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나는 불붙은 장작을 눈 위에 던져 끄고, 장모님과 함께 오두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따뜻한 공기와 전등빛이 우리를 감쌌다.
잠시 뒤, 휴대폰에 안테나가 잡혔다.
그 작은 막대기 몇 개가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나는 곧바로 펜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장모님은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두막 주변에는 원래 멧돼지 퇴치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밤새 쌓인 눈에 장치가 파묻히면서 작동을 멈춘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눈보라는 앞으로도 이틀 정도 더 이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길을 뚫고 올라오는 건 최소한 이틀 뒤에나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천재지변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펜션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혹시 또 전기가 나갈 경우를 대비해 비상발전기를 돌리는 방법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정 급하면 별채인 자기집에 있는 음식이든 와인이든 필요한대로 먹으라고 했다. 대신 정전으로 문제가 생긴건 없는지 확인을 부탁하면서…
적어도 지난 이틀처럼 추위와 어둠 속에서 떨며 밤을 보내는 일은 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장모님 쪽 통화도 비슷하게 정리되는 듯했다.
산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가족들에게는 그냥 돌아가라고 했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가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전기도 돌아왔고, 먹을 것도 충분했다. 길만 뚫리면 내려갈 수 있었다.
오히려 문제는 그쪽이었다.
장인어른이 먹는 지병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산 아래에서 혹시나 오래 묶이면, 그쪽이 더 위험해질 수 있었다. 눈이 잠깐이라도 잦아든 지금, 빨리 빠져나가는 편이 맞았다.
그렇게 상황은 대강 정리되었다.
멧돼지는 쫓아냈고, 가족들과 연락도 닿았다. 전기는 돌아왔다. 당장 구조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우리는 앞으로 이틀이나 사흘 동안, 이 오두막에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 뿐.
나는 보일러실로 가서 전원을 다시 확인했다. 몇 번 스위치를 만지고, 압력을 살핀 뒤 보일러를 켰다. 처음에는 낮게 웅, 하는 소리만 나더니, 곧 배관 어딘가에서 물이 도는 소리가 들렸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오두막 안에는 온기가 천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벽난로의 불, 전등의 빛, 바닥 아래로 돌아오는 열기.
마치 이 오두막 전체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흘쯤은 버틸 수 있다고.
아니.
사흘 동안은,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된다고.
**
“정말…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랬어.”
장모님은 아직도 진정이 덜 된 얼굴이었다.
“쫓아야 하면 쫓아야죠.”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냥 뒀으면 장작 가지러도 못 나갔을 거예요.”
“후… 정말…”
장모님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었다. 조금 전부터 계속, 같은 곳을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친 데가 없는지 확인하는 손길인지, 아직 남은 놀람을 달래는 손길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손이 닿을 때마다 어젯밤 이불 속이 떠올랐다.
차갑게 떨던 몸.
내 등 뒤로 조심스럽게 감겨오던 팔.
아무 짓도 하지 말라면서도, 끝내 손을 거두지 않던 온기.
오늘 밤에도 그런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일러는 돌아가고 있었다. 바닥 밑에서는 따뜻한 물이 돌고 있었고, 오두막 안의 냉기는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이제 굳이 사람끼리 온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장모님도 어제처럼 내 이불속으로 파고들 일이 없겠지.
그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허전했다.
“많이 놀라셨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장모님은 소주잔을 들어 반 모금쯤 마셨다. 우리가 가지고 온 와인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다.
“멧돼지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야.”
그녀의 얼굴은 술기운과 방금 전의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도…”
그녀가 나를 보았다.
“우리 사위가 정말 용감했어.”
손이 다시 내 어깨를 쓸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느렸다.
나는 그 손 위에 내 손을 살며시 얹었다.
장모님은 빼지 않았다.
“어제…”
나는 낮게 말했다.
“안아주셔서 좋았어요.”
장모님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따뜻했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그녀 역시 어젯밤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던 자신의 팔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들려 애썼던 긴 밤을.
붉어진 얼굴이 조금 더 달아올랐다.
나는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장모님.”
“응?”
“또 보고 싶어요.”
그녀가 나를 보았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처럼요.”
“정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짓궂어. 끊임없네, 우리 사위.”
말은 꾸짖는 투였지만, 목소리 끝은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그녀는 내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아프지 않을 만큼.
그러고는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잠깐의 침묵.
나는 그녀가 또 한참 망설일 줄 알았다. 스웨터 밑단을 붙잡고, 몇 번이나 숨을 고르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되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장모님은 마치 귀찮은 일을 빨리 끝내버리려는 사람처럼, 두 손으로 스웨터 밑단을 잡더니 그대로 위로 벗어 올렸다.
“됐지?”
스웨터가 그녀의 손에 걸린 채로 내려왔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일러가 돌아간 뒤로 오두막 안은 충분히 따뜻해져 있었고, 그녀는 스웨터 하나만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말을 잃었다.
어젯밤에는 어둠과 추위와 술기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전등은 켜져 있었고, 집안도 따뜻했으며, 벽난로의 불빛은 안정되게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뭘 그렇게 봐? 뚫어지겠어.”
장모님이 팔짱을 끼려다 말고, 어색하게 손을 허리에 올렸다.
“사람 민망하게.”
나는 한참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정말 예쁘세요.”
“놀리지 마.”
“진심이에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스웨터를 다시 입지는 않았다.
그 침묵이 허락처럼 느껴져서, 나는 심장이 터질 듯했다.
그대로 있으면 무슨 말이든 더 해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고, 바닥에 펼쳐져 있던 화투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장모님이 나를 흘겨보았다.
“또 무슨 말 하려고?”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화투 한 판 칠까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러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터졌다.
“정말 못 말린다, 우리 사위.”
**
— 딱.
— 딱.
화투패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거실에 또렷하게 울렸다.
간간이 터지는 장모님의 탄성과 아쉬운 한숨 사이에서도, 내 시선은 덜렁거리는 그녀의 젖가슴과 흔들리는 젖꼭지로 흘렀다.
“구멍 나겠어, 정말.”
장모님이 패를 손에 든 채 나를 흘겨보았다.
“집중 안 할 거야?”
우리는 지난 이틀 동안 추위에 떨었던 보상이라도 받듯 보일러를 최대로 틀어놓고, 벽난로까지 활활 피워두었다. 거실은 이제 춥기는커녕 후끈했다.
장모님은 정말 더워서 벗은 사람처럼 상의는 걸치지 않은 채, 아래에는 얇고 편한 잠옷 바지만 입고 있었다.
화투를 치느라 바닥에 앉은 자세도 문제였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탓에, 얇은 천 아래의 굴곡이 불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자꾸 눈에 들어왔다.
며칠간의 긴장 때문이었을까.
멧돼지 소동과 고립, 술기운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지나가버린 뒤라서일까.
장모님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해져 있었다.
아니면 와인이 아니라 소주를 마신 탓에, 정말 취기가 깊어진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화투패를 보는 척하면서도, 번번이 그녀 쪽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장모님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흐트러지는 걸 알고 일부러 더 태연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 딱!
“하아!”
장모님이 탄식했다.
바닥에 깔린 똥쌍피를 먹으려다가, 결국 싸고 말았다.
“아, 정말…”
그녀가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보았다.
“혹시 자네 갖고 있어?”
나는 그녀의 눈과 손에 든 패, 그리고 다시 그녀의 몸 쪽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장모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딴 데 보지 말고.”
나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쌓여 있던 세 장의 패 위에 똥광을 천천히 올렸다.
“한 장 주시고요.”
장모님의 얼굴이 굳었다.
뒤집은 패는 옆에 놓여 있던 흑싸리에 딱, 하고 맞았다.
“후후”
나는 바닥의 패를 쓸어 모으며 말했다.
“쓸이니까 한 장 더죠?”
장모님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에 든 패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덧붙였다.
“고입니다.”
“뭐?”
“고요.”
**
“13점에 쓰리고, 광박에 피박이니까…”
나는 손가락으로 점수를 세며 말했다.
“하… 정말.”
“104점이네요. 와… 진짜 100점을 넘기네요. 십만 원 주세요.”
“하하… 정말 그걸 다 받을 거야?”
장모님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게임은 게임이니까요. 장모님도 이기실 때는 다 받아가셨잖아요.”
점 백원짜리 판에, 100점이 넘어가면 십만원이라고 걸어놓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바닥에 놓인 돈이라고 해봐야 천 원짜리 열서너 장에 동전들이 전부였다.
“어휴, 정말…”
장모님은 저린 다리 탓에 작게 신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이 일어나는 순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가볍게 흔들렸다. 얇은 잠옷 바지 아래로 이어지는 엉덩이의 선도 함께 움직였다.
나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장모님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갑을 집어 들고 뒤적이기 시작했다.
“만원짜리가 모자라겠는걸?”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가자, 장모님이 내 기척을 느끼고 흠칫 굳었다.
“어? 왜… 왜에?”
돌아보지는 못하고, 고개만 살짝 돌린 채였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멈춰 섰다.
바로 닿을 듯한 거리.
그녀의 어깨가 작게 오르내렸다.
“돈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