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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일세종환
강나래가 예쁘고 몸매도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끔 서로의 몸을 탐할 때면 그 역시 자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생각만 하면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한다는 죄책감이 들어 참고 견뎌왔다.

하지만...

강나래는 합법적인 그의 아내였고 충분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강나래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오직 첫사랑과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남자였으니 그녀에겐 별다른 흑심을 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나래는 아주 자연스럽게 심인혁의 앞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들었다.

심인혁은 그 자리에 서서 강나래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등을 돌린 여자는 폭포처럼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다. 그러자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드러났다. 습한 공기 속에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심인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뜨거운 손이 강나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나래야,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지?"

심인혁은 헤어드라이어를 빼앗아 전원을 끈 뒤 강나래를 뒤에서 안았다.

강나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메스껍기만 할 뿐이었다.

"필요 없어."

그녀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강나래의 턱과 목을 가볍게 잡았다. 부드러운 피부는 손을 떼기 싫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집안일에 회사 일까지 하느라 너무 힘들었지? 아이를 갖고, 회사 일 그만두고 앞으로 잔업주부로 살자, 어때?"

강나래는 더 이상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의 일도 제쳐두었다. 게다가 그가 알지 못하는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된다.

그는 집안일을 도맡아 줄 현모양처가 필요했고 심씨 가문 역시 부려 먹기 좋은 며느리가 필요했다.

강나래가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를 가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아내를 완전히 집에 가둬 둘 수 있는 좋은 핑계였다.

고작 15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일자리는 별것이 아니였다. 다른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오히려 그의 체면이 깎일 것이다.

그가 강나래에게 키스하려던 순간, 강나래가 고개를 돌려 그를 피했다.

심인혁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강나래는 단호한 시선으로 거울 너머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내가 그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점점 강렬해졌다. 평소 점잖기만 했던 심인혁은 표정을 완전히 일그러뜨렸다. 강나래의 턱을 잡은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4년 동안 아이를 원한다고 했던 사람은 당신이야. 이제 내가 아이를 원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싫다고?"

순간 심인혁의 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바람피우는 거야?"

그 말을 들은 강나래의 심장은 칼로 에이듯이 아파왔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심인혁을 응시했다. 그 눈빛은 마치 '바람을 피우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하고 묻는 듯했다.

강나래는 그를 밀치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심인혁은 한 번도 강나래에게 거절당해 본 적이 없었다.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강나래는 그가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심인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성큼성큼 강나래를 쫓아간 그는 강나래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그녀를 침대 위로 넘어뜨렸다.

"심인혁! 뭐 하는 거야!"

"아이를 갖자. 내가 갖자고 하면 갖는 거야. 강나래, 당신은 한 번도 날 거절한 적이 없잖아. 말 들어."

심인혁은 놀라 얼어붙은 강나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그녀의 하얀 목과 쇄골에 키스를 퍼부었다.

힘 있는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더니 손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남자는 늑대처럼 무서운 존재였다.

강나래는 너무 놀라 그를 마구 밀쳐냈다.

"싫다고 했잖아, 심인혁, 심인혁. 싫다고!"

"아이를 가질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야."

남자는 키스를 멈추더니 그녀의 두 손을 결박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꼼짝할 수 없었던 강나래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4년 동안 다정하게 대해주던 남자가 이런 식으로 강요하다니.

다시 한번 그가 그녀의 입술, 목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여기저기 키스를 퍼붓고 있었다.

두 다리가 억지로 벌려지는 순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강나래는 무릎으로 그를 차버렸다. 남자는 고통에 손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그의 뺨을 때렸다.

짝--

"강나래! 날 때렸어?"

심인혁은 화가 나 손을 들었다. 단단한 그의 손바닥이 예상대로 강나래의 뺨에 내려앉았다.

강나래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심인혁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강나래가 우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방 안에 적막이 맴돌았다.

"여보..."

심인혁은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상처받은 사슴 같은 강나래의 눈빛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담요를 두르고 침실에서 뛰쳐나간 강나래는 소파 위에 놓인 휴대폰을 챙기고 집을 나갔다.

집을 나선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들려왔다.

'이혼.'

빨갛게 부은 얼굴로 길가에 서 있던 강나래는 가장 먼저 보육원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원장 엄마가 속상해할 것 같았다. 오연홍은 시골에서 요양 중이었으니 찾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눈에 보이는 호텔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호텔 입구에 한 마이바흐가 등장했다.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창문으로 한 여자가 머리를 내밀었다.

"오빠, 정말 집에 안 들어갈 거야? 엄마 아빠도 그저 말만 그럴 뿐인데."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혼자 호텔로 들어갔다.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날고 기는 하성그룹의 대표도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하하하..."

마이바흐가 그곳을 떠났다.

로비를 지나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반복하는 프런트 직원의 질문을 듣게 되었다.

"손님, 정말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로비로 전화 주세요."

"감사합니다."

허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하성그룹 산하의 호텔이었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상 그 어떤 사고 소식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준혁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맨발에 담요를 두른 여자가 서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여자의 반쪽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여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얼굴의 붉은 손자국이 보일락말락 했다.

그는 여자와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여자는 마치 산송장처럼 멍한 모습이었다. 방 카드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엘리베이터 층수조차 누르지 않았다. 어렴풋이 여자의 옆얼굴을 통해 끈 떨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잠시 멈칫하던 그가 물었다.

"몇 층으로 가시죠?"

드디어 정신을 차린 여자는 창백하고 힘없는 손가락으로 방 카드를 엘리베이터에 가져다 대고 층수를 눌렀다. 이내 눈물을 닦은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귀 뒤에 꽂아 얼굴을 드러냈다.

눈꼬리와 코끝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자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추한 꼴을 절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강나래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하준혁은 여자의 얼굴에 난 붉은 자국을 잠시 쳐다보았지만 구태여 질문하지 않았다.

띵--

강나래가 묵는 층에 도착했다. 그녀는 다시 살짝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인사를 건넨 뒤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하준혁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가녀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다.

강나래가 소파에 앉자마자 도어벨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호텔의 매니저였다.

"손님, 안녕하세요.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와 편안하고 부드러운 슬리퍼가 필요할지도 몰라 이렇게 가져왔어요."

매니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묘하게 그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매니저가 참지 못하고 말을 보탰다.

"걱정하지 마세요, 손님. 악의는 전혀 없습니다. 그저 손님이 걱정되어서요. 우리 호텔을 찾아준 모든 손님에게 편안함을 선물하는 것이 우리 호텔의 취지니까요. 좋은 밤 되십시오."

오늘 밤, 강나래는 결혼한 지 4년 된 남편에게 뺨을 맞았다. 하지만 집에서 나온 뒤 낯선 사람으로부터 온기를 선물 받았다.

강나래는 연고와 슬리퍼를 받아 들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빙그레 웃고 있던 매니저는 약지에 끼고 있는 그녀의 반지를 본 뒤 멍해졌다.

'아니, 이... 이게...'

매니저는 놀라며 그곳을 떠났다.

문을 닫은 강나래는 발을 닦고 슬리퍼를 신었다. 손을 씻고 얼굴에 약을 바르자마자 곁에 놓아둔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보낸 문자가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호칭은 심인혁이 직접 고친 것이었다.

[어디 갔어]

[돌아와, 강나래. 투정 부리지 말고.]

[네가 아이를 원했잖아. 동의한다고. 내일 당장 하성그룹에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임신 준비해.]

심인혁의 태도는 아주 강경했다. 강나래는 순간 심인혁이 변한 건지 아니면 이게 심인혁의 진짜 모습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강나래는 휴대폰을 무시했다. 심인혁의 문자에 제때 답장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밤새도록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아침, 심인혁이 전화를 걸었지만 강나래는 받지 않았다.

문자가 또 하나 들어왔다.

[여보, 당신이 해준 아침을 먹지 못하니까 위가 아파.]

휴대폰을 쥔 강나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아내인 그녀를 떠올리다니.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강나래는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은 심인혁은 한참 동안 답장을 기다렸지만 결국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이래도 안 온다고?'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임서연의 전화였다.

잠깐 실망스러운 기색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하지만 이내 다정한 미소를 지은 그가 물었다.

"서연아, 무슨 일이야?"

휴대폰 너머의 임서연이 멈칫했다.

"인혁아, 나 벌써 아파트 입구에 나와 있는데. 너 어딨어?"

그제야 심인혁은 매일 임서연의 출퇴근을 책임지겠다 약속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소파에 앉은 채로 강나래의 소식을 이토록 오래 기다렸다니.

'강나래가 날 이렇게 오래 내버려두었단 말이야?'

괜찮았다. 그저 잠깐의 투정일 뿐이니까.

심인혁을 무척 사랑하는 강나래는 그를 떠나지 못할 것이다.

심인혁은 차를 몰고 길가로 나왔다. 조수석에 앉은 임서연은 빨갛게 부어오른 그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젯밤 온 힘을 다해 때린 강나래의 손자국이 아주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인혁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안전벨트를 푼 임서연은 허리를 숙이고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펴보았다. 가슴이 아파 눈시울이 다 붉어질 지경이었다.

"누가 때린 거야!"

임서연이 우는 것이 가장 싫었던 심인혁은 얼른 대답했다.

"아프지 않아. 슬퍼하지 마. 아침 먹었어?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

그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임서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혁아, 나래 씨랑 싸운 거야? 나 때문이야? 미안해, 인혁아."

"너 때문이 아니야. 나래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심인혁은 허리를 숙여 임서연의 안전벨트를 다시 매어 준 뒤 아침을 먹으러 갔다. 임서연은 그를 관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음에도 신경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인혁아, 죽이 너무 뜨거워. 좀 불어줄래?"

"그래."

심인혁은 임서연의 앞에 놓인 해물 죽을 숟가락으로 가볍게 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움직임을 멈추더니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인혁아,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거야?"

임서연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심인혁은 휴대폰을 덮어놓으며 말했다.

"알고 지내는 어르신에게 보냈어."

은사님의 아내인 오연홍이었다.

남편이 가장 아끼는 제자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오연홍은 직접 시내로 올라와 강나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소를 알아낸 뒤 그녀는 얼른 호텔로 향했다.

백발이 성성한 오연홍을 본 강나래는 잠시 놀라 움찔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가리긴, 다 봤어."

오연홍은 진지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심인혁이 때린 거야?"

"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린 순간 다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졌다.

"울긴 왜 울어. 감히 손찌검까지 했으니 앞으로는 널 생매장하려고 들 거야."

오연홍은 강나래가 그 집 뒤치다꺼리를 하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녀는 사건의 경과를 묻는 대신 질문을 건넸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혼할 거예요."

강나래는 고개를 들었다.

오연홍은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변호사는 내가 찾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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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늦은 후회   제30화

    심인혁과 임서연은 강나래를 본 순간 움찔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었다. 심인혁은 본인이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더 알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강나래는 여전히 심인혁의 아내였다. 김 비서는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심 대표님. 그리고 이 분은, 아내분인가요?" 아내라는 호칭을 들은 임서연은 강나래를 도전적으로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심인혁은 강나래를 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임서연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저와 인혁이는 친구 사이예요." 김 비서와 박 비서는 여러 회사의 대표들을 만나왔기에 모두 남몰래 애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심인혁과 임서연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었다. 곁에 서 있는 강나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강나래." 심인혁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임서연 역시 웃으며 말했다. "나래 씨, 왜 저와 인혁이를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 오해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저 함께 쇼핑 중이에요." 아파트를 산 뒤에 쇼핑을 온 건가? 게다가 심인혁이 약속했지만 한 번도 함께 와 보지 못한 백화점에 말이다. 역시나. 남자의 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흐르는 모양이었다. 김 비서와 박 비서는 놀라며 강나래에게 물었다. "심 대표님과 아는 사이에요?" 강나래는 심인혁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알아요." 강나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았다. 심인혁은 그런 그녀가 기특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쁘기는커녕 가슴이 턱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임서연은 하준혁의 직원을 알지 못하기에 웃으며 물었다. "나래 씨 친구분들인가요? 같이 쇼핑을 온 모양이군요. 하지만 나래 씨는 이런 백화점에 와본 적이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 이곳에서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두 사람이 나래 씨를 잘 챙겨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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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 취했었어. 나에겐 널 밀쳐낼 힘도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온 심인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곤란한 사람처럼 말이다. 심인혁과 임서연은 그와 강나래의 침대에서 몸을 섞었다.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임서연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인혁아, 너 어젯밤에 너무... 마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어." 말을 마친 임서연은 다가와 그를 안았다. 심인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나날동안 그리워했던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나래와는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알아." 임서연은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인혁아,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내 마음속에도 온통 너뿐이야."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심인혁의 입술에 입 맞췄다. 심인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뭔가 떠오른 듯이 미소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 나래가 집으로 왔었어?" 임서연은 그 이름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는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심인혁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 심인혁은 갑자기 임서연의 손을 풀더니 거실로 가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도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하. 잘하는 짓이야. 그는 화가 난 나머지 휴대폰을 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인혁아, 나래 씨를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냐고?" 심인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마음대로 하라지. 광명시에는 딱히 나래가 갈 데도 없어. 보육원 아니면 오연홍에게 찾아갔을 거야." "인혁아, 너 나래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에게 다가간 임서연의 표정은 무척 서글펐다. 순간 멈칫하던 심인혁이 대답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그저 내

  • 너무 늦은 후회   제26화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 너무 늦은 후회   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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