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후 1시.
대통령 집무궁 국제회의실 준비실.
곧 세계 각국 대표들과 긴급 화상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강시온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왜 맨날 한쪽만 길죠?”
오민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넥타이는 현대인의 미스터리입니다.”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요.”
“저도 평생 못 풀었습니다.”
“못 푼 사람이 왜 조언을 합니까?”
“경험담 공유입니다.”
시온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배후 세력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World Harmony Fest는 예정대로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아침부터 머릿속이 이상하게 복잡했다.
엘리아나의 고백.
한채린의 반응.
그리고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배후 세력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생긴 기분이었다.
총을 든 적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준비실 문이 열렸다.
한채린이었다.
정돈된 검은 정장.
흐트러짐 없는 머리.
늘 그렇듯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시온을 보자마자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네?”
한채린은 자연스럽게 시온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
시온은 그대로 굳었다.
너무 가까웠다.
생각보다 훨씬.
“움직이지 마십시오.”
“제가 움직인 게 아니라 심장이…”
“네?”
“아닙니다.”
한채린은 아무 말 없이 넥타이 매듭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묶기 시작했다.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시온은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바로 앞에 한채린 얼굴이 있었다.
평소에는 늘 몇 걸음 떨어져 있었다.
대통령과 비서실장.
그게 두 사람의 거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가까웠다.
숨결이 닿을 것 같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긴 속눈썹.
맑은 피부.
집중할 때만 살짝 굳어지는 눈빛.
시온은 괜히 숨을 삼켰다.
“각하.”
“네?”
“숨 참고 계십니다.”
“그게 보입니까?”
“많이요.”
시온은 민망해서 헛기침했다.
“한 실장님.”
“네.”
“이거 원래 비서실장 업무입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보다 못해서 하는 겁니다.”
시온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순간.
한채린 입가도 아주 잠깐 흔들렸다.
정말 잠깐.
하지만 시온은 봤다.
“방금 웃으셨는데요?”
“아닙니다.”
“웃으셨습니다.”
“착각입니다.”
“증인이 있습니다.”
오민석이 손을 들었다.
“저는 살아야 합니다.”
둘 다 동시에 오민석을 바라봤다.
“조용히 하십시오.”
“조용히 하세요.”오민석은 입을 다물었다.
억울한 표정이었다.
한채린은 다시 넥타이를 정리했다.
셔츠 깃을 바로잡는 손끝이 목 근처를 스쳤다.
시온은 순간 몸이 굳었다.
한채린도 아주 잠깐 움직임이 멈췄다.
짧은 침묵.
이상하게 공기가 달라졌다.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한 건 시온이었다.
한채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했다.
“정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업무 범위입니다.”
“업무가 원래 이렇게 긴장되나요?”
“…회의 준비에 집중하십시오.”
차분한 말투였다.
하지만 귀 끝은 아주 미세하게 붉어져 있었다.
시온은 그걸 봤다.
그리고 괜히 더 신경 쓰였다.
그때.
문이 다시 열렸다.
서유진이었다.
“오.”
들어오자마자 상황을 본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방해했나?”
“아니야.”
한채린이 즉시 대답했다.
“왜 이렇게 빨리 대답해?”
“아무것도 아니니까.”
서유진은 시온과 채린을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표정은 원래 그런 거지.”
“유진아.”
“응?”
“조용히 해.”
“싫은데.”
시온은 괜히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왜 자신이 혼나는 기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뒤.
회의가 시작됐다.
대형 모니터에 각국 대표단이 차례로 연결됐다.
분위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불신.
항의.
참가 철수 검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온은 이미 여러 번 위기를 넘긴 상태였다.
처음 대통령이 되었을 때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이번 사안은 저희 책임입니다.”
그는 숨기지 않았다.
핑계도 대지 않았다.
“대신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대응 중이며,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질문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하지만 반응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경계하던 눈빛이 판단하는 눈빛으로.
비난하던 태도가 관찰하는 태도로.
시온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회의실 뒤편.
한채린은 그런 시온을 조용히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의 강시온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부담스럽기만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서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망설이면서도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오전 10시 28분.국회 청문회장.원본 CCTV가 사라졌다는 보고를 마친 한서준은 통화를 이어 갔다.“삭제 시각은 청문회 시작 5분 전입니다.”수화기 너머의 박은호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한서준의 시선이 청문회장 안으로 향했다.강시온과 한채린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 채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그때 윤도현이 다시 마이크를 켰다.“대통령님.”강시온이 고개를 들었다.“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윤도현은 앞에 놓인 서류를 천천히 덮었다.“하지만 책임은 말로 지는 것이 아닙니다.”기자들의 타자 소리마저 잠시 잦아들었다.“조사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직무를 정지하시겠습니까.”“수사기관이 요구한다면 대통령실 내부 자료도 모두 공개하시겠습니까.”“그 과정에서 대통령님의 지지율이 무너져도 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질문이 이어질수록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다.이번에는 옳고 그름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강시온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한채린은 윤도현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렸다.권력을 지킬 것인가.사람과 진실을 지킬 것인가.어느 쪽을 선택하든 대가는 남을 것이다.위원장이 강시온을 바라봤다.“대통령님.”“답변하시겠습니까?”강시온은 바로 입을 열지 않았다.잠시 뒤.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필요한 조사라면 받겠습
오히려 모두가 기다리도록 침묵을 길게 끌었다.기자들도.의원들도.카메라도.모두 그의 손끝만 바라보고 있었다.그 침묵 속에서한채린은 처음 보는 표지를 다시 바라봤다.대통령실 공식 문서가 아니었다.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심장이 아주 조금 빨라졌다.강시온 역시 그녀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마주쳤다.그러나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저건... 예상 밖이다.'윤도현은 그 짧은 시선까지도 놓치지 않았다.그는 아주 천천히 표지를 열었다."그럼.""이제부터.""국민 여러분께.""새로운 자료를 공개하겠습니다."회의장 안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강시온은 서류보다 먼저 한채린을 바라봤다.그녀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하지만 그는 알았다.저 표정일수록 더 버티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잠시.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말은 없었다.그러나 둘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끝까지 함께 버틴다'순간.한채린의 표정이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윤도현은 첫 장을 넘겼다.회의장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조금 전까지는 대통령님의 판단을 들었습니다.”“이제는 사실을 확인하겠습니다.”그가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회의장 대형 화면이 켜졌다.짧은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폭발 직전.World Harmony Fest 지하 통로.흔들
오전 10시 21분.국회 청문회장.회의장 안은 조금 전보다 더 조용했다.강시온이 직접 청문회장에 들어온 뒤부터였다.카메라 수십 대가 강시온과 한채린을 번갈아 비추고 있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아니.바라볼 수 없었다.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서로를 걱정하고 있다는 마음부터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한채린은 애써 정면만 바라봤다.하지만 시야 끝에서는 자꾸만 강시온의 왼팔이 보였다.붕대 끝이 조금 풀려 있었다.청문회장까지 급히 들어오는 동안 다시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그 모습을 본 순간.가슴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왜...''왜 그렇게까지 오신 겁니까.'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었다.윤도현은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대통령님.”“네.”“오늘 국민이 궁금한 건 대통령님의 용기가 아닙니다.”짧은 정적.회의장이 다시 조용해졌다.“대통령실은 위험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알고 있었다면 왜 막지 못했습니까.”“몰랐다면 왜 몰랐습니까.”윤도현의 시선이 흔들림 없이 강시온에게 향했다.“어느 쪽이든.”“국민은 대통령실의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회의장 공기가 다시 팽팽해졌다.한채린은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윤도현은
순간.시온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화면 속 한채린은 아무 일도 모르는 듯 질문을 받고 있었다.아니.이미 알고도 버티고 있는지도 몰랐다.강시온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오민석이 놀라 물었다.“각하, 어디 가시려고요?”“청문회장으로 갑니다.”임태건이 앞을 막았다.“지금 이동은 위험합니다.”시온은 조용히 말했다.“한 실장님은 지금.”“제 자리에서 모든 걸 감당하고 있습니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시온은 다시 화면을 바라봤다.그리고 낮게 말했다.“이번에는.”“제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국회 청문회장.윤도현은 새로 전달받은 자료를 들어 올렸다.“폭발 전 위험 보고를 확인하고도 World Harmony Fest를 강행했습니까?"한채린은 자료를 바라봤다.보고서는 잘려 있었다.‘구역 폐쇄 및 경호 인력 재배치 완료’라는 핵심 문장이 사라져 있었다.상대가 원하는 게 분명해졌다.강시온이 아니라.그를 지키는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는 것.“비서실장님은 위험을 알고도 행사를 강행한 겁니까?”실시간 댓글이 빠르게 올라갔다.[뭐야 알고 있었어?][자료가 이상한데?][아니 사람 구한 건 맞잖아.]한채린은 마이크 앞에 손을 올렸다.“해당 자료는 원본이 아닙니다.”
오전 10시 03분.국회 긴급 청문회장.한채린이 자리에 앉자 플래시가 터졌다.찰칵.찰칵.찰칵.마이크 앞 명패 위에 적힌 이름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대통령 비서실장 한채린.청문회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한채린 비서실장.”“네.”“World Harmony Fest 폐막식 폭발 사고 당시, 대통령께서 직접 현장에 진입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첫 질문은 예상대로 강시온이었다.그의 이름이 나오자 한채린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도 제지하지 못했습니까?”“제지했지만, 끝내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그렇다면 통제 실패 아닙니까?”날카로운 질문이었다.대통령의 현장 진입을 끝내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그 말은 사실이었다.하지만 강시온은 그곳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며 혼란을 수습했다.피 묻은 흰 셔츠와 붕대 감은 팔이 떠올랐다.그는 늘 자신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한채린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그날 현장은 이미 혼란 상태였습니다.”“대통령께서는 지휘 체계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무너진 사람들의 공포를 붙잡았습니다.”회의장이 술렁였다.의원이 곧바로 말했다.“감성적인 표현은 필요 없습니다.”“사실만 답하십시오.”한채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l
국가정보원 실장.어제 이름이 올라왔던 사람.그리고 오늘.청문회 직전에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한채린은 자료를 챙겨 들었다.“가겠습니다.”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도 같이 가겠습니다.”한채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이번 만남은 제가 먼저 확인하겠습니다.”“한 실장님.”“각하께서는 청문회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잠시 침묵.시온은 끝내 더 말하지 못했다.한채린은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그리고 조용히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저는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시온은 그녀를 바라봤다.그 말이.오히려 더 걱정됐다.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흔들릴 때 더 깊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한채린이 문을 열고 나갔다.복도 끝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시온은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겁니다.”그때.오민석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그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각하.”시온이 돌아봤다.“무슨 일입니까?”오민석은 태블릿을 내밀었다.새로운 속보가 떠 있었다.『단독: 청문회 핵심 자료 사전 유출 의혹』『한채린 비서실장, 경호 실패 보고 누락했나』시온의 표정이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