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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utor: 엣뀽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2 14:28:05

다음 날 아침.

서린은 깨질 듯한 두통에 차디찬 방바닥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거지.’

집에는 무사히 들어오긴 한 것 같은데.

서린의 침대 위에는 그림 같은 자세로 에르딘이 자고 있었다.

“아, 머리야.”

화가 나야 되는데 머리가 아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몸도 너무 아팠다.

밤새 누가 서린을 때린 것 같았다. 서린이 의심의 눈초리로 에르딘을 흘겨보았다.

서린은 침대위로 올라가 몸을 쑤욱 밀어 넣어 에르딘을 떨어뜨리려고했다.

“내 침대라고…….”

그리고 에르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린이 침대를 포기하고 차디찬 바닥에서 몸을 공벌레처럼 말고 고통에 찬 신음을 냈다.

‘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

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통째로 날아갔다. 

“나 어제 어떻게 왔지?”

그때 불현듯 누군가에게 업힌 서린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설마.

죽은 듯 자고 있던 에르딘이 어느 순간 옆으로 누워 서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겠지?’

아.

이불이 에르딘한테 있어서 이불킥도 못 하는 서린이였다.

“내가 어제…. 혹시….”

“취해서 내가 업고 왔다.”

“아악…. 고, 고마워?”

“됐다. 술 작작 처먹어라.”

이렇게 내 업보를 돌려받는다고?

인정하겠다.

어제의 서린은 개서린이었겠지…….

“라면 먹을 거지?”

민망해진 서린이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오늘은 어제 산 밥그릇이 있어서 둘 다 그릇에 식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제 먹을 게 없었다.

더 문제는 이제 돈도 없었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 윤시후가 누군지 찾고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하는 빡센 하루가 보였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빠르게 라면을 먹은 에르딘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야. 오늘은 네가 치우고 설거지해. 어제 내가 했잖아.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어제 내가 너 업고 왔는데?”

“야… 그건 그거고 설거지는….”

“어제 너 물도 내가 먹여줬는데?”

“그래, 그럼 내가 할게.”

저 얄미운 공작 자식!

지은 죄가 많아서 서린은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상을 치웠다.

머리통도 깨질 듯이 아픈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오랜만에 저세상 숙취로 고통받았다.

무리한 설거지 행군을 마친 서린은 말했다.

“먼저 씻는다.”

어제 또 그냥 잤기 때문에 아침 일찍 샤워를 했다.

여전히 긴 머리는 수건으로 돌돌 말아 나왔다.

머리끝에서 물이 똑똑 떨어져 수건을 안으로 한 번 더 말았다.

“나 다 했어. 이제 너 씻어.”

“그러지.”

서린은 그제서야 어제 에르딘이 왜 씻지 않았는지 알았다.

11평짜리 원룸에서 샤워기 소리는 너무 적나라하게 다 들려왔다.

어제부터 얘는 이걸 듣고만 있던 거야?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변태도 아닌데 왜 저 적나라한 물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거냐고!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서린아.’

‘정신 차려.’

‘너 두 번이나 죽인 남자야.’

하지만 서린의 머릿속에는 욕실에서 조각 같은 몸으로 씻고 있는 에르딘의 모습만 무한 재생되었다.

서린은 일부러 큼큼 목을 다듬고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어 소리가 물소리를 가려주니 한결 나았다.

에르딘이 옷을 입고 뽀송한 모습으로 나왔다.

머리에서 물이 뚝뚝 흘러 바닥을 적셨다.

서린은 수건을 들고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머리카락에서 물 떨어지잖아!”

수건을 받아 들다 겹쳐진 손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어냈다.

“바닥에 물기 다 닦고 나와. 여긴 공작저가 아니라고!”

하며 등을 휙 돌려버렸다.

어쩐지 손이 겹친 순간 에르딘이 잠시 멈칫한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이거 혹시 세레나처럼 가스라이팅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빨리 본인의 집으로 보내버려야겠다.

그 생각 하나만 품은 채 에르딘과 함께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무서워서 뛰는지, 좋아서 뛰는지 모를 심장이 계속 요동쳤다.

빨리 에르딘을 윤시후의 삶으로 욱여넣고, 서린은 다시 내 삶을 찾고 싶었다.

학과 사무실 문을 열자 검은 양복을 입은 장정 대여섯 명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시후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태성 그룹의 막내아들 윤시후.

살벌한 후계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호학과에 위장 잠입했다.

물론 에르딘도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너는 거기나 여기나 태생이 아주 남다르구나.’

경호학과에서 미리 눈여겨본 두 명을 전속 경호원으로 영입하기 위해 학교를 다닌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나이도 재현 선배보다 많았다. 느긋하게 설명을 듣던 에르딘이 물었다.

“그렇다면 계약서가 지금 있나?”

“네. 여기 있습니다.”

경호원은 주저 없이 품에서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에르딘은 계약서를 훑어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으로 내밀었다.

뭐?

경호?

누가 누구를 경호해?

‘하긴 에르딘이 학교에 와서 말을 섞은 건 나랑 재현 선배뿐이니 선택지는 둘밖에 없나?’

하지만 서린은 아직 학생인데.

계약서 마지막에 '0'이 일곱 개나 찍힌 숫자를 보는 순간 머릿속 계산이 끝났다.

지금 서린이 살면서 이런 연봉을 받을 확률은…….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사인해야겠지.

에르딘의 얼굴을 한 번 힐끔 보았다.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라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도 아직 1학년인데. 표정에서 드러났는지 시후의 경호원이 서린을 향해 말했다.

“학교에는 조기 취업으로 처리해서 학점도 관리되게 해 놓겠습니다.”

그렇다면? 서린은 거침없이 사인을 했다.

돈도 벌고 학교도 잘 졸업하고.

일석이조입니다만?

그 태성 그룹이라면 없던 학위도 만들어 줄 것 같았다.

에르딘…….

이 축복받은 놈.

부럽다.

잘은 아니지만 지켜는 줄게.

‘어차피 나 말고도 널 지킬 사람은 많을 테니까.’

서린이 속으로 웃었다. 마음 편히 입사하도록 하지.

“남은 계약서 하나는 네가 원하는 사람을 데려오도록.”

할 말만 남긴 에르딘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고급스러운 리무진에 올라탔다.

차는 그대로 학관을 빠져나갔다.

빨리 떨어지고는 싶었지만, 이렇게 빨리 떨어질 줄은…….

설마, 아쉬워하는 거야?

안 되지, 안 돼.

‘서린아, 정신 차려.’

‘가슴에 또 칼 꽂히고 싶어?’

손에 남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한 장은 서린의 것.

그리고 남은 한 장은…….

떠오르는 사람은 재현 선배뿐이었다.

과사에서 나가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요새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제대로 받아줄지는 의문이지만.

재현 선배는 좋은 사람이니까.

같이 하자고 하면 분명 좋아해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걷던 서린은 어렵지 않게 선배를 발견했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이니까.

오늘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재현 선배님, 안녕하세요?”

“서린아! 뭔가 오랜만인 것 같다?”

“하하. 제가 좀 바빴죠.

저, 선배 혹시...... 그.... 저.......

저랑 일 같이 하실래요?”

말하기가 왜 이렇게 민망한지 어렵게 말을 더듬다가 겨우 본론을 꺼냈다.

“어? 뭔데? 나야 서린이가 하는 거라면 무조건 다 좋지!”

어렵게 꺼낸 말에도 좋다고 해주는 선배.

해맑은 멍뭉이…….

그건 쓰레기를 지키는 계약서란다.

선배는 계약서를 보여주자마자 웃으면서 사인했다.

다 읽긴 하신 거죠?

선배는 같이 일하게 됐다며 너무 좋다고 내 손을 잡고 붕붕 휘둘렀다.

그래요.

저도 선배가 좋다니까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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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9.

    서린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게슴츠레 눈을 뜨니 당황한 듯한 에르딘이 보였다.“에르딘! 너!”“이서린. 이곳은 어디지? 날 어디로 데리고 온 것이냐?”심각한 표정으로 서린의 어깨를 붙잡고 묻는 에르딘은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잠깐! 멈춰 봐. 여긴 내 집이야. 어제 네가 너무 취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구.”그제야 짤랑짤랑 서린을 흔들던 에르딘이 멈췄다.“집이라고? 이 작은 곳은 업무를 보는 곳이냐?”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니.설마 저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저러는 거?“아니, 여기서 먹고 씻고 자고 다 하는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설마 너는 여기서도 신분이 하찮은 거냐?”저런, 같은 말을 해도 더 얄미운 놈 같으니.“보통 대학생은 다 이런 데서 산단다. 나도 좀 묻자. 너 왜 안 죽고 내 옆에 돌아다녀?”“……말을 해 줘야 하나?”“나는 묻는 거 다 말해 줬는데?”“…….”에르딘은 침묵했다.그래. 네 속을 다 말해 주면 네가 에르딘 카이덴이 아니지. 다른 사람이지.저 머릿속에 또 생각이 얼마나 팽팽 돌아가고 있을까.서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에르딘을 지나쳐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흠칫 놀란 에르딘이 경계하는 낯으로 서린을 쳐다봤다.“아니, 나 물 좀 마시려고…… 너…… 너도 줘?”“됐다. 뭘 탔을 줄 알고.”듣다 보니까 화나네?나는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지 술 먹은 거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재워 주기까지 했는데.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아주 태도가 뻔뻔하기 그지없네.서린은 생수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신 뒤, 마시던 물병을 그대로 내밀었다.“자. 독 없지? 마셔. 어제 술 많이 먹어서 갈증 날 텐데?”“감히 네가 입에 댔던 것을 누구에게 주는 거지?”에르딘의 끊임없는 으르렁거림에 결국 서린의 뚜껑이 열렸다.‘남의 집에 와서 지금 공작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서린은 성큼성큼 다가가 순간적인 완력과 기술로 에르딘의 머리채를 잡아 내리고 입에 물병을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8.

    ‘하핫. 재현 선배, 아직 전 말도 못 꺼냈어요.’에르딘의 시선이 서린의 어깨 위에 얹힌 재현의 손에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매운 걸 먹어서 화가 난 눈치였다.“할 말 있다며, 남자 대 여자로.”‘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니? 이 수많은 여자들 앞에서?’일부러 그러는 거지?서린은 땀이 또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아니, 야. 남자 대 여자도 친구로 잘 지내 보자는 말이지. 뭘 그렇게 정색하냐. 하하하하하.”에르딘은 말없이 서린을 쳐다보기만 했다.서로가 서로에게 경계의 대상이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그래. 시후도 왔으니까 다 같이 잘 지내 보자. 내가 계산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나이스 타이밍, 재현 선배.서린은 조용히 선배를 향해 ‘고마워요.’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에르딘과 둘이 있어야 뭐라도 대화를 할 텐데, 그의 주변으로 사람이 들끓었다.그래. 너 잘생겼다.그 얼굴로 욕을 한들 안 좋아할 여자들이 있겠니?타이밍을 보며 삐죽삐죽 음식을 먹고 있는데, 다들 2차를 가자고 했다.얼떨결에 2차 술집으로 끌려온 서린은 근손실 때문에 안주만 깨작였다.곧이어 재현 선배가 서린의 옆으로 쑥 들어왔다.“서린아, 술 안 마셔서 재미없지?”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거대 멍뭉이 같았다.‘좀 취하신 듯하군.’인기 스타라 여기저기서 술을 권한 듯했다.“아니에요. 재밌어요!”“있잖아. 잠깐 바람 좀 쐬러 나갈까?”“앗. 넵!”에르딘은 여전히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서린은 잠시 나갔다 와도 될 듯해 재현 선배와 함께 일어났다.재현 선배는 가게 옆 골목에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하아. 오늘 좀 취하네. 서린아, 나 줄곧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꿀꺽.무슨 소리를 하시려고.‘네가 토했던 신발 비싼 거야? 고백 공격은 너무했어? 나대지 마?’찔리는 게 너무 많았다.“술 먹고 실수한 걸로 나…… 피하지 마.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서린아…….”“네?”“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하하.”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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