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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화 [단오] - 1 -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9 09:39:36

서가 저택을 손보기 시작한 지 두어 달이 되었다.

지붕을 다시 얹었고 무너진 담을 세웠다는 기별이 왔다. 서리는 직접 가서 보기로 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이겸이 말했다.

"호위를 붙여주시면 됩니다."

"그러니 제가 가겠다는 말입니다."

서리는 그 말에 잠시 그를 보았다. 반박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그럼 그리하시지요."

—

말을 타고 도성 북쪽으로 나가는 길은 사람이 많았다.

단오였다. 창포를 다발로 인 아낙들이 지나갔고, 아이들이 색 있는 실을 손목에 감고 뛰어다녔다.

길가에 수레가 늘어서서 두 사람의 말이 몇 번이나 걸음을 늦췄다.

"오늘인 줄 잊고 계셨습니까."

이겸이 물었다.

"잊었다기보다는……"

서리가 답했다.

"그냥 지나가는 날이라 여겼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단오는 궁 안에서 지나갔다.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일도, 그네를 매는 일도 남이 하는 것을 멀리서 보는 날이었다.

—

서가의 마당은 생각보다 정갈했다.

풀이 걷혔고, 무너져 있던 담이 새 흙으로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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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고른 낭군   제 58화 [몇 걸음] - 2 -

    서리는 단도를 앞으로 세운 채, 등을 담 쪽으로 붙였다.이것으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다만 들어오는 칼이 한 번 멈칫하면, 그것이 곧 시간이었다.감씨가 큰길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를 셈했다.한 걸음이라도 늦추면 그만큼이었다.말발굽 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다.한 무리가 좁은 길로 들이닥쳤다. 앞선 자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칼을 뽑았다.호위 차림이었다. 그 뒤로 몇이 더 내려섰다."어느 놈들이냐!"앞선 자가 소리쳤다.골목을 막고 있던 자들 사이에서 짧은 욕이 튀어나왔다.가려진 자 하나가 낮게 뱉었다."태자궁이다."그 말이 떨어지자 움직임이 한꺼번에 멈췄다.이헌이 말 위에서 내려온 것은 그다음이었다.궁에서 나온 길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앞쪽이 소란한 것을 보고 걸음을 돌린 것뿐이었다.돌린 뒤에야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보였다."저것들을 잡아라."이헌의 명이 떨어졌다.수는 이쪽이 많았다. 가려진 얼굴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곧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몇 걸음 물러난 뒤에는 그대로 흩어져 달아났다.이헌이 서리 앞에 섰다.서리는 아직 단도를 쥐고 있었다. 손등에 남의 피가 묻어 있었다."다치셨습니까.""아닙니다.""그 손은.""제 것이 아닙니다."이헌이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서리는 그제야 단도 끝을 조금 내렸다.숨이 아직 고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먼저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영안궁에 사람을 보내주십시오."이헌의 눈이 들렸다."지금 말입니까.""예. 지금."이겸이 도착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말을 몰아 온 소리가 골목 밖에서부터 들렸다.내리는 것과 걸어 들어오는 것이 거의 이어져 있었다.넘어진 가마, 바닥에 남은 자국, 아직 치우지 못한 사람들.그가 그것들을 지나오는 동안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그 뒤로 백우와 영안궁 사람들이 따라 들어왔다.그가 서리를 보았다.서리도 그를 보았다.그 자리에서 걸음이 한 번 멈췄다가,

  • 다시 고른 낭군   제 57화 [몇 걸음] - 1 -

    자리는 보름 뒤에 열렸다.궁의 후원 한쪽을 비우고 자리를 깔았다.왕후가 주재했고, 종친의 부인들과 나이 든 상궁 몇이 곁에 앉았다.가문의 어른들도 먼발치에 자리해 있었다.영애들이 넷 들어왔다.넷 다 눈에 띄었다.색을 아끼지 않은 옷과, 볕을 받으면 한 번씩 번쩍이는 장신구들.걸음걸이며 앉는 자세까지 여러 번 익힌 티가 났다.한 영애가 잔을 받으며 소매를 접는 손이 지나치게 곱게 움직였다.다른 영애가 그것을 보고 제 소매를 한 번 고쳐 잡았다.왕후가 하나씩 앞으로 불렀다.무엇을 배웠느냐, 집에서 무엇을 맡아 보았느냐 하는 물음이 오갔다.답은 대개 비슷했다. 글과 바느질을 익혔고,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보았다는 것.한 영애가 시문 이야기를 꺼내며 대답을 길게 끌었다.말을 마치고 나서 옆자리를 한 번 살폈다.그 옆의 영애가 곧 자세를 고쳐 앉았다.왕후는 답의 내용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다만 답하는 동안 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물음이 끝난 뒤 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고 있었다.서리는 영안공의 부인이자 태자의 작은어머니 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아,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부인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을 들으며, 서리는 그 자리를 눈으로 훑었다.목연은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옷은 넷 중 가장 옅었다.장신구도 귀에 하나, 머리에 하나뿐이었다.그런데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잔을 받을 때도, 왕후가 물을 때도, 다른 영애가 웃을 때도 같은 높이였다.애써 눈에 들려 하지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차례가 오자 목연이 앞으로 나갔다."집에서는 무엇을 보았느냐.""어머니를 도와 안살림을 보았습니다.""그뿐이냐.""손님 치르는 일을 몇 해 맡았습니다." 목연이 답했다. "다만 아직 배우는 중이라, 내세울 만한 것은 못 됩니다."짧은 답이었다. 자리에 있던 몇이 그 답에 고개를 끄덕였다.목연은 물러나 앉은 뒤로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다만 한 번, 아버지가 앉아 있는 쪽으로 시선이 갔다가 곧 돌아왔다.그쪽에서

  • 다시 고른 낭군   제 56화 [홍옥] - 2 -

    부인들과 영애들이 연못 쪽으로 옮겨간 것은 밤이 더 깊어진 뒤였다.수각 주변에 등불이 촘촘히 걸려 있었다.물 위로 불빛이 흔들리며 길게 늘어졌다가 깨졌다.사람이 많았다. 좁은 길로 여럿이 몰려 걸음이 자주 엉켰다.목연은 서리보다 몇 걸음 앞에 있었다.뒤에서 오던 이가 지나가려 하자, 목연이 자리를 내주려고 몸을 뒤로 물렸다.연못 가장자리에 낮은 돌턱이 있었다.목연의 발이 그 위를 제대로 밟지 못했다.몸이 물 쪽으로 기울었다.서리는 생각하기 전에 손을 뻗었다.목연의 손목이 잡혔다.당겼다.그런데 목연의 몸은 이미 가장자리 밖으로 넘어가 있었다.끌어당기는 힘보다 끌려가는 무게가 컸다.서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버티는 사이 제 발도 돌턱을 벗어났다.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은 채 물로 떨어졌다.—소리가 한꺼번에 터졌다.물이 크게 튀었고, 등불 그림자가 사방으로 깨졌다.비명이 났고, 사람들이 동시에 가장자리로 몰렸다.목연은 가장자리에 가까웠다.궁인들과 호위가 곧바로 팔을 뻗어 끌어올렸다.서리는 아니었다.당기던 힘과 넘어가던 반동이 겹쳐, 몸이 더 안쪽으로 밀려나 있었다.물이 옷을 먹었다. 예복이 무거워졌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이겸이 그 소리를 들은 것은 회랑 반대편에서였다.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전에 이미 뛰고 있었다.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 있었다.깨진 등불 그림자 사이로 흰 것이 하나 떠 있었다.저자에서 산 부채였다. 펼쳐진 채로 물 위에 얹혀 천천히 돌고 있었다.그 너머 안쪽에서 젖은 옷자락이 보였다.이겸은 겉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들어갔다.몇 걸음 만에 발이 바닥을 놓쳤다.그대로 헤엄쳐 들어가 서리에게 닿았고, 팔을 등 뒤로 넣어 끌어올렸다.서리가 물 밖으로 나온 순간, 기침이 먼저 나왔다.젖어 내려앉은 머리 사이로 홍옥이 붉게 드러났다.—이겸의 팔에 매달린 채 숨을 고르면서, 서리가 먼저 물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목 영애는요.""올라왔습니다."가장자리 쪽에서

  • 다시 고른 낭군   제 55화 [홍옥] - 1 -

    저자에서 돌아온 뒤, 이겸은 옷만 갈아입고 곧바로 다시 나갔다.궁중 단오 행사의 호위와 경비를 미리 살펴야 한다 했다.저녁에 뵙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섰다.서리는 해가 기운 뒤에야 단장을 시작했다.감씨가 머리를 올리는 동안, 서리는 함을 열었다.안에 홍옥 머리꽂이가 놓여 있었다.받아둔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한 번을 꽂지 않은 채였다."이걸로 하자.""예?""오늘은 밤 행사인데, 이대로는 너무 심심하지 않겠느냐. 색이 하나쯤은 있어야지."감씨는 잠시 서리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머리에 꽂고 나니 거울 속에서 붉은 것이 한 점 도드라졌다.어두운 예복 위로 그 색만 살아 있었다."비뚤어지지 않았느냐.""곧습니다."서리는 고개를 조금 돌려 다시 보았다.그러고는 손끝으로 그 근처를 한 번 매만졌다."이쪽이 조금 내려온 것 같은데.""그대로이십니다, 마님."감씨가 웃음을 참는 낯을 했지만,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빗을 놓고 물러나면서도 그저 옷자락만 매만졌다.서리는 거울에서 한 번 더 그 자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일어섰다.그리고 낮에 저자에서 산 흰 부채를 함께 챙겨 들었다.—궁의 밤은 낮의 저자와는 다른 색이었다.낮에는 볕 아래에서 모든 색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면,밤에는 어둠이 먼저 깔리고 그 위로 색이 잠깐씩 떠올랐다 사라졌다.처마마다 등불이 걸렸다.연못 위로 그 불빛이 길게 늘어져 깨졌다가 다시 모였다.풍악 소리가 낮게 흘렀고, 그 사이로 잔 부딪히는 소리가 섞였다.밤바람이 지날 때마다 얇은 옷자락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다.서리는 왕후와 귀부인들이 자리한 쪽으로 안내되었다.이겸은 그쪽에 없었다.찾으려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리에 앉기 전에 한 번, 앉고 나서 한 번 눈이 돌아갔다.호위와 경비를 맡은 이들 사이로, 회랑 끝을 지나가는 뒷모습이 한 번 보였다.등불 아래를 지날 때만 잠깐 드러났다가 다시 어둠에 묻혔다.낮에는 팔이 닿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서리는 그 생

  • 다시 고른 낭군   제 54화 [단오] - 3 -

    이겸이 인파 속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볕은 그대로였다.처마의 포목도 여전히 부풀었다 가라앉았고, 어디선가 풍악 소리가 났다.그네 쪽에서 웃음이 한꺼번에 터졌다.서리는 새로 산 부채를 손에 든 채 포목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가는 동안 어깨가 두어 번 부딪혔다.아까와 달리, 부딪히기 전에 자연히 안쪽으로 비켜서는 일은 없었다.포목전 앞에 이르러서도 곧바로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다.옆 좌판에 엿이 늘어서 있었고, 그 옆에서는 노리개를 팔았다.하나를 손에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무엇을 보아도 오래 눈에 남지 않았다.한 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가 사라진 쪽을 보았다.사람들 어깨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서리는 다시 앞을 보고, 포목전 안으로 들어섰다.안쪽 시렁 앞에서 걸음이 멎었다.짙은 감색 천이 있었다.검은 것도 아니고 푸른 것도 아닌, 빛이 어디서 드느냐에 따라 달라 보이는 색이었다.그 옆에 옅은 은회색 실이 감겨 있었다.서리는 그 두 가지를 한참 바라보았다.그 색을 입은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연회에서 흰 포에 짙은 남색 깃을 두르고 앉아 있던 모습,밤에 어깨에 걸려 있던 겉옷의 구름 문양.그러고 나서야 다른 생각이 뒤따라왔다.받은 것이 있었다. 함에 담긴 채로 아직 서안 위에 놓여 있었다.답례를 해야 마땅한데 무엇으로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였다.그렇게 이유를 하나 붙이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이걸로 주십시오."서리는 천을 알맞게 끊어 받고, 실도 몇 타래 함께 샀다.꾸러미는 소매 안에 들어갈 만큼 작았다."혼자 오셨습니까."포목전 앞으로 나섰을 때였다.젊은 사내였다. 옷차림이 말끔했고, 손에 든 것으로 보아 어느 상가의 자제인 듯했다."아닙니다.""저쪽에서 그네 뛰는 걸 하는데, 여인들이 많이 갑니다."사내가 웃으며 말했다."혼자시면 제가 안내해드릴까 해서요.""함께 온 이가 있습니다.""아직 안 보이시는데요.""곧 돌아옵니다."서리가 담담히 답했다."그러니 마음만

  • 다시 고른 낭군   제 53화 [단오] - 2 -

    사람들의 흐름이 두 사람을 저자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부채를 펼쳤다 접는 손들이 사방에서 움직였다.길 한쪽에서는 그네에 매단 긴 천이 바람을 받아 크게 휘었다."이런 자리는 오랜만이십니까."이겸이 물었다."어릴 때 아버지가 데리고 나오신 적이 있습니다."서리가 답했다."그때는 사람 다리 사이로 씨름판을 봤지요.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고 떼를 쓰니까, 결국 목말을 태워주셨습니다."말해놓고 나서야 서리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아버지의 머리를 붙잡고 있던 손, 흔들리던 시야, 아래에서 웃던 오라버니들.입가가 저도 모르게 조금 올라갔다."지금은 잘 보이시겠군요.""그건 그렇습니다."서리가 답했다."다만 그때만큼 높지는 않습니다."씨름판 쪽에서 다시 함성이 터졌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리는 바람에 두 사람도 자연히 그 앞까지 밀려갔다.판 위에서는 아직 다음 판이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두 사내가 샅바를 고쳐 잡는 동안 흙먼지가 볕 속으로 천천히 떠올랐다."어느 쪽이 이길 것 같으십니까."서리가 물었다."오른쪽입니다.""저는 왼쪽으로 하겠습니다."이겸이 서리를 돌아보았다."왜 하필 왼쪽입니까.""영안공께서 오른쪽이라 하셨으니까요.""그것이 이유입니까.""그럼 내기를 하나 더 걸지요."서리가 말을 이었다."진 사람이 이긴 사람 청 하나를 들어주는 겁니다."이겸이 잠시 말이 없었다."청이라 하면.""그거야 이기고 나서 정할 일이지요."판이 시작되었다.오른쪽 사내가 먼저 들어갔다. 덩치가 좋았고, 첫 손도 빨랐다.몇 번 밀어붙이는 동안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서리도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그러다 왼쪽 사내가 자세를 낮췄다.발이 한 번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오른쪽 사내가 그대로 넘어갔다.함성이 터졌다. 흙먼지가 볕 속에서 크게 일었다.서리가 이겸 쪽을 보았다."발이 더 깊었습니다."이겸이 판을 내려다본 채 말했다."저런 자리에서는 힘보다 발이 먼저인데요.""아셨으면서 오른쪽을 고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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