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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utor: 엣뀽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9-02 14:26:50

서린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게슴츠레 눈을 뜨니 당황한 듯한 에르딘이 보였다.

“에르딘! 너!”

“이서린. 이곳은 어디지? 날 어디로 데리고 온 것이냐?”

심각한 표정으로 서린의 어깨를 붙잡고 묻는 에르딘은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

“잠깐! 멈춰 봐. 여긴 내 집이야. 어제 네가 너무 취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구.”

그제야 짤랑짤랑 서린을 흔들던 에르딘이 멈췄다.

“집이라고? 이 작은 곳은 업무를 보는 곳이냐?”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니.

설마 저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저러는 거?

“아니, 여기서 먹고 씻고 자고 다 하는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

“설마 너는 여기서도 신분이 하찮은 거냐?”

저런, 같은 말을 해도 더 얄미운 놈 같으니.

“보통 대학생은 다 이런 데서 산단다. 나도 좀 묻자. 너 왜 안 죽고 내 옆에 돌아다녀?”

“……말을 해 줘야 하나?”

“나는 묻는 거 다 말해 줬는데?”

“…….”

에르딘은 침묵했다.

그래. 네 속을 다 말해 주면 네가 에르딘 카이덴이 아니지. 다른 사람이지.

저 머릿속에 또 생각이 얼마나 팽팽 돌아가고 있을까.

서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에르딘을 지나쳐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흠칫 놀란 에르딘이 경계하는 낯으로 서린을 쳐다봤다.

“아니, 나 물 좀 마시려고…… 너…… 너도 줘?”

“됐다. 뭘 탔을 줄 알고.”

듣다 보니까 화나네?

나는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지 술 먹은 거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재워 주기까지 했는데.

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아주 태도가 뻔뻔하기 그지없네.

서린은 생수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신 뒤, 마시던 물병을 그대로 내밀었다.

“자. 독 없지? 마셔. 어제 술 많이 먹어서 갈증 날 텐데?”

“감히 네가 입에 댔던 것을 누구에게 주는 거지?”

에르딘의 끊임없는 으르렁거림에 결국 서린의 뚜껑이 열렸다.

‘남의 집에 와서 지금 공작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서린은 성큼성큼 다가가 순간적인 완력과 기술로 에르딘의 머리채를 잡아 내리고 입에 물병을 꽂았다.

놀란 에르딘이 서린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서린의 행동이 워낙 순식간이었던 탓에 결국 꿀떡꿀떡 물을 삼켜 버렸다.

물만 먹였는데도 서린의 표정은 어쩐지 밝아지며 개운해졌다.

속이 아주 뻥 뚫렸다.

에르딘 저건 저렇게 살다가 누가 안 죽여도 언젠가는 스스로 죽지 않을까 싶다.

서린은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았다.

아씨.

잡혔던 손목에 멍이 들었다.

“감히 내가 마시던 걸 마셨으니, 이제 대답 좀 해 보시지? 왜 원래 세계로 안 돌아가는 거야?”

“돌아갈 이유가 있나? 죽기도 싫고, 이 세계도 궁금하고 말이지.”

에르딘이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만 웃는 걸 보니 뭔가 계략이 있군.

있는 그대로 믿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죽기는? 나도 싫지.’

‘하지만 나는 죽어서라도 돌아오고 싶을 것 같은데.’

하물며 에르딘에게는 세레나가 있지 않나?

더더욱 돌아가야 할 이유가 될 텐데.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있나?

“그럼 나 안 죽일 거지?”

공작이 ‘하’ 하고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그대야말로 그런 짓 하지 않길 부탁하지.”

그렇게 둘은 서로 안 죽이기 휴전 협정을 맺었다.

에르딘은 앞으로 한국에서는 시후라고 부르기로 했다.

에르딘도 그녀를 서린이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서린은 대충 머리를 질끈 묶어 올리고 주방에서 냄비를 꺼냈다.

“라면 먹을 거지?”

“라면?”

‘이건 뭐, 아는 게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할 판이네.’

따로 대답하지 않고 라면 두 개를 보글보글 끓였다.

계란이 없네.

그냥 플레인으로 먹어야지 뭐.

작은 식탁을 펴고 끓인 라면을 올렸다.

에르딘은 생전 처음 보는 음식 앞에서 잠시 굳어 있었다.

밥그릇은 하나라 에르딘에게 양보하고, 서린은 냄비 뚜껑을 썼다.

젓가락질하는 법을 보여준 뒤 서린이 라면을 흡입했다.

에르딘도 나름 젓가락으로 열심히 라면을 우아하게 먹고 있었다.

공작쯤 되면 행동이 그냥 다 품위 있어지는가 보다.

서린은 이쯤 되니까 얼굴이 매너를 만드는 건지, 매너가 얼굴을 더 나아 보이게 만드는 건지 헷갈렸다.

식사가 끝나자 서린은 식탁을 정리했다.

설거지를 하고 상을 접는 동안, 에르딘은 그 모습을 품위 있게 보고만 있었다.

“왜!!! 왜 집에 안 가!!!!!”

“집이 어딘지 모른다.”

“민증 없어?? 민증에 나와 있을 거 아냐.”

에르딘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민증이 뭔지 모른다.”

서린이 에르딘의 옷 주머니란 주머니는 전부 더듬었다.

흠칫!

바지춤까지 더듬으려는 서린의 손을 에르딘이 재빨리 잡았다.

“지금 지갑 찾고 있거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거든?”

“닥쳐라. 내가 찾겠다.”

“주머니 다 뒤져 봐. 거기에 아마 있을 거야.”

자기 몸을 직접 수색하던 에르딘은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지갑이 없다고 했다.

“아니, 저번에 넘어왔을 땐 그럼 학교는 어떻게 온 거야?”

“그냥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그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냥 상황에 따라 행동한 거라고?”

“그래.”

“그럼 칼은 왜 맞은 거야?”

“시비를 걸기에 받아주었다.”

아, 그냥 길 가다 시비가 걸렸는데 조폭이어서 죽었구나.

아, 그랬구나?

그럼 아무것도 모르고 집도, 돈도, 가족도 없는 상태구나.

그래서 아는 척했구나?

‘나도 델리아가 됐을 때랑 똑같았는데.’

“그럼 앞으로 어디서 지낼 건데?”

“나도 모르지. 노숙하다 또 그냥 칼 맞아 죽어 버릴지도.”

에르딘은 예의 그 눈만 웃는 표정을 지었다.

약아 빠져가지고.

이 사이코가 내 줄을 잡고 흔들어 댔다.

뿌드득.

이가 갈렸다.

협박당하고 있는데, 슬프게도 할 수 있는 대답은 저놈이 원하는 것밖에 없었다.

“어…… 그럼…… 일단 우리 집에…… 있을래?”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놈이 원하는 대로 서린의 집이 임시 보호소가 되었다.

서린은 왜 에르딘이 자신에게 붙어 있었는지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고 나니, 그가 마냥 의뭉스럽지만은 않았다.

다 가진 놈이 아무것도 없는 이곳이 뭐가 좋다고 남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린은 한국이 좋았다.

한국에 오래 남으려면 윤시후가 뭐 하는 사람인지 꼭 찾아주마.

돌아갈 생각 못 하게!

그런데 윤시후가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대체 어디서부터 알아보냐고!

게다가 지금 당장 제일 시급한 것은 칫솔, 여분의 옷, 속옷, 양말 등등이었다.

“젠장!”

‘신혼부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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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3.

    눈앞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수많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그중 한곳에 눈이 멈췄다.메이드...델리아...그곳에 그녀가 있었다.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녀를 찾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나는 지금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맸다.이 세상은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나는 그저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을 뿐이었다.어둑어둑해질 즈음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섰다.'이건 뭐, 떠돌이 용병만도 못하군.'그때 검은 옷을 차려입은 남자 대여섯 명이 나를 에워쌌다.“너희는 누구지?”“도련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보낸 사람들이죠.”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이 날아왔다.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대인전은 늘 몸풀기처럼 해왔던 운동에 가까웠으니까.숫자에 밀리지 않고 싸우던 중, 골목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저기요!!!!!”'델리아.......'아차.잠시 한눈을 판 사이 복부로 날카로운 열감이 밀려왔다.주르륵 밀려 벽에 쿵 부딪힌 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볼일을 마친 사내들은 재빨리 사라졌고, 델리아가 앞으로 달려왔다.“윤시후 씨!!!!!!!”다급히 이름을 외치던 그녀는 별안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에르딘.......?”나는 진심으로 놀라 델리아를 마주했다.너도 나를 알아봤어?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었어?쿨럭.델리아가 발로 칼을 눌러 비틀었다.그래, 맞다.내가 네 가슴을 찔렀지.세레나 앞에서 잔인하게 시체처럼 너를 내던졌지.네가 이럴 만도 해.이해는 하는데....... 용서는 못하지.내 눈이 초점을 잃어갔다.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공작저였다.‘어떻게 된 일이지.’침대에서 일어나 집무실로 발을 옮겼다.그러다 마주친 델리아.고개를 푹 숙인 모습을 보니 죄인 같구나.혹시 그녀도 자신을 죽인 것을 기억하려나?죽은 저 메이드가 살아 있다면, 세레나도 살아 있는 거겠지.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나?나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2.

    세상을 뒤집어서라도 가지고 싶은 여자.세레나에 대한 에르딘의 감상이다.저 해맑음을, 저 순진함을, 저 깨끗한 영혼을 모조리 내 소유로 만들고 싶었다.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걸까.분명 호수에 그만한 마물이 나올 수는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물을 유인한 것이 분명했다.세레나를 지키기 위해 전열에 나서 싸웠지만 결국 한 마리, 두 마리 이탈하는 놈이 생겼다.노엘을 마차 앞으로 보냈다. 그럼 다 죽어도 세레나만큼은 지키겠지.그런 계산 아래 에르딘은 홀로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헬바르크의 우두머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직 버틸 만했다.우두머리는 확실히 다른 개체보다 빨랐고,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순식간에 다가왔다.'콰직.'다리에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이 일었다.'우두머리급은 다르다 이건가.'그때 웬 메이드 하나가 헬바르크의 머리를 칼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는 바로 에르딘의 뒤에 섰다.소름이 쭈뼛 돋았다.'피를 뒤집어쓴 메이드라…….'메이드는 투박했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잘 처리해 나갔다.어디서 난 메이드지.손에는 찢은 옷을 말아 만든 듯한 천이 둘둘 감겨 있었다.메이드가 지쳐가는지 퇴각하자고 했다.“어디로?”“저기…… 그냥 일단 아무 방향으로 뛰실까요?”“그러지.”마차는 보이지 않고 우두머리도 여기서 죽었으니 최대한 마차에서 먼 곳으로 뛰었다.아마 놈들이 쫓아와도 우리를 쫓겠지.여기까지는 에르딘의 계산이 맞았다.그런데 이 미친 메이드가 감히 절벽에서 밀지를 않나, 이상한 소리를 하며 내 목을 조르고 함께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와중에도 살기가 피어올랐다.내가 깨어나면 저 메이드부터 죽여버리겠다.그렇게 나는 물에 빠지자마자 정신을 잃었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바지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와 있었다.“지금 뭐 하는 짓이지.”많은 여자를 봐왔지만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하지만 치료를 해야 한다며 덤덤하게 옷을 벗기는 메이드를 말릴 수는 없었다. 자신의 몸을 벗겨놓고는 불 피울 준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1.

    다음 날 아침.서린은 깨질 듯한 두통에 차디찬 방바닥에서 일어났다.‘어떻게 된 거지.’집에는 무사히 들어오긴 한 것 같은데.서린의 침대 위에는 그림 같은 자세로 에르딘이 자고 있었다.“아, 머리야.”화가 나야 되는데 머리가 아파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몸도 너무 아팠다.밤새 누가 서린을 때린 것 같았다. 서린이 의심의 눈초리로 에르딘을 흘겨보았다.서린은 침대위로 올라가 몸을 쑤욱 밀어 넣어 에르딘을 떨어뜨리려고했다.“내 침대라고…….”그리고 에르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서린이 침대를 포기하고 차디찬 바닥에서 몸을 공벌레처럼 말고 고통에 찬 신음을 냈다.‘머리가 쪼개질 것 같다.’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통째로 날아갔다. “나 어제 어떻게 왔지?”그때 불현듯 누군가에게 업힌 서린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설마.죽은 듯 자고 있던 에르딘이 어느 순간 옆으로 누워 서린을 바라보고 있었다.‘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아.이불이 에르딘한테 있어서 이불킥도 못 하는 서린이였다.“내가 어제…. 혹시….”“취해서 내가 업고 왔다.”“아악…. 고, 고마워?”“됐다. 술 작작 처먹어라.”이렇게 내 업보를 돌려받는다고?인정하겠다.어제의 서린은 개서린이었겠지…….“라면 먹을 거지?”민망해진 서린이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오늘은 어제 산 밥그릇이 있어서 둘 다 그릇에 식사할 수 있었다.문제는 이제 먹을 게 없었다.더 문제는 이제 돈도 없었다.오늘 어떻게 해서든 윤시후가 누군지 찾고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하는 빡센 하루가 보였다.어제보다 오늘 좀 더 빠르게 라면을 먹은 에르딘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야. 오늘은 네가 치우고 설거지해. 어제 내가 했잖아. 나 머리가 너무 아파.”“어제 내가 너 업고 왔는데?”“야… 그건 그거고 설거지는….”“어제 너 물도 내가 먹여줬는데?”“그래, 그럼 내가 할게.”저 얄미운 공작 자식!지은 죄가 많아서 서린은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상을 치웠다.머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10.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이며 내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서린을 보며 에르딘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어제 씻지도 못하고 잠든 상태라 꿉꿉해서 어디 나갈 수도 없었다.씻자니 에르딘이 방에 있는 게 신경 쓰였다.‘에르딘은 왜 뽀송뽀송한 거지. 나는 절어 있는데?’세상이 급 불공평하게 느껴졌다.잘생긴 놈한테만 더욱더 잘생김을 주는 세상.“에르…… 아니, 시후야. 나 씻고 올 테니까 기다려.”침대에 앉아 있던 에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서린은 최대한 재빠르게 촤아아, 촤아아 씻었다.들고 들어간 옷이 습기에 들러붙어 잘 들어가지 않았다.긴 머리는 말리지도 못하고 수건으로 돌돌 말아 나왔다.‘옷을 입고 나와야 해서 불편하네.’“시후, 너도 대충 씻어. 어제 못 씻었잖아.”“거절하지.”에르딘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서린은 당황스러웠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안 꿉꿉한가?’표정이 심상치 않았다.뭔가 이유가 있겠지.이제 생필품도 사야 하고 학교도 가야 했다.“잠깐.”서린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내 돈으로 다 하는 거야??”지금 두 명의 생활비를 혼자서?망했다.알바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에르딘도 내가 나타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부자니까 별로 상관없었으려나?서린은 벌써부터 등골이 휘는 것 같았다.“일단 생필품 좀 사러 나가자. 너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단 내가 돈을 꿔줄게.”에르딘의 눈이 가늘어졌다.“내 저택에서는 공짜로 뭘 안 썼나 보군?”은근한 살기에 서린이 움찔했다.“알았어. 사 줄게.”좀팽이 자식.어떻게 알았지?너한테 죽느라 얼마 못 쓰긴 했지만 네 거 쓰긴 했다.밥도 먹고, 잠도 자고.‘내가 상도덕이 있어서 갚는 줄 알아라.’서린은 입을 삐죽이며 신발을 신고 나가려 했다.침대에서 쑥 일어난 에르딘도 교양 있는 몸짓으로 운동화를 신었다.“이걸 교양 없애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나……. 원룸에서 저러니까 인지부조화 오네.”서린은 에르딘을 데리고 모든 걸 다 판다는 그곳으로 향해 쇼핑을 시작했다.장바구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9.

    서린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게슴츠레 눈을 뜨니 당황한 듯한 에르딘이 보였다.“에르딘! 너!”“이서린. 이곳은 어디지? 날 어디로 데리고 온 것이냐?”심각한 표정으로 서린의 어깨를 붙잡고 묻는 에르딘은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잠깐! 멈춰 봐. 여긴 내 집이야. 어제 네가 너무 취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구.”그제야 짤랑짤랑 서린을 흔들던 에르딘이 멈췄다.“집이라고? 이 작은 곳은 업무를 보는 곳이냐?”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니.설마 저택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저러는 거?“아니, 여기서 먹고 씻고 자고 다 하는데? 한국은 물가가 비싸.”“설마 너는 여기서도 신분이 하찮은 거냐?”저런, 같은 말을 해도 더 얄미운 놈 같으니.“보통 대학생은 다 이런 데서 산단다. 나도 좀 묻자. 너 왜 안 죽고 내 옆에 돌아다녀?”“……말을 해 줘야 하나?”“나는 묻는 거 다 말해 줬는데?”“…….”에르딘은 침묵했다.그래. 네 속을 다 말해 주면 네가 에르딘 카이덴이 아니지. 다른 사람이지.저 머릿속에 또 생각이 얼마나 팽팽 돌아가고 있을까.서린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 에르딘을 지나쳐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흠칫 놀란 에르딘이 경계하는 낯으로 서린을 쳐다봤다.“아니, 나 물 좀 마시려고…… 너…… 너도 줘?”“됐다. 뭘 탔을 줄 알고.”듣다 보니까 화나네?나는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지 술 먹은 거 개고생해서 여기까지 끌고 와 재워 주기까지 했는데.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안 했지만, 아주 태도가 뻔뻔하기 그지없네.서린은 생수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신 뒤, 마시던 물병을 그대로 내밀었다.“자. 독 없지? 마셔. 어제 술 많이 먹어서 갈증 날 텐데?”“감히 네가 입에 댔던 것을 누구에게 주는 거지?”에르딘의 끊임없는 으르렁거림에 결국 서린의 뚜껑이 열렸다.‘남의 집에 와서 지금 공작 행세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서린은 성큼성큼 다가가 순간적인 완력과 기술로 에르딘의 머리채를 잡아 내리고 입에 물병을

  • 너는 피폐해, 나는 로맨스할게   8.

    ‘하핫. 재현 선배, 아직 전 말도 못 꺼냈어요.’에르딘의 시선이 서린의 어깨 위에 얹힌 재현의 손에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매운 걸 먹어서 화가 난 눈치였다.“할 말 있다며, 남자 대 여자로.”‘그거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니? 이 수많은 여자들 앞에서?’일부러 그러는 거지?서린은 땀이 또르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아니, 야. 남자 대 여자도 친구로 잘 지내 보자는 말이지. 뭘 그렇게 정색하냐. 하하하하하.”에르딘은 말없이 서린을 쳐다보기만 했다.서로가 서로에게 경계의 대상이니 이상하게 볼 만도 했다.“그래. 시후도 왔으니까 다 같이 잘 지내 보자. 내가 계산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나이스 타이밍, 재현 선배.서린은 조용히 선배를 향해 ‘고마워요.’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에르딘과 둘이 있어야 뭐라도 대화를 할 텐데, 그의 주변으로 사람이 들끓었다.그래. 너 잘생겼다.그 얼굴로 욕을 한들 안 좋아할 여자들이 있겠니?타이밍을 보며 삐죽삐죽 음식을 먹고 있는데, 다들 2차를 가자고 했다.얼떨결에 2차 술집으로 끌려온 서린은 근손실 때문에 안주만 깨작였다.곧이어 재현 선배가 서린의 옆으로 쑥 들어왔다.“서린아, 술 안 마셔서 재미없지?”헤실헤실 웃는 모습이 거대 멍뭉이 같았다.‘좀 취하신 듯하군.’인기 스타라 여기저기서 술을 권한 듯했다.“아니에요. 재밌어요!”“있잖아. 잠깐 바람 좀 쐬러 나갈까?”“앗. 넵!”에르딘은 여전히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서린은 잠시 나갔다 와도 될 듯해 재현 선배와 함께 일어났다.재현 선배는 가게 옆 골목에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하아. 오늘 좀 취하네. 서린아, 나 줄곧 너한테 할 말 있었는데…….”꿀꺽.무슨 소리를 하시려고.‘네가 토했던 신발 비싼 거야? 고백 공격은 너무했어? 나대지 마?’찔리는 게 너무 많았다.“술 먹고 실수한 걸로 나…… 피하지 마. 친하게 지내고 싶어, 서린아…….”“네?”“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하하.”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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