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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作者: 안개자욱
결혼 후, 강윤서와 박태경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박태경은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고 한 달에 두 번 부부관계를 갖는 것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평소 대화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 결혼 첫해가 끝나갈 무렵, 박태경은 훗날 박씨 가문의 실권을 차지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해외 지사로 떠나게 되었다.

해외로 떠나기 전 날 밤, 거래처와 술자리를 가진 박태경은 술에 취해 돌아왔고 처음으로 피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박태경은 유난히 거칠고 집요했다.

강윤서는 그제야 박태경이 술에 취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평소와 달리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태경이 떠나고 나서 두 달 뒤에야 강윤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맥을 짚어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윤서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박태경이 그동안 자신이 불임인 줄 알았다면 그녀의 임신 사실이 두 사람의 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떠보기로 했다.

강윤서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루미나르로 향했다. 그때 그녀는 설렘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박태경의 회사로 달려갔고,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무려 두 시간 동안 그를 기다렸다. 박태경은 자신을 찾아온 강윤서를 보고 의아해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비서를 시켜 그녀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당시 강윤서는 마음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기에, 박태경이 의도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에도 박태경은 그녀에게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하지 않냐는 안부조차 붇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강윤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면서도 눈빛은 차가웠다.

마치 강윤서가 그와의 잠자리를 원해서 그곳까지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불편함을 느낀 강윤서는 그를 밀어낸 후 설렘을 억누른 채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만약 나한테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도...”

그 말에 박태경은 기분이 잡쳤는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뒤로 물리더니 그녀의 옆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였다.

“아이가 생기면 평생 박씨 가문 며느리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런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끝까지 냉담하고 차분했으며 잔인할 만큼 직설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무정함이 깔려 있었다.

그날 밤 강윤서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울고 싶었지만 모든 게 자신이 자초한 일 같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다음 날 박태경은 마치 쫓아내기라도 하듯 항공권을 예매한 뒤 사람을 시켜 그녀를 귀국시켰다.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게 진저리 나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슬프기도,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하여 기한이 되면 이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강윤서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박태경이 정말 아이에 관심이 없든, 자신이 불임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든 그녀는 절대 박태경에게 아이의 존재를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그녀의 피를 이은 아이지 박태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강윤서는 박태경의 태도 때문에 자신의 몸과 아이를 해치는 결정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박태경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그녀가 한 일들 중에 가장 미친 짓이자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권씨가 되긴 했지만 권지율에게 입양된 건 아니었다.

권하람은 권지율이 아니라 권씨 가문의 실권자이자 권지율 사촌오빠의 아이가 되었다.

강윤서는 기꺼이 자신을 도와 권하람을 본인의 아이로 받아준 남자를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권하람이 보내온 메시지를 보았다.

박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강윤서의 유일한 재산은 바로 딸이었다.

남편 노릇도 제대로 못 한 박태경은 그녀가 아이를 낳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준 도구에 불과했으니 그녀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불평할 자격조차 없었다.

...

권지율에게 이혼 의사를 밝혔을 때 권지율은 잠시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강윤서가 박태경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강윤서는 10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박태경을 사랑했다.

그러니 이혼은 강윤서에게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강윤서는 누구보다도 차분하게 이혼을 입에 담았다.

수도 없이 상처받아 익숙해지고 무뎌진 탓일까?

권지율은 강윤서가 박태경에게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이 있다는 걸 숨긴 것이 박태경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강윤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권지율은 바로 동의했다.

“남자는 다 쓴 화장실 휴지 쪼가리 같은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다가 보면 짜증만 나지. 박태경은 쓰레기야. 그리고 쓰레기는 당연히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하는 거고.”

전화를 끊은 뒤 강윤서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7년 동안 재벌가 사모님으로 살았는데 짐이 겨우 캐리어 두 개뿐이었다.

강윤서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반지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오래 끼고 다녀서 매끈해진 반지였지만 이상하게도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강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미련 없이 반지를 빼서 이혼 합의서가 든 서류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고 늦은 밤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 강윤서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잠들었다.

다음 날, 강윤서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겨우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강윤서는 씻고 준비한 뒤 이혼 합의서가 담긴 서류봉투를 텅 빈 화장대 한가운데 올려두었다.

박태경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가 오랫동안 기대해 왔을 그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젯밤 권지율은 강윤서를 위해 새 아파트를 구했다.

이제 곧 권하람과 함께 살 걸 고려해 그녀는 특별히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준비해 두었다.

잠시 뒤 강윤서는 캐리어를 챙겨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계단 쪽으로 걸어가니 12, 13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거실에서 사람들을 지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강윤서를 발견한 소년은 곧바로 변성기가 온 목소리로 강윤서를 향해 거만하게 말했다.

“어서 짐 싸서 나가요. 이제 곧 우리 형수님이 들어와서 살 거니까 괜히 더럽히지 말라고요.”

소년은 무례하고 제멋대로였다.

그 소년은 바로 박태경의 남동생 박여훈이었다.

박여훈은 너무 오냐오냐 커서 박태경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박여훈은 단 한 번도 강윤서를 형수라고 부른 적이 없으면서 다른 여자를 감싸고돌았다.

강윤서는 박여훈을 내려다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누가 들어온다는 거야?”

“당연히 다빈이 누나죠. 다빈이 누나는 우리 형이랑 천생연분이에요. 아줌마는 우리 형이랑 우리 집을 이렇게 오랫동안 차지하고 살았으면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집안일밖에 없잖아요.”

박여훈이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의 앳된 얼굴에 경멸이 가득했다.

강윤서는 거실에 놓인 물건들을 쭉 둘러봤다.

새 화장대와 소파, 전신거울, 모든 것이 서다빈의 취향에 맞춘 가구들 같았다.

“누가 허락했는데?”

강윤서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박여훈은 강윤서의 냉담한 모습에 살짝 움찔했지만 그것이 창피했는지 곧 화를 내며 말했다.

“당연히 우리 형이죠! 우리 형이 아니면 누구겠어요? 우리 형은 아줌마가 역겹고 싫어서 아줌마랑 이혼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눈치가 있으면 빨리 이혼해요!”

강윤서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것처럼 아팠고, 잠깐이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박태경이 이렇게 빨리 그녀를 내쫓고 본인이 사랑하는 여자를 집에 들이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박태경이 임신 초기인 서다빈과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제야 알게 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박태경은 얼른 집을 새로 꾸며 새로운 여자를 맞이할 생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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