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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이리
옛날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질식할 듯한 쓰라림을 안고...

서해진과 결혼하기 전부터 강새롬은 ‘서해진’이라는 이름을 익히 들었기에 이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언론은 온갖 아름다운 수식어를 쏟아내며 서해진의 준수한 외모, 능력, 비즈니스 수완을 극찬했다. 가장 완벽한 후계자로 회사를 인수한 지 1년 만에 서강 그룹을 포브스 최정상에 올려놓았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마치 일을 위해 태어난 기계와 같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연회장에서 서해진을 우연히 만났을 때 차가우면서도 우아한 기품과 남다른 자태에 강새롬은 이 남자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마음속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문에서 정략결혼을 제안했을 때 미친 듯이 기뻐하며 승낙했다.

그때 절친도 강새롬을 말렸다.

“서해진이 좋은 건 알겠어. 하지만 감정이 없이 일하는 기계야.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절대 행복하지 못할 거야.”

그러나 그때의 강새롬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본인에게 충분히 자신이 있었고 이 남자를 한껏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얼어붙었던 서해진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혼 첫날밤, 의무처럼 첫날밤을 치른 서해진은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말했다.

“나는 사랑 따위 관심 없어. 너와 결혼한 건 단지 사업상 필요하기 때문이야. 네가 분수를 잘 지키고 있으면 나는 부부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고 평생 서씨 가문 사모님으로서의 영광도 누릴 수 있게 해줄게. 그 외에 더는 바라지 마.”

그래서 결혼한 후, 서해진이 여러 번 일 때문에 그녀를 무시하고 버려도 강새롬은 꾹 참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남자가 비록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다른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런데 오늘, 강새롬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 윤가연을 불면 날아갈까, 잡으면 부서질까 애지중지하는 모습, 늘 거만하기만 했던 이 남자가 고개를 숙이는 모습, 지난 3년 동안, 그토록 갈망했지만 한 번도 듣지 못했던 그 ‘사랑해’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꺼내는 모습을...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일 수 없었다.

이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냉정한 성격으로 타고났기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사랑하는 여자가 강새롬, 그녀가 아니었을 뿐이다.

어떻게든 참고 버텨오던 모든 결심이 우습기 짝이 없는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눈물을 닦고 몸을 돌려 경찰서 밖으로 나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장 변호사님, 이혼 서류 좀 작성해 주세요.”

다음 날, 강새롬은 갓 출력한 이혼 서류를 들고 곧바로 서강 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러나 프런트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사모님, 서 대표님 꽤 오랫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으셨어요.”

그 말에 강새롬은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듯했다.

‘오랫동안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때 프로젝트 하나 때문에 한 달 내내 회사에서 자고 먹고 하며 일하던 워커홀릭 서해진이?’

울컥하는 감정을 참으며 물었다.

“그럼 어디 갔어요?”

프런트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가연 씨와 함께 서답 경매장에 가셨어요.”

경매장...

이내 늘 귀에 들어오던 소문들이 떠올랐다. 그 여자가 한 번이라도 웃길 바라는 마음에 한 번에 거액도 서슴지 않는다는 말들...

깊게 숨을 들이쉰 강새롬은 차를 몰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풍기는 경매장 안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유명한 인사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서해진과 그의 곁에서 활발하고도 귀엽게 웃고 있는 윤가연이 한눈에 들어왔다.

경매사가 마지막 하이라이트 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한때 영국의 어느 여왕이 소유했던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경매 시작 가격이 이미 천문학적이었다.

입찰 경쟁은 유난히 치열했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가격을 부르면 서해진은 망설임 없이 팻말을 들어 바로 그 가격을 뛰어넘었다. 자세는 아주 심드렁했지만 반드시 낙찰받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곁에 있는 윤가연을 위해 모두가 놀랄 만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그 목걸이를 낙찰받았다.

현장 전체가 술렁이며 모두들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시선으로 윤가연을 바라봤다.

활짝 웃으며 서해진의 목을 감싸 안은 윤가연은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는 강새롬은 심장이 마비될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결혼한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서해진은 한 번도 강새롬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저 이 남자가 워낙 성격이 냉담하고 낭만 같은 건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다른 여자 앞에서는 충분히 로맨틱해질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상대가 강새롬이 아닐 뿐이었다.

손에 잡고 있던 이혼 서류를 꽉 쥔 강새롬은 깊게 숨을 들이쉰 다음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는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서해진이 윤가연보다 먼저 강새롬을 발견했다. 원래는 약간 심드렁한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강새롬을 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러더니 거의 본능적으로 곁의 윤가연을 뒤로 감싸며 말했다.

“여긴 무슨 일이야?”

무의식적으로 윤가연을 보호하는 동작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강새롬의 가슴 한복판을 깊숙이 찔렀다.

강새롬은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한 채 손에 든 서류를 내밀었다.

“당신 서명이 필요한 서류가 있어서.”

바로 그때 직원이 다가와 서해진을 뒤쪽으로 안내하며 목걸이 입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서해진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다시 얘기해.”

‘나중에?’

강새롬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일분일초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매우 중요한 서류야. 몇 분이면 돼.”

강새롬은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감추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서해진, 우리 이혼해. 당신이 서류에 서명하고 한 달 숙려기간이 지나면 우리는 더 이상 아무 사이도 아니야. 당신에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놓아줄게. 그러니 당신도 이제 나를 놓아줘. 우리 각자 갈 길 가자고. 서로의 인생 망치지 말고.”

최대한 용기 내 말한 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서해진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나 서해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강새롬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처럼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나 지금 볼일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얘기해.”

이 말만 남긴 채 직원을 따라 뒤쪽으로 걸어갔다.

강새롬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서해진은 언제나 이랬다. 결혼 5년 내내, 매번 강새롬이 한 말, 강새롬이라는 사람을 공기처럼 있는 둥 마는 둥 한 존재로 여겼다.

뒤쫓아가려는 찰나, 윤가연이 갑자기 다가와 강새롬이 든 서류를 낚아챘다.

“네가 해진의 정략 결혼한 와이프구나?”

강새롬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윤가연은 약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서류든 나한테 줘. 내가 서명해 줄게! 해진이가 자기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나한테 줬어. 어떤 서류든 내가 대신 서명해도 된다고 했어!”

강새롬은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개인 도장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모든 서류에 대신 서명하는 것까지 허락한 사람...

극도로 신중한 서해진은 평소 중요한 서류는 반드시 직접 보고 서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윤가연은 자기 말을 증명하듯이 진짜로 핸드백에서 아담하고 정교한, 옥으로 만든 도장을 꺼냈다. 그러더니 서류 내용은 전혀 보지도 않은 채 바로 마지막 장을 펼친 다음, 탁 소리를 내며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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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은 후회의 대가   제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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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진은 이제야 그때의 모든 일들을 알게 되었다.본인이 끝까지 곁을 지켰다는 윤가연의 말, 목숨을 살려준 은혜 따위는 없었다. 실제 서해진을 살린 건 강새롬의 필사적인 몸부림과 피 묻은 두 손뿐이었다. 윤가연은 그저 뻔뻔하게 강새롬의 공을 가로챘을 뿐이었다.그동안 윤가연이라면 뭐든 걸 양보하고 너그럽게 봐줬던 행동,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 기반한 죄책감과 책임감은 그저 우습기 짝이 없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진정한 은인에게 서해진은 어떤 짓을 했을까?강새롬이 윤가연을 조사한다는 걸 알고 교통사고를 조작해 경고했다.경찰서에서 윤가연이 강새롬을 모욕하도록 내버려 뒀고 꺼지라고까지 했다.팥떡을 먹고 싶다는 윤가연의 한마디에 강새롬을 수술대에서 끌어내려 냉동창고에 가두었다.윤가연이 바늘과 고춧물로 강새롬의 등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유리 조각으로 가득한 수영장에 뛰어들라고 강요했다.강새롬 부모님의 회사로 협박까지 했다...그때 했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서해진의 머릿속을 미친 듯이 휘저었다.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강새롬의 피와 눈물이 물들어 있었고 서해진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이 새겨져 있었다.‘왜! 왜 그때 자세히 조사하지 않았을까? 왜 윤가연의 허점투성이 변명을 쉽게 믿었을까? 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유순해 보이고 심지어 약간 재미없기까지 했던 정략결혼 아내에게 그렇게 용감하고 단호한 면모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엄청난 후회와 자기혐오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서해진을 완전히 삼켜버렸다.여기까지 생각한 서해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침대 위에서 아직 의식 없는 척하는 윤가연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점점 분노가 이글거렸다. 그동안 속은 것만 생각하면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윤.가.연!”이를 악문 채 치아 사이로 윤가연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윤가연은 옆에서 자는 척하고 있었지만 서해진이 블랙박스 영상을 보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살기 어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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