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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입술을 깨물고 말하지 못한 말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05 20:38:09

새벽 세 시, 유리는 커튼을 열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거실엔 조명이 없었고, 손에 들린 머그잔엔 식은 커피가 그대로였다.

핸드폰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그녀는 천천히 사진첩을 열었다.

이우와 함께 찍은 사진은 단 한 장. 그것도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 비친 뒷모습이었다.

그는 유리의 뒤에 있었고, 유리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지금의 그녀가 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멀어요.”

소리 내어 말했지만, 들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날 오후, 이우는 센터를 찾았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도, 급한 일이라는 연락도 없었지만 그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냥 오는 사람이었다.

“또 혼자 있었어요?”

그가 묻자, 유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있어도 괜찮은 날이었어요. 근데, 혼자 있지 않게 됐네요.”

그 말에 이우는 말없이 유리의 손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

그 손이 잠시 닿았다. 유리는 그 짧은 온기에 숨을 삼켰다.

“이우 씨.”

그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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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위험한 여자   82. 이젠 나도 당신 쪽 사람이니까

    그 시각, 서인국의 사무실.“정민철을 보호하고 있다.”“서이우가 직접 진술을 검찰에 냈다.”이야기들은 빠르게 회장 귀에 들어왔다.“이우를 막아야 합니다.”“가문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그러나 서인국은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들춰보았다.그 안에는 '조유진 사망 당시 병원 진료 기록''조유리 상담센터 운영 정보'그리고 '서이우 사적 동선 분석 자료'가 함께 있었다.“제일 무서운 건…”그가 낮게 말했다.“사랑 같은 착각이다.”그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서이우를 치는 게 빠를지도 모르지.”그날 밤, 이우는 유리의 방 창문 앞에 서 있었다.유리는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다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당신이 나를 지켜주는 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왜요.”“내가 그만큼의 사람이 아닐까봐.”이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말했다.“난 당신이 누굴 지키고 있는지도 알아요.”“조유진. 그 이름 하나를 안고, 당신은 지금까지 견디고 있었죠.”“그래서…”“이젠 나도, 당신 이름 하나를 안고 살아보려고요.”유리는 눈을 감았다. 이번엔 눈물이 났다. 어떤 고백도 없이,그냥 그렇게 그녀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다.이우에게 날아든 첫 번째 칼날은, 이사회 통보였다.이사직 박탈안. 비공식 의결, 비공식 회의.형식은 없지만 힘은 있는, 그 집안 특유의 방식이었다.이우는 이사실 앞에서 가만히 섰다.손에 쥔 것은 단 한 장의 문서.그 안에는 정민철의 진술 요약,그리고 서인국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이걸 들고 들어가면 가문은 그를 내칠 것이다.하지만,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왜 나한테는 말을 안 해요.”유리는 창가에 서서 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가문이 당신을 밀어내려고 한다는 거, 왜 나한테 숨겨요.”이우는 말없이 웃었다. 지쳐 있는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따뜻한 미소였다.“숨긴 게 아니에요. 그냥… 아직까지, 당신 걱정이 먼저였던 거죠.”유리는 그의 팔을 붙잡았다.“당신은 내 걱정을

  • 너무 위험한 여자   81. 내가 누군가의 이름이 된다면

    문은 잠겨 있었지만, 그는 잠시 그 앞에서 머물렀다.문 너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긴급하게 정리되는 회의 안건, 계열사 관련 언론 브리핑,어딘가에서 “회장님 성함이 언급됐습니다”라고 말하는 누구의 낮은 음성.그 한 마디에 이우는 문을 떠났다.“이름 하나로, 그 안이 술렁이고 있어요.”그는 유리에게 말했다.“우린 앞으로 이걸 더 정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그게 회장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유일한 방식이에요.”유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이었다.상담소는 조용했고, 어둠이 고요하게 깔려 있었다.“내 이름도 무너졌던 적 있어요.”유리가 말했다.“조유진의 동생. 쌍둥이. 피해자 가족. 그다음엔 가해자로 몰렸고…”이우는 말없이 그녀 옆에 앉았다.“그때 알았어요. 이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하지만 이름을 말하는 사람이 바뀌면, 그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요.”이우는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밤의 공기보다, 그녀의 손이 더 차가웠다.“그럼 이젠, 당신 이름도 내가 지켜야 할 차례네요.”그 말에 유리는 눈을 감았다.눈꺼풀 밑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밀려왔지만,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그 대신, 그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그것이면 충분했다. 지금은...그 시각, 인국의 회장실 안.태영의 이름이 빠진 통화기록이 정리되고 있었고,상우의 실종 사유는 ‘출장’으로 내부 회람이 돌았다.인국은 말이 없었다.다만, 손가락으로 책상 유리 위를 반복적으로 두드릴 뿐.‘유진’이라는 이름도,‘유리’라는 이름도,그는 그 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그 이름들이 자신의 이름을 향해 칼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서이우.”그는 낮게 중얼거렸다.“그 자식이 움직였군.”밤. 유리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스탠드 불빛이 벽을 따라 번졌다.이우에게 도착한 메시지 하나.“혹시 오늘 밤, 그 자리에 있어 줄 수 있어요?”잠시 후 도착한 답장.“당신이 있다면, 난 언제든 거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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