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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무안안
심미연은 방금 무례하게 끼어든 남자를 힐끗 보았다. 그는 바로 강지한의 소꿉친구이자, 경성에서 유서 깊은 육씨 가문의 자제인 육현성이었다.

육현성은 언제나 심미연을 업신여겼다.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깔보는 태도는 노골적이었다.

그러나 육현성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 뒤에서 온지유의 도구처럼 움직이는 존재였다. 온지유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공격하곤 했으니, 그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다. 그 생각에 심미연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큰형수님이란 호칭은 저희 아주버님의 아내를 말하는 거 맞죠? 방금 하신 말씀, 누가 들었다면 지한 씨가 큰형수님과 부적절한 관계라도 되는 줄 오해했을 겁니다.”

육현성이 심미연을 불쾌하게 하려고 던진 말이었으니, 그녀도 굳이 체면을 살려줄 이유는 없었다. 심미연은 강지한을 사랑했지만, 그의 친구들 앞에서까지 참으며 굽힐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대답에 온지유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원래 흐뭇하게 웃고 있던 그녀는 손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랑 지한 씨는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어. 내가 돌본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진 않아. 오히려 너야말로 지한 씨 좀 잘 챙겼으면 좋겠네. 지난달 건강검진에서 위 안 좋다고 나왔더라.”

온지유의 말은 억울함과 은근한 비난을 담고 있었다. 심미연은 그런 그녀를 보며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아주버님 돌아가신 건 형님 얼굴이 과부상을 띠어서 그런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심미연의 말이 끝나자, 온지유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강지한의 위 건강을 위해 3년 동안 애쓴 자신을 무시한 채 꾸며내는 비난에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가 심리전을 걸어온다면, 자신도 한 방 먹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과부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온지유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을 들어 심미연의 뺨을 때리려 했다. 과거에 시어머니에게 들었던 똑같은 말을 떠올리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었다.

‘그 남자가 단명한 걸 왜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건데!’

하지만 온지유의 손은 심미연에게 닿지 못했다. 심미연이 단번에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멈췄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온지유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문 막히니까 이제 손찌검 하려는 거야?”

심미연은 자신이 만만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다.

“야! 이거 놔! 아프잖아!”

온지유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육현성은 화가 나서 달려들려 했으나, 박인우가 그를 간신히 붙잡았다.

“현성이 형! 진정하세요!”

육현성은 몸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심미연 씨! 그 손 당장 놓지 못해요?”

방 안의 소란은 결국 강지한을 깨웠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며 미간을 찌푸렸다.

강지한이 깨어난 것을 눈치챈 온지유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갑자기 심미연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더니 힘껏 밀어냈다. 그리고 그 틈에 몇 걸음 물러나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으로 배를 감싸쥔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현성 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

박인우는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육현성이 박인우의 손을 뿌리치고 온지유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강지한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날렵하게 온지유를 안아 올리며 심미연을 향해 차갑게 노려보았다.

“지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강지한의 서늘한 목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얼어붙게 했다.

“지한 씨, 내가 실수로 넘어져서 그런 거야. 미연 씨와는 아무 상관 없어!”

온지유는 강지한의 옷을 잡아당기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한 씨도 참, 왜 앞뒤 상황을 따져 보지도 않고 미연 씨한테 그런 말을 해!”

“내가 다 봤어!”

강지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한 씨가 잘못 본 거야.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라니까. 미연 씨가 나를 밀친 게 아니라고!”

온지유는 서둘러 강지한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부자연스러운 해명은 심미연을 더욱 수상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녀는 강지한의 위치에서 보면 자신이 심미연에게 밀린 것처럼 보였을 거라는 것까지 계산했던 터였다.

온지유의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심미연은 비웃음을 머금고 차분히 말했다.

“자기가 실수로 넘어졌다고 본인이 말하고 있잖아. 내가 밀친 게 아니라니까? 지한 씨, 듣고는 있어?”

온지유의 왜곡된 상황 조작에 순순히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담담한 태도는 온지유의 얼굴을 굳게 만들었다.

“지한 씨... 배가... 너무 아파...”

결국 심미연의 논리적인 태도에 더 이상 맞설 수 없었던 온지유는 강지한의 주의를 돌리려 고통스러운 척 연기했다.

“좀 참아. 내가 병원에 데려다 줄게!”

강지한은 온지유를 부드럽게 달래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심미연을 돌아보지 않은 채 방을 나섰다.

희미한 조명이 드리워진 복도에서 강지한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심미연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깊숙이 답답한 무언가가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정말 남보다 못한 남편이야.’

그에게 바친 9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이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형수님, 괜찮으세요? 집에 모셔다드릴까요?”

박인우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후회가 서려 있었다.

‘형수님에게 전화를 거는 게 아니었는데...’

“괜찮아, 고마워.”

심미연은 생각을 정리한 뒤 그를 올려다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이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어. 사실이야?”

심미연은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제 막 돌아왔어요.”

“알겠어. 이제 늦었으니 들어가자.”

심미연은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차가 고가도로로 올라섰을 때, 그녀는 뒤에서 번호판 없는 차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재빨리 비상 연락망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울먹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한 씨, 너무 아파. 아이가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울지 마. 금방 괜찮아질 거야...”

남자는 다정하게 그녀를 달랬다.

심미연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지한 씨, 누가 날 죽이려고 해! 도와줘!”

“지한 씨, 미연 씨부터 도와줘! 난 괜찮아.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온지유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연신 기침했다.

“말 한마디 하면서도 기침하느라 정신이 없으면서, 혼자 괜찮다고? 됐고, 얼른 자. 상관없는 사람 일에 신경 끄지 마!”

강지한의 목소리는 차갑게 변했고, 그의 말은 심미연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심미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억누르며 쉰 목소리로 간절히 말했다.

“강지한, 나 지금 경현고가도로야. 뒤에 차가 따라오고 있어. 날 죽이려는 것 같아. 제발 와줘!”

그녀에게는 강지한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렸던 사람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녀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그만 좀 해! 이제는 네 말은 믿지 않을 거야. 심미연, 적당히 해!”

“강지한, 진짜야. 정말로 차가 날 쫓아오고 있어! 제발 와줘!”

“네가 죽으면 내가 가서 수습해 줄게. 강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성대하게 장례 치러줄 테니까. 다시는 전화하지 마!”

강지한은 차갑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단절음에 심미연은 모든 희망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흩어져 가던 생각을 다잡으며 급히 핸들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뒤쪽 차량이 다시 한번 차를 들이받았다.

차가 가드레일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심미연은 손이 떨리면서도 다급히 번호를 눌렀다.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친구 신하린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미연아! 어디야? 말 좀 해!”

심미연은 눈물이 터질 듯했지만, 이를 악물고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썼다.

“경현고가도로...”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눈앞이 새까매지며 의식을 잃었다.

의식이 흐려진 그녀는 오래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열네 살이던 시절, 처음 강지한을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

눈을 떴을 때, 심미연은 자신이 병상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곁에는 신하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미연아, 깼구나!”

신하린은 안도와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미연아, 너 알아? 너 임신했어! 나 이제 조카가 생긴 거야!”

심미연은 손을 천천히 자신의 배 위로 올렸다. 살짝 배를 쓰다듬으며 잠시 망설이더니,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하린아, 나 강지한이랑 이혼하기로 했어. 하지만 이 아이는 지킬 거야.”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이 아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는 이제 그녀의 삶의 이유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뭐라고? 너 강지한이랑 이혼한다고?”

세상에서 심미연이 강지한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신하린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가 이혼을 이야기하다니, 신하린은 자기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심미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오열하는 대신 더 서글픈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온지유도 임신했어. 강지한이 그 아이를 낳으라고 하더라...”

‘강지한의 큰형이 1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으니, 온지유의 아이가 큰형의 아이일 리 없잖아...’

신하린의 눈빛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강지한 그 개자식! 평소에 그 여자랑 붙어 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애까지 만들었다고? 정말 둘 다 죽여버리고 싶어!”

심미연은 마음이 쓰라렸지만, 차분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작은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하린아, 이렇게 생각해 봐. 나 이제 아이도 가졌고, 이혼하면 다른 남자랑 다시 결혼할 수 있어. 그러면 강지한의 아들은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겠지. 생각만 해도 통쾌하지 않아?”

언제나 그녀의 편인 신하린은 잠시 눈물을 훔치더니, 결국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심미연은 옆에 두었던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강지한의 번호였다. 그녀는 주저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곧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심미연은 짜증 섞인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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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3화

    “혹시 진짜 죽었나 싶어서 확인하는 거야.”강지한의 목소리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심미연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꽉 쥐며 한 글자씩 힘을 주어 말했다.“난 목숨이 질겨서 죽지 못했나 봐!”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번호를 차단하는 일까지 한순간이었다....이노하이브 그룹 산하 병원의 VIP 병실.온지유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병적으로 푸석한 안색과 마른 몸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듯 연약해 보였다.강지한은 병실 한쪽에서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온지유는 그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지한 씨, 미연 씨는... 괜찮은 거야?”강지한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짧게 답했다.“괜찮아.”온지유는 속으로 심미연을 몇 번이나 저주하면서도, 겉으론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미연 씨랑 함께 있어줘. 여기 의사랑 간호사가 있어서 괜찮아.”강지한의 표정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자. 오늘 밤은 내가 여기 있을 테니 잠이나 자.”온지유는 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는 난처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오늘 밤 안 돌아가시면, 내일 미연 씨가 분명 할아버지께 고자질할 거야.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으시잖아. 자주 화내시면 안 되는데...”강지한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하고 얼른 자.”온지유는 입술을 깨물며 강지한을 올려다봤다.“정말 여기서 나랑 같이 있어 줄 거야?”“그래. 자라.”...다음 날 아침.심미연이 눈을 뜨자마자 신하린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하린은 잔뜩 화가 난 듯 입술을 깨물고 서 있었다.“아침부터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심미연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자, 신하린은 휴대폰을 내밀며 씩씩댔다.“온지유 그 뻔뻔한 게 자작극을 벌이고 실시간 검색에 올랐어! 이번엔 완전 자극적이야.”심미연은 하린이 내민 휴대폰 화면을 흘긋 보았다.[충격 폭로! 유명 무용가, 임신설?! 약혼남과 함께 병원 방문 포착]기사 내용을 확인하자 초음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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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5화

    심미연은 한동안 강지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날 희생해서 그 여자를 완벽하게 만들겠다고? 절대 안 돼.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강지한, 난 이미 이혼하기로 마음먹었어. 언제 시간이 되는지 말해. 법원에 다녀오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그녀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떠올랐으나 마음 깊은 곳은 고통으로 얼룩져 있었다. 강지한이 온지유를 편애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줄은 몰랐다.‘온지유가 나를 딛고 올라가게 놔둘 생각이라면, 꿈 깨!’강지한은 화가 난 듯 단호히 말했다.“이혼하고 싶으면 먼저 온지유 실검 사건부터 해결해. 그러면 너를 놓아줄게. 하지만 내가 나서게 된다면, 단순히 해명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그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다.강지한은 심미연의 이혼 이야기를 그저 관심을 끌려는 또 다른 수작으로 여겼다. 그녀가 진심으로 이혼하려 한다고는 전혀 믿지 않았다. 결혼 전 그녀가 그와 결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늘 자신을 낮추고 강지한을 정성껏 보살피는 모습을 보여왔었다.‘남편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던 여자가 그렇게 쉽게 떠날 리가 없지.’심미연은 정떨어지는 강지한이 모습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지한 씨가 원하는 대로 할게. 지한 씨도 방금 했던 말을 꼭 기억해. 하린이 일도 이걸로 끝내.”어차피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 차라리 주도권을 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다.강지한은 그녀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마주하며 잠시 불안감을 느꼈지만, 곧 자연스러운 태도로 돌아갔다.‘심미연이 지금은 이렇게 강하게 나오더라도 곧 다시 굽히고 들어오겠지.’“그럼 네 소식을 기다릴게.”는 그렇게 말하고 병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심미연은 그 강렬한 압박감이 사라지자, 온몸에 힘이 풀리며 벽에 손을 짚

  • 다시, 너를 붙잡다   제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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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화

    성무진은 김종욱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심미연이 차 문을 열고 내려선 상태였다.집사가 한 말을 듣고 심미연은 이미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온지유의 등장은 할아버지가 기절한 원인일 거야... 아까 경고했었는데도 강지한은 믿지 않았지. 이제 할아버지가 쓰러졌으니, 강지한은 어떤 기분일까?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네? 지한 씨는 온지유 말고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집사는 심미연을 보자 더욱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빨리 따라오세요!”심미연은 빠른 걸음으로 집사를 따라가며 물었다.“주치의 선생님께 연락했나요?”“연락드렸습니다. 오시는 데 20분쯤 걸린다고 하네요.”“창문은 열어뒀어요?”“모두 열었습니다.”심미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걸음을 더 재촉했다.현관에 들어서자, 온지유의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김 집사님, 큰사모님을 방으로 모셔서 쉬게 해주세요. 할아버지에게 방해되지 않게요.”강준형이 쓰러진 것도 결국 온지유 때문인데, 그녀가 그 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동정을 사려는 모습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알겠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겠습니다!”김 집사는 서둘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심미연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는 김 집사가 온지유 앞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큰사모님, 피곤하실 테니 방으로 가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사실 김 집사는 온지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늘 애교 섞인 목소리와 울먹이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온지유는 문가로 들어서는 심미연을 힐끗 보았다. 고요히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강지한에게 돌렸고, 그가 심미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속이 쓰려왔다.온지유가 입술을 꽉 깨물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할아버지를 화나게 해서 이렇게 되신 거예요. 이제 그만 가볼게요.”입으로는 가겠다고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8화

    강준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강지한은 사업가로서 뛰어난 두뇌와 수완을 가진 인물로 유명했는데, 온지유와 관련된 일만 나오면 마치 머리를 두고 나오는 사람처럼 보였다.심미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강준형에게 국을 떠서 내밀며 조용히 말했다.“할아버지, 국 좀 드세요.”강준형은 국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마음속의 화를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그러고는 다시 강지한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한마디 할게. 미연이는 매번 본가에 올 때마다 직접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서 나한테 대접해. 생선을 먹을 때는 뼈를 발라서 내주고, 정말 정성껏 날 챙긴다. 그런데 그 아이는 늘 소파에 앉아서 큰사모님인 척하며 도우미들에게 명령만 하지. 집안 도우미들이 그 아이 주변만 맴도니, 정작 날 챙길 사람마저 없잖아!”강준형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둘 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네!’강지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집에 요리사가 있는데 굳이 직접 요리할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도우미는 원래 주인을 돌보는 의무가 있잖아요? 지유는 어릴 때부터 도우미들의 보살핌을 받았고 나약한 아이라 당연히 필요할 거예요.”그는 말하면서 힐끗 심미연을 보았다.‘이 여자는 출근할 때 정장, 퇴근 후에도 단정한 정장을 입고, 늘 사모님답게 단아한 모습만 보여주지. 심지어 침대 위에서도 고지식하고 재미가 없고... 함께 있으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이상하게 할아버지는 이 여자를 좋아하네... 생각해 보면 3년 전에도 할아버지 뜻에 따라 이 재미없는 결혼을 했지...’심미연은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 국을 마셨다.숟가락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강지한에게 내가 한 모든 건 무의미하구나. 내가 일하는 건 단지 밥벌이일 뿐이고, 내가 요리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 여기는구나. 그런데도 3년 동안 내가 해준 음식을 먹었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야.’강준형은 화가 나서

  • 다시, 너를 붙잡다   제9화

    강지한은 그녀의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아 끌어안으며, 마치 그녀를 자신의 몸속에 집어넣고 싶다는 듯 힘껏 품었다.“심미연, 너도 날 원하지? 한 번 ‘여보’라고 불러봐.”결혼 생활 3년 동안 두 사람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함께 밤을 보냈다. 강지한은 어떻게 하면 심미연이 흥분하고, 어떻게 하면 그녀가 가장 행복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항상 짧은 시간 안에 그녀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그녀로 하여금 그를 간절히 부르게 만들었다.이미 이틀 동안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으니, 지금 그녀가 이렇게 부드럽게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야외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강렬한 욕망이 치밀어 올랐다.심미연은 이를 악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부끄러운 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다.겉보기에는 차갑고 도도한 강지한이었지만, 침대 위에서는 종종 그녀를 놀리며 애칭을 부르게 하는 것을 즐겼다.그러나 지금은 본가의 정원이었다. 도우미들이 없다고는 하지만, 혹시라도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어쩌나 싶었다.‘도대체 무슨 창피를 당하려고!’강지한은 그녀가 발버둥 치는 모습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민감한 부분을 천천히 자극하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였다.“착하지, 여보라고 한 번만 불러. 한 번만 들어보자.”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유혹적이어서 그녀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었다.강지한의 손길과 목소리에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심미연은 결국 조그맣게 중얼거렸다.“여... 여보...”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한 즐거움과 부끄러움이 섞인 음색이었다.그 순간, 강지한의 눈동자는 더 깊은 욕망으로 물들었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두 사람이 다음에 벌어질 일을 서로 알아차렸을 때, 심미연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그의 품에 파묻혔다.그녀는 그의 가슴에 코끝을 비비며 생각했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10화

    온지유는 속에서 불길이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심미연이 부르잖아. 얼른 가. 난 신경 쓰지 말고!”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기사님이 병원까지 데려다줄 거야.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그는 온지유를 차로 데리고 가 조심히 태웠다.“안정 좀 취하고 있어.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그 후 그는 운전기사에게 차를 출발시키라고 지시한 뒤, 집 안으로 돌아갔다.온지유는 차창 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강지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꽉 쥐었다.‘저 늙은이! 언젠가 내 앞에서 죽어가는 걸 꼭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거야!’강지한이 본가로 들어섰을 때, 거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심미연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김 집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둘 사이의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해 보였다.강지한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심미연은 본가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왜 온지유한테는 그렇게 날을 세우는 거지?’그가 들어오는 소리에 심미연이 과일을 입에 넣으며 그를 힐끗 보더니 2층을 가리켰다.“할아버지는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셔.”그녀는 강준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담담했다.김 집사는 미소를 거두고 강지한에게 다가왔다.“둘째 도련님, 저를 따라오세요.”김 집사는 속으로 생각했다.‘사모님은 이렇게 온화하고 선한 분인데, 둘째 도련님은 어찌 저리 냉정하고 무심할까. 사모님이 언젠가 참다못해 이혼이라도 요구하면 어르신은... 어휴,난리 나시겠네.’강지한은 짧게 대답한 뒤 계단을 오르며 김 집사에게 물었다.“김 집사님, 왜 지유한테는 큰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미연이한테는 그냥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난 둘째 도련님이니, 미연이가 둘째 사모님이어야 맞지 않나요?”김 집사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예전에 말씀하시길, 자신이 인정하는 손주며느리는 사모님 한 분뿐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호칭은 사모님께만 해당합니다.”강지한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그럼

Pinakabagong kabanata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40화

    심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한 기색을 담아 물었다.“무슨 일이길래 그래요?”이지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차분하게 말했다.“온지유 씨가 도망쳤어요.”“언제요?”심미연의 눈빛이 반짝이며 날카로워졌다. 누가 이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스쳤다.“어젯밤에요.”이지연의 목소리는 한껏 가라앉아 있었고 자책감이 가득 배어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방심했어요.”심미연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미안해하지 마요. 이건 지연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이지연은 입술을 꼭 깨문 채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당장 찾아올까요?”심미연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손끝으로 휴대폰을 천천히 만지며 생각했다.“잠깐만 생각 좀 해볼게요.”어젯밤 강지한이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혹시 온지유의 실종과 강지한이 관련 있는 걸까? 만약 강지한이 온지유를 구한 거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은 거지? 끝도 없이 밀려드는 의문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참, 보스. 어젯밤에 스승님 못 보셨어요?”이지연이 물었다.심미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사실은 봤었다. 그녀는 진운혁이 차를 몰고 떠나는 걸 보고 따라붙었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제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스승님께서 이진영 씨랑 같이 식사하고 계셨어요!”이지연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심미연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문득 이전에 마주쳤던 진운혁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그 순간 한 가지 의심이 그녀의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그때 내가 본 스승님은... 정말 스승님이 맞았을까? 만약 누군가가 스승님을 사칭하고 있었다면 그 목적은 대체 뭘까?’그때 이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심미연의 생각을 끊어냈다.“보스! 새로운 정보를 발견했어요!”“무슨 정보예요?”심미연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이자 이지연의 들뜬 목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9화

    백선영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진은숙의 팔을 살짝 끌어당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이제 가요.”진은숙은 손바닥 위에 놓인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망설이면서 입을 열었다.“이건... 어쩌죠?”백선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난처한 상황을 심미연에게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봉투를 조심스럽게 심미연 앞에 내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마음은 충분히 받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가 없어요.”심미연은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봉투 위로 흘렸다.“오빠가 직접 드린 건데 마음 편히 받으세요. 저한테 돌려주실 필요는 없어요. 자, 얼른 가서 일 보세요. 저 벌써 배가 고파졌는걸요.”그러나 말하다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스르르 마음 한쪽에 올라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박유진은 예전에 밤하늘을 보며 수없이 약속했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와 아이를 평생 지키겠다고. 그런데 지금 그 약속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오빠, 나랑 약속한 거 잊은 거야?’“정말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과 사장님 두 분 다 참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분들이세요. 두 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고 영원히 행복하시길 빌게요!”진은숙은 기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백선영의 팔을 붙잡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오늘 정말 행운이 따랐다 싶었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니.심미연도 가볍게 한숨을 쉬고 나서 주방으로 들어가 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어쩐지 목이 바싹 마른 게, 감정이 몰려서 그런 걸까.막 물을 다 마셨을 무렵 문밖에서 귀엽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어디 있어요?”그 소리는 마치 봄날에 막 피어난 꽃처럼 듣는 사람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심미연은 표정이 풀렸고 얼른 얼굴을 내밀며 따뜻하게 웃었다.“우리 태하, 엄마 여기 있어!”심태하는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 품에 안겼다.“엄마, 아빠가 나 버렸어요!”심미연은 깜짝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8화

    백선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모깃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사장님께서 떠나시기 전에... 집에 안 계시는 동안 꼭 사모님과 도련님을 잘 챙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진은숙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맞아요! 사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바로 캐리어 들고 곧장 나가셨거든요.”심미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박유진의 말뜻을 곱씹어 보았지만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그런데요, 사모님...”진은숙이 심미연을 흘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눈빛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왜 그러세요?”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언제나 그래왔듯 도우미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태도가 마치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너그러웠다.진은숙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어젯밤에 제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계단 모퉁이에서 사장님을 마주쳤었어요. 사장님도 물 마시러 나오신 것 같았어요.”곁에 서 있던 백선영도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저도요!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길래 문 열고 나왔더니 사장님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계셨습니다.”심미연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어젯밤에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진은숙은 마음을 가다듬고 이어서 말했다.“불빛이 비쳐서 얼핏 봤는데 사장님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더라고요. 꼭 방금 울기라도 한 사람처럼요. 아마 제가 눈치챌까 봐 인사만 툭 하고는 곧장 자리를 피하셨어요. 전 그냥 물만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는데 보니까 사장님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니 서 계셨어요. 제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안 들어오시더라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오늘 아침에 사장님께서 나가신 뒤에 서재를 청소하러 들어갔는데 휴지통에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어요. 어젯밤 내내 잠도 못 주무시고 담배만 피우셨던 것 같아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7화

    휴대폰 화면이 켜지고 그 익숙하면서도 가슴을 죄는 번호가 뜨는 순간, 박유진의 심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잡힌 듯 조여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일렁이며 축축한 솜처럼 뭉쳐져 목덜미를 틀어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말은 더더욱 나올 리 없었다.그 번호는 마치 꿈결 속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고통과 갈등을 다시 불러냈다.박유진은 손을 떨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과 묘한 압박이 가득했다. 박유진은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고 손끝으로 천천히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문장을 써 내려갔다.[진성에 가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돌아가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래도 되지?]그 메시지엔 그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길 바라는 희미한 기대도 모두 그 짧은 문장 안에 섞여 있었다.메시지 전송을 마친 박유진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꺼버렸고 휴대폰을 한쪽으로 툭 던졌다. 마치 그렇게 하면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까지 함께 던져버릴 수 있을 것처럼.주변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텅 빈 공간엔 그의 심장 뛰는 소리만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규칙적이고도 묵직한 박동이 마치 그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려는 듯했다.박유진은 눈을 감았다. 피로한 몸은 본능적으로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갔고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찾고자 했다.비록 밤새 한숨도 못 잤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유난히 또렷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를 지탱해 주듯 그는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하지만 피하고 싶을수록 심미연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미소는 때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따스했으며 때로는 눈빛 하나로도 사람 마음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또 부끄러워하던 그 순간순간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6화

    박유진은 자신의 앞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심미연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는 언제나 그녀의 편이 될 것이란 사실.만약 그녀가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는 가진 것을 다 내어주어서라도 그녀를 돕고 그 아이를 보살필 것이다. 마치 자신의 친딸인 양 지극정성으로.박유진은 자신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은 심미연을 사랑하고 그녀의 아이와 그녀가 지닌 모든 것을 함께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음을.심미연의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은 마치 물에 빠진 이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 박유진의 옷깃을 꼭 움켜쥐었다. 수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녀가 박유진에게 진 빚은 너무나도 많고 무거웠다. 그 빚을 다 갚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시간이 늦었으니까 이젠 좀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갈래.”박유진의 목소리엔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한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본능적으로 심미연을 더욱 꼭 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 뼛속 깊이까지 끌어안고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이.어쩌면 이 다정함이 그들 사이 마지막 남은 따뜻함이 될지도 모른다...박유진의 마음속은 쓸쓸함으로 가득했다. 머릿속 이성은 매서운 바람처럼 그를 휘감으며 이제는 놓아줄 때라며 끊임없이 속삭였다.하지만 감정은 뿌리 깊은 덩굴처럼 박유진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바랐던가. 단 한 순간이라도 더 심미연의 곁에 머물 수 있기를. 이 찰나의 시간이 남은 생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박유진의 얼굴을 어루만졌고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박유진의 마음속 한기를 모두 녹이는 듯했다.심미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부드럽게 말했다.“이생에 오빠를 만나 알아가고 수많은 인파를 뚫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복이었어. 앞으로 어떤 길을 가더라도 우리 손 놓지 말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5화

    박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를 감쌌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해 봐.” 심미연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마음 한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온 비밀이 이제야 드러날 것만 같은 예감처럼. “왜 그래, 미연아?” 박유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녀의 불안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아주 섬세하게 묻는 말이었다. 심미연은 입을 열 듯 말 듯 망설였다. 떨리는 입술이 달싹이기만 할 뿐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한의 딸, 강상미. 들어본 적 있지?” 박유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아이가 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미연이랑 강지한의 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를 말하는 걸까.’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짐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내 딸... 그 애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그녀는 거의 모든 용기를 다 쏟아부었다. “정말이야?” 박유진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너 분명히 말했잖아. 아이 숨 안 쉬고 있었다고. 직접 확인했었잖아... 확신했었어.” 그 순간, 박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가능성. ‘설마... 지금 미연이가 말하려는 게... 그 아이가 강상미라는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맞춰지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혔던 퍼즐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끝이 얼어붙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4화

    박시훈은 눈을 깜빡이며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가 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데요?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심미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시훈은 민망해서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완전 정상이거든...’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붉게 부어 있었고 피도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약을 꺼내 상처 위에 다시 발라주었다. 상처는 쓰라렸지만 박시훈은 이 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감싸고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마무리를 한 뒤 장갑을 벗으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저... 방금 야식 시켜놨는데... 같이 먹고 가주면 안 돼요?” 박시훈은 괜히 목이 메여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야...’ “저는 밤에 야식 먹는 습관 없어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야식 너무 자주 먹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전 이만 갈게요. 야식 먹고 푹 쉬세요.” 그녀의 말에 박시훈은 마치 한겨울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심지어 발끝까지 저릿했다. 그녀가 간다. 그를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린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심미연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병실을 나서고 있었고 박시훈의 낙담한 얼굴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난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수술에,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강지한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걸어 나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3화

    심미연의 시선이 하얗게 눈처럼 샌 강준형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만약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네. 할게요.’그때 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했고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준형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 바람을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곁에서 조용히 그녀를 훔쳐보던 가정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떠나신 거구나...’ ‘이러다 어르신 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시겠네...’강준형도 그녀의 침묵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사실 저랑...”“딩.” 심미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은 박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말은 다시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다. “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박유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 데리러 왔어.” 그리고 곧 예의를 갖춰 강준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강준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유진아, 너랑 미연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스쳤다.“할아버지,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심미연은 사실 내일 박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강준형이 ‘강지한과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말하지 말자. 괜히 말했다가 할아버지 마음만 상할 수도 있어.”그 순간, 박유진의 손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할아버지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2화

    하지만 정작 온지유의 칼끝을 막나낸 사람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박시훈이었다. 심미연의 진지한 얼굴을 본 강준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의자에 앉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앉아 계세요.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강준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냈다. 심미연이 등을 돌려 복도로 사라지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사모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성격도 훨씬 부드러워지셨고요. 만약 사모님이 도련님과 다시 재결합하신다면 어르신께서도 도련님 혼자 남을까 봐 걱정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강준형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미연이가 돌아온다면 지한이도 지금처럼 외롭진 않겠지. 상미도 엄마 손길이 필요하고... 지한이가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아빠는 아빠일 뿐이지. 엄마처럼 섬세하긴 어렵잖니. 게다가 지한이는 이노하이브를 이끄는 입장이라 상미를 온전히 돌보기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나중에 사모님께 슬쩍 한번 말씀드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가정부는 늘 심미연을 좋게 봐왔다.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외모, 인품, 성격, 효심까지 갖춘 여자를 다시 만나긴 정말 쉽지 않으니까. 강준형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위기 봐서 말해보지. 미연이가 듣기 싫어하면 더는 꺼내지 않을 거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가정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심미연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할아버지.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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