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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일세종환
"이름이 겹쳤을 뿐이야. 내 아내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야."

심인혁은 덤덤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팀원과 이름이 겹친다니 그것 역시 나래의 영광이네."

"영광이지."

임서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팀의 강나래 씨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거든."

너무 대단해서 짜증이 나는 사람이었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는 신분으로 임서연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핵심 영역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역시, 강나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강나래는 임서연을 빤히 보며 물었다.

"임서연 씨, 어떤 프로젝트를 이끌고 계시죠?"

임서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심인혁이 투덜거렸다.

"잘 모르면 물어보지도 마. 국가 기밀 프로젝트라 대외적으로는 비밀이니까."

"국가 기밀이라면서 왜 당신이 그걸 알고 있는 거지?"

강나래는 냉담하게 반문을 던졌다.

임서연은 움찔 놀라고 말았다. 강나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임서연은 고개를 돌려 심인혁을 보며 말했다.

"네 아내, 꽤 재밌는 사람이구나?"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또다시 강나래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말해도 모를 거라 했잖아. 왜 계속 물어보는 거야?"

강나래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통 임서연에게 향해 있었다.

우쭐하며 미소를 지은 임서연은 이내 억지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인혁아, 난 결혼했다는 네 말이... 농담인 줄 알았어."

마지막 구절은 몹시 쓸쓸하게 들렸다.

심인혁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분위기 역시 어둡게 가라앉았다.

심인혁이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어."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임서연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나 조금 후회가 돼."

강나래는 임서연에게 닿아 있는 심인혁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음을 보아냈다.

"오해하지 말아요. 제 뜻은, 인혁이가 결혼한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 외국에 있었던 탓에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는 뜻이었어요. 전 인혁이가 일부러 장난하는 줄 알았어요."

임서연은 그 말을 하며 줄곧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싸구려 옷에 꾸미지도 않은 강나래는 무시해 버린 채로 말이다.

강나래는 갑자기 그녀와 심인혁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들을 말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아주 소박하게 진행되었는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심인혁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심씨 가문의 사람들뿐이었다.

심인혁은 친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에야 휘청거리며 방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몹시 취한 듯 문을 열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한 손에는 술병을, 다른 한 손에는 휴대폰을 꼭 쥔 채였다.

발그레해진 두 눈에 담긴 감정은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심인혁이 주먹을 쥐었다 힘을 풀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심인혁은 휴대폰을 멀리 던진 뒤 강나래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기뻐, 기뻐서 그래. 내가 결혼을 하다니..."

분명 씁쓸한 웃음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결혼식 날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같았다. 결혼으로 임서연의 마음을 떠보며 질투심을 유발하려 했던 것이다.

아내로서 강나래 존재의 의미, 그 첫 번째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강나래가 웃음을 터뜨릴 차례였다.

갈증으로 타는 목구멍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모두 심희연의 병실로 찾아갔다. 심희연은 부모님과 오빠를 보고 한바탕 울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시선이 임서연에게 닿은 순간 심희연의 얼굴에 기쁨과 놀라움이 번졌다.

"서연 언니!"

"희연아, 오랜만이야."

임서연은 허리를 숙이고 심희연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심희연은 활짝 웃음을 지었다. 평소 오빠에게도 심통을 자주 부리는 심희연이었기에 이토록 온순하고 애교 섞인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만 강나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일은 잊지 않은 듯했다.

"새언니! 사과 좀 깎아줘요."

"그건 나도 할 줄 알아. 내가 깎아 줄게."

임서연은 웃으며 탁자 위에 놓인 사과와 과일칼을 들어 올렸다. 사과를 손에 쥐자마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심인혁이 그녀를 말렸다.

"서연아, 어리광 받아줄 필요 없어. 네 손은 이런 허드렛일이나 할 손이 아니야."

"맞아!"

심희연은 맞장구를 쳤다.

"서연 언니, 언니의 손은 실험하고 수치를 기록하는 데 써야지 궂은일은 하면 안 돼. 새언니가 깎아줘요. 새언니는 자주 하니까."

임서연은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되나."

심인혁은 과일이 담긴 그릇을 강나래 앞으로 밀어놓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래는 학술적으로 이룬 게 아무것도 없지만 과일을 깎는 집안일은 꽤 잘하는 편이야. 과일로 꽃 모양을 조각할 수 있다고."

강나래 역시 전에는 할 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과일을 먹기 싫어하는 심인혁에게 과일에 들어있는 필요 영양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심인혁이 말했다.

"정말 먹고 싶지 않아. 당신이 꽃이라도 만들어 낸다면 모를까."

강나래는 정말 그의 말대로 과일로 꽃을 조각하는 방법을 배워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배운 이 모든 것들은 심인혁에게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강나래는 탁자 위의 사과를 들어 쓱쓱 닦더니 껍질을 깍지도 않고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과즙을 삼키자 씁쓸한 마음이 조금은 가려지는 것 같았다.

"지금은 빈손이 없으니 서연 씨에게 부탁하죠."

심인혁은 강나래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 강나래의 태도가 갑자기 까칠해졌다. 그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불만스러운 시선 속에서 강나래는 사과를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피해자 쪽에서 배상금을 기다리고 있어. 어머님, 아버님께서는 당신의 돈이 전부 나에게 있다고 하시는데. 난 매달 받는 70만 원을 제외하고는 다른 돈을 받아 본 기억이 없어. 그러니 당신이 알아서 처리해."

강나래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심인혁은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서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희연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난 이만 가볼게."

"바래다줄게."

심인혁은 그 말을 하자마자 아내 앞에서 다른 여자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게 굴었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지 어색하게 강나래를 힐끗 쳐다보더니 재빨리 은행 카드를 꺼냈다.

"배상금은 당신이 처리해."

"카드를 쥘 손이 없네."

강나래는 한 손에는 사과를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든 채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냉담했다.

강나래가 말을 듣지 않자 심인혁은 점차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겁이 많은 임서연이 놀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 내가 갈게."

"인혁아, 내가 함께 가 줄게."

"그래."

두 사람은 병실을 떠났다.

강나래 역시 심씨 가문 사람들의 불만 섞인 눈빛을 받으며 병실을 떠났다.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하느님이 일부러 그녀에게 시련을 내리는 건지. 강나래는 아파트 입구에서 헤어지기 싫어 애타는 두 사람을 또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인혁아, 오늘은 위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얼른 돌아가. 나래 씨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가서 달래 줘."

"같은 동네인데 뭐. 금방 들어가잖아."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늦었어. 집 앞까지 데려다주지 않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인혁아, 너 결혼했잖아. 우리 이러면 안 돼."

임서연은 일부러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돌아온 지 벌써 보름째. 그동안 줄곧 심인혁이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텐데 인제 와 이러면 안 된다니. 강나래는 그 말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임서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 아내는 참 좋은 사람이야. 적어도 널 잘 챙겨주고 있잖아. 나처럼 네 보살핌만 받는 게 아니라."

"비교할 가치조차 없어. 내 아내는 가정주부일 뿐이야. 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요즘 평소와는 다른 강나래의 모습을 떠올린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아내 얘긴 하지 마. 내가 바래다줄게."

"정말 그럴 필요 없어. 나래 씨가 알게 되어서 좋을 게 없잖아."

임서연은 또 한 번 온화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어. 결혼한지 4년 넘었는데 아이는 없어?"

강나래 역시 그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그녀 역시 심인혁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

보육원의 원장 엄마가 말한 적이 있었다. 결혼하고 남편이 생기고 또 아이가 생기고 나면 그때 비로소 진짜 집이 생기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매번 사랑을 나눌 때마다 심인혁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내일 일이 있다는 핑계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항상 거절해 왔던 것이다.

강나래 역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남편과 시부모의 의식주를 돌봐야 했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고 사고를 치는 시누이를 돌보느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쏟고 있었다. 하여 강렬한 성욕을 느낀 적이 없었다.

가끔 강나래 역시 책에서 읽은 것처럼 남편과 다정히 몸을 섞고 서로에게 녹아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남편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보육원에서 자란 강나래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서로 몸을 섞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심인혁이 싫다하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보아하니 심인혁은 아이를 원치 않는 게 아니었다. 강나래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없어."

심인혁이 대답했다.

임서연은 조금 놀라며 물었다.

"왜?"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는 없어."

"아, 그렇구나."

임서연은 조금 실망한 듯이 대답하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난 네가 그때의 농담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줄 알았어."

"음?"

심인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말했었잖아. 넌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닐 거라고."

임서연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이참,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넌 이미 결혼했는데. 얼른 돌아가. 나래 씨가 쓸데없는 생각 하겠다. 나래 씨는 나처럼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너밖에 없는 사람이잖아. 여자는 아주 예민하지. 쉽게 오해한다고."

심인혁은 더 이상 바래다주겠다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일부러 걸음을 늦추며 걷던 임서연은 심인혁이 정말 가버리자 순식간에 미소를 잃어버렸다.

보아하니 강나래라는 조강지처가 신경은 쓰이는 모양이었다.

심인혁은 병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강나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새언니는?"

그는 침대에 누워 부모님이 먹여 주는 음식을 여유롭게 먹고 있는 동생에게 물었다.

"오빠랑 서연 언니가 가자마자 갔어. 예쁘고 잘난 데다가 우아하기까지 한 서연 언니를 보고 부끄러워져서 의기소침하게 집으로 돌아갔나 보지 뭐."

심희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오빠, 이제 서연 언니도 돌아왔으니 강나래랑 이혼해. 서연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오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서연 언니는 귀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니 강나래처럼 굴지 않을 거야. 오빠의 돈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아등바등 살고 있잖아. 오빠, 나 유학 보내 준다고 했던 약속 잊지 마."

"희연아, 아무리 그래도 네 새언니야. 다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아끼는 거야.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

심인혁은 조금 피곤한 듯 콧대를 주물렀다.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던 그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벌고 있는 돈의 80퍼센트를 임서연의 연구 비용으로 보탰다는 얘기를 어떻게 가족에게 전해야 할지 몰랐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임서연은 나라에서 주도하는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니 앞길이 창창했다. 앞으로 연구 비용이 모자라는 일은 없을 테니 이제 그가 벌어들인 돈은 오롯이 본인과 가족들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을 알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부모님이 임서연을 탐탁지 않게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임서연은 다른 사람들과의 충돌을 싫어하는,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 상대가 손위 어른이라면 더했다.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서 쉬세요. 제가 간병인을 고용할 테니."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돌봐야 안심이 돼. 넌 얼른 돌아가."

김인숙이 당부했다.

"서연이와 연락 자주 하고 잘 챙겨줘. 그게 너한테 득이 되는 일이야."

"알겠어요."

심인혁은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나래는 아직 겉옷을 챙겨입지 못해 얇디얇은 슬립 원피스만 입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따라 물이 뚝뚝 떨어지며 원피스가 군데군데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강나래의 예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심인혁은 순간 그 모습에 혼을 빼앗겼다.

"나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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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 취했었어. 나에겐 널 밀쳐낼 힘도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온 심인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곤란한 사람처럼 말이다. 심인혁과 임서연은 그와 강나래의 침대에서 몸을 섞었다.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임서연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인혁아, 너 어젯밤에 너무... 마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어." 말을 마친 임서연은 다가와 그를 안았다. 심인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나날동안 그리워했던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나래와는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알아." 임서연은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인혁아,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내 마음속에도 온통 너뿐이야."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심인혁의 입술에 입 맞췄다. 심인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뭔가 떠오른 듯이 미소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 나래가 집으로 왔었어?" 임서연은 그 이름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는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심인혁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 심인혁은 갑자기 임서연의 손을 풀더니 거실로 가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도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하. 잘하는 짓이야. 그는 화가 난 나머지 휴대폰을 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인혁아, 나래 씨를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냐고?" 심인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마음대로 하라지. 광명시에는 딱히 나래가 갈 데도 없어. 보육원 아니면 오연홍에게 찾아갔을 거야." "인혁아, 너 나래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에게 다가간 임서연의 표정은 무척 서글펐다. 순간 멈칫하던 심인혁이 대답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그저 내

  • 너무 늦은 후회   제26화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 너무 늦은 후회   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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