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의가 끝날 무렵.
시온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완벽해서 모인 자리가 아닙니다.”
“불안해도 협력을 이어가자는 자리입니다.”
짧은 침묵.
그리고 하나둘 화면이 꺼졌다.
회의 종료.
오민석이 숨을 내쉬었다.
“와… 이번엔 진짜 안정적이었습니다.”
임태건도 짧게 말했다.
“…괜찮았습니다.”
시온은 의자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덜 떨었네요…”
그때 외교 담당 비서가 급히 들어왔다.
“속보입니다!”
“철수 검토 국가 여섯 곳 중 네 곳이 참가 유지 결정했습니다!”
오민석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냈습니다!”
시온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시온은 묘한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들자 한채린이 있었다.
태블릿을 보고 있었지만 어딘가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한 실장님?”
“…네.”
“무슨 생각 하십니까?”
“아무 생각 없습니다.”
“거짓말 같은데요.”
한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도 조금 혼란스러웠다.
엘리아나가 시온에게 직진할 때마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 이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순간.
한채린이 조용히 다가왔다.
“각하.”
“네?”
“오늘 대응… 적절하셨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그녀가 먼저 감정을 담아 평가한 건.
시온은 얼떨떨한 얼굴이 됐다.
“지금 칭찬 맞습니까?”
“네.”
“기록해야겠는데요.”
“취소하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각하.”
“네?”
“한 번뿐입니다.”
시온은 웃었다.
“그럼 더 귀한 거네요.”
한채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시선을 살짝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서유진이 멀리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답답하다.”
“뭐가?”
“둘 다.”
“무슨 소리야.”
“채린아.”
“왜.”
“너 지금 웃었어.”
“안 웃었어.”
“웃었거든.”
“착각이야.”
“아니거든.”
한채린은 결국 말을 멈췄다.
그리고 괜히 태블릿 화면만 넘겼다.
그때.
준비실 문이 열렸다.
엘리아나였다.
밝은 레드 브라운 컬러의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왔다.
“회의 끝났죠?”
오민석이 또 입을 틀어막았다.
“타이밍…”
엘리아나는 웃으며 시온 앞으로 다가왔다.
“약속대로 차 한잔하러 왔어요.”
“약속이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시온은 난감한 표정이 됐다.
한채린은 태블릿을 정리하며 말했다.
“…각하, 다음 일정이 있습니다.”
엘리아나는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5분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국정은 5분도 중요합니다.”
“사람 마음도 중요하죠.”
짧은 정적.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짧지 않았다.
엘리아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시온 옆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가까웠다.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원래 그래도 되는 사람처럼.
한채린은 무심한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서유진은 봤다.
태블릿 모서리를 쥔 손끝이 다시 굳어지는 걸.
‘이 정도면 거의 확정인데.’
서유진은 속으로 웃었다.
정작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시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통령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저랑 차 한잔 마시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그건…”
“전 오늘 목숨 구해주신 분께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는데요.”
시온은 더 난처해졌다.
한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할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온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총격전보다.
해킹보다.
국제 회의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는 걸.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순간.
회의실 문이 다시 열렸다.
급히 뛰어온 비서관이 외쳤다.
“각하!”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비서관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축제 홍보 서버에서 이상 접근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회의실 공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한채린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입니까?”
“약 30분 전입니다.”
“유출 흔적은?”
“아직 확인 중입니다.”
임태건이 즉시 무전을 잡았다.
“보안팀 전원 대기.”
오민석 표정도 굳었다.
“설마 또 시작입니까…”
시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직감이 말했다.
누군가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그들이 노리는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World Harmony Fest 자체일 수도 있었다.
World Harmony Fest 8일차.오후 8시 20분.행사장 야외 정원.낮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분수 주변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졌고.멀리 메인 공연장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대표단들은 저녁 만찬을 마친 뒤 삼삼오오 산책을 즐기고 있었고.관람객들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늦은 저녁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공식 일정 대부분이 끝난 행사장은 낮보다 느긋했고.조금 조용했다.엘리아나는 혼자 정원을 걷고 있었다.발걸음은 느렸지만 생각은 좀처럼 느려지지 않았다.어제 이후였다.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 안도했고.경호원들이 가까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따라갔다.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마음은 아직 어제의 충격에서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엘리아나는 난간 앞에 멈춰 섰다.그 순간.“혼자 계셨네요.”익숙한 목소리.엘리아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루카였다.검은 재킷 차림의 그는 무대 위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화려한 조명도.환호성도 없었다.그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서 주는 사람이었다.“인터뷰는 끝났나요?”“조금 전에 끝났습니다.”“생각보다 빨랐네요.”“도망 나왔습니다.”엘리아나가 피식 웃었다.“또요?”“이번에는 진짜 질문이 너무 많았습니다.”“그 정도는 인기의 대가지요.”루카
오후 5시 30분.World Harmony Fest 행사장 중앙 산책로.강시온과 한채린은 다음 일정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긴장으로 가득했던 상황실과 달리 밖은 평온했다.음악이 들리고.사람들은 웃으며 산책로를 오갔다.하지만 한채린의 시선은 계속 태블릿에 머물러 있었다.“복구팀에서 장치 식별 정보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습니다.”“곧 나옵니까?”“중간 결과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시온은 대답 대신 그녀를 잠깐 봤다.한채린은 걷는 동안에도 보고서를 넘기고 있었다.그때 바람이 세게 불었다.자료 한 장이 그녀의 손에서 빠져 벤치 아래로 밀려갔다.시온이 먼저 몸을 돌렸다.한채린도 동시에 몸을 숙였다.두 사람이 같은 종이를 붙잡았다.손등이 가볍게 스쳤다.한채린이 먼저 손을 떼려 했다.시온도 같은 순간 움직였다.다시 한번.손끝이 짧게 닿았다.둘 다 멈췄다.“죄송합니다.”시온이 먼저 손을 거뒀다.“아닙니다.”한채린은 종이를 받아 일어났다.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이었다.우연히 손이 닿았고.바로 떨어졌다.그뿐이어야 했다.그런데 다시 걷기 시작하고 나서도 손끝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한채린은 일정표를 정리하는 척 손가락을 한번 접었다 폈다.싫어서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오히려 반대였다.조금 전의 짧은 접촉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넘기고 싶지 않은 자신이 더 당황스러
World Harmony Fest 8일차.오후 4시 30분.운영 상황실.14초.조금 전 확인된 그 공백을 기준으로 세 기록이 다시 화면에 올랐다.최민규의 휴대전화 위치 기록.골목 주변 CCTV.출입 인증 로그.한서준이 말했다.“위치 기록만 지워진 게 아닙니다.”화면이 차례로 확대됐다.최민규가 골목으로 들어가기 직전 위치 기록이 끊겼다.주변 CCTV 두 대도 같은 순간 비어 있었다.출입 인증 기록 역시 같은 구간이 사라져 있었다.오민석이 물었다.“전부 같은 시간입니까?”“네. 정확히 같은 14초입니다.”강시온이 화면을 바라봤다.“그럼 오류는 아니겠네요.”한채린이 짧게 답했다.“누군가 지운 겁니다.”“세 기록을 한꺼번에요?”“미리 접근 권한을 확보했다면 가능합니다.”한서준이 출입 인증 기록을 확대했다.삭제된 구간 앞뒤에는 정상적인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앞도 뒤도 멀쩡합니다.”한서준이 곧바로 지시했다.“원본과 백업 기록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삭제된 구간 앞뒤도 전부요.”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 임태건이 현장 감식 사진을 띄웠다.최민규가 발견된 골목 바닥.희미한 신발 자국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최민규 것이 아닌 발자국이 확인됐습니다.”시온이 물었다.
그녀가 시간을 확인했다.“각하, 다음 일정은 20분 뒤입니다.”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는 가겠습니다.”한채린이 그를 봤다.“여기 계셔도 됩니다.”“아닙니다. 제 일정은 제가 해야죠.”시온은 일정표를 받아 들었다.“대신 뭔가 나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알겠습니다.”그는 몇 걸음 가다가 덧붙였다.“좋은 소식만 골라서 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한채린의 손이 잠깐 멈췄다.“그러지 않겠습니다.”이번에는 시온도 더 말하지 않았다.문이 닫히자 한채린은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마지막 1분을 초 단위로 다시 맞춰 주세요.”직원들이 작업을 시작했다.오후 2시 06분.직원 한 명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차장님.”한서준이 다가갔다.“뭡니까?”“시간이 또 안 맞습니다.”마지막 이동 기록이 확대됐다.“이번에는 12초입니다.”6초.9초.11초.12초.골목에 가까워질수록 기록 사이의 차이가 커지고 있었다.한채린은 휴대전화 위치와 CCTV를 번갈아 봤다.“이 지점에서 최민규 씨가 속도를 줄입니다.”“누군가를 기다렸다는 겁니까?”“그건 아직 모릅니다.&rd
World Harmony Fest 8일차.오전 8시.운영 상황실.대형 화면에서 최민규의 이름이 사라졌다.대신 새로운 문장이 떠 있었다.USB 수령자 추적.한서준이 말했다.“최민규 추적은 여기서 끝냅니다.”강시온이 화면을 바라봤다.“USB를 받아 간 사람을 찾는 겁니까?”“네.”한서준은 최민규의 마지막 이동 기록을 띄웠다.“사망 직전 이동, 휴대전화 위치 기록, CCTV, 출입 인증을 다시 맞춥니다.”“검은 모자 남자는요?”“얼굴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그때 한채린이 태블릿을 내려다보다 말했다.“얼굴을 찾지 말고 최민규가 멈춘 시간을 보죠.”시온이 그녀를 돌아봤다.“멈춘 시간이요?”“USB를 넘겼다면 이동이 끊기는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한서준이 화면을 확대했다.최민규의 마지막 이동 경로가 시간 순서대로 펼쳐졌다.주차장.외곽 통로.관리 구역.그리고 그가 발견된 골목.한채린이 이동선을 짚었다.“휴대전화 기록과 CCTV를 초 단위로 맞춰 주세요.”“멈추거나 속도가 달라지는 구간부터요.”한서준이 직원들을 돌아봤다.“그렇게 하죠.”조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때 벽면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야당 대표 윤도현, World Harmony
오후 7시.메인 공연장 백스테이지.공연이 끝나자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수고하셨습니다!”“다음 무대 준비하겠습니다!”루카는 마이크를 건네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고생 많으셨습니다.”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그때.공연장 입구에 엘리아나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잠시 멈춰 선 그녀는 백스테이지를 둘러봤다.오늘만큼은.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하지만.“루카 씨!”방송국 인터뷰 담당자가 먼저 다가왔다.“생방송 연결이 잡혔습니다.”“지금 바로 부탁드립니다.”루카는 엘리아나를 한 번 바라봤다.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죄송합니다.”“금방 다녀오겠습니다.”“네.”엘리아나도 미소를 지었다.루카는 곧바로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엘리아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조금 전까지는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기회가 지나가자.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흐려졌다.그저.조금 아쉬웠다.그 순간.루카가 잠시 뒤를 돌아봤다.멀리 서 있는 엘리아나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루카는 손을 가볍게 들어 인사했다.엘리아나도 작게 손을 흔들었다.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는데도.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오후 7시 40분.행사장 산책로.축제의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대표단들은 저녁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엘리아나는 잠시 혼자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