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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가: ikkuyot
last update 게시일: 2026-09-02 16:57:39

9장

​

​

​

“네?”

​

장모님은 끝내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

이 일이 우리 둘만의 비밀이라는 다짐을 다시 받지도 않았다. 관계의 의미를 묻지도, 방금 전의 일에 대해 어떤 소회도 말하지 않았다.

​

그저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천천히 일어나, 내 어깨를 한 번 쓰다듬었을 뿐이었다.

​

그리고 짧게 말했다.

​

“이제 나가줘.”

​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

그녀의 모습은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의 장모님으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무너지고 떨리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표정은 온화했다.

​

내가 과연 저 사람의 품에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나.

​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

뺨에는 아직 옅은 홍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까지 살필 만큼 내게 여유는 없었다.

​

나는 말없이 바지를 주워 입었다.

​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제가… 다른 방에서 잘게요.”

​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

“화장실 쓰세요, 어머님.”

“고마워.”

​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마치 평소처럼 예의를 차려야 하는 사람 앞에 선 것처럼.

​

그렇게 방을 빠져나와, 건너편의 다른 방으로 향했다.

​

방금 전의 시간은 환상 같았다.

​

아니, 환상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

잠시 뒤, 거실 쪽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샤워기 아래에서 그녀가 몸을 씻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

곧이어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

젖은 발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

그 작고 끈적한 현실감이, 오히려 잠을 완전히 밀어냈다.

​

나는 어둠 속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

바깥에서는 여전히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

세상은 아직 우리를 꺼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

​

**

​

​

​

다음 날이었다.

​

펜션 주인이 말했던 것처럼 정말 내일이면 내려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간밤에도 눈은 무섭게 쌓여 있었다. 전날 애써 치워둔 길은 거의 다시 묻혀 있었고, 차도 절반쯤 눈 속에 잠겨 있었다.

​

나는 다시 삽을 들었다.

​

현관에서 차까지 이어지는 길을 파내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눈은 무거웠고, 삽을 들어 올릴 때마다 어깨가 뻐근하게 울렸다. 처음에는 외투를 입고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벗어 던질 수밖에 없었다.

​

오늘도 공기는 차가웠지만, 반팔 차림에 몸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장모님은 어제처럼 한발 물러선 곳에 서 있었다.

​

도우려는 듯 장갑 낀 손을 몇 번 움직였지만, 결국 내가 말리는 바람에 제대로 나서지는 못했다. 대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삽질을 지켜보고 있었다.

​

다행히 멧돼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펜션 주인에게 다시 연락했을 때, 그는 오늘 밤이 고비라고 했다. 내일부터는 분명 눈이 잦아들 거라고. 다만 강원도 전역이 눈에 묻히다시피 해서, 큰 도로부터 제설이 시작될 테니 펜션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

짧으면 하루.

​

길면 이틀.

​

다행히 여행이 지나고도 며칠 더 연차를 써둔 덕에, 하루나 이틀 더 묶이게 된다고 해서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눈더미를 옆으로 밀어냈다.

​

“후우…”

​

나는 삽자루에 기대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팔뚝과 목덜미에서는 열기가 올라왔고, 입김은 찬 공기 속에서 금세 흩어졌다.

​

“어휴…”

​

장모님이 다가왔다.

​

“오늘도 옴팡 젖었네.”

​

그녀의 시선이 내 몸 위에 머물렀다.

​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

분명 그래야 했다.

​

그런데 나는 그 안에서 다른 것을 보았다. 어젯밤 내 어깨를 붙잡던 손, 내 숨을 받아내던 입술, 그리고 끝내 나를 끌어당기던 몸의 기억이 그녀의 눈빛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그녀의 신음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

'하아아…'

​

그 소리 하나만으로도 몸이 반응했다.

​

“아…”

​

장모님도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

“얼른… 들어와서 씻어.”

​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

“감기 걸리겠다.”

​

그녀가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나는 뒤에서 그녀를 안았다.

​

“어머님.”

​

장모님의 몸이 작게 굳었다.

​

내 젖은 가슴이 그녀의 등에 닿았고, 거친 숨이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그녀는 밀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

“안 된다는 거…”

​

그녀가 낮게 말했다.

​

“알잖아. 우리.”

​

그 말은 어젯밤 이후 처음으로 다시 세워진 선이었다.

​

나는 그 선 앞에서 잠시 멈췄다.

​

하지만 손을 풀지는 못했다.

​

“알아요.”

​

나는 젖은 입김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

“그래도 어머님도 알잖아요.”

​

그녀의 어깨가 아주 작게 떨렸다.

​

나는 조금 더 낮게 말했다.

​

“아직도 우리 둘뿐이라는 거.”

​

장모님은 말없이 서 있었다.

​

눈보라는 잦아들었지만, 사방은 여전히 희고 조용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아직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

나는 그녀를 더 세게 끌어안지 않았다.

​

그저 놓지 않은 채, 한 번 더 속삭였다.

​

“오늘도…”

​

숨이 목 안에서 걸렸다.

​

“씻겨주세요.”

​

장모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러다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정말…”

​

그녀의 손이 내 팔 위에 올라왔다.

​

밀어내는 손인지, 붙잡는 손인지 알 수 없었다.

​

“자네는 사람을 못 견디게 해.”

​

​

​

**

​

​

​

우리는 펜션 안쪽의 자쿠지에 마주 앉아 있었다.

​

서로의 종아리가 닿을 듯 말 듯 겹쳐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옷은 없었고, 몸은 따뜻한 물속에 잠겨 있었다. 물결이 아주 천천히 흔들릴 때마다, 그녀의 몸은 수면 아래에서 흐릿하게 일렁였다.

​

가슴과 아랫배, 그리고 다리 사이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

나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

장모님은 그 눈빛을 알아차리고는, 손끝으로 물을 튕겼다.

​

— 촤박.

“뚫어지겠어, 아저씨.”

​

그녀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

나는 얼굴에 튄 물방울을 닦지도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

“어제…”

​

목소리가 조금 잠겼다.

​

“어제는 제가 너무 짧았…”

​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제법 세게 물이 튀었다.

​

— 촤악.

​

나는 눈을 찡그렸다.

​

“아, 어머님.”

“자기는.”

​

장모님이 나를 흘겨보았다.

​

“내가 어제 왜 울었는지 정말 모르는구나.”

“예?”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조금 더 물속으로 가라앉혔다. 어깨까지 물이 차오르자, 얼굴의 붉은빛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

그녀의 발끝이 내 허벅지에 살짝 닿았다.

​

우연인지, 일부러인지 알 수 없었다.

​

“처음이었어.”

​

그녀가 말했다.

​

나는 잠시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그게…”

​

장모님은 입술을 깨물었다.

​

“처음이었어.”

​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

​

나는 숨을 삼켰다.

​

“뭐가요? 혹시… 오르가즘이요?”

“그런 말 크게 하지 마.”

​

그녀가 작게 쏘아붙였다.

​

하지만 고개는 물 위로 더 깊이 숙이고 있었다. 귀 끝까지 붉어져 있었다.

​

그제야 알 것 같았다.

​

내가 느꼈던 흥분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제 그녀가 울었던 이유도, 내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

장모님은 한참 동안 물결만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

“그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는 게… 좀 서러웠어.”

​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

“그리고 그 상대가…”

​

말끝이 흐려졌다.

​

“자네였다는 것도.”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처음 느껴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

그녀가 웃으려 했지만, 입가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

“그게 너무 서러웠어. 그래서 울었어.”

​

자쿠지의 물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

나는 참아야 했는데, 결국 웃음이 새어 나왔다. 놀람과 안도와 믿기지 않는 기쁨이 한꺼번에 터진 웃음이었다.

​

“아니… 어머님.”

​

나는 물속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

“그게 진짜예요?”

“부끄러워. 그만해.”

“아니, 그러면 장인어른은…”

“그만해.”

​

장모님의 얼굴이 확 굳었다.

​

물속에서 닿아 있던 발끝도 살짝 떨어졌다.

​

“자네 장인 얘기는 하지 마.”

​

그 말은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물 위로 떨어뜨렸다.

​

자쿠지의 물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흘렀다.

​

“그건 다른 얘기야.”

​

그녀가 낮게 말했다.

​

“지금 여기서 꺼내고 싶지 않아.”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죄송해요.”

​

장모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

다만 잠시 뒤, 물속에서 그녀의 발끝이 다시 내 허벅지에 닿았다.

​

이번에는 우연이 아니었다.

​

​

​

**

​

​

​

“이쪽으로 와요.”

​

장모님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이제 자네한테 안 휘말릴 거야.”

​

그녀는 피식 웃으며 옆에 놓인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

우리가 가져온 와인은 이미 다 마셔버린 뒤였다. 대신 펜션 주인이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고 했던 와인 한 병을 꺼내온 참이었다.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 둘의 다리는 이미 물속에서 서로 엉켜 있었다.

​

내 다리는 그녀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발끝은 어느새 그녀의 허벅지 안쪽 가까이 닿아 있었고, 내가 허리를 조금만 더 밀면 더는 우연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까지 닿을 거리였다.

​

장모님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

따뜻한 물결이 우리 사이를 느리게 흔들었다. 물 아래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그래서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데도.

​

물속에 잠긴 내 손에 그녀의 발끝이 닿았다.

​

아주 가벼운 접촉이었다.

​

하지만 장모님의 어깨가 작게 움찔했다.

​

그녀는 와인잔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러나 잔을 쥔 손끝은 조금 굳어 있었다.

​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

그녀의 엄지발가락을 가볍게 문질렀다.

​

장모님은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 작게. 들리지 않는 척할 수 있을 만큼만.

​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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