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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Autor: 엣뀽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2 14:27:41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이며 내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서린을 보며 에르딘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제 씻지도 못하고 잠든 상태라 꿉꿉해서 어디 나갈 수도 없었다.

씻자니 에르딘이 방에 있는 게 신경 쓰였다.

‘에르딘은 왜 뽀송뽀송한 거지. 나는 절어 있는데?’

세상이 급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잘생긴 놈한테만 더욱더 잘생김을 주는 세상.

“에르…… 아니, 시후야. 나 씻고 올 테니까 기다려.”

침대에 앉아 있던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린은 최대한 재빠르게 촤아아, 촤아아 씻었다.

들고 들어간 옷이 습기에 들러붙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긴 머리는 말리지도 못하고 수건으로 돌돌 말아 나왔다.

‘옷을 입고 나와야 해서 불편하네.’

“시후, 너도 대충 씻어. 어제 못 씻었잖아.”

“거절하지.”

에르딘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서린은 당황스러웠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안 꿉꿉한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제 생필품도 사야 하고 학교도 가야 했다.

“잠깐.”

서린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내 돈으로 다 하는 거야??”

지금 두 명의 생활비를 혼자서?

망했다.

알바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에르딘도 내가 나타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부자니까 별로 상관없었으려나?

서린은 벌써부터 등골이 휘는 것 같았다.

“일단 생필품 좀 사러 나가자. 너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단 내가 돈을 꿔줄게.”

에르딘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저택에서는 공짜로 뭘 안 썼나 보군?”

은근한 살기에 서린이 움찔했다.

“알았어. 사 줄게.”

좀팽이 자식.

어떻게 알았지?

너한테 죽느라 얼마 못 쓰긴 했지만 네 거 쓰긴 했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내가 상도덕이 있어서 갚는 줄 알아라.’

서린은 입을 삐죽이며 신발을 신고 나가려 했다.

침대에서 쑥 일어난 에르딘도 교양 있는 몸짓으로 운동화를 신었다.

“이걸 교양 없애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원룸에서 저러니까 인지부조화 오네.”

서린은 에르딘을 데리고 모든 걸 다 판다는 그곳으로 향해 쇼핑을 시작했다.

장바구니 하나를 쥐고 1층부터 3층까지 필요한 물건을 훑었다.

에르딘은 싸고 약해 보이는 물건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힘줘서 만지지 마! 부러진다구!”

다 박살 낼 기세에 서린이 다급히 소리쳤다.

에르딘은 조심스럽게 물건을 장바구니에 도로 넣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옷과 속옷도 대충 몇 가지 골라 샀다.

젠장.

생활비를 다 썼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르딘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물건을 대충 침대 위에 던져 놓고 둘은 급하게 학교로 향했다.

학관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어제 둘이 같이 갔대.’

‘재현 선배도 있었다던데?’

‘삼각관계라던데.’

이럴 줄 알았지.

다들 둘이 무슨 사이인지 궁금한 눈치였다.

무슨 사이라고 해야 할까?

서로 죽이는 사이?

동거하는 사이?

공작과 메이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사이.

그게 그들의 사이였다.

“서린아, 안녕? 어제 잘 들어갔어?”

거대 멍뭉이, 재현 선배였다.

‘으아아아악.’

사람들이 더 쳐다봤다.

“네. 잘 들어갔어요. 선배도 잘 들어가셨죠? 죄송하지만 전 이만.”

다급하게 벗어나려는 티가 났는지 재현 선배가 멋쩍은 듯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서린은 꾸벅, 피하듯 인사하고 재빨리 에르딘을 데리고 강의실로 이동했다.

강의실에 앉고 나서야 조금 긴장이 풀렸다.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 에르딘의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이따가 수업 끝나고 학과 사무실에 가 보자. 거기에 너 정보 있을 거야.”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여기 잘 적응시켜서 아예 영영 돌아갈 생각을 못 하게 만드는 거다.

천재 이서린.

착한 이서린.

할 수 있어, 이서린.

“오늘은 수업 끝나고 경호학과 전체 과모임이 있다. 교수님들도 오시니까 다들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주도록!”

이런…….

서린은 시후와 단둘이 과모임에서 빠졌을 때의 파장을 떠올렸다.

오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지.

서린은 고개를 돌려 에르딘에게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건 꼭 가야 되니까. 야, 이번엔 술 작작 처먹어라.”

두 번은 절대 못 들고 올 것 같으니까.

네가 술을 안 먹는 게 더 좋겠구나.

줄줄이 나가는 경호학과 학생들 뒤를 따라 서린과 에르딘도 죄수처럼 질질 끌려갔다.

시끌벅적한 호프집에 도착하자 교수 하나가 서린을 호출했다.

“어이! 이서린! 이리 와 봐, 임마!”

아.

오늘 술 빼기는 글렀다.

지금 서린을 호출하는 저 체육학과 교수는 개꼰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거절을 거절하시는 그런 분이지.

서린은 술잔을 들고 호다닥 달려갔다.

“경호학과 26학번 이.서.린!입니다!”

알지, 알지.

내가 사랑하는 이서린이.

사랑하는 만큼 술을 따라주고 이 지랄 하고 있었다.

서린은 꼴닥꼴닥 술을 삼켰다.

‘내 근손실…….’

요즘 체육관도 못 가는데 이러다가 물렁뼈 되겠다.

안주 하나 먹고 호다닥 에르딘 옆으로 달려갔다.

무슨 소문이라도 났는지 서린이 에르딘의 옆으로 가면 다들 자리를 비켜줬다.

기분 나쁜데 편해.

‘뭐지?’

에르딘도 두 번 취하기는 싫은지 눈으로 살기를 날리는 바람에,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술을 주려는 것들을 무찔러가며 서린은 전천후로 뛰어다녔다.

“이서린.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적당히 마셔라.”

걱저~엉?

에르딘이 걱저~엉?

서린은 흥 하고 좀 웃었다.

‘어라?’

‘나 좀 취했나?’

이제 그만 마셔야 되는데 좀처럼 사람들이 서린을 놔주지를 않았다. 

서린이 술을 먹다가도 회귀 본능처럼 에르딘 옆으로 와서 감시했다.

세상이 조금 어지러워졌다.

‘어?’

‘책상이 왜 이렇게 가까워지지.’

은글슬쩍 서린의고개가 테이블 위로 떨어져 갔다.

울렁, 울렁.

세상이 울렁거렸다.

‘나 누구 등에 업혀 있는 것 같은데.’

누구지?

“재현 선배?”

“윤시후다.”

“아~ 윤시후 우리 같이 살지, 참. 윤시후 보자.

키 크고, 눈 예쁘고, 코 오똑하고, 입술 섹시한 귀티나는 윤시후 맞네, 맞아.”

깔깔.

하고 싶은 말 대놓고 하니까 너무 재밌다.

어깨는 왜 잔뜩 굳으셨대요?

꺄하핫.

“왜 예쁘게 생기고 난린데.”

“왜 나 죽이려는 건데.”

근데 내일 나 이거 기억나면 어떻게 하지?

지금 기분 너무 좋아서 알바가 아닌데.

아 맞다.

알바 구해야 되는데…….

울렁, 울렁.

집 앞인 듯하다.

에르딘이 서린의 집 비밀번호를 물어보는데.

“너 문 딸 줄은 아냐? 깔깔깔깔깔!”

‘누군지 모르겠지만 개빡쳐 보인다.’

‘곧 나 죽일 기세인데?’

두 번 죽어봐서 그런가?

그냥 죽여보던가, 그럼.

서린이 눈을 감았다. 

목말라…….

물…….

물을 찾아 더듬더듬.

냉장고가 어디에 있는지, 왜 이렇게 어지럽지.

그때 누군가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꺼냈다.

서린이 물을 잡으려고 헛손질을 하자 머리카락을 쥐고는 서린의 고개를 꺾었다.

서린의 입으로 물이 들어갔다.

‘살 것 같다.’

‘근데 개새끼, 저거 웃고 있는 거야?’

여자 머리를 잡고는 너무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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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3.

    눈앞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수많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그중 한곳에 눈이 멈췄다.메이드...델리아...그곳에 그녀가 있었다.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나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맸다.이 세상은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나는 그저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다.어둑어둑해질 즈음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섰다.'이건 뭐, 떠돌이 용병만도 못하군.'그때 검은 옷을 차려입은 남자 대여섯 명이 나를 에워쌌다.“너희는 누구지?”“도련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보낸 사람들이죠.”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이 날아왔다.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대인전은 늘 몸풀기처럼 해왔던 운동에 가까웠으니까.숫자에 밀리지 않고 싸우던 중, 골목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저기요!!!!!”'델리아.......'아차.잠시 한눈을 판 사이 복부로 날카로운 열감이 밀려왔다.주르륵 밀려 벽에 쿵 부딪힌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볼일을 마친 사내들은 재빨리 사라졌고, 델리아가 앞으로 달려왔다.“윤시후 씨!!!!!!!”다급히 이름을 외치던 그녀는 별안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에르딘.......?”나는 진심으로 놀라 델리아를 마주했다.너도 나를 알아봤어?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었어?쿨럭.델리아가 발로 칼을 눌러 비틀었다.그래, 맞다.내가 네 가슴을 찔렀지.세레나 앞에서 잔인하게 시체처럼 너를 내던졌지.네가 이럴 만도 해.이해는 하는데....... 용서는 못하지.내 눈이 초점을 잃어갔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공작저였다.‘어떻게 된 일이지.’침대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발을 옮겼다.그러다 마주친 델리아.고개를 푹 숙인 모습을 보니 죄인 같구나.혹시 그녀도 자신을 죽인 것을 기억하려나?죽은 저 메이드가 살아 있다면, 세레나도 살아 있는 거겠지.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나?나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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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1.

    다음 날 아침.서린은 깨질 듯한 두통에 차디찬 방바닥에서 일어났다.‘어떻게 된 거지.’집에는 무사히 들어오긴 한 것 같은데.서린의 침대 위에는 그림 같은 자세로 에르딘이 자고 있었다.“아, 머리야.”화가 나야 되는데 머리가 아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몸도 너무 아팠다.밤새 누가 서린을 때린 것 같았다. 서린이 의심의 눈초리로 에르딘을 흘겨보았다.서린은 침대위로 올라가 몸을 쑤욱 밀어 넣어 에르딘을 떨어뜨리려고했다.“내 침대라고…….”그리고 에르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서린이 침대를 포기하고 차디찬 바닥에서 몸을 공벌레처럼 말고 고통에 찬 신음을 냈다.‘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통째로 날아갔다. “나 어제 어떻게 왔지?”그때 불현듯 누군가에게 업힌 서린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설마.죽은 듯 자고 있던 에르딘이 어느 순간 옆으로 누워 서린을 바라보고 있었다.‘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아.이불이 에르딘한테 있어서 이불킥도 못 하는 서린이였다.“내가 어제…. 혹시….”“취해서 내가 업고 왔다.”“아악…. 고, 고마워?”“됐다. 술 작작 처먹어라.”이렇게 내 업보를 돌려받는다고?인정하겠다.어제의 서린은 개서린이었겠지…….“라면 먹을 거지?”민망해진 서린이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오늘은 어제 산 밥그릇이 있어서 둘 다 그릇에 식사할 수 있었다.문제는 이제 먹을 게 없었다.더 문제는 이제 돈도 없었다.오늘 어떻게 해서든 윤시후가 누군지 찾고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하는 빡센 하루가 보였다.어제보다 오늘 좀 더 빠르게 라면을 먹은 에르딘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야. 오늘은 네가 치우고 설거지해. 어제 내가 했잖아. 나 머리가 너무 아파.”“어제 내가 너 업고 왔는데?”“야… 그건 그거고 설거지는….”“어제 너 물도 내가 먹여줬는데?”“그래, 그럼 내가 할게.”저 얄미운 공작 자식!지은 죄가 많아서 서린은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상을 치웠다.머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0.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이며 내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서린을 보며 에르딘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제 씻지도 못하고 잠든 상태라 꿉꿉해서 어디 나갈 수도 없었다.씻자니 에르딘이 방에 있는 게 신경 쓰였다.‘에르딘은 왜 뽀송뽀송한 거지. 나는 절어 있는데?’세상이 급 불공평하게 느껴졌다.잘생긴 놈한테만 더욱더 잘생김을 주는 세상.“에르…… 아니, 시후야. 나 씻고 올 테니까 기다려.”침대에 앉아 있던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서린은 최대한 재빠르게 촤아아, 촤아아 씻었다.들고 들어간 옷이 습기에 들러붙어 잘 들어가지 않았다.긴 머리는 말리지도 못하고 수건으로 돌돌 말아 나왔다.‘옷을 입고 나와야 해서 불편하네.’“시후, 너도 대충 씻어. 어제 못 씻었잖아.”“거절하지.”에르딘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서린은 당황스러웠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안 꿉꿉한가?’표정이 심상치 않았다.뭔가 이유가 있겠지.이제 생필품도 사야 하고 학교도 가야 했다.“잠깐.”서린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내 돈으로 다 하는 거야??”지금 두 명의 생활비를 혼자서?망했다.알바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에르딘도 내가 나타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부자니까 별로 상관없었으려나?서린은 벌써부터 등골이 휘는 것 같았다.“일단 생필품 좀 사러 나가자. 너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단 내가 돈을 꿔줄게.”에르딘의 눈이 가늘어졌다.“내 저택에서는 공짜로 뭘 안 썼나 보군?”은근한 살기에 서린이 움찔했다.“알았어. 사 줄게.”좀팽이 자식.어떻게 알았지?너한테 죽느라 얼마 못 쓰긴 했지만 네 거 쓰긴 했다.밥도 먹고, 잠도 자고.‘내가 상도덕이 있어서 갚는 줄 알아라.’서린은 입을 삐죽이며 신발을 신고 나가려 했다.침대에서 쑥 일어난 에르딘도 교양 있는 몸짓으로 운동화를 신었다.“이걸 교양 없애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원룸에서 저러니까 인지부조화 오네.”서린은 에르딘을 데리고 모든 걸 다 판다는 그곳으로 향해 쇼핑을 시작했다.장바구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9.

    서린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게슴츠레 눈을 뜨니 당황한 듯한 에르딘이 보였다.“에르딘! 너!”“이서린. 이곳은 어디지? 날 어디로 데리고 온 것이냐?”심각한 표정으로 서린의 어깨를 붙잡고 묻는 에르딘은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잠깐! 멈춰 봐. 여긴 내 집이야. 어제 네가 너무 취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구.”그제야 짤랑짤랑 서린을 흔들던 에르딘이 멈췄다.“집이라고? 이 작은 곳은 업무를 보는 곳이냐?”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니.설마 저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저러는 거?“아니, 여기서 먹고 씻고 자고 다 하는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설마 너는 여기서도 신분이 하찮은 거냐?”저런, 같은 말을 해도 더 얄미운 놈 같으니.“보통 대학생은 다 이런 데서 산단다. 나도 좀 묻자. 너 왜 안 죽고 내 옆에 돌아다녀?”“……말을 해 줘야 하나?”“나는 묻는 거 다 말해 줬는데?”“…….”에르딘은 침묵했다.그래. 네 속을 다 말해 주면 네가 에르딘 카이덴이 아니지. 다른 사람이지.저 머릿속에 또 생각이 얼마나 팽팽 돌아가고 있을까.서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에르딘을 지나쳐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흠칫 놀란 에르딘이 경계하는 낯으로 서린을 쳐다봤다.“아니, 나 물 좀 마시려고…… 너…… 너도 줘?”“됐다. 뭘 탔을 줄 알고.”듣다 보니까 화나네?나는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지 술 먹은 거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재워 주기까지 했는데.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아주 태도가 뻔뻔하기 그지없네.서린은 생수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신 뒤, 마시던 물병을 그대로 내밀었다.“자. 독 없지? 마셔. 어제 술 많이 먹어서 갈증 날 텐데?”“감히 네가 입에 댔던 것을 누구에게 주는 거지?”에르딘의 끊임없는 으르렁거림에 결국 서린의 뚜껑이 열렸다.‘남의 집에 와서 지금 공작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서린은 성큼성큼 다가가 순간적인 완력과 기술로 에르딘의 머리채를 잡아 내리고 입에 물병을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8.

    ‘하핫. 재현 선배, 아직 전 말도 못 꺼냈어요.’에르딘의 시선이 서린의 어깨 위에 얹힌 재현의 손에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매운 걸 먹어서 화가 난 눈치였다.“할 말 있다며, 남자 대 여자로.”‘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니? 이 수많은 여자들 앞에서?’일부러 그러는 거지?서린은 땀이 또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아니, 야. 남자 대 여자도 친구로 잘 지내 보자는 말이지. 뭘 그렇게 정색하냐. 하하하하하.”에르딘은 말없이 서린을 쳐다보기만 했다.서로가 서로에게 경계의 대상이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그래. 시후도 왔으니까 다 같이 잘 지내 보자. 내가 계산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나이스 타이밍, 재현 선배.서린은 조용히 선배를 향해 ‘고마워요.’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에르딘과 둘이 있어야 뭐라도 대화를 할 텐데, 그의 주변으로 사람이 들끓었다.그래. 너 잘생겼다.그 얼굴로 욕을 한들 안 좋아할 여자들이 있겠니?타이밍을 보며 삐죽삐죽 음식을 먹고 있는데, 다들 2차를 가자고 했다.얼떨결에 2차 술집으로 끌려온 서린은 근손실 때문에 안주만 깨작였다.곧이어 재현 선배가 서린의 옆으로 쑥 들어왔다.“서린아, 술 안 마셔서 재미없지?”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거대 멍뭉이 같았다.‘좀 취하신 듯하군.’인기 스타라 여기저기서 술을 권한 듯했다.“아니에요. 재밌어요!”“있잖아. 잠깐 바람 좀 쐬러 나갈까?”“앗. 넵!”에르딘은 여전히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서린은 잠시 나갔다 와도 될 듯해 재현 선배와 함께 일어났다.재현 선배는 가게 옆 골목에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하아. 오늘 좀 취하네. 서린아, 나 줄곧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꿀꺽.무슨 소리를 하시려고.‘네가 토했던 신발 비싼 거야? 고백 공격은 너무했어? 나대지 마?’찔리는 게 너무 많았다.“술 먹고 실수한 걸로 나…… 피하지 마.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서린아…….”“네?”“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하하.”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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