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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네입클로버
이하나는 눈치를 보다가 알맞은 순간에 말을 끼워 넣었다.

“하준아, 너 사람이 형수 욕 좀 했다고 기분 상해하지는 마. 다들 진짜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너도 알잖아, 우리 안 지가 몇 년인데. 말이 조금 지나쳤다고 쳐도 그냥 한 번 듣고 넘기면 되는 거지, 괜히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나 화 안 났어.”

온하준은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만해. 지연이 갈 데도 없어. 어디 멀리 가겠어, 됐어.”

어차피 지난 5년 동안 그녀는 집 말고 다른 어디에도 가 본 적이 없었다. 갈 만한 곳도 딱히 없었다.

김도윤은 슬쩍 이하나를 힐끔 보더니 중얼거렸다.

“역시 우리 하나가 속도 넓지. 너희 그때 안 헤어졌으면...”

“무슨 소리야?”

이하나는 눈을 크게 뜨고 김도윤을 흘겨봤다.

“오늘 하루 종일 입을 못 닫고 헛소리만 하네! 하준아 이제 결혼까지 했는데, 그런 말 하는 거 진짜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시선에는 묘하게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다 온하준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 이번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너희가 아직도 나를 받아 줄 수 있고, 예전처럼 내 옆에 있어 주면 그걸로 됐어.”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넌 영원히 우리 팀 마스코트야. 누가 너를 괴롭히면 우리 다 가만 안 둔다? 하준아, 맞지?”

김도윤이 의리를 과시하듯 가슴을 쿵 하고 두드렸다.

온하준은 별다른 말 없이 잔을 들어 가볍게 흔들기만 했다.

이 장면,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오래전에도 그는 늘 이렇게 북적거리는 친구들과 이하나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장난이 도를 넘어서고 일이 자기 앞으로까지 넘어왔을 때야, 슬쩍 나서서 공정한 것처럼 정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이 다시 그에게 의견을 구하자, 그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

강지연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예약해 둔 호텔에 그대로 들어가 묵었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서러움과 고통이 호텔방 문이 닫히는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김도윤이 자기 다리를 흉내 내며 절뚝거리던 모습이 눈앞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방 안에 가득했던 폭소가 마치 주문처럼 귓가를 끝없이 맴돌았다.

사실 온하준의 친구들이 뒤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온하준에게 그 얘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그들은 그와 수년을 함께해 온 친구들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가 바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그녀는 이해했다. 그래서 더 이상 그에게 짐을 얹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 때문에 그와 친구들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다.

그저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 모든 이해와 배려가 다 헛된 생각이었다.

그가 왜 자기 때문에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지는 일을 감수하겠는가.

그들은 그의 오랜 친구들이었다.

그럼 그녀는?

강지연은 그저 온하준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맞춰 끼운 결혼 생활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의 인생에 달라붙어 있는 짐이었고, 그녀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더 가볍고 행복했을 것이다.

“걔는 절뚝거리는 애잖아! 네가 아니면 누가 데려가 줘?”

“다리 저는 주제에 하준이 같은 남자한테 시집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라면 절뚝거리는 사람을 집에 데려가서 평생 사람들 앞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그때 차에 치여서 다리 저는 사람이 내가 되겠어.”

“다른 회사 대표들은 다 반듯하고 품위 있는 부인 데리고 나와서 행사 나가는데, 우리 하준이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만한 사람도 없잖아.”

...

5년 동안 그녀의 귀에 들려왔던 온갖 종류의 뒷말들이 밀물처럼 한꺼번에 가슴으로 들이닥쳤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거칠게 몸을 휘감고 그녀를 완전히 집어삼키려 했다.

숨이 막혔다.

심장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폐까지 함께 후벼 팠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휴대폰 속 앨범 하나를 열었다.

그 안에는 학부 시절 연습과 공연을 하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무대에 다시 오를 수 없게 된 뒤로, 그녀는 춤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들을 모두 그 앨범 하나에 모아 넣었다. 비밀번호를 걸어 다시는 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자리였다.

지금,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무 영상이나 하나 눌러 재생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화면 속의 그녀는 회전하고, 몸을 던지고, 공중에서 일자 다리를 그렸다.

그때의 강지연은 눈빛이 살아 있었고, 몸은 매끄럽고 탄력 있게 움직였다. 폭풍 같은 박수 소리도 분명히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한 일은 잘못이었을까?

하지만 온하준을 밀쳐낸 바로 그 순간에도 그를 남편으로 맞이할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결혼 이야기를 먼저 꺼낸 쪽은 그였다.

그가 결혼하자고 했고, 성대하고 화려한 프러포즈를 준비했고,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고, 그렇게 그녀에게 희망이라는 것을 쥐여 주었다.

강지연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 전원을 꺼 버렸다.

그리고 5년 만에 처음 침대로 몸을 던지듯 쓰러져 목이 터져라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울었다.

스스로 지친다고 느껴질 만큼 오래...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가슴 한가운데만 뜨겁게 남아서 타들어 가는 통증만이 남을 때까지.

불길에 그을리는 것처럼 타오르는 그 아픔이 역설적으로 그녀를 이 질식할 것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닥 맑은 정신으로 끌고 나왔다.

아프면 아플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그녀는 욕실로 가서 얼굴을 세게 씻었다. 차가운 물로 정신을 다잡듯 손에 힘을 주어 물을 끼얹었다.

거울 속 이미 빛을 잃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강지연, 울 일은 오늘 한 번으로 끝이야. 더는 울지 마. 지금은 잘 먹고, 잘 자고, 내일 시험 잘 보는 게 먼저야.”

그녀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길고도 지루했던 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매일 조금씩 공부를 해 왔다는 점이었다.

대단한 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시간이 너무 많고, 너무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온하준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그녀 인생의 거의 전부가 되어 버렸었다.

하지만 온하준은 언제나 아주 늦게야 귀가했다.

처음에는 정말 일이 바쁜 줄 알았다.

이후에야 그가 그저 자신이 있는 집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역시 그녀가 직접 들었다.

그때의 강지연은 온하준의 고생을 생각해 오히려 더 마음을 썼다. 용기를 내어 그를 챙기고 싶어 했다.

정성껏 야식을 만들어 회사로 찾아갔을 때, 그녀는 도저히 듣지 말았어야 할 대화를 듣고 말았다.

온하준의 사무실 안에서 그와 그의 친구가 나누던 대화였다.

친구가 물었다.

이 시간에 왜 아직도 안 가냐고. 회사에 남은 사람도 거의 없는데 대표가 아직 야근을 하고 있냐고.

그러자 온하준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나도 집에 가긴 가야 하는데, 지연이 그 뜨거운 마음을 어떻게 받아줘야 할지 모르겠어.”

그 말에 담긴 뜻을 그때의 순진한 강지연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친구는 과장되게 소리를 질렀다.

“설마 진짜야? 하준아, 너 설마 지금까지도 형수랑 한 번도 같이 잔 적이 없는 건 아니지?”

온하준은 침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온하준은 한 번도 그녀에게 손을 뻗은 적이 없었다.

그녀는 여러 번 눈치도 주었고, 심지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먼저 다가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온갖 이유를 들어 그녀를 밀어냈다.

“너 요즘 몸 상태가 별로잖아.”

혹은...

“나 요즘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어.”

강지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든 말 뒤에 있는 진짜 이유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해도 온하준이 자기 입으로 그 사실을 털어놓는 말을 듣게 되었을 때, 그녀의 가슴에는 수천 개의 바늘이 한 번에 꽂힌 것처럼 숨이 막힐 만큼의 통증이 몰려왔었다.

나중에 그의 친구는 반은 농담, 반은 진심 섞인 목소리로 또 물었다.

“하준아, 설마 형수 보면 아무 반응도 없는 건 아니지?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예쁘잖아.”

그때 온하준이 한 대답은 그 후 몇 년 동안 내내 그녀 가슴 한가운데 박힌 채, 자그마한 바늘처럼 틈만 나면 그녀를 찔러댔다.

생각만 나면 심장이 도려지는 것처럼 아려 왔다.

그날, 온하준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노력은 해 봤어. 정상적인 부부처럼 지내보려고. 근데 지연이 다리만 보면... 나는 그냥 바로 아무 느낌이 없어져.”

‘그랬구나...’

그녀가 그를 구하려다 다치게 된 다리, 수술 자국이 뒤엉켜 있고 근육이 말라붙어 버린 그 다리가...

그의 눈에는 추하고, 속이 울렁거릴 만큼 보기 싫고, 모든 욕구를 단번에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강지연은 결국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그날 준비해 간 정성스러운 야식은 회사 건물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려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 강지연은 다시는 그의 회사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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