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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안개자욱
간호사는 입을 다물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강윤서가 이렇게 태연하게 남편의 치부를 까발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결혼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아이가 없는 건 이상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간호사는 강윤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강윤서는 진실을 숨겼다.

사실 박태경은 강윤서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신혼 첫날 밤 차가운 얼굴로 쌀쌀맞게 말했었다.

“나는 일이 바빠서 아이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그리고 애초에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으니까 너도 기대 같은 건 하지 마. 그리고 내 생각을 바꿀 마음도 없으니까 나랑 상의하려고 하지 마.”

그때까지만 해도 강윤서는 박태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를 이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는 박태경이 왜 그동안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아이를 가지면 서다빈이 신경 쓸까 봐 걱정돼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까 바보처럼 박태경에게 딸의 존재를 털어놓으려고 했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또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박태경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늪과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결제를 마치고 돌아온 박태경은 한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발기부전이라고 한 걸 들은 걸까?

그러나 들어도 상관없었다. 이제 더는 그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태경은 빠르게 시선을 거둔 뒤 차갑게 돌아섰고 강윤서는 그러려니 했다.

박태경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강윤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녀를 귀찮아했으며 그녀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쓰는 걸 아까워했다.

그래서 그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싸우기가 힘들었다.

결국 강윤서는 모든 것들을 가슴 한쪽에 쌓아두고 살아야만 했다.

남편은 있어도 기댈 곳은 없었고, 정신적인 버팀목도 없었다.

그것이 강윤서가 박태경 몰래 딸을 낳아 홀로 키운 이유 중 하나였다.

강윤서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가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서류를 꺼냈다.

박태경과 혼인 신고를 하기 전, 박선욱은 강윤서를 따로 불러내 그녀에게 계약서를 건넸었다.

하나는 결혼 전 계약서였고 다른 하나는 이혼 합의서였다.

강윤서의 집안은 박씨 가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고 그녀와 박태경은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때 그 사건이 크게 터지지 않았다면 박씨 가문에서 그녀를 며느리로 받아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강윤서를 탐탁지 않아 했던 박선욱은 계약서에 7년의 기한을 적어 넣었고, 기한이 끝나면 이혼 합의서가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박태경은 당시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해서 아마 지금까지도 이혼 합의서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이제 이혼까지 3개월이 남았다.

강윤서는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빠르게 이혼 합의서를 가방에 넣고, 지친 몸으로 업무를 마무리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신발을 갈아신자 위 층에서 내려오는 박태경이 보였다.

강윤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박태경은 그녀와 얘기를 나눌 생각도, 오늘 일을 해명할 생각도 없는 듯했다.

그가 옆으로 지나갈 때 강윤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해요. 재산 정리할 시간은 3개월 줄게요.”

박태경은 그제야 멈춰 섰다.

느긋하게 커프스를 정리하던 늘씬한 손가락이 잠깐 멈칫했다. 박태경은 검고 서늘한 눈동자로 강윤서를 내려다보았다.

“내가 오늘 다빈이랑 같이 병원에 가줘서 그래? 고작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거야?”

‘고작?’

박태경은 강윤서가 그 일을 신경 쓸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 얘기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강윤서는 박태경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네.”

옳고 그름 따위는 따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 역시 박태경은 앞으로 영원히 알 필요 없었다.

박태경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으로 강윤서를 바라보며 그녀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집에서는 투정 부려도 되지만 밖에서는 자제해. 너는 박씨 가문 며느리니까 품위를 지켜야지.”

그건 서다빈의 고고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지켜주겠다는 뜻이었다.

박태경은 강윤서의 태도에 관심이 없었고 강윤서는 그 점을 보아냈다. 아마 그녀가 박태경과 서다빈이 관계를 가지는 광경을 봤더라도 박태경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박태경은 아내인 강윤서에게 굳이 해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강윤서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통증 덕분에 가까스로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혼하면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강윤서의 대답이 뜻밖이었던 것일까?

박태경은 늘 순종적으로 굴던 아내가 은근히 날을 세우는 모습을 차가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의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네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어. 그렇게 신경 쓰이면 변호사 구해서 직접 이혼 합의서를 작성하든가.”

7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박태경은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7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은 것이 습관조차 되지 않았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강윤서는 지체하지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은 그녀는 박태경의 곁을 지나쳐 위층으로 올라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박태경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강윤서의 야윈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윤서의 의도를 넘겨짚은 그는 평소보다 조금 과한 강윤서의 반응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강윤서는 예전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그의 관심을 끌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박태경은 별로 개의치 않았었다.

왜냐하면 강윤서는 언제나 먼저 고개를 숙였으니 말이다.

그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결국 강윤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면서 자기 자신을 달랬었다.

심지어 오래 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박태경에게 강윤서의 감정은 마음을 쓸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박태경은 덤덤히 시선을 거둔 뒤 겉옷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

방으로 돌아간 강윤서는 7년 동안 신경 써서 꾸며온 집을 쭉 둘러봤다. 막상 짐을 싸려니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귀여운 캐릭터로 설정된 프로필 사진이 뜨자 강윤서의 표정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음성 메시지를 클릭하자 앳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엄마, 저 다음 달에 엄마 보러 경원시에 갈 거예요. 앞으로 우리 쭉 같이 살아요!”

강윤서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눈물을 삼켰다.

다행히 그녀에게는 귀여운 딸이 있었다.

그리고 더 다행인 건 박태경에게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때 권지율이 전화를 걸어 조금 들뜬 것 같으면서도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하람이 곧 오는 거야?”

“응. 다음 달에 올 거야.”

권지율이 갑자기 혀를 차더니 놀라운 말을 했다.

“그런데 박태경 불임 아니었어? 만약 박태경이 네가 자기 몰래 애를 낳고 아빠 없이 애를 키우려고 한다는 걸 알면 미쳐버리는 거 아니야?”

강윤서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자조하듯 말했다.

“그럴 리가.”

그녀조차 신경 쓰지 않는 박태경이 과연 아이한테 신경을 쓸까?

심지어 박태경은 임신 초기인 사촌 동생의 약혼녀와 무리하게 관계를 가지는 말도 안 되는 짓까지 저질렀는데 말이다.

그가 아이를 신경 쓰든, 신경 쓰지 않든 박태경에게는 더 이상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불임은...’

강윤서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사실 결혼 첫해에 박태경은 늘 철저하게 피임을 해서 강윤서는 임신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강윤서는 우연히 가정부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은 박태경이 불임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박씨 가문에서는 줄곧 박태경을 재벌가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는데 박태경은 그걸 원치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며 박태경이 불임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박태경과 결혼한 지 7년이나 된 강윤서가 지금까지 아이를 갖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박태경이 불임이라는 걸 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강윤서도 처음엔 그 말을 믿었었고 그 사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아이가 없어도 둘이 사이좋게 지낼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박태경은 그동안 피임을 철저하게 해 왔었고 체력도 매우 좋았다.

비록 사이가 좋지는 않았으나 그럼에도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박태경이 계속 아이 얘기만 나오면 회피하려고 했었기에 강윤서도 그가 불임이라는 소문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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