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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일세종환
"왜 이유를 묻지 않으시죠?"

강나래는 눈물을 훔쳤다. 오연홍을 소파에 앉힌 그녀는 물을 따르러 갔다.

오연홍이 대답했다.

"인혁이 말로는 두 사람이 아이 때문에 다툰 뒤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인혁이는 아직도 아이가 싫대?"

강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제가 싫은 거예요. 저에게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면서 가정주부로 편안히 지내라고 하더군요."

"어쩜 나보다도 사상이 구시대적일 수가 있어?"

오연홍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회적 지위 좀 높아졌다고 널 얕보는 거지? 감히 너를 얕보고 있어? 프로젝트가 발표된다면 숱한 사람들이 널 만나기 위해 기를 쓸 텐데. 우리 남편의 보물단지가 그 자식 눈에는 단지 도우미와 다름없을 뿐이라니."

그 말에 강나래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오연홍에게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싸움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에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저와 결혼한 것도 그저 임서연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결혼식 날 임서연은 돌아오지 않았죠."

"누구라고?"

오연홍은 그 이름이 익숙하다 생각해 두어 번 발음한 뒤 다시 물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김한수의 손녀?"

"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데?"

"들었어요."

강나래는 그날 몰래 훔쳐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가 끝을 맺기도 전에 오연홍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사람을 괴롭혀도 유분수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에게 데리고 갈 테니 얼른 이혼 협의서를 작성하고 빨리 이혼해 버려!"

이혼 협의서는 아주 빨리 작성되었다.

갓 인쇄된 종이는 아직 따끈따끈했다. 서류를 받아 든 강나래는 열기에 손이 데는 것 같았다. 서류에 적힌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선 뒤 강나래는 오연홍과 함께 쇼핑하며 옷을 사고 저녁 식사를 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심인혁이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아, 심인혁 혼자가 아니었다.

심씨 가문의 사람들이 전부 와 있었다.

심희연은 가벼운 상처만 입었기에 굳이 입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녀는 병원의 소독수 냄새가 역겹고 배달시킨 음식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오빠의 집에 들어와 살며 강나래의 간호를 받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심인혁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본 심씨 가문의 사람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강나래가 때린 거지? 맞지?"

아들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김인숙은 그가 습관적으로 강나래를 감싸는 것이라 생각했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아? 강나래 말고 감히 널 때릴 사람이 누가 있어? 너희 회사에서도 회장님을 제외하면 네가 가장 높은 사람인데. 주변 여자들을 생각해 봐도 그래. 다정하고 점잖은 서연이가 그랬을 리도 없잖아."

"오빠! 강나래가 왜 오빠를 때린 거야?"

심희연 역시 오빠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빠 돈으로 먹고살면서 뭐가 불만이래? 감히 오빠를 때리다니. 돌아오기만 해 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사나운 말투였다.

심희연은 잔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주 잔꾀를 부려 꼴 보기 싫은 사람을 괴롭히고는 했는데 특히 능력 없는 새언니가 표적이 될 때가 많았다.

심현수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나래가 때린 거냐?"

심인혁이 대답했다.

"저도 때렸어요."

김인숙이 말했다.

"그 아이는 맞아도 싸! 세상에 감히 남편에게 손찌검하는 여자는 본 적도 없어."

심희연은 더욱 분노를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빠가 혼 좀 내면 어때서. 오빠가 아니었다면 강나래가 감히 우리같이 대단한 사람들을 만날 수나 있었겠어?"

"아들, 강나래와 이혼해."

심현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결론을 내렸다.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

밖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강나래는 고개를 숙였다. 이혼 협의서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 잘 됐어. 이혼하면 되지.'

그때, 심인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요."

"왜 안 된다는 거야?"

김인숙은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들아, 강나래가 네게 무슨 약이라도 먹인 거야?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해? 곁에 훌륭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아. 서연이처럼 말이야. 왜 한 여자에게 목을 매는 거야!"

심희연이 말을 보탰다.

"오빠, 강나래와 이혼하고 서연 언니와 결혼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 사이 좋았잖아. 비록 연인관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어."

강나래는 냉소를 지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이 아까워서 감히 그녀를 결혼이라는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못할 것이다.

"강나래와 이혼하는 것 때문에 네 평판에 금이라도 갈까 봐 걱정하는 거야? 하지만 넌 한 번도 강나래를 데리고 공식적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없잖아. 회사 연말 행사조차도 함께 참석한 적이 없는데."

심현수는 조리 있게 분석했다.

"네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적어. 게다가 네 아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더 적고.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야."

아들을 대하는 임서연의 태도를 보고 난 뒤 심씨 가문 사람들은 강나래라는 며느리를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 사람의 이혼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심인혁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혼하지 않을 겁니다. 나래가 들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그는 서재로 들어가 가족들과의 대화를 단절시켰다.

심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인혁이 강나래를 미친 듯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오직 강나래만이 그가 이혼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혼하고 나면 어디서 강나래처럼 시키는 대로 얌전히 따르는 공짜 도우미를 찾을 수 있을까?

비록 유명한 요리사보다는 못하지만 심인혁은 그녀가 만드는 요리에 이미 길들어져 있었다.

강나래는 이혼 협의서를 챙겨 넣었다.

심인혁이 동의하든 말든 반드시 이혼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심인혁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래 이혼하는 것도 서슴지 않을 생각이었다.

집안의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고 나서야 강나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심씨 가문 사람들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나래를 마주한 그들의 표정은 무척 험악했다.

심희연이 말했다.

"언니,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예요? 우리 배고파요. 특히 우리 오빠는 제때 밥을 먹지 않는다면 위병이 도질 거라고요."

말을 마친 심희연은 강나래가 신고 있는 분홍색의 토끼 슬리퍼를 발견하고는 역겨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곧 서른이 될 사람이 아직도 핑크색을 신어요? 하... 유치해서 못 봐주겠네."

강나래는 발을 움직여 보았다. 그녀는 이 유치한 슬리퍼가 꽤 예쁘다고 생각했다.

이건 다른 이가 그녀에게 베푼 선의였다.

보육원에서 자라 열심히 공부할 줄만 알았지 사람 대하는 법을 잘 모르는 강나래에게 선의를 베푸는 타인은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이 슬리퍼를 절대 버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김인숙은 강나래를 보는 것마저도 짜증이 나 얼른 저녁을 만들라 재촉하며 당부했다.

"간은 심심하게 하는 거 잊지 말고."

심현수는 고혈압을 앓고 있었다.

"알겠어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간 강나래는 휴대폰을 꺼내 배달을 시켰다. 소금간은 적게, 담백하게 만들어 달라는 요청 사항도 잊지 않았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기에 가까운 거리에 먹자골목이 있었다. 하여 배달은 일찍 도착했다.

도어벨이 울리자 김인숙이 문을 열었다. 배달 기사를 마주한 순간 그녀는 놀라 멍해지고 말았다.

강나래는 아무렇지 않게 서재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밥 먹어."

다만 예전처럼 유쾌한 목소리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매번 요리를 마친 강나래는 기쁜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며 남편을 불렀다.

"밥 먹어!"

그러면 서재의 문이 바로 열렸다.

남편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생했어, 여보."

하지만 오늘 서재의 문을 여는 심인혁의 입에서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에 먼저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았다.

"아들아, 얼른 와서 강나래가 주문한 배달 음식을 먹어."

김인숙은 수저를 놓으며 비꼬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심인혁은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배달을 시킨 거야? 냉장고에 식자재 없어? 당신이 해준 생선국을 먹을 거야."

"생선국 시켰어."

말을 마친 강나래는 몸을 돌렸다.

손을 뻗어 강나래를 붙잡으려던 심인혁은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불쾌한 듯 강나래의 뒤를 따랐다.

식탁 위에 차려진 배달 음식을 보는 심인혁은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에도 밥을 먹지 않았고 저녁밥도 먹을만한 음식이 없으니 화를 참기가 힘들었다.

"강나래, 언제까지 제멋대로 굴래?"

"그저 밥을 하지 않았을 뿐이야."

강나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왜 제멋대로 구는 거지? 난 뭐 밥을 짓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가?"

심인혁은 말문이 막혔다.

강나래는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으며 제안했다.

"배달 음식이 싫다면 우리도 도우미를 구하자."

심희연이 반박했다.

"도우미는 왜 구해요? 집에..."

'네가 있는데?'

"집에 하나 있긴 하죠."

강나래는 심희연의 말을 끊으며 줄곧 책망의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심인혁의 부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강나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혁 씨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면 어머님 댁에 있는 도우미를 여기로 보내시면 되겠네요."

"강나래!"

심인혁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살짝 고개를 돌린 강나래의 부어오른 얼굴을 본 순간 다시 화를 가라앉혔다. 그는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부모님께 예의 없게 굴지 마."

심인혁은 정말 부모님을 존경하고 여동생을 아꼈다. 오직 아내인 강나래에게만 거짓된 다정함과 거짓된 감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강나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심인혁의 부모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곳에 있어 봤자 배달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심희연도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따라 집으로 갔다.

밤.

강나래는 어떻게 하면 각방을 쓸지 생각하며 심인혁이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강나래는 조금 긴장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심인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때마침 걸려 온 전화였다.

"전화 왔어."

강나래는 그의 휴대폰을 들고 등을 돌렸다. 마침 가운을 입고 있는 심인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임서연이야."

임서연의 이름을 보자마자 심인혁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더니 일 분도 채 안 돼서 다시 돌아와 급한 일이 있어 나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래."

강나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던 심인혁이 말했다.

"오해하지 마. 우린 그저 친구일 뿐이야. 내 아내는 당신이야."

"알아. 가 봐."

강나래는 대충 대답했다.

한밤중에 주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와보니 거실 소파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여자였다.

기척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입술에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생리통이 심한 듯했다.

"나래 씨? 인혁이가 시끄럽게 굴어서 잠에서 깬 거예요?"

강나래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보았다.

심인혁이 버젓이 집으로 여자를 데리고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미안해요. 일부러 방해하러 온 건 아니었어요. 본가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바람에 연락할 수 있는 친구도 없고. 그래서 인혁이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어요. 인혁이가 저를 집으로 데려올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직접 대추차도 끓여주고 요리도 해줄 줄은요."

임서연은 자랑을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건 심인혁이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주방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추 향기가 공기 속에 퍼졌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한 손에는 조리 도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달걀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남자가 투덜거렸다.

"이 놈의 달걀은 왜 자꾸만 타는 거야?"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심인혁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그리 진중하지도 않은 모습이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 같았다.

게다가 하기 싫은 일도 직접 하고 있었다.

심인혁은 요리하는 것을 싫어했고 주방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했다. 기름 냄새가 싫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인테리어를 할 때에도 오픈형 주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강나래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까지 강나래는 문을 닫고 주방에서 요리를 마친 뒤 식탁에 음식을 차렸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강나래 씨."

강나래의 곁으로 다가온 임서연은 마치 전쟁에서 이긴 사람처럼 굴었다. 꼬리가 있었다면 아주 자랑스럽게 그 꼬리를 부풀리고 있었을 것이다.

"인혁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저예요. 당신은 그저 제가 없을 때, 인혁이가 시간이나 때우려고 아무렇게나 골라잡은... 심심할 때 읽는 책 같은 존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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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 취했었어. 나에겐 널 밀쳐낼 힘도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온 심인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곤란한 사람처럼 말이다. 심인혁과 임서연은 그와 강나래의 침대에서 몸을 섞었다.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임서연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인혁아, 너 어젯밤에 너무... 마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어." 말을 마친 임서연은 다가와 그를 안았다. 심인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나날동안 그리워했던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나래와는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알아." 임서연은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인혁아,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내 마음속에도 온통 너뿐이야."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심인혁의 입술에 입 맞췄다. 심인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뭔가 떠오른 듯이 미소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 나래가 집으로 왔었어?" 임서연은 그 이름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는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심인혁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 심인혁은 갑자기 임서연의 손을 풀더니 거실로 가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도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하. 잘하는 짓이야. 그는 화가 난 나머지 휴대폰을 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인혁아, 나래 씨를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냐고?" 심인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마음대로 하라지. 광명시에는 딱히 나래가 갈 데도 없어. 보육원 아니면 오연홍에게 찾아갔을 거야." "인혁아, 너 나래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에게 다가간 임서연의 표정은 무척 서글펐다. 순간 멈칫하던 심인혁이 대답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그저 내

  • 너무 늦은 후회   제26화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 너무 늦은 후회   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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