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희는 원래 진운혁을 제거하기 위해 강혁승이 이용했던 사람인데 진운혁은 운이 좋아 결국 살아남았다.그동안 강혁승은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손에 묻은 피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심미연은 재빨리 진운혁의 팔을 잡고 속삭였다.“스승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그녀는 어렵게 진실을 밝혀냈고 이제 막 행동에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관련자들이 하나둘씩 다 경찰에 붙잡히고 있었다.온지유는 경찰을 보자마자 얼굴이 하얘져 그대로 병실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심미연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뒤쫓기 시작했다.이번엔 절대 놓치면 안 된다. 온지유는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미연은 이번엔 진짜로 끝장을 내고 싶었다.온지유는 너무 급하게 달리다가 결국 도로 한가운데로 갔고 차에 치여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심미연이 헐레벌떡 달려갔을 때 온지유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심미연을 본 온지유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한 자 한 자 말하기 시작했다.“나... 절대... 너한테... 안 져...”심미연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이미 졌어. 아주 오래전에.”온지유는 눈을 크게 뜨고 억울함을 품은 채 숨을 거두었다. 말 그대로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그 뒤를 쫓아온 육현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쓰러진 온지유를 보자 미친 사람처럼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지유야, 괜찮아! 너 안 죽어. 내가 바로 응급실로 데려갈게!”심미연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온지유는 결국 강지한에 대한 집착 때문에 모든 걸 망쳤지만 다행히 그녀는 그 지옥에서 일찍 빠져나왔다.“왜 이러고 서 있어? 날씨도 더운데.”뒤에서 부드럽고 따뜻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미연이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니 박유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엔 깊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오빠, 진성에 있는 거 아니었어? 여긴 어쩐 일
강지한은 오늘 이 자리에서 모든 장애물을 치워버리면 이제는 심미연과 함께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심미연은 강지한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강지한,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설마 그도 그녀처럼 모든 진실을 파헤친 걸까?‘아니,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하지만 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다 보면 알 거야.”설명은 하지 않겠다는 그의 담담한 말투가 더 무서웠다.심미연은 그를 노려보았고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아아악!”고개를 확 돌린 그녀는 강혁승이 온지유의 머리채를 거칠게 휘어잡은 장면을 목격했다. 원래도 험악했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져 거의 괴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이 자식, 당장 그 손 놔!”육현성이 달려와 주먹을 날렸지만 그의 형편없는 싸움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그는 주먹을 몇 번 주고받다가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병실은 곧 아수라장이 됐고 심미연은 본능적으로 강지한 쪽을 흘끗 쳐다봤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평온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그 순간 병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 하나가 또 들어섰다. 심미연은 숨이 멎는 듯한 충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속력으로 달려갔다.“스승님!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그녀는 진운혁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저... 정말 스승님 맞으세요?”진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야.”심미연은 결국 참았던 감정이 터져 소리 내 울었다.“다시는 못 뵐 줄 알았어요...”“바보 같은 녀석, 울지 마. 너한테 전할 말이 있어.”그 말에 심미연은 재빨리 눈물을 닦았다.“말씀하세요, 스승님!”진운혁은 곧장 문소영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날이 선 칼 두 자루 같았다.“문 여사님, 저 기억하죠?”문소영은 놀라운 침착함으로 말했다.“아뇨. 누구신지 모르겠는데요.”“몇 년 전에 그쪽이 서연아를 죽이려고 사주한 그날, 제가 그 현장을 목격했었습니다.”
육현성이 입가를 만지며 말했다.“이진영, 네가 감히 나한테 주먹질을 날려? 내가 집에 가서 이다은 저년을 아주 제대로 혼쭐 내줄 거야. 이번엔 최소 몇 달은 못 일어날걸?”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기고만장했다.“보아하니 육씨 가문이 요즘 꽤 살 만한가 보네. 감히 나 이건명의 딸을 건드려?”이건명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육현성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감히 어디서 제멋대로 굴어!”그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딸을 육씨 가문에 시집보냈었다. 그래도 육씨 가문은 4대 가문 중 하나인데 비록 육현성이 이다은을 사랑하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예우는 할 줄 알았다.그래서 이다은이 이혼하겠다고 했을 땐 괜히 유난 떠는 줄 알았는데 방금 그 모든 생각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이다은이 육씨 가문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이건명의 등장에 육현성은 순식간에 기세가 꺾였다. 아무리 육씨 가문이 돈 많고 배경 있는 집이라도 지금의 이건명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아버님, 화내지 마세요. 이건 오해예요. 저는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육현성이 다급히 변명하려 들었다.“됐어. 변명은 필요 없어.”이건명이 이다은의 손을 꽉 잡았다.“다은아,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어. 너 이혼하고 싶으면 해. 내가 최고로 실력 좋은 변호사를 붙여줄게.”이다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아빠가... 나를 이렇게 감싸준다고? 늘 냉정하기만 했던 사람이?’그때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들렸다.“정말 감동적인 부녀지간이네요. 좋은 아버지십니다, 정말.”이진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조롱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본 순간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강혁승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한 모금 빨아 연기를 뿜으며 웃었다.“나요? 부모 찾으러 왔죠.”이미 이진영이 그의 정체를 눈치챘기에 더 숨길 이유도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도 하늘의 뜻이라 생각한 강혁승은 오늘 결판을 보려 했다.“너...
“문자를 보낸 건 그 여자가 아니라 나예요!”강혁승의 음울한 얼굴에 스며든 미소는 왠지 모르게 오싹했다.이건명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멈췄다. 얼굴에 난 깊은 흉터만 아니었다면 이건명 본인과도 놀랍도록 닮은 얼굴이었다.하지만 그의 아내가 낳은 자식은 이다은, 이진영 남매 둘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건명 씨는 여기 왜 왔어요? 어서 나가요!”문소영이 다급하게 외쳤고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왜 이렇게 쫓아내려고 안달이에요? 여기까지 왔는데 문제는 해결하고 가야죠.”강혁승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고 그의 눈빛엔 싸늘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왜 저 사람한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 저 사람이랑은 아무 관련도 없어!”문소영은 이건명을 붙잡아 두고 싶지 않았다.심미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이 와중에도 이건명을 감싸려 하다니, 그래도 한때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이었나 보네.’“관련이 없다고요? 저 사람이 내 아버지인데?”강혁승은 조소를 띤 채 반문했다.“내가 저 사람이 수십 년 동안 도와준 일들을 전부 알고 있는데 한 번 읊어볼까요?”문소영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헛소리하지 마!”“입 다물지 못해!”이건명이 서늘한 눈빛으로 강혁승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저 자식이 모든 걸 알고 있단 말이야?’심미연은 입술을 깨문 채 이건명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방원호가 넘겨준 자료가 전부 사실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이건명이 한 여자를 위해 불법까지 저질렀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였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걸까?“심미연, 이리 와!”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심미연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깊고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의식이 없었는데 분위기는 여전히 무게감이 있었다. 이런 것이 바로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만의 카리스마와 아우라인가.“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오라고.”강지한의 말에 심미연은 정신을
문도현은 심미연의 표정이 굳은 걸 보고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리기 시작했다.‘안 되겠어. 일단 지금 이 상황부터 어떻게든 모면해야 해.’하지만 심미연은 그렇게 쉽게 속을 여자가 아니었다. 그가 아무 말이나 둘러대면 단번에 꿰뚫어 볼 게 뻔했다.‘어쩌지?’그때 마침 심미연의 휴대폰이 울렸다.“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네, 가서 일 봐요. 난 여기 있을게요!”문도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미연은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황급히 사무실을 나섰다.문도현은 기지개를 한껏 켠 뒤 슬며시 일어나 그녀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심미연이 다른 사람과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그런데 그 사진 속에서 심미연의 옆에 박유진이 서 있는 걸 본 순간 문도현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박유진이랑 심미연이 왜 같이 있어? 말도 안 돼! 절대 이 둘이 이어지게 두면 안 돼!’문도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홱 돌아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마침 임현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 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아야! 아이고, 아파라...”임현이 낮게 신음하며 얼굴을 찡그렸다.하지만 문도현은 그녀를 밀치고 나가버렸다.임현은 어이없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아니, 누가 건드리기라도 했나? 왜 저렇게 화가 나 있지?”마침 그때 심미연이 다시 들어왔다.“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어요? 문 대표님은요?”“방금 나가면서 저랑 부딪혔어요. 엄청 화난 얼굴이던데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가더라고요.”임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저 남자, 감정 기복 진짜 심하네.’“잘됐네요. 나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해요. 오늘은 임현 씨가 사무실 좀 맡아줘요.”심미연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챙겨 들고 서둘러 나가버렸다.방금 강지한이 의식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에게 직접 물어봐야 했다.그가 어떻게 그녀가 교통사고를
문도현의 치명적인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떠올랐고 깊고 그윽한 눈빛엔 묘하게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기운이 스쳤다. 그 눈으로 마음속 깊은 비밀까지 꿰뚫어 볼 것만 같았다.“정말 여기서 얘기할 거예요?”그는 나직하면서도 묘하게 귀를 간질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사진이라도 찍으면 어쩌려고요?”그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매혹적이었다. 마치 한 음절 한 음절이 심장을 울리는 현처럼 듣는 이의 감정을 툭툭 건드렸다.유흥가를 오래 드나든 남자답게 문도현의 말투나 몸짓 하나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상대방은 쉽게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뒤에 자리 잡은 견고한 집안 배경은 그의 존재에 신비로움과 권위를 덧씌웠다. 한 번만 눈빛을 주고받아도 수많은 여자가 그를 위해 기꺼이 심연으로 빠져들곤 했다.심미연은 가늘고 곧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그래요. 그럼 위에 올라가서 얘기하죠.”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차 문을 잠그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더라도 문도현은 사건을 의뢰하러 온 손님이었다. 심미연은 일과 사적 감정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문도현의 시선은 무심결에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라인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곧 뇌리에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번뜩이듯 스쳐 지나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들지 않은 야수 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이제야 그는 자신이 여자에게 설레는 감정을 잃은 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다만 평범한 여자들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흔한 여자들은 이제 그의 마음을 건드릴 수 없지만 심미연은 예외였다.그 순간 심미연의 차분하고 냉정한 목소리가 그의 흐트러진 정신을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문 대표님께서 소송을 의뢰하신다네요. 임 변호사님께서 맡아주세요.”“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문 대표님.”임현이 공손하게 몸을 살짝 기울이며 안내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