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하지만 강지연에게는 아직 제출하지 않은 증거 하나가 더 있었다.바로 차유준이 보내준 영상이었다.차유준은 학교 보안 시스템을 해킹해 삭제된 그날의 CCTV 영상을 복구해 냈다.그리고 그 영상 속에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시스템을 해킹하는 일은 결코 떳떳한 행동이 아니었다.그 영상을 그대로 제출했다가 혹시라도 차유준에게 영향을 끼칠까 봐 강지연은 끝내 그 증거를 꺼내지 않았다.교감의 말처럼 곧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이 중요한 시기에 차유준에게 그 어떤 상처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강지연이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침 차유준이 다가오고 있었다.“어땠어? 왜 부른 거래?”그의 질문은 조금 전 온하준이 그녀를 보자마자 했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강지연은 방금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내가 보기엔 이제 괜찮을 것 같아. 교육청에서 철저히 조사할 거라고 했어.”“네가 기다리던 게 이거였어?”차유준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맞아.”차유준의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잘했네. 여론의 목소리가 충분히 커져야 그 결과도 충분히 엄중해지는 법이거든.”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강지연은 순간 당황했다.“게시판 쪽 CCTV 영상은 제출 안 한 거야?”차유준이 궁금했던 부분이었다.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이며 말했다.“응. 안 줬어.”“왜?”차유준은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왜냐하면...”강지연은 부드럽게 웃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너를 지켜주고 싶었거든.”차유준은 순간 당황한 듯 표정을 굳혔다.하지만 이내 따뜻한 눈빛으로 바뀌더니 입꼬리도 천천히 올라갔다.“난 괜찮아. 그 사람들이 설마...”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지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괜찮아. 지금은 여론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조사할 거야. 진실은
이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교장실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교장의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어두워졌고 함께 온 다른 두 책임자의 표정 역시 점점 더 엄숙하게 굳어 갔다.반면 교감은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몇 번이나 말을 끼어들려 했지만 이 선생님의 매서운 눈빛에 번번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전체 영상은 제가 이미 확인했습니다. 다만 여학생의 사생활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내용은 당분간 비공개로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조사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끝까지 파고들어 철저히 조사할 것입니다.”그 말을 듣자 교감은 서둘러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제 잘못입니다. 제가 조사를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영상이 편집된 사실도 모르고...”“아니에요!”지금까지 눈물을 훔치고 있던 강지연이 그제야 겨우 용기를 낸 듯 높은 소리로 말했다.“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교감 선생님이 믿지 않으신 거예요.”교감은 입술을 미세하게 떨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믿지 않았을 수가 있었겠어? 설령 믿기 어렵더라도 조사는 해 해봤겠지. 안 그래?”“아니요. 선생님은 조사하지 않으실 거예요!”강지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조사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조사하는 꼴이 되니까요.”“강지연 학생!”교감은 분노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미 평정을 완전히 잃은 모습이었다.“어려서부터 자기가 하는 말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해!”강지연은 마치 그의 목소리에 겁을 먹은 듯 움찔하며 몸을 살짝 움츠렸다.그 모습을 본 이 선생님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강지연 학생, 괜찮아요. 겁낼 필요 없으니까 계속 말해 봐요.”“제가 하는 모든 말에는 다 증거가 있습니다.”그녀는 이 선생님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두려운 척 뒤로 몸을 피했다.“저한테 주시은의 카톡 대화 기록이랑 송금 내역을 캡처한 것도 있어요. 주시은은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거예요. 그 사람은 바로 이하나고요. 그리고 이하나
강지연이 기다리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게시글의 열기가 점점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사실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었다.한 교시가 지나자마자 그녀는 다시 교실 밖으로 불려 나갔다.이번에 향한 곳은 교장실이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교장실 안에는 낯선 얼굴 몇 명이 앉아 있었고 물론 교감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이 학생이 바로 강지연 학생입니다.”교감이 벌떡 일어서더니 아첨 섞인 웃음을 띠며 소개했다.“강지연, 이분들은 교육청에서 나오신 책임자분들이야. 예의 바르게 인사해야지.”그러자 그 사람들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돼요. 우리도 원래 다 교사였으니까.”강지연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선생님, 안녕하세요.”“하 주임님, 교장 선생님.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학교 내부에서 이미 충분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교감이 먼저 입을 열었다.“본질적으로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생긴 작은 마찰과 오해일 뿐입니다. 강지연 학생은 성격이 비교적 직설적인 편이라 말이 다소 거칠게 들렸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걸 의도적으로 녹음해 앞뒤를 잘라 편집하면서 일이 지금처럼 커진 겁니다. 학교에서는 이미 관련 학생들에 대해 엄중히 지도하고 교육했습니다.”그는 마치 강지연을 위해 변명해 주는 사람인 것처럼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강지연 학생도 친구 사이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미 인정했습니다. 서로 화해도 했고요. 제 생각에는 서로 사과하고 인터넷에 간단한 해명 글을 올리는 선에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괜히 일을 더 크게 키우면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곧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잖아요.”그는 강지연에게 슬쩍 눈치를 보내더니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강지연 학생은 이해심이 깊고 판단도 빠른 학생입니다. 비록 작은 실수는 있었지만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니까요. 징계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뜻은 분명했다.강지연이 순순히 따
겉으로는 걱정하는 듯했지만 말 속에는 노골적인 협박과 편파적인 태도가 숨김없이 배어 있었다.그 말을 듣고 있던 강지연은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천천히 치밀어 올랐다.“교감 선생님.”그녀는 억누르고 있는 감정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제 명예와 미래를 담보로 저에게 입을 다물라는 거네요. 진짜 가해자는 그냥 넘어가게 하려는 거고요. 맞습니까?”“너...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속내를 들킨 교감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아!”“저를 위해서요?”강지연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정말 저를 위해서였다면 선생님은 이 영상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조치를 취했어야죠.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명예를 훼손하고, 사생활까지 침해한 사람을 엄중히 처벌하는 게 먼저였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피해자인 저를 겁주려고 하셨고 가장 악의적인 성별 편견으로 저를 묶어 두려고 하셨잖아요.”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게 번뜩였다.“몰래 촬영된 이 영상은 제 수치가 아닙니다. 그건 촬영한 사람의 범죄입니다. 피해자가 겪게 될지도 모를 또 다른 피해를 이유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이 교육자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그녀의 말이 끝나자 교감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너... 넌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구나! 난 현실적인 영향을 고려해서 한 말이야!”강지연은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선생님이 걱정하는 게 정말 이 학교의 명예 때문입니까? 아니면 선생님 자신의 체면 때문입니까?”교감의 얼굴빛은 순간 확 변했다.“그게 무슨 뜻이지?”강지연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이 영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 흥미로운 내용도 있거든요. 교감 선생님도 분명 관심이 있으실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그의 표정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그대로 교무실 문을 나섰다.뒤에서 교감이 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강지연은 들은 척도
“강지연 학생.”교감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짜증이 실려 있었다.“인터넷에 퍼진 그 영상이 지금 얼마나 큰 논란이 되고 있는지 알고는 있나? 우리 학교는 늘 단결과 우애를 강조해 왔고 그 어떤 형태의 학교폭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왔어. 그런데도 모범이 되어야 할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구나.”강지연은 교무실 한가운데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곧게 선 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교감 선생님, 그 영상은 누군가 악의적으로 편집한 겁니다. 사실의 전부가 아니에요. 그날 욕실에서...”“편집?”교감은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주시은의 머리채를 잡은 사람이 너 아니라는 거야? 그럼 주시은 학생이 겁에 질려 덜덜 떨던 모습도 전부 가짜라는 거니? 사실이 분명하잖아! 더 이상 변명할 필요도 없어! 지금 인터넷에서 이 일이 얼마나 크게 퍼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어? 너 때문에 학교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직도 몰라?”“일이 심각하므로 더더욱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강지연은 교감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영상 전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저를 괴롭힌 건 주시은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정당방위로 대응했을 뿐이고요. 필요하시다면 그 사건의 모든 증거를 제출하겠습니다.”“증거?”교감은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표정을 굳히더니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모든 증거라니? 학생들 사이에 어쩌다 보면 약간의 마찰이 생길 수는 있어. 하지만 네가 친구를 괴롭힌 건 명백한 잘못이야.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변명이 아니라 네가 올바른 태도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거야. 이 일로 퍼지게 된 학교에 대한 나쁜 소문은 어떻게든 수습해야지. 그래야만 학교에서도 처분을 가볍게 하는 쪽으로 고려해 볼 수 있어.”강지연은 사태를 서둘러 덮으려 하면서도 시종일관 상대편을 두둔하는 교감의 태도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교감 선생님.
“내가 깐 계란을 네가 왜 먹어?”“내가 가져온 팥죽도 네가 먼저 퍼먹었잖아.”“여기 있어. 다시 줄게.”“웃기네. 네가 먹던 걸 강지연한테는 안 주더니 나는 왜 줘? 내가 싫어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농구할 때 같은 물병 돌려 마신 게 한두 번이냐.”강지연은 걸음을 옮기며 뒤에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 소리에 고개를 저었다.‘차라리 둘이 살아.’그때 최아현이 앞쪽에서 뛰어왔다. 숨이 가빠 보였고 얼굴은 벌써 달아올라 있었다.“강지연! 큰일 났어.”“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급해?”강지연이 최아현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이것 봐!”최아현은 참아 두었던 분노를 터뜨리며 휴대전화 화면을 강지연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화면에는 지역 커뮤니티 글이 떠 있었는데 제목부터 눈을 찔렀다.[충격! 누군가의 민낯 다시 한번 공개! 교내 폭력 현장 실황!]밑에는 몇십 초짜리 영상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잘라낸 영상이었다.샤워실 사건 중에서도 강지연이 이미 옷을 입고 나온 뒤 주시은을 제압하던 장면만 똑 떼어 붙여 놓은 것이었다.편집은 교묘했다.강지연이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무표정한 옆얼굴을 일부러 확대했고 반대로 주시은이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된 채 떨고 있는 장면은 길게 살려 대비를 극대화했다.댓글은 이미 쌓일 만큼 쌓여 있었다. 익명으로 쏟아지는 추측과 비난이 지저분하게 넘실거렸다.[나 이 학교 다니는데, 때린 애가 누군지 알아. 평소엔 조용한 척하더니 진짜 무섭네.][맞은 애가 저렇게 떨 정도면 얼마나 무서웠겠어. 소름이다.][쟤 배경도 만만치 않다던데. 매일 비싼 차로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다잖아.][어린애가 벌써 스폰 받는 거야? 요즘 애들 진짜 답 없다.][이거 학교폭력 아니냐? 학교에서는 뭐 하는 거지?]최아현의 눈가가 붉어졌다.“진짜 너무하잖아. 우리 분명 걔네 휴대전화에서 영상을 다 지웠어. 그런데 어떻게 또 퍼진 거지?”“괜찮아. 무서워할 거 없어.”강지연이 담담하게 말하자 최아현은
“어머! 아가씨, 괜찮아요?”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쓰러지는 몸을 떠받치는 감촉이 느껴졌다.어렴풋이 강지연은 그 목소리가 아까의 그 여경이라는 걸 알아챘다.그러나 괜찮다고 말 한마디 할 틈도 없이 강지연은 그대로 여경의 품에 고꾸라지며 의식을 잃었다.너무 힘들고 피곤했던 강지연은 마치 아주 길고 깊은 잠을 끝도 없이 잔 것만 같았다.눈을 뜨고 나서도 정신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주변 풍경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져서 찬찬히 둘러보니 이곳은 할머니 집이 아니라 자신과 온하준이 함께 살던 집이었다.지금 그녀는
강지연은 뺨 위에 마르지 않은 눈물을 그대로 둔 채 눈앞의 사람들을 전부 공기처럼 지워버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저 사람들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가 갖고 있어요.”등 뒤에서 떠들어대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 한마디에 싹 가라앉았다.강지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했다.“하준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안 돼?”“이하나, 설마 정말 너야?”“미안해, 하준아. 난 그냥 강지연한테 장난 좀 치고 싶었을 뿐이야. 하준아, 내 말 좀 들어봐. 나 진짜 강지연을 죽이려던 건 아니야. 나는 그
“하준아! 네가 키운 독사한테 한마디 해!”김도윤이 분에 겨워 고함을 질렀다.온하준은 얼굴에 남은 손톱자국을 손끝으로 스치듯 만지며 미간을 찌푸리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쓸데없는 말로 화제 돌리지 마. 강지연,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그래, 강지연.”이하나도 또다시 다가섰다.“도준이 말대로 네가 찍은 그 영상은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 안 돼. 괜히 일을 키워 봐야 회사에도 안 좋고. 차라리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봐.”강지연이 미소를 지었다.“증거로 쓰이든 말든 그건 너희들이 정할 일이 아니고 솔직히 그게 그
온하준은 실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네가 이렇게 속이 좁은 사람일 줄은! 강지연, 난 질투하는 너를 이해할 수는 있어. 최소한 그건 사랑에서 나온 거니까. 하지만 독해진 너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질투심 때문에 거짓말까지 해서 사람을 모함하다니! 이런 네가 너무 무섭다!”온하준은 마침내 입을 열었고 그 말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결론처럼 박혔다.결국 이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순진무구하고 천사 같은 이하나였고 강지연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