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화

Penulis: 안개자욱
결혼 후, 강윤서와 박태경은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박태경은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고 한 달에 두 번 부부관계를 갖는 것조차 사치에 가까웠다.

평소 대화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 결혼 첫해가 끝나갈 무렵, 박태경은 훗날 박씨 가문의 실권을 차지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해외 지사로 떠나게 되었다.

해외로 떠나기 전 날 밤, 거래처와 술자리를 가진 박태경은 술에 취해 돌아왔고 처음으로 피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날 밤 박태경은 유난히 거칠고 집요했다.

강윤서는 그제야 박태경이 술에 취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서 평소와 달리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태경이 떠나고 나서 두 달 뒤에야 강윤서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맥을 짚어서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윤서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다. 그녀는 박태경이 그동안 자신이 불임인 줄 알았다면 그녀의 임신 사실이 두 사람의 관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일단 떠보기로 했다.

강윤서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루미나르로 향했다. 그때 그녀는 설렘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박태경의 회사로 달려갔고,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무려 두 시간 동안 그를 기다렸다. 박태경은 자신을 찾아온 강윤서를 보고 의아해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비서를 시켜 그녀를 숙소로 돌려보냈다.

당시 강윤서는 마음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었기에, 박태경이 의도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녀와 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에도 박태경은 그녀에게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하지 않냐는 안부조차 붇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강윤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면서도 눈빛은 차가웠다.

마치 강윤서가 그와의 잠자리를 원해서 그곳까지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불편함을 느낀 강윤서는 그를 밀어낸 후 설렘을 억누른 채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만약 나한테 아이가 생긴다면 우리도...”

그 말에 박태경은 기분이 잡쳤는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뒤로 물리더니 그녀의 옆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였다.

“아이가 생기면 평생 박씨 가문 며느리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런 헛된 희망은 품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끝까지 냉담하고 차분했으며 잔인할 만큼 직설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무정함이 깔려 있었다.

그날 밤 강윤서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울고 싶었지만 모든 게 자신이 자초한 일 같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다음 날 박태경은 마치 쫓아내기라도 하듯 항공권을 예매한 뒤 사람을 시켜 그녀를 귀국시켰다. 그녀가 그곳에 있는 게 진저리 나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슬프기도,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하여 기한이 되면 이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강윤서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박태경이 정말 아이에 관심이 없든, 자신이 불임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든 그녀는 절대 박태경에게 아이의 존재를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그녀의 피를 이은 아이지 박태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강윤서는 박태경의 태도 때문에 자신의 몸과 아이를 해치는 결정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박태경과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그녀가 한 일들 중에 가장 미친 짓이자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다.

아이가 권씨가 되긴 했지만 권지율에게 입양된 건 아니었다.

권하람은 권지율이 아니라 권씨 가문의 실권자이자 권지율 사촌오빠의 아이가 되었다.

강윤서는 기꺼이 자신을 도와 권하람을 본인의 아이로 받아준 남자를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권하람이 보내온 메시지를 보았다.

박씨 가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강윤서의 유일한 재산은 바로 딸이었다.

남편 노릇도 제대로 못 한 박태경은 그녀가 아이를 낳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준 도구에 불과했으니 그녀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불평할 자격조차 없었다.

...

권지율에게 이혼 의사를 밝혔을 때 권지율은 잠시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강윤서가 박태경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강윤서는 10대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십 년 넘게 박태경을 사랑했다.

그러니 이혼은 강윤서에게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강윤서는 누구보다도 차분하게 이혼을 입에 담았다.

수도 없이 상처받아 익숙해지고 무뎌진 탓일까?

권지율은 강윤서가 박태경에게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이 있다는 걸 숨긴 것이 박태경의 업보라고 생각했다.

강윤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권지율은 바로 동의했다.

“남자는 다 쓴 화장실 휴지 쪼가리 같은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데다가 보면 짜증만 나지. 박태경은 쓰레기야. 그리고 쓰레기는 당연히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하는 거고.”

전화를 끊은 뒤 강윤서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7년 동안 재벌가 사모님으로 살았는데 짐이 겨우 캐리어 두 개뿐이었다.

강윤서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반지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오래 끼고 다녀서 매끈해진 반지였지만 이상하게도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강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미련 없이 반지를 빼서 이혼 합의서가 든 서류봉투 안에 넣었다.

그리고 늦은 밤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 강윤서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잠들었다.

다음 날, 강윤서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겨우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강윤서는 씻고 준비한 뒤 이혼 합의서가 담긴 서류봉투를 텅 빈 화장대 한가운데 올려두었다.

박태경이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가 오랫동안 기대해 왔을 그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젯밤 권지율은 강윤서를 위해 새 아파트를 구했다.

이제 곧 권하람과 함께 살 걸 고려해 그녀는 특별히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준비해 두었다.

잠시 뒤 강윤서는 캐리어를 챙겨서 그곳에 가기만 하면 되었다.

계단 쪽으로 걸어가니 12, 13살쯤 돼 보이는 소년이 거실에서 사람들을 지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강윤서를 발견한 소년은 곧바로 변성기가 온 목소리로 강윤서를 향해 거만하게 말했다.

“어서 짐 싸서 나가요. 이제 곧 우리 형수님이 들어와서 살 거니까 괜히 더럽히지 말라고요.”

소년은 무례하고 제멋대로였다.

그 소년은 바로 박태경의 남동생 박여훈이었다.

박여훈은 너무 오냐오냐 커서 박태경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박여훈은 단 한 번도 강윤서를 형수라고 부른 적이 없으면서 다른 여자를 감싸고돌았다.

강윤서는 박여훈을 내려다보며 쌀쌀맞게 말했다.

“누가 들어온다는 거야?”

“당연히 다빈이 누나죠. 다빈이 누나는 우리 형이랑 천생연분이에요. 아줌마는 우리 형이랑 우리 집을 이렇게 오랫동안 차지하고 살았으면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집안일밖에 없잖아요.”

박여훈이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의 앳된 얼굴에 경멸이 가득했다.

강윤서는 거실에 놓인 물건들을 쭉 둘러봤다.

새 화장대와 소파, 전신거울, 모든 것이 서다빈의 취향에 맞춘 가구들 같았다.

“누가 허락했는데?”

강윤서가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

박여훈은 강윤서의 냉담한 모습에 살짝 움찔했지만 그것이 창피했는지 곧 화를 내며 말했다.

“당연히 우리 형이죠! 우리 형이 아니면 누구겠어요? 우리 형은 아줌마가 역겹고 싫어서 아줌마랑 이혼할 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눈치가 있으면 빨리 이혼해요!”

강윤서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가슴에 큰 구멍이 생긴 것처럼 아팠고, 잠깐이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박태경이 이렇게 빨리 그녀를 내쫓고 본인이 사랑하는 여자를 집에 들이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박태경이 임신 초기인 서다빈과 그런 짓을 했다는 사실을 어제야 알게 되었는데 벌써 이렇게 대놓고 일을 벌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박태경은 얼른 집을 새로 꾸며 새로운 여자를 맞이할 생각인 걸까?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baru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100화

    배건하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박태경에게로 향했다.강윤서는 배건하를 한 번 바라봤다. 그는 그녀를 배려하듯 자연스럽게 감싸주고 있었다.강윤서가 모든 화살을 혼자 맞는 상황을 피하게 해주면서도 그녀가 직접 박태경의 정체를 밝히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까지 막아준 것이었다.이제 중요한 건 박태경의 대답뿐이었다.“내가 그런 걸 신경 써야 하나요?”남자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평온했다. 기복이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듣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는 달랐다.약리팀 남자 직원 몇 명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죠. 박 대표님이 어떤 분인데 자기랑 상관없는 사람 일까지 신경 쓰겠어요.”강윤서는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렸다.박태경은 그녀와의 관계를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강윤서가 서다빈의 정체를 들춰낼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자신이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에 답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그는 늘 그랬다.말 한마디에도 빈틈이 없었다.그 대답 하나로 사람들은 박태경이 이런 화제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했고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완벽한 정리였다.배건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강윤서를 바라봤다.강윤서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삼켰다.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참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쯤 되니 이제야 이해가 됐다. 박태경이 왜 자신을 박씨 가문과 함께 이곳에서 명절을 보내게 하려 했는지, 왜 이 많은 돈을 써가며 팀 전체를 진명까지 불러들였는지.결국 이유는 하나였다.서다빈과 함께 명절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한창 연애 중인 연인답게 떨어져 있기 싫었을 테고 처음에는 강윤서를 데려오려 했다가 거절당하자 아예 팀 전체를 끌고 온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따라올 테니까.어르신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강윤서가 필요했고 뒤에서는 서다빈과 마음껏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결국 그녀는 박태경에게 이용당한 셈이었다.강윤서는 눈을 내리깔고 손바닥을 펼쳐봤다. 손톱이 파고든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99화

    경원대 팀은 서다빈이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시선을 모았다.“선배, 괜찮아요. 오히려 선배 남자친구가 이번 행사 후원해 준 거 감사해야죠.”“맞아요. 선배 덕분에 이렇게 두둑한 출장비를 받게 됐잖아요.”“선배는 이제 우리 사모님이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니에요?”누군가 감탄하듯 말을 보탰다.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박태경이 서다빈을 위해 후원을 했으니 그들의 상사이자 밥줄이나 다름없었다. 서다빈이 사모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서다빈은 입을 가리고 살짝 웃었다. 눈가에 번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다들 무슨 말씀을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강윤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서다빈 곁에 앉은 박태경에게 향했다. 그는 마치 서다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을 것처럼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박태경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고 ‘사모님’이라는 말에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한 여자에게만 온 마음을 내어주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반면 자신은 7년 동안 박씨 집안의 며느리로 살았지만 존재감조차 없는 사람처럼 지내왔다.생리통이 아랫배를 한 번씩 비틀어 쥐며 온몸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그 통증 덕분인지 오히려 정신은 더 선명해졌다.강윤서는 눈을 내리깔며 눈동자 속 냉소를 감췄다.“다들 아까 무슨 얘기 했어요? 그렇게 시끌벅적하게.”서다빈은 강윤서를 본 척도 하지 않은 채 박태경 옆자리에 앉아 환하게 물었다.그러자 회의실 안의 화제는 순식간에 다시 강윤서에게 쏠렸다.경원대 팀 몇 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선배 모르셨어요? 강윤서 씨가 어젯밤 누군가랑 같이 있었다는데 남편이래요. 그래서 그 남편이 누구인지 물어보던 참이었어요.”“맞아요. 왔으면 같이 밥도 먹고 하면 더 재밌을 텐데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윤서는 맞은편에서 날아오는 박태경의 무심한 시선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애초에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98화

    박태경이 아직도 부부처럼 같은 침대에서 자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고 강윤서는 몸을 돌려 쓰레기통을 향해 두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순전히 생리적인 반응이었다. 서다빈과 관련된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제멋대로 반응했다.마침 세면실에서 나오던 박태경이 그 모습을 봤다. 빛 한 점 없는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그녀의 아랫배로 향했다.“임신했어?”강윤서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달아오른 뺨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 있었다.“아니에요.”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떠올리다 속이 울렁거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박태경은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거둔 뒤 소매 끝의 에메랄드 커프스 단추를 잠갔다.“검사 예약해 줄게.”강윤서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혼을 두고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전에 부부 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박태경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제가 의사예요, 아니면 당신이 의사예요? 걱정 마요.”강윤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눈을 마주했다. 보조개가 드러날 만큼 옅게 웃으며 안심시키듯 말을 이었다.“우리 사이에 아이는 없을 거예요.”박태경이 이런 문제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가 아이를 기대하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자기 위안에 빠질 생각도 없었다. 결국 서다빈과의 관계에 영향을 줄까 걱정하는 것뿐일 테니까.강윤서는 그대로 욕실 안으로 들어갔고 박태경은 그 자리에 선 채 닫힌 문을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재킷을 챙긴 뒤 방을 나갔다.강윤서는 자신도 신기했다.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그렇게 깊이 잠들 수 있었다니. 꿈 한 번 꾸지 않고 열 시간이 넘도록 잤다.그녀는 허겁지겁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호텔에는 회의 전용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미 회의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모든 눈빛에는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고 심지어 배건하마저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97화

    박태경은 가죽 소파에 앉은 채 바닥 카펫 위에 놓인 그녀의 캐리어를 슬쩍 바라봤다.“여긴 무슨 일로 온 건데?”“약재 기지 출장이요.”강윤서는 입꼬리를 꾹 눌렀다.박태경은 긴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가에 옅은 비웃음을 띠었다.“일 때문에 온 거라면서. 내가 뭘 속였는데?”강윤서는 말문이 막혔다.박태경과 크게 다퉈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말싸움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상대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필요할 때면 기가 막히게 말을 막아버리곤 했다.무엇보다 그가 굳이 자신을 박씨 가문과 함께 이곳에서 명절을 보내게 하려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엉망이 된 지 오래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아무 일 없는 척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건 너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그럼 오늘 밤은 어디서 잘 건데요?”며칠째 생리통이 심해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더 따지고 들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박태경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화면을 바라보는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유가 묻어났다.“어디 있어야 할 것 같은데?”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살짝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강윤서는 그가 휴대폰 너머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의를 지키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박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모두 도착했을 테고 어르신에게 이혼 사실을 숨기겠다고 약속한 것도 자신이었다.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알아서 해요.”강윤서는 더 이상 따질 기력도 없었다. 애초에 박태경이 이번 출장비를 전액 지원한 순간부터 이미 퇴로는 막혀 있었다.팀원들 역시 높은 출장비 때문에 기꺼이 명절 연휴까지 반납하고 이곳에 왔고 그녀 또한 그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오게 된 것이었다. 이미 박씨 가문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이상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강윤서는 캐리어를 끌고 한쪽 침실로 들어갔다. 잠옷을 꺼내 샤워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96화

    서다빈이 좋게 넘어가 준 게 다행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일이 커졌을지도 몰랐다. 특히 서다빈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마음만 먹었다면 강윤서는 순식간에 여론의 표적이 되어 악성 댓글에 시달렸을 것이다.자신이 강윤서에게 첫눈에 끌렸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이 여자에게 흔들릴 일은 절대 없었다.강윤서는 해온으로 돌아와 실험실에 틀어박혀 약리 분석에 몰두했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경원대와의 공동 실험실이 이제 본궤도에 올라 팀 전체의 방향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약물 관리, 진행 상황 점검, 방안 리스크 조율에 임상과 허가 대응까지, 박태경 일로 감정이 흔들릴 겨를조차 없었다.박태경과 함께 진명으로 설 연휴를 보내러 가자는 제안을 거절한 이후 그는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강윤서는 외할머니의 혼수품을 어떻게 돌려받을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설 연휴가 다가오면서 각 기업들이 하나둘 연휴에 들어갔다. 강윤서는 장시원 댁에서 함께 명절을 보낼 계획이었다.그러던 중 배건하가 갑자기 찾아와 말했다.“설에 출장 한 번 가는 거 어때?”강윤서는 잠시 망설였다.“무슨 일인데요?”“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약재 거래 기지에서 곧 희귀 약재 공개 경매가 열려. 우리 연구팀이랑 경원대에서 필요한 원료 약재가 몇 가지 있는데 워낙 귀한 물건들이라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아.”하필 설 연휴에 걸린 일정이었다. 강윤서는 잠시 생각했다.“좋아요. 근데 팀원들은 괜찮겠어요?”배건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싫다고 할 수 있겠어? 큰손이 나섰거든. 박태경이 전액 지원해서 비행기랑 숙소, 식사까지 다 패키지로 잡아주고 1인당 출장비로 2,000만 원까지 준다니까 다들 좋아서 난리야.”강윤서는 곧 이해했다. 서다빈이 경원대에서 첫 번째 약물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등록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참 지극정성이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럼 우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95화

    갤러리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박태경은 구입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강윤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의 뒤를 쫓았다.“태경 씨, 잠깐요.”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었지만 박태경의 보폭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몸을 돌린 박태경 앞에는 이미 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전승우가 내려서 문을 열고 있었다.서다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강윤서는 그걸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그녀는 박태경의 깊고 차가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그 물건은 강씨 집안 거예요. 외할머니 혼수품이라고요.”“그래서?”박태경의 표정은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고 외할머니의 혼수품을 서다빈에게 주는 것이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그 당연한 듯한 태도가 강윤서의 가슴 깊숙이 날카롭게 박혔다. 소리 지르며 따지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지만 박태경의 차갑고 담담한 눈빛은 오히려 그녀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뭐든 상관없어요. 서다빈에게 별을 따다 줘도 안 말려요. 하지만 강씨 집안 물건만큼은 내어줄 수 없어요.”강윤서는 깊게 숨을 들이켜며 목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태경 씨, 지금까지 당신한테 뭔가를 부탁한 적 없었는데 이번 한 번만...”박태경에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행동이 분명 이성적이지 않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앞에서 떼를 쓰고 협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박태경 역시 강윤서의 이런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옆구리에 늘어뜨린 손은 무의식적으로 손톱으로 살을 파고들고 있었고 긴장과 감정이 격해질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박태경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그건 서다빈이 동의해야 해. 선물로 준 이상 그 사람 거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강윤서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차가운 물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가슴 한구석까지 서늘하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박태경의 말은 결국 서다빈을 찾아가 부탁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강씨 집안의 물건을 되찾기 위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5화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 노형준이 웃으며 물었다.“그러게.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차민석은 자리에 앉은 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서다빈을 바라봤다. 서다빈은 마음이 넓었고 그들과 어울릴 때도 선을 잘 지켰으며 처신도 잘했다. 그런데 강윤서는 남몰래 그런 서다빈의 험담을 하고 다녔다.“내가 아래층에서 누구를 봤는지 알아? 강윤서를 봤어.”박태경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느긋하게 테이블을 툭툭 두드릴 뿐이었다.강윤서 이야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서다빈이 차민석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4화

    박태경은 서다빈이 쓸 물건들을 집 안에 들여놓는 걸 묵인했고, 그것은 곧 사람들에게 그녀가 박태경의 아내로서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하게 살고 있는지를 전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아무리 곧 박태경과 이혼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박태경이 하루빨리 사촌 동생의 약혼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아니꼬웠다.강윤서는 최소한 이혼 합의서 효력이 발생가기 전까지는 그런 모욕을 당할 생각이 없었다.강윤서는 천천히 걸어가 최대한 차분한 얼굴로 짐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들여온 물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2화

    간호사는 입을 다물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강윤서가 이렇게 태연하게 남편의 치부를 까발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결혼한 지 7년이나 되었는데 아직도 아이가 없는 건 이상한 일이었으니 말이다.그래서 간호사는 강윤서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강윤서는 진실을 숨겼다.사실 박태경은 강윤서가 자신의 아이를 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는 신혼 첫날 밤 차가운 얼굴로 쌀쌀맞게 말했었다.“나는 일이 바빠서 아이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 그리고 애초에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으니까 너도 기

  • 당신은 필요 없고 딸만 데려갈게요   제1화

    결혼한 지 7년이 된 강윤서는 남편 몰래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이제는 다섯 살이 되었다.그러나 강윤서의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강윤서는 남편 박태경에게 아이의 아빠로 살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야간 근무를 하던 강윤서는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는 딸이 보낸 음성메시지를 클릭했고, 이내 귀엽고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엄마, 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요? 아빠는 죽은 거예요?”강윤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긴 했다.권하람은 최근 들어 호기심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조그마한

Bab Lainnya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