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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_저장되지 않은 번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4 17:01:07

문이 닫혔다.

다시 차가운 침묵.

김동석이 어깨 통증을 삼키면서도 사색이 된 소은의 얼굴을 살폈다.

소은은 떨리는 손으로 스케치북을 주웠다.

하단에 작게 새겨진 디자이너 'S'의 사인.

세상을 뒤흔드는 익명의 천재 디자이너 S, 그 화려한 이름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이토록 초라한 현실이었다.

동석이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백 회장 저러는데 어쩌려고."

잠시 침묵하다 소은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

"근데 이번 결혼만큼은, 내 뜻대로 할 거야."

"은아."

동석이 걱정스럽게 불렀다.

소은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결혼, 절대 안 해."

선전포고도, 다짐도 아니었다.

그냥 그녀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하나였다.

퇴근길의 도심은 네온사인으로 번쩍였지만, 소은의 차 안은 지독한 정적뿐이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백동우 회장의 감시가 닿지 않는 유일한 피신처.

도심 변두리, 낡은 상가 지하에 숨겨진 개인 공방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물감 냄새와 종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소은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 김동석뿐이었다.

뒤따라 들어온 동석이 익숙하게 조명을 켰다.

침침한 전등 아래 소은의 지독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그녀는 미완성된 드레스 앞으로 가 천을 만지작거렸다.

살짝 풀어진 어깨끈을 손끝으로 고정했다.

코트를 벗어 던지고 작업대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

사각사각.

집중할 때마다 손가락으로 뺨을 꾸욱 찌르는 건 오래된 습관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잊으려는 듯 한참을 말없이 스케치했다.

자꾸 떠오르는 그 소년의 눈매가 신경 쓰였다.

한참 손을 움직이던 소은이 불쑥,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동석아."

"응."

"만약에, 그 사람이 날 알아보면 어떡하지."

작업대 구석에서 원단을 정리하던 동석의 손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소은의 가녀린 등을 바라봤다.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이내 가슴을 짓누르는 진실을 뱉어냈다.

"숨겨야지."

"......"

동석은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어갔다.

"넌 끝까지 백가은이고, 김소은은 불길 속에서 죽은 아이여야 해."

같은 보육원 출신으로서 태현이 얼마나 절박하게 소은을 기다려왔을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렸다.

"그 사람의 인생까지 태우고 싶지 않다면."

소은의 손이 뚝 멈췄다.

종이 위에 부드럽게 그어지던 선이 날카롭게 꺾이며 툭, 연필심이 부러졌다.

"...그렇지."

고개를 숙였다.

부러진 연필 끝이 종이를 까맣게 눌렀다.

그 소년은 보육원 가족 모두가 화마 속에서 재가 되었다고 믿어야만 했다.

소은은 백동우에게 약점을 더 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띠링ㅡ.

그때, 작업대 위에 놓인 휴대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

소은은 망설이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백가은 씨입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그 목소리는 잊힌 적이 없었다.

심장이 조용히 내려앉았지만 소은은 마치 타인과 통화를 하듯 목소리 톤을 낮추며 답했다.

"네."

"이룸 그룹의 이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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