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나 정말 추워.”
그 말과 함께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불 안으로 들어오는 몸은 얼음장 같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최대한 나와 닿지 않으려는 듯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냉기는 그런 체면을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어깨가 내 팔에 닿았다.
등줄기의 떨림이 그대로 전해졌다.
“차가워요.”
“알아.”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도 알아.”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그녀 어깨까지 끌어올렸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가까웠다.
그 가까움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 손을 뻗으면 닿는다는 사실보다, 손을 뻗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했다.
그때 벽난로 속 장작 하나가 툭, 하고 무너졌다.
불빛이 한순간 낮아졌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불 좀 더 피울게요.”
“지금?”
“안 그러면 둘 다 얼어 죽어요.”
이불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바로 살갗에 달라붙었다. 바지를 다시 챙겨 입을 생각도 못 하고, 속옷 차림으로 장작 더미 쪽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착각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장작을 집어 들고 몸을 숙였을 때, 이불 속에서 그녀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장작을 밀어 넣었다. 마른 나무가 불씨를 물자 작은 불꽃이 다시 살아났다. 불은 처음에는 주저하듯 흔들리다가, 곧 붉게 번졌다.
오두막 안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불 때문인지, 그녀의 시선 때문인지, 등에 뜨거운 것이 천천히 번지는 기분이었다.
“자네.”
그녀가 불렀다.
돌아보니 그녀가 이불을 조금 걷어 올리고 있었다.
“빨리 들어와. 감기 걸리겠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자,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움직였다.
차가웠던 손이 조심스럽게 내 팔에 닿았다. 잠시 망설이던 손은 곧 내 허리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녀의 손바닥이 내 맨살 위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체온을 찾는 손이었다. 추위에 떨다 겨우 불 가까이 온 사람의 손.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더 가까이 붙어왔다.
“따뜻하네.”
그녀가 내 등 뒤에서 속삭였다.
그 말이 귀에 닿는 순간, 온몸의 피가 조용히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면 모든 것이 깨질 것 같았다.
장모님은 내 등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다. 숨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아주 얇은 불씨가 돋아났다.
“아무 짓도 안 한다고 했지.”
그녀가 말했다.
“네.”
“그럼…”
그녀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그냥 이대로 있어.”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벽난로는 다시 살아났고,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세상을 지우고 있었다.
오두막 안에는 우리 둘의 숨소리와, 서로의 체온을 모른 척 나누는 밤만이 남아 있었다.
**
아침까지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동이 트기 전인 듯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고, 오두막 안에는 벽난로의 희미한 불빛만 남아 있었다.
겨우 선잠에 빠지려던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장작이 무너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소리는 벽난로 쪽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 소리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장모님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녀는 놀란 사슴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내가 움직이자 오히려 내 등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지금 시간에…”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누… 누가…”
어젯밤부터 쌓인 눈과 밤새 울부짖던 눈보라를 생각하면, 이 시간에 누군가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했다.
부스럭.
그리고 다시.
부스럭, 부스럭.
나는 숨을 죽였다.
“잠깐만요. 제가 나가볼게요.”
“안 돼.”
장모님이 내 허리를 붙잡았다.
“혹시 강도나…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해.”
“괜찮아요.”
나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확인만 해볼게요. 소리 내지 말고 여기 계세요.”
그녀는 여전히 나를 붙잡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벽난로 옆에 놓인 부지깽이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금속이 차갑게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먼저 거실 창가로 다가갔다.
커튼을 아주 조금 젖혔다.
예상대로 눈은 창틀 바로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다. 바깥은 온통 희뿌연 어둠뿐이었다. 내 차는 절반쯤 눈에 묻힌 채 겨우 형체만 보였다.
펜션 주인일 리는 없었다.
나는 커튼을 다시 놓고, 발소리를 죽인 채 현관 쪽으로 향했다.
장모님은 이불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
현관문 옆 작은 창문 앞에 섰을 때였다.
갑자기.
쿵!
무언가가 문을 세게 들이받았다.
“꺄악!”
장모님의 비명이 오두막 안을 찢고 터져 나왔다.
**
쇠로 된 현관문이 쉽게 부서질 리는 없었다.
하지만 방금 그것은 분명히, 무언가 육중한 것이 문을 들이받는 소리였다.
— 쿵.
다시 한 번 문이 흔들렸다.
장모님은 새된 숨을 삼키더니,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그리고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이리 와!”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확인해야 했다.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사람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였다면 문을 두드리거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저렇게 몸 전체를 던져 들이받지는 않는다.
무언가 발보다 훨씬 묵직한 것.
그리고 짐승 같은 것.
군 생활 때 산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번개처럼 스쳤다.
멧돼지.
꽁꽁 얼어붙은 강원도 산자락. 눈에 파묻힌 숲.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유일하게 온기가 새어 나오는 오두막.
먹을 것을 찾아 내려왔을 가능성이 컸다.
부지깽이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벽난로를 돌아보았다.
야생동물이 두려워하는 것.
불.
벽난로 안에서 가장 크게 타고 있는 장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끝으로 열기가 확 밀려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것을 움켜쥔 채 주방 쪽 뒷문으로 향했다.
“자네, 뭐 하는 거야!”
장모님이 문틈 사이로 속삭이듯 외쳤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뒷문을 열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후려쳤다. 눈발이 안으로 휘몰아쳤고, 허리까지 쌓인 눈은 다리를 씹어대듯 파고들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집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가자, 패인 눈 아래로 그것이 보였다.
현관문 근처에서 킁킁거리며 눈을 헤집고 있는 멧돼지.
군대에서 봤던 놈들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작다고 해서 우습게 볼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낮은 어깨, 뻣뻣한 털, 눈 속에 박힌 검은 몸통. 고개를 들었을 때 드러난 주둥이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 보였다.
저놈에게 물리거나 들이받히면 끝이었다.
구급차는 오지 못한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다.
이 눈 속에서는 피를 흘리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놈이 킁, 하고 코를 울렸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다음은 거의 본능이었다.
나는 불붙은 장작을 머리 위로 크게 휘둘렀다.
“으아아악!”
내 목소리가 산자락에 찢어지듯 울렸다.
나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장작을 좌우로 흔들며 눈을 걷어찼다. 불꽃이 흩어지고, 연기가 바람에 말려 올라갔다.
“가! 저리 가!”
멧돼지는 순간 멈칫했다.
불꽃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아니면 눈에 저반쯤 파묻힌 채로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내가 너무 이상해 보였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놈은 몇 걸음 물러났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며 장작을 휘둘렀다.
“가라고!”
그제야 놈이 몸을 돌렸다.
눈을 헤치며 달아나는 뒷모습이 숲의 어둠 속으로 멀어졌다. 잠시 뒤에는 나무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남았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손에 쥔 장작은 아직도 타고 있었고, 손바닥은 열기와 공포로 얼얼했다. 온몸이 떨렸다. 추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이제야 살아 있다는 실감이 몰려와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자네…”
장모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을 어깨에 두른 채 눈 위에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가에는 아직 놀람이 남아 있었다.
“미쳤어? 정말 미쳤어?”
꾸짖는 말투였지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하아… 하하… 쫓아냈어요.”
“그게 지금 웃을 일이야?”
그녀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불이 눈 위로 흘러내렸고, 차가운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다친 데 없어?”
“없어요.”
“정말?”
그녀의 손이 내 팔과 가슴, 옆구리를 정신없이 훑었다. 확인인지, 안도인지, 손끝이 계속 떨렸다.
“괜찮다니까요.”
그제야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이불이 우리 둘을 함께 덮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 차가웠고, 나는 눈과 땀과 연기 냄새로 엉망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놓지 않았다.
“바보야… 너무 무모해 정말!!!”
**
그때였다.
— 팟.
오두막 안쪽에서 불빛이 켜졌다.
갑작스러운 전등빛이 창문과 눈더미 사이로 번지자, 온 산이 순간 숨을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까지 새벽 빛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세상이, 느닷없이 눈을 뜬 것 같았다.
“전기…”
장모님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나를 보았다.
“전기 들어왔어! 전화기, 전화기!”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