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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감정 낭비-Strength]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1 00:05:23

현신은 다시 꿈속으로 침잠했다.

아니, 그것은 기억의 파편이었다. 지독하게도 이탈리아였다. 

엘에프와 헤르만, 그리고 어린 시온과 무휼과 함께했던 낯선 타국 땅. 어떤 고통이 또다시 심장을 들쑤셔댈지 예감하기도 전에, 풍경은 가장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폐허로 돌아가 있었다.

로마의 버려진 건물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의 실수로 뇌관이 잘못 건드려진 탓에 아군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다급한 이탈리아어가 비명처럼 흩어졌다.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건물 내부에는 여전히 소형 폭탄들이 연쇄적으로 터지고 있었다.

“당장 탈출해! 부상자만 챙긴다. 사망자는 버리고 간다!”

현신과 공조하던 정부 기관 책임자의 냉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목숨을 저울질해야 하는 잔인한 선택의 순간. 그러나 현신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한 선택지를 고집했다.

“수색을 허락해 주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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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닥치고 내게로 와(Submit to Me)!   #102. 죽어도 보내기 싫은데一別三春 (일별삼춘)

    헤르만이 천천히 사업 계획서를 넘기며 수시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시간이 지날수록 엘에프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었다.모든 일과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늘한 시선은 노트북 화면 한구석에 띄워진 CCTV 화면에서 좀체 떨어질 줄을 몰랐다.“이번에 홍콩 지사를 확실히 정리하고 나면, 마카오 쪽에 들렀다가 상하이로 넘어갈 거야.”“그래.”“그럼 10월 말에는 나와 같이 유럽으로 가야겠어. 현지 라인과 조율할 게 많아.”헤르만의 말에 엘에프는 자리에서 느리게 일어났다. 평소 즐기던 와인 대신 투명한 생수병을 집어 든 그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낮게 읊조렸다.“무조건 10월 말은 홍콩에 있을 거야.”“이탈리아 진출에 가장 중요한 시기야.”“나한테는 홍콩이 더 중요해서 말이지.”푹신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였지만, 엘에프는 대화 중간중간 창밖의 험악해지는 날씨와 노트북 화면만 집요하게 번갈아 살폈다.단호하다 못해 서늘한 그의 어조에 헤르만은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대체 무엇이 그 대단한 엘에프의 발을 이 홍콩에 묶어두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그때쯤이면, 나는 대대적으로 넘버들의 손을 좀 볼 생각이야. 싹 갈아엎어야지.”헤르만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불길한 예감에 숨을 삼키며 다시 한숨을 흘렸다.“에스는 제 발로 안 돌아올 거야. 그냥 강제로 끌고 올게.”그 순간, 엘에프의 입꼬리가 더욱 아름답게 호선을 그렸다. 생수를 한 모금 축인 그가 수려한 눈매를 가늘게 떴다.“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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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흔들렸던 엘에프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로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음, 이탈리아 또 가야 하나? 피곤한데.”그리고 노트북을 펼쳐서 이탈리아 진출 관련 사업 보고를 느긋하게 확인만 했다.“엘에프, 그건 걱정 마. 나 혼자 갔다 올게. 그리고 아까 의아한 일이 있었어.”“상하이 세력 이야기라면, 걱정 마.”“그래?”엘에프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켄즈 대표가 움직일 것 같아.”“그럼 큰일이잖아!”헤르만은 현신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현신 본인은 모르겠지만, 엄청난 세력들이 엘에프 주변으로 움직이는 상황이었다.‘이제 에스를 한국으로 데려갈 텐데······.’헤르만은 걱정이 밀려왔다.현신이 사라지면 얼마나 더 일이 복잡해질까? 다 어긋나게 생겼다.“그것도 걱정 마, 헤르만.”“왜?”“에스는 내게로 돌아올 테니까.”헤르만은 엘에프가 너무 의연해서 이상할 정도였다.설마 든든한 뒷배가 자신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있는데, 미쳤다고 여길 다시 올까?헤르만은 엘에프의 어깨너머로 창밖을 보았다. 폭풍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에스가 울면서 뛰쳐나갔고, 그 저승사자가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의구심을 갖고 엘에프를 살폈지만, 그는 아주 이성적이었다.“그래.”“에스를 믿는 거야?”&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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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달라. 널 지킬 힘이 있어.”“그 힘을 제게 쓰지 마세요. 더 값진 곳에 쓰셔야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사과드려야 하는 게 있었는데······.”현신은 결연한 의지를 담아 계영을 향해 박력 있게 고개를 뚝 꺾어 인사를 올렸다.“실망을······ 드려 정말 고개를 들 면목이 없습니다. 더 속이고 있는 것도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게 아직 있네요. 이제······ 진짜 두 번 다시 계영 님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꿈에서라도······ 안 잡을게요.”현신은 쓰라린 손등으로 다시 눈물을 대충 닦아내며, 그것이 마지막 유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계영을 향해 모질게 읊조렸다.계영은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 머리가 미칠 지경이었다.“괜찮아. 난 다 괜찮아.”“계영 님, 그런데 홍콩은 너무 위험해서 걱정되네요. 제가 거짓말은 밥 먹듯 너무 많이 했지만······, 계영 님을 지켜드리고 싶은 것은 진심이에요. 목숨을 걸고 제가 안전하게 호텔로 모셔 드릴게요.”계영은 다 포기했다. 사실 엘에프는 자신의 호텔을 다 버릴 각오인지 엄청난 인력을 지금 현신 하나를 찾기 위해 풀어놓은 상태였다.관광객보다 엘에프의 부하들 숫자가 너무 많은 상태였다.큰 한숨을 내뱉고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린 후 말했다.“그래. 이 거짓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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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흐흑, 그만요! 제발!”그 황금색 눈은 물기가 그렁그렁 가득 차 넘치고 있었다. 순간, 엘에프의 움직임이 찰나의 순간 굳어버렸다.“왜 울지?”낮게 가라앉은 질문이 무색하게, 현신은 휙 하고 그를 밀쳐내고는 엘에프에게서 멀어졌다.오만한 포식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현신은 객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하지만 문밖에는 복도를 삼엄하게 지키고 서 있던 엘에프의 가드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어디 가십니까!”“흐흑! 흐흑!”가드들의 거구에 막혀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현신의 거친 숨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엘에프는 문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깊은 한숨만 흘렸다.그리고 지독한 갈증을 느끼듯 잠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가게 놔둬.”엘에프의 묵직한 명령이 복도를 울리자마자 가드들은 현신을 막았던 팔을 거두었다. 앞길이 열리자마자, 울고 있는 현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복도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엘에프는 그런 그녀가 결국 막다른 길에서 비상구 계단 철문을 밀치고 달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엘에프는 서늘한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지금 가계영의 특수 수색팀에는 반가운 비상이 걸렸다.E 호텔 내부 CCTV와 외부 감시카메라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던 분석실의 대형 모니터 위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현신의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드디어!”마 실장이 다급하게 태블릿 PC을 흔들며 화상회의를 하고 있는 세미나실로 향했다.&ldquo

  • 닥치고 내게로 와(Submit to Me)!   #97. -악마 같이 굴지 좀 말지(惡魔之戲)

    “키스, 제가 할게요.”현신은 오기를 부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 지독한 재앙 앞에서 제풀에 겁을 집어먹은 탓에, 옷깃을 쥔 손끝에는 가냘픈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거구의 맹수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가련한 초식동물의 형국이었다.느닷없는 도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엘에프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호선을 그렸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숙여 거리를 좁혀 주었다.신이 공들여 빚어낸 듯 오만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코앞까지 밀고 들어왔다. 숨결이 섞이는 거리 속에서, 그의 짙은 보랏빛 눈동자가 덫처럼 현신을 옭아넸다.“에스, 지금 보니 영락없는 여자네.”현신은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엘에프의 깊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겁에 질려 엉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그러나 이 잔혹한 포식자는 현신의 절망을 유예해 줄 생각이 없었다. 엘에프의 커다란 손이 현신의 가냘픈 목덜미를 슬쩍 감싸 쥐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그 표정, 너무 예뻐서 더는 못 참겠는데.”“아······ 안 되겠습니다. 잠시만요!”결국 한 발짝 물러선 현신이 엘에프의 옷깃을 다급히 내팽개치듯 놓아 버렸다. 그러고는 와인이 놓인 객실 바(Bar)로 도망치듯 걸어가, 손에 잡히는 와인 하나를 꺼내 성급하게 오프너로 연 뒤, 붉은 액체를 잔 가득 출렁거리며 채워 넣었다.‘아, 이거 내가 계영 님께 드리려던 술인데······.’애달픈 오기로 와인을 단숨에 들이켠 현신이 고개를 휙 돌렸다. 엘에프는 수트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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