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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의 재회에 흔들리지 않기를
너와의 재회에 흔들리지 않기를
Author: 노른자 주먹밥

제1화

Author: 노른자 주먹밥
안윤서는 지난 생에도 부모님의 설득에 못 이겨 해외로 떠났었다. 하지만 송규민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송규민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제발 진실을 얘기해 달라고, 언니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러나 송규민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안윤서를 더 혐오하게 되었다.

심지어 안윤서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가고 있을 때 송규민은 자신에게 전화를 건 간호사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또 수작을 부릴 생각인가 본데 안윤서에게 전해주세요. 저랑 혜원이 결혼식을 망치지 말라고요.”

결국 안윤서는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안윤서는 죽기 전 TV 속 전 세계에 생중계되던 송규민과 안혜원의 성대한 결혼식을, 송규민이 다정하게 안혜원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두 사람이 모든 이들에게 축복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늘은 안윤서에게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주었다. 그래서 안윤서는 이번 생만큼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알겠어요. 갈게요.”

안윤서는 한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윤서가 흔쾌히 수락하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깜짝 놀랐다.

“윤서야, 정말 떠날 생각인 거지? 설마 너희 언니랑 형부 사이를 또 방해하려는 건 아니지?”

방해?

우스운 얘기였다. 송규민은 처음부터 안윤서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거짓말을 지어내 송규민을 안윤서의 언니인 안혜원과 맺어주려고 했다.

20여 년 전, 안혜원이 백혈병 판정을 받자 안명준과 박정순은 곧바로 둘째를 가지려고 했고 그렇게 안윤서가 태어났다.

안윤서의 제대혈은 안혜원의 목숨을 구했으나 정작 안윤서 본인은 평생 차별당했다.

안혜원이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안혜원을 매우 편애했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윤서는 늘 모든 걸 언니에게 양보해야 했다. 방도, 친구도, 결승 진출 자격까지 말이다.

안윤서가 유일하게 양보할 수 없었던 건 첫눈에 반한 송씨 가문의 후계자 송규민이었다.

송규민은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던 재벌가 자제였는데 생일 파티가 있던 날 교통사고를 당해 시력을 잃었고, 그 탓에 가족들에게 버림받아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별장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안윤서는 가족들 몰래 키를 훔쳤고, 매일 방과 후 담을 넘어 송규민을 만나러 갔다.

“앞으로 매일 올게.”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소녀의 목소리가 송규민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안윤서는 단 한 번도 송규민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었다. 대신 송규민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말했다.

“지아라고 불러줘.”

송규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툴게 안윤서의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안윤서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 안윤서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가슴 위에 놓았다.

수술받기 전날, 송규민은 안윤서의 손끝에 입을 맞추며 맹세했다.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너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 그때가 되면 우리 사귀자. 어때?”

수술은 무려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송규민이 깨어나서 제일 처음 본 사람은 안윤서가 아니라 안혜원이었다.

안윤서의 부모님이 안혜원도 송규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안윤서가 마시는 물에 몰래 수면제를 타 안윤서가 하루 종일 잠을 자게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명준과 박정순은 그동안 송규민의 곁을 지켰던 사람이 안혜원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안혜원이 안윤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다.

송규민은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결국 안혜원과 알콩달콩 연애하다가 약혼까지 했다.

3년 동안 안윤서는 수도 없이 설명했었다. 송규민의 옆에 있어 줬던 건 자신이고, 송규민이 사랑해야 할 사람도 자신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송규민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안윤서가 죽을 때까지 말이다.

안윤서는 자신의 친부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저를 해외로 보내려고 하셨잖아요. 제가 가겠다는데 왜 안 믿으시는 거예요? 너무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순순히 떠나준다면 당연히 좋지. 보름 뒤 출국하면 되니까 그동안 마무리할 것 있으면 다 처리하고 가.”

안명준과 박정순은 안윤서가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이 됐는지 서둘러 몇 마디 덧붙인 뒤 밝은 표정으로 떠났다.

안윤서는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송규민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녁 8시에 베일 호텔 1808호로 와.]

메시지를 본 안윤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난 생에 그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신났었다. 송규민이 드디어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해 보니 송규민은 안혜원과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안윤서가 마음을 접게 만들려는 생각이었다.

당시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린 안윤서에게 송규민은 냉랭하게 말했다.

“봤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혜원이뿐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이었다.

안윤서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

저녁 8시, 안윤서는 시간 맞춰 호텔에 도착했다.

1808호는 문이 열려 있었다. 방 안에서 송규민은 안혜원을 안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주위에 이미 쓴 콘돔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방 안에서는 야릇한 분위기가 흘렀다.

문 앞에 서 있는 안윤서를 발견한 안혜원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송규민은 고개를 숙이고 안혜원의 쇄골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고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서워하지 마. 일부러 부른 거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라는 걸 보여주면 앞으로 나를 넘보지 않을 거야. 내가 형부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지.”

과거로 회귀해 또다시 그 광경을 보게 되니 마음이 난도질당한 것처럼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야 했다.

송규민은 곧 안윤서의 형부가 될 테니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안윤서가 손톱자국이 가득 남을 정도로 꽉 움켜쥔 주먹을 천천히 풀었을 때 송규민이 옷을 챙겨입고 안윤서의 앞에 섰다.

“봤지? 내가 좋아하는 건 혜원이야. 똑똑히 기억해 둬. 너는 내 처제고 나는 네 형부야.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마!”

안윤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응. 다 봤어. 그리고 다 이해했어.”

송규민은 움찔했다. 안윤서가 이렇게 태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송규민은 침대맡에 놓여있던 청첩장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 달에 나랑 혜원이 결혼할 거야. 우리 결혼식에 참석해줬으면 좋겠어.”

안윤서는 청첩장을 받았다.

“그래. 시간 맞춰 갈게. 둘이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송규민은 안윤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상하게도 오늘 안윤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분고분했다.

그러나 송규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안혜원의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안윤서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뒤따랐다.

안윤서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간판이 떨어져 내렸다.

송규민은 본능적으로 안혜원을 감싸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홀로 남은 안윤서는 미처 피하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며 안윤서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안윤서는 너무 아파 피 웅덩이 속에서 몸을 덜덜 떨었다.

차오른 눈물 때문에 흐려진 시야 속에서 안윤서는 송규민이 안혜원을 감싸는 걸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오로지 안윤서만 사랑했던 송규민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윤서는 송규민을 놓아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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