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음 날 오전.
World Harmony Fest 2일차.
대통령 집무궁 앞 광장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세계 각국 대표단 차량이 줄지어 들어왔고.
취재진들은 카메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로 다른 언어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낯선 말들이 섞여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어수선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다.
강시온은 집무궁 2층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개막식이 끝났는데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세계가 모였다.
보고서 속 숫자가 아니라.
화면 속 뉴스가 아니라.
눈앞에 실제 사람들이 와 있었다.
“각하.”
뒤에서 한채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온은 고개를 돌렸다.
“네
대통령 집무궁 집무실.오전 10시 08분.박은호가 복원을 마친 파일을 모니터에 연결했다.「후보 42번 두 번째 관찰 기록」화면에는 강시온이 대통령이 되기 전 지원했던 회사의 채용 공고가 나타났다.여러 차례 서류에서 떨어진 끝에 처음 얻은 최종 면접 기회였다.강시온은 날짜를 확인하자 곧바로 그날을 기억했다.“친구에게 정장까지 빌렸던 날입니다.”“면접용 정장이 없으셨습니까?”“예. 소매가 조금 짧았지만 앉아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박은호가 영상을 재생했다.화면 속 강시온은 서류 봉투를 들고 지하철역을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면접 시작까지 사십 분.출구를 향하던 그가 계단 앞에서 멈췄다.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사람들은 힐끗 바라보거나 그대로 지나쳤다.강시온은 곧바로 의식을 확인하고 구급대에 신고했다.남자의 가족에게 연락한 뒤, 이송되는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역을 떠났다.“면접장에는 이십 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화면이 회사 로비로 바뀌었다.담당자는 면접이 끝났다며 그를 돌려보냈다.강시온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건물을 나왔다.한채린이 물었다.“왜 사정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그 사람을 도운 건 제가 선택한 일이었습니다.”“그 결과까지 회사에 이해해 달라고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화면에 관찰 평가가 나타났다.「최종 면접 기회를 상실함.구조 대상자와 개인적 관계 없음.
한채린은 태블릿을 든 채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직업이 없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닙니다.""사회적 영향력이 없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고요.""그 학생에게는 각하가 그날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을 겁니다."강시온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한채린은 몇 걸음 앞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돌아섰다."왜 그러십니까?""한 실장님은 가끔 제가 생각도 못 한 말을 하십니다.""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그런 말이 더 오래 남습니다."한채린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하지만 태블릿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두 사람은 관저 뒤편의 외부 정원으로 나왔다.아침 햇빛은 밝았지만 바람은 생각보다 차가웠다.한채린은 얇은 블라우스 위에 정장 재킷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어깨 앞으로 흩어졌다.강시온은 자신의 재킷 단추를 풀었다."각하, 곧 집무실로 돌아갑니다.""그때까지라도 입으십시오."그가 블랙 수트 재킷을 벗어 한채린의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한채린이 곧바로 옷깃을 잡았다."괜찮습니다.""손이 차갑습니다."한채린의 움직임이 멎었다."어떻게 아셨습니까?""아까 보안 인증하실 때요."차가운 단말기에 손가락을 대던 그녀가 몇 번이나 손을 움켜쥐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한채린은 재킷을 벗으려던 손을 내렸다.넓은 옷자락이 그녀의 어깨와 팔을 감쌌다.아직 남아 있는 체온과 익숙한 향이 예상보다 가까이 느껴졌다."각하께서 추우시면 바로 말씀하십시오.""제
대통령 관저 지하 보안실.오전 9시 12분.한채린이 보안 인증을 마치자 모니터 중앙에 잠겨 있던 파일이 열렸다.「후보 42번 최초 관찰 보고서」강시온은 화면 위에 적힌 날짜를 확인하고 입을 다물었다.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그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시기였다.박은호가 복원 상태를 확인했다."영상 자료는 대부분 손상됐습니다.""현재 확인 가능한 건 관찰 기록 일부와 첨부 사진 한 장입니다."강시온이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제가 뭘 했길래 관찰까지 받은 겁니까?"박은호는 대답 대신 첫 번째 기록을 화면에 띄웠다.「대상자 강시온.직업 없음.고정 수입 없음.사회적 영향력 없음.특별한 학력 및 경력 없음.」강시온이 헛웃음을 흘렸다."없는 것만 아주 정성스럽게 적어 놨네요."한채린은 웃지 못했다.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애초에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목록처럼 보였다.다음 문장이 복원됐다.「관찰 가치 낮음.후보군 제외 검토.」"처음부터 선택된 사람은 아니었군요."강시온의 말에 박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오히려 가장 먼저 제외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박은호가 첨부 사진을 열었다.비가 내리는 밤거리.편의점 앞에 젖은 교복 차림의 학생이 서 있었다.그 앞에는 우산도 없이 선 강시온이 보였다.사진을 본 강시온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저 편의점."한채린이 물었다."기억나십니까?""편의점은 기억이 납니다."강시온은
그때 멀리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각하!"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종이봉투를 든 오민석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여기 계셨군요!""관저를 한 바퀴 반이나 돌았습니다."강시온이 웃으며 물었다."반 바퀴는 왜 더 돌았습니까?""첫 번째 한 바퀴 때는 이쪽 길을 못 찾았습니다."한채린이 담담하게 말했다."어제도 같은 길로 오셨습니다.""어제의 저는 어제의 저고, 오늘의 저는 오늘의 접니다."강시온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서 무슨 일입니까?"오민석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아침 식사입니다.""각하가 보안실에서 바로 나오셨다고 해서 챙겨 왔습니다."강시온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감사합니다.""다행입니다. 한 실장님과 함께 계셔서.""왜 다행입니까?""한 실장님과 계시면 그래도 뭐라도 드실 것 같아서요."한채린이 봉투 안을 확인했다."오 비서관님.""예.""이건 세 사람 분량이 아닙니다.""혹시 각하께서 갑자기 식욕을 되찾으실 상황에 대비했습니다."강시온이 웃었다.셋은 정원 옆 테라스로 자리를 옮겼다.오민석이 음식을 꺼내자 강시온은 죽 그릇을 한채린 쪽으로 밀었다."한 실장님도 드십시오.""괜찮습니다.""아까부터 차만 드셨습니다.""저는 나중에 먹겠습니다."강시온은 그릇을 다시 자기 쪽으로 가져오지 않았다."그럼 저도 나중에 먹겠습니다."한채린이 그를 바라봤다.오민석은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조용히 죽 그릇 하나를 더 꺼냈다.
보안실의 모니터가 하나둘 꺼졌다.박은호는 마지막 로그를 확인한 뒤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현재 기술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한채린은 태블릿에 떠 있는 복원 목록을 다시 훑었다.남은 로그에는 손상된 문장과 끊긴 숫자만 반복될 뿐이었다."외부에서 다시 신호가 감지되거나 삭제된 파일 일부가 복원되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박은호의 말에 강시온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더는 무리하지 마십시오.""예."회의는 끝났다.자신을 오래전부터 지켜본 흔적은 확인했지만, 왜 선택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보안실 문이 닫히자 복도에 고요함이 내려앉았다.강시온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한채린은 아무 말 없이 버튼을 눌렀다.잠시 뒤 문이 열렸다.두 사람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평소와 달리 누구도 먼저 업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강시온은 내려가는 숫자만 바라봤다.한채린은 그의 지친 옆얼굴을 잠시 살폈다.그녀는 시선을 거두고 조용히 말했다."관저 정원으로 가시겠습니까?"강시온이 고개를 돌렸다."거긴 이 시간에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작게 대답했다."...좋습니다."머리를 비우고 싶었다.관저 뒤편 정원.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없었다.나무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고 분수에서는 잔잔한 물소리가 흘렀다.강시온은 벤치에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통령이 된 이후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폭발과 암살 위협보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오늘처럼 자신의 존재
무슨 행동을 말하는지, 누가 어디서부터 자신의 삶을 지켜봤는지 알 수 없었다.평범했다고 믿었던 십일 년이 누군가에게는 평가 기록이었다.손끝이 천천히 말려 들어갔다.한채린이 그의 옆에 놓인 의자를 당겼다.“앉으십시오.”“괜찮습니다.”“각하께서 괜찮다고 하는 날도 대부분 안 괜찮습니다.”조금 전 강시온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다.강시온이 그녀를 바라보자 한채린은 화면을 향한 채 덧붙였다.“지금은 서 계실 이유가 없습니다.”그는 더 고집하지 않고 의자에 앉았다.한채린은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 그의 앞에 놓아 주었다.그리고 박은호가 다음 기록을 복원하는 동안에도 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강시온은 물병을 들다 그녀의 손에 남아 있는 손난로를 보았다.돌려받지 못한 물건 하나가 한채린도 자신의 걱정을 받아들였다는 대답처럼 보였다.굳어 있던 그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한채린은 모니터만 바라본 채 손난로를 더 깊이 감싸 쥐었다.강시온이 물병을 내려놓았다.재킷 소매 끝이 책상 위의 물방울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다.한채린이 손을 뻗어 그의 소매를 두 번 접었다.강시온은 말없이 팔을 내어 주었다.“이런 것까지 한 실장님 업무입니까?”“각하께서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부분은 제 업무가 됩니다.”“그럼 너무 많을 텐데요.”“알고 있습니다.”한채린은 비틀린 단추까지 바로 채운 뒤 손을 거뒀다.접힌 소매의 양쪽 길이는 정확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