 훔치고, 또 뺏고.”“그날은 유난히 심하게 맞았어. 며칠째 굶고 있기도 했고... 솔직히, 그때 죽는 줄 알았다.”“그때 그 사람이... 자기가 훔친 백설기 하나를 나한테 줬어.”슬아의 눈이 커졌다.“어... 훔친 걸?”“응. 그 사람도 나랑 똑같았어. 그냥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