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문정수랑 칠조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이경은 문득 회상에 잠겼다.처음에는 문정수와 칠조 역시 그들의 곁에 있었다.함께 나들이도 가고 놀러도 다니고... 비록 당시 마음속에는 많은 음모와 비밀들이 자리 잡고 있긴 했지만, 놀러 다닐 때만큼은 진심으로 편안하고 즐거웠다.그때의 그 기쁜 감정은 진짜였다.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초아가 곁에 없게 됐다.“내가 문정수더러 칠조를 이 장군의 곁으로 데려가라 했어. 이 모든 게 다 끝나고 나면, 만나러 갈 수 있어.”윤세현은 가장 맛있는 생선 살점을 그녀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그러니 걱정하지 마.”이경은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그 말은 곧, 이언도 이미 진성을 떠났다는 건가?사실 이 또한 이경이 걱정하던 일 중 한 가지였다.그런데 윤세현이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았다니.역시 곁에 있으면 정말 마음이 놓였다.“알겠어.”이경은 생선 살점을 받아 한 입 베어 물었다.“정말 달콤하네! 한 입 먹어 볼래?”“대체 뭐지?”연지는 그녀가 갖고 온 작은 병을 바라보며 냄새를 맡았다.“엄청 달콤한 냄새인데!”“꿀이야, 이 바보야! 설마 내가 정말 독약을 탔겠어?”이경은 작은 병을 들어 연지를 향해 던졌다.“바보야!”꿀이었다니.구운 생선에 꿀을 바르니 이렇게 달콤하고 상큼한 맛이 날 줄이야!연지의 눈이 반짝였다.이런 조합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얼른 손을 내밀어 병을 받으려는 순간, 누군가 공중에서 그 병을 낚아채 버렸다.“먹어 볼게!”바로 꿀이었다니!사실 청지는 이경이 들고 있던 그 생선을 한참이나 탐내고 있었다.다만 구공주가 혹여 정말 독약이라도 넣었을까 봐 무서웠다.독을 다루는 고수는 곧 독을 쓰는 고수이기도 하니까.“이봐! 그건 공주 마마께서 나한테 주신 거거든!”연지가 빼앗으려는 순간, 남은 반 병의 꿀이 죄다 청지의 옷에 쏟아져 버리고 말았다.순간 화가 난 연지는 얼굴이 새파래졌다.“이 도둑놈아!”그러나 청지는 그런 그를 전혀 신경 쓰지 않
윤세현은 이경의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앉았다.비록 두 사람의 행동에서 특별한 다정한 느낌은 없었지만, 참으로 자연스럽고 따뜻해 보였다.평온함 그 자체였다.마치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과는 떨어져 있는 듯했다.앞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두 사람이 함께라면 얼마든지 용기 내어 맞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남백훈은 그렇게 조용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한편 청지와 연지는 물고기를 잡아 올린 후, 생선을 손질하고 화로를 만들기 시작했다.이내 이경은 작은 병 하나를 꺼내어 굽고 있던 생선 위에 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그러자 청지가 경계하며 물었다.“공주 마마, 이건... 약인가요?”연지는 그를 흘낏 보며 웃었다.“마마께서 우리한테 독이라도 탈까 봐 두려운 거야?”“너는 전혀 두렵지 않은가 보네.”이경은 손에 든 작은 병을 흔들며 웃었다.“독약이야. 먹으면 바로 환각을 느끼게 되고 기분도 좋아. 한번 먹어볼래?”순간 연지의 얼굴빛은 어둡게 변했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바로 물러섰다.공주가 정말 독약을 탄 건 아니겠지?환각을 느끼게 한다고?아니, 난 그냥 현실 그대로의 느낌을 원해.이경은 그를 무시하고는, 거의 다 구워진 생선 위에 병 속의 내용물을 부어 넣었다.타는 듯한 고소한 냄새가 나자 깜짝 놀란 연지는 나뭇가지를 바로 들어 올렸다.“탔어요!”“아니야, 겉 부분만 익었을 뿐이야. 괜찮아, 2분만 더 구워.”이경은 재빨리 그의 나뭇가지를 다시 눌러 내렸다.“이분이요?”연지는 2분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그냥, 조금만 더 구우면 돼.”“아!”그제야 연지는 다시금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계속해서 구웠다.이내 이경이 말했다.“다 됐어! 얼른! 건져내!”연지는 깨끗한 나뭇잎으로 다 구워진 생선을 건져내 공손히 이경의 앞에 내밀었다.마치 본인은 전혀 탐내지 않는다는 듯.“마마.”“왜? 내가 정말 독약을 탔을 것 같아서 겁내는 거야?”이경은 곧바로 구운 생선을 받았지만, 아직 매우 뜨거웠다.저도 모르게 손
윤세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또한 자신이 왜 이런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지난 이틀 동안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경이 조금만 마음을 보이기만 하면 심장이 미친 듯이 아파왔다. 심지어는 전보다 고통이 더 심했다. 그는 가슴을 짚고는 힘껏 눌렀다. 이경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자, 가슴속의 고통이 조금씩 가라앉았다.“정을 많이 줄수록, 중독은 더 심해지는 법이야.”정고.이름만큼이나 그 독은 매우 강했다.단지 정을 주지만 않으면, 윤세현은 평생 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그러나 반대로 정이 깊어질수록 정고가 발작하는 횟수는 늘어나게 되고, 그 강도 또한 강해질 것이다.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을 설레게 하거나, 사랑의 싹이 트고 나서야 정고가 발작했었다.하지만 발작 횟수가 많아질수록, 마음이 조금만 흔들려도 정고는 크게 발작하며 몸 안에서 애끓는 듯한 고통을 일으켰다.“세자, 당신은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할 수는 없어.”남백훈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강가에 앉은 소녀를 함께 바라보았다.이경은 긴 장화를 벗고는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유독 시력이 좋았던 두 남자는 먼 거리에서도 이경의 맨발에 맺힌 물방울마저 선명하게 보아낼 수 있었다.하얗고 부드러운 그 작은 발은 조금의 흠도 없었다.남백훈의 시선은 가라앉았다.비록 그는 정고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가슴 한편이 은근히 아파났다.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이내 그는 시선을 거두고는, 극심한 통증을 참느라 이마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윤세현을 바라보았다.“정말로 저 여자를 포기할 생각 없어? 내가 말했지. 포기만 하면 당신 몸에 있는 그 정고를 풀어줄 수 있다고.”“너한테는 무슨 이득이 있는데?”윤세현은 차갑게 코웃음 치고는 가슴을 더욱 꽉 부여잡았다.더 이상 이경의 발을 바라보지 않으니, 가슴속의 고통이 겨우 참을 만하게 가라앉았다.“설령 내가 양보한다 하더라도, 저 여자가 네 여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넌 저 여자를 감당할 수 있기는 하냐
장암은 세자가 너무 쪼잔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이가 없었다. 그저 구공주랑 잠깐 얘기 좀 나눈 것뿐인데... 본인의 여자를 뺏으러 온 것도 아닌데 왜 질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직접 전하랑 얘기까지 하라니…먹고 놀고 노는 거 빼고는 성질부리는 것밖에 모르는 전하랑 무슨 대화를 하라고?이런 사람이 나중에 여황제가 되면, 신하들은 다 죽어나겠지?장암은 구공주가 초나라 공주인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결국 그녀는 힘없이 자리를 떠났다.그제야 이경은 몸을 쭉 펴고 일어났다.“어디 가?”윤세현은 책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러자 이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오지 마!”“뭔 소리야?”벌써 이틀째였다.윤세현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자신이 고충에 걸린 걸 안 이후로부터, 이경은 꼬박 이틀째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밤에 끌어안고 자는 건 더욱 꿈도 꿀 수 없었다.아무리 그래도 침대에도 못 올라가게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이경은 그가 함부로 굴면 앞으로는 진영에도 못 들어오게 하겠다고 겁까지 주었다.세상에 이런 무정한 아내가 어디 있는 건지?가장 화나는 건, 윤세현이 남편이니 아내니 얘기만 하면 이경은 이미 이혼한 사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는 것이다.그 태도에 윤세현은 화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난 남백훈이랑 놀다 올게. 먼저 쉬어.”“나 아직 저녁도 안 먹었어!”윤세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기어코 자신을 화나게 만들려는 이경이 매우 얄미웠다.“진짜 남백훈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삐져서 그러는 거 아니야. 혼자 먹어.”그리고는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윤세현은 책을 탁 던지고는 몸을 일으켰다.“어디 한번 가 봐!”“...”이제는 무력으로 협박하는 거야?정말 무식해서 말도 안 통하네!“진짜 볼일 있다고. 같이 밥 먹지는 않을게. 약속할게.”이경은 보통 진지한 얘기를 할 때는 흔히 밥을 먹으면서 하는 편이다.21세기의 수많은 회식 자리들이 다 그렇지 않은
이틀 뒤, 부대 장병들은 초나라 구공주의 능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이경은 약 이틀간 안개가 깔릴 거라 예상했는데, 역시나 그녀의 말대로 사흘째 되는 날 안개가 많이 없어졌다. 게다가 그 이틀 동안 장병들은 오직 구공주의 지시대로 물을 길어 오고, 행군하고, 휴식을 취해왔다.삼만 대군이 안갯속의 황량한 산과 들을 지나갔지만, 단 한 명도 문제를 겪지 않았다.그중 감기에 걸린 몇몇 장병들도, 구공주가 직접 구해온 약초를 달여 마시고는 깨끗이 낫게 됐다.가장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 점은, 숲 밖에서 정말로 모래폭풍이 발생했다는 것이다.산골짜기를 빠져나와 다음 성읍에 도착했을 무렵, 백성들은 여전히 집을 재건하고 있었다.구공주가 예상한 일들 중 빗나간 건 하나도 없었다.장암은 너무나도 큰 충격에 오랫동안 넋을 놓았고, 남백훈과 윤세현 역시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아니, 아주 많이 감탄하고 있었다.대체 어떻게 그런 지식을 배우게 된 건지.어려서부터 궁중에서 자란 꼬마 아가씨가 어찌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건지?“삼일 후면 북란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장암, 북란성 쪽 정찰병이 찾아와서 상황을 보고한 적 있어?”지난 삼일 동안, 장암은 무슨 일이 있든지 항상 이경을 찾아왔었다.누가 보면 이경이 남진의 현주일 거라 오해할 정도였다.“어제 산골짜기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봤습니다만, 이틀 동안 줄곧 안개와 모래폭풍이 겹치면서, 정찰병이 돌아온다 해도 빨라야 내일 아침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이경은 다소 걱정이 되었다.하지만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 데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조급함이다.크게 걱정하면 괜히 자신을 성급하게 만들 뿐이다.이경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당분간 부대에서 북란관에 대한 일은 꺼내지 말게...”“공주 마마, 병사들이 항상 북란관 가족들과 장병들을 기억하게 해야만 다들 그곳으로 가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지지 않을까요?”장암은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그
“너 초아 아니잖아.”문정수는 숨이 멎을 때가 되자 오히려 의식이 가장 또렷해진 듯, 지그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직 차마 놓지 못하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해방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몸조심하고, 초아를 대신해서 이 세상 잘... 살아가려무나.”“싫어! 난 나대로 살 거야. 누구를 대신해서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잘 살길 바라면, 얼른 일어나라고!”칠조는 몹시 불안해졌다.그제야 문정수가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 정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문정수의 눈에는 이미 더 이상 한 점의 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동자는 텅 빈 듯했다.그는 더 이상 칠조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고, 말다툼할 힘조차 없었다.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점점 초아의 얼굴을 보게 됐다.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초아... 망도성 성주부 후원에 묻혀 있어... 세자한테 전해. 돌아오시고 나면... 내 시신을 초아와 함께 묻어 달라고...”“안 돼! 문정수! 죽지 마! 죽지 말라고!”칠조는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힘껏 흔들었다.“일어나, 일어나라고! 문정수! 일어나!”그러나 그의 눈빛은 여전히 흐릿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이미 임종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놀란 칠조는 소리 내어 울었다.“방금 전까지 멀쩡했잖아! 이러지 말라고! 같이 돌아가자. 공주랑 세자를 만나러 가야지. 문정수... 흑...”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려던 그녀는 무심코 목걸이에 손이 닿았다.그 목걸이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달려 있었다.칠조는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사실 이 목걸이는 얼마 전, 구공주가 그녀에게 준 물건이었다.“이 목걸이를 걸고 있어. 이 안에는 목숨을 구해주는 약이 하나 들어 있어. 나중에 네 목숨을 구해낼 수 있을 거야.”목숨을 구해주는 약이라...칠조는 허둥지둥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정말 작은 알약 하나가 들어 있었다.무슨 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그녀는 문정수를 일으켜 세우고는 그의 입에
윤세현은 그날 진정호의 부상을 걱정하느라, 현장에 있던 여자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 탓에 이서영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경을 모함할 때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흘려보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일이 컸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임수연은 윤세현의 분노에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지만, 끝내 용기를 내어 말을 이었다.“세자 저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송구하오나 그날 이서영 현주님이 모두 앞에서 감히 공주마마께 이런 더러운 누명을 씌웠사옵니다. 저 역시 어리석게도 그 일에 가담했던 죄인입니다.
구공주 이경의 뒤에 서 있던 연지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가녀린 몸으로 강한 장궁을 거침없이 당기는 그 결연한 눈빛과 손끝에는 두려울 것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분명 작고 여린 여인일 뿐인데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연지는 이경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차가운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고 싶을 만큼 경외심이 들었다. 이경이 활을 들어 당길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 화살이 공중을 가를 때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은 정말 미쳐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하찮은 궁녀가 감히 고귀한 공주를 해치려 들다니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이경은 잠시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겉으론 아무런 감정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초아는 이경이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줄 알고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려들려 했다.“누구 없어요? 공주마마를 해치려 합니다!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초아가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 사이 궁녀의 발길질이 이경
귀를 때릴 듯한 뺨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상 곁에 있던 이경이 순식간에 이서영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뺨을 힘껏 후려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이서영은 그 힘에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져 책상에 부딪혀 바닥에 고꾸라졌고 입을 열 틈도 없이, 너무 아파 정신이 아득해졌다. 순간, 방 안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었고 숨소리조차 작아질 만큼 정적이 흘렀다.구공주인 이경이 현주인 이서영을 그토록 사납게 때린 것이다. 그 기세가 얼마나 거칠었는지, 누구도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만에야 임수연이 놀라 정신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