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왕비 전하께서 죽은 지 한 시각 만에 제 손목을 잡으셨습니다!”
비명과 함께 에이슬라의 눈이 열렸다.
숨보다 먼저 왼손이 움직였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침대 곁 시녀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시녀의 피부가 하얗게 질릴 만큼 강한 힘이었다.
에이슬라는 놓으려 했지만 손은 한 박자 늦게 풀렸다.
시녀가 뒤로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려 주십시오, 전하.”
에이슬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희고 긴 손가락, 약지의 왕가 인장, 손톱 밑에 남은 검붉은 피.
검은 장례 수의가 가슴까지 덮여 있었고 손목에는 죽은 사람에게 묶는 흰 끈이 감겨 있었다.
심장이 다시 뛰었다.
한 번.
짧은 틈 뒤 두 번.
약제원에서 죽기 직전 들었던 낯선 박자였다.
“거울을 가져오세요.”
목소리마저 다른 여자의 것이었다.
방 안의 시녀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누구도 거울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
가장 어린 시녀는 자기 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오래된 긁힌 자국이 보였다.
“제가 누구죠?”
침묵이 길어졌다.
“대답하세요.”
그 말에 시녀 하나가 엎드린 채 몸을 떨었다.
“네르시아 아벨룬 전하이십니다.”
왕비 네르시아.
국왕을 세 번 죽이려 했고 오늘 저녁 사망했다는 여자.
오스테론의 장부에서 지워진 두 번째 대상.
에이슬라는 오른손을 들려 했다.
또 왼손이 먼저 올라왔다.
몸은 명령을 알아들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따르지 않았다.
“오늘 날짜와 시각.”
“일식제 사흘 전, 자정 종이 끝난 직후입니다.”
자정 전 동시 투약.
맥박 정지 직후 회수.
에이슬라 모렌은 자정에 죽었다.
왕비 네르시아는 같은 시각 다시 숨을 쉬었다.
“왕실 약제원으로 사람을 보내세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에이슬라 모렌의 생사를 확인해야 합니다.”
시녀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두려움 속에 다른 것이 섞였다. 혐오였다.
나이 든 시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이름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왜죠?”
“왕비 전하를 독살한 자입니다.”
에이슬라는 침대 기둥을 붙잡았다.
“누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왕실의가 확인했습니다. 전하의 잔에서 그 약제사의 조제표가 나왔습니다.”
자신이 왕비를 죽였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깨어난 것도 모자라, 자기 이름이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조제표를 가져오세요.”
“불태워졌습니다.”
“누가요?”
시녀는 대답 대신 침대 옆을 바라봤다.
깨진 약병 세 개와 타다 만 종이 조각이 은쟁반 위에 놓여 있었다.
한 조각에 익숙한 필체가 남아 있었다.
에이슬라 모렌.
자신의 서명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획이 틀렸다.
에이슬라는 이름 끝을 언제나 위로 올렸다.
종이 위의 획은 아래로 꺾여 있었다.
위조였다.
“이건 제가 쓴 게 아닙니다.”
말이 떨어지자 시녀들이 숨을 죽였다.
나이 든 시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전하께서는 에이슬라 모렌이 아닙니다.”
에이슬라는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 얼굴로는 어떤 진실도 증명할 수 없었다.
자기 이름을 말하는 순간 미친 왕비가 된다.
침묵하면 독살범의 이름만 남는다.
그녀는 약병을 집었다.
병목에 흰 가루가 굳어 있었다.
흰 황혼.
오스테론이 먹인 것과 같은 독이었다.
바닥에는 검은 백합 꽃잎이 한 장 붙어 있었다.
약제원의 병에는 없던 것이었다.
같은 독이지만 조제자가 달랐다.
“왕비는 이걸 스스로 마셨습니까?”
어린 시녀가 고개를 저었다가 곧 멈췄다.
에이슬라는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봤군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왜 부정했죠?”
시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말하면 죽습니다.”
“누구에게요?”
문밖에서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첫 번째 잠금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시녀들이 동시에 엎드렸다.
“폐하께서 오십니다.”
두 번째 잠금쇠가 부서졌다.
나이 든 시녀가 에이슬라의 손에서 약병을 빼앗아 수의 아래로 숨겼다.
“지금부터 무슨 질문을 받으셔도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하십시오.”
“왜 나를 돕죠?”
“돕는 게 아닙니다.”
세 번째 잠금쇠가 휘어졌다.
에이슬라의 왼손이 저절로 베개 밑으로 미끄러졌다.
손끝에 숨겨진 단검 손잡이가 걸렸다.
그녀는 그 손을 끌어내려 수의를 움켜쥐었다.
이 몸은 왕이 들어오면 칼부터 찾았다.
시녀가 떨리는 손으로 에이슬라의 수의를 여몄다.
“전하께서 다시 죽으시면 저희도 함께 묻히니까요.”
문이 안쪽으로 터졌다.
검은 장갑을 낀 남자가 피 묻은 검을 든 채 들어왔다.
근위병들이 방을 에워쌌지만 그는 명령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왕비를 보는 얼굴에는 놀라움조차 없었다.
확신만 있었다.
또 실패했다는 확신.
에이슬라는 그가 누구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국왕 바이렌 칼드로.
왕비가 세 번 죽이려 했던 남자.
바이렌은 침대 앞까지 걸어와 검끝으로 수의를 걷어냈다.
차가운 날이 에이슬라의 목에 닿았다.
[네 이름으로 사랑해.]거울 조각에 남은 문장이 빛처럼 흐려졌다.에이슬라는 손가락으로 유리 가장자리를 붙잡았다.“네르시아.”[응.]“당신이 사라지면 이 몸은 어떻게 돼요?”[네가 살아.]“그걸 묻는 게 아니에요.”에이슬라는 금이 간 유리 위에 이마를 댔다.“당신은 어디로 가요?”네르시아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뒤늦게 미소를 지었다.왕비의 초상화에도, 악녀의 기록에도 남지 않았던 편안한 얼굴이었다.[이름을 잃지 않는 곳.]유리 안쪽의 손바닥이 에이슬라의 손과 겹쳤다.[내 죄도 남겨.]“남길게요.”[내가 구하지 못한 아이들도.]“끝까지 찾을게요.”[바이렌에게는 내가 미안했다고 하지 마.]“직접 말해요.”에이슬라는 뒤를 돌아봤다.바이렌은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다가오지도,떠나지도 않은 채 두 사람의 마지막 시간을 지켜주고 있었다.그가 거울 앞에 무릎을 꿇었다.네르시아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당신을 죽이고 싶었던 날도 있었어.]바이렌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알고 있다.”[살아달라고 빌었던 날도.]“그건 몰랐군.”[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그래.”바이렌은 변명하지 않았다.“그래서 네 죄도, 내가 외면한 일도 전부 다시 기록하겠다.”네르시아가 웃었다.[이번에는 결론부터 쓰지 마.]“약속하지.”그 순간 유리 안쪽에 아침빛이 번졌다.네르시아의 형체가 손끝부터 흩어졌다.에이슬라는 붙잡으려 했지만 손바닥에는 차가운 유리만 남았다.[살아, 에이슬라.]마지막 글자가 사라졌다.가슴 안에서 두 번 울리던 박동이 하나로 줄었다.아프지 않았다.다만 오랫동안 함께 살던 사람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처럼, 한쪽이 텅 비었다.에이슬라는 그 빈자리를 억지로 채우지 않았다.“잘 가요, 네르시아.”성교회가 무너진 뒤 왕궁은 석 달 동안 잠들지 못했다.에이슬라의 옛 육신은 성교회 지하에서 수습됐다.오스테론이 남긴 검은 흔적을 지운 뒤, 왕실 약제사 에이슬라 모렌의 이름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나를 살릴지, 첫 번째 아이를 죽일지.”오스테론의 웃음이 아렌의 얼굴 위로 번졌다.에이슬라는 유리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둘 다 아니에요.”“아직도 선택을 피하는군.”“당신이 내놓은 답 중에서 고르지 않겠다는 뜻이에요.”아렌의 오른손이 목을 움켜쥐었다. 작은 손가락이 살을 파고들었다.오스테론이 아이의 몸으로 스스로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바이렌이 검을 들어 유리관의 잠금 장치를 겨눴다.“깨뜨리면 아이가 버틸 수 있나?”“검은 액체부터 빼야 해요.”에이슬라는 유리관 아래에 연결된 관을 살폈다. 검은 액체는 심장 박동에 맞춰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빠른 박동 하나와 느린 박동 하나.아렌과 오스테론의 심장이 아직 완전히 겹치지 않았다.에이슬라는 거울 조각을 유리관에 붙였다.네르시아가 안쪽에서 아렌을 바라봤다.[내가 끌어낼게.]“그러면 당신이 위험해요.”[내 몸에 들어온 적이 있어.]네르시아의 손가락이 오스테론을 가리켰다.[길을 알아.]에이슬라는 고개를 저었다.“혼자 하지 않아요.”오스테론이 아렌의 입으로 비웃었다.“둘이 힘을 합치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으냐.”“우리는 당신처럼 다른 사람을 지우지 않아요.”에이슬라는 유리관 아래의 배출구를 열었다.검은 액체가 빠져나오자 아렌의 몸이 크게 경련했다. 오스테론이 아이의 손을 들어 배출구를 막으려 했다.“아렌!”에이슬라가 유리를 내리쳤다.“네 몸이야. 손을 내려.”손이 중간에서 멎었다.“네 이름을 다시 말해.”아렌의 입술이 움직였다.“아…… 렌.”오스테론의 목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입 다물어라.”“누가 네 이름을 알려줬지?”“아무도…….”“그럼 네가 정한 거야?”아렌의 새끼손가락이 유리를 긁었다.“꿈에서…… 들었어요.”“누구 목소리였어?”아렌의 눈동자가 에이슬라를 향했다.“제 목소리요.”두 박동의 간격이 벌어졌다.오스테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이름은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이름에는 당신 허락이 필요 없어요.”에이슬라는 청낭초
“내가 이 몸에서 죽으면, 첫 번째가 눈을 뜰 테니까.”오스테론이 차지한 에이슬라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졌다.검은 피가 코와 입에서 쏟아졌다. 손끝부터 빠르게 굳어가고 있었다.에이슬라는 반사적으로 다가갔지만 바이렌이 팔을 붙잡았다.“이미 죽은 몸이에요.”입으로 말하면서도 시선은 자신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오스테론이 아니었다면 저 몸은 평생 자신의 것이었을 육신이었다. 약초를 빻고 아이들의 열을 짚었던 손, 흰 황혼을 삼킨 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했던 몸.그 입술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다.“일곱 번째.”오스테론의 목소리가 끊기는 순간, 에이슬라의 육신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성교회 방향에서 종이 울렸다.한 번.긴 침묵 뒤에 두 번째 종이 이어졌다.세이라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지하 봉인을 여는 종입니다.”바이렌이 타론에게 명령했다.“구조한 아이들을 왕비궁으로 옮겨라. 나머지는 성교회로 간다.”“폐하께서 직접 가시면 위험합니다.”“그래서 간다. 오스테론이 왕궁까지 뿌리를 내렸다면 내 병력도 전부 믿을 수 없어.”에이슬라는 장부와 해독제를 챙겼다.네르시아가 거울 조각에 모습을 드러냈다.[첫 번째를 죽이면 끝나.]에이슬라는 조각을 천으로 감쌌다.“그 아이도 피해자예요.”[오스테론이 들어가면 모두 죽어.]“그렇다고 아이를 먼저 죽이지는 않아요.”네르시아의 표정이 굳었다.[망설이면 늦어.]“늦지 않게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성교회 정문은 열려 있었다.안에는 사제도 경비도 보이지 않았다. 복도 양쪽의 촛불만 지하로 향하는 길을 밝히고 있었다.누군가 그들이 오기를 기다린 흔적이었다.타론이 앞장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지하에는 흰 문 일곱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앞선 여섯 개는 이미 열려 있었고, 안에는 빈 침대와 끊어진 가죽끈만 남아 있었다.마지막 문에는 숫자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1.]세이라가 검은 열쇠를 넣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오스테론의 피가 필요합니다.”에이슬라는 작은 병을 꺼냈다.
“왕궁 아래에 있는 아이들은 전부 죽는다.”오스테론의 말이 끝나자 바닥 틈에서 흰 연기가 솟구쳤다.스물아홉 번째가 기침하며 장부를 끌어안았다. 세이라가 아이의 코와 입을 소매로 막았다.“젖은 천을 준비해요!”에이슬라는 약장으로 달려가 해독액을 물통에 쏟았다. 타론과 유렌이 천을 적셔 아이들의 얼굴을 감쌌다.바이렌은 오스테론의 목덜미를 눌렀다.“멈추는 방법을 말해라.”“이미 늦었다.”오스테론은 에이슬라의 얼굴로 웃었다.“두 심장이 하나가 된 순간, 지하의 문은 전부 잠겼다. 약이 퍼지고 나면 열어도 시체밖에 없을 거다.”에이슬라는 가슴을 짚었다.두 박동이 완전히 같은 간격으로 뛰고 있었다.약장 유리문 안에서 네르시아가 손을 들었다.[나를 밀어내.]“싫어요.”[내가 나가면 멈춰.]“나간다는 게 사라진다는 뜻이잖아요.”네르시아가 대답하지 못했다.바이렌이 에이슬라의 어깨를 붙잡았다.“다른 방법을 찾아.”“시간이 없어요.”바닥 아래에서 둔탁한 충격음이 연달아 울렸다.첫 번째 잠금 장치가 닫힌 소리였다.오스테론이 말했다.“다섯 번 더 울리면 끝이다.”두 번째 충격음이 올라왔다.에이슬라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네르시아, 내 말을 들어요.”유리 안쪽의 자주색 눈이 흔들렸다.“당신이 사라지면 두 심장은 하나가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만 남는 거예요.”[아이들이 죽어.]“그러니까 함께 뛰지 말자는 거예요.”네르시아의 손끝이 멎었다.“당신은 네르시아로 뛰고, 나는 에이슬라로 뛸 거예요. 같은 몸에 있어도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요.”세 번째 충격음이 울렸다.에이슬라는 눈을 감았다.스승의 약방에서 처음 약초를 빻던 날을 떠올렸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고, 창밖에는 봄비가 내렸다. 그 기억에는 네르시아가 없었다.심장 하나가 빨라졌다.거울 속 네르시아는 북문을 바라봤다.불이 붙은 마차, 열리지 않던 문, 칼을 들고 달려가던 자신의 발을 기억했다.다른 박동이 무겁게 내려앉았다.두 심장의 간격이 처음으로 어긋
“돌려받으러 왔다. 네가 훔쳐 간 내 왕비를.”에이슬라의 얼굴로 오스테론이 웃었다.바이렌의 검이 그의 목을 향해 뻗었다. 오스테론은 피하지 않고 맨손으로 검날을 붙잡았다.손바닥이 찢어졌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상처 가장자리만 검게 변하며 말라붙었다.에이슬라는 자신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 몸에서 나가요.”“네가 먼저 돌려놓아야지.”오스테론의 시선이 네르시아의 몸을 훑었다.“그 몸은 네 것이 아니다.”“내 몸도 당신 것이 아니에요.”“내가 만들고 길렀다. 어떤 약을 먹일지, 무엇을 배우게 할지, 어느 환자를 만나게 할지까지 전부 내가 정했어.”오스테론이 피 묻지 않은 손을 들어 보였다.“이 손이 사람을 살리는 법을 익힌 것도 나를 담기 위해서였다.”“사람을 살린 건 나예요.”“내가 준 지식으로.”“아이들을 실험체로 만든 지식이겠죠.”에이슬라가 한 걸음 다가서자 바이렌이 팔을 뻗어 막았다.오스테론이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이번에는 왕의 뒤에 숨는구나.”“숨는 게 아니라 함께 서 있는 겁니다.”바이렌의 검끝이 오스테론의 목에 닿았다.“그 몸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움직이면 벤다.”“베어라.”오스테론이 목을 내밀었다.“이 여자의 몸이 죽어도 상관없다면.”바이렌의 검이 멎었다.오스테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매에서 작은 은침을 꺼냈다.에이슬라가 외쳤다.“오른손목을 쳐요!”바이렌이 검등으로 손목을 내리쳤다. 은침이 바닥을 굴렀다.타론이 뒤에서 오스테론의 팔을 꺾었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몸을 틀어 타론을 밀쳐냈다.동작은 에이슬라가 알던 자신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힘이었다.하지만 오른쪽 발목이 늦었다.에이슬라는 그 차이를 알아봤다.“몸이 당신을 거부하고 있군요.”오스테론의 표정이 굳었다.“상처에서 피가 나오지 않고, 관절이 움직임을 따라오지 않아요. 영혼이 자리 잡은 게 아니라 시체를 억지로 움직이는 거예요.”“그래도 충분하다.”“아니요. 오래 버티지 못해요.”에이슬라는
제60화. 내 얼굴로 웃었다[그가 기다린 것은, 에이슬라가 이 몸에서 깨어나는 날이다.]장부의 문장을 읽는 순간, 벽에 꽂힌 약병들이 일제히 기울었다.세이라가 스물아홉 번째를 끌어안았다.“엎드리십시오!”“깨지는 병부터 막아야 해요.”에이슬라는 장부를 아이의 품에 밀어 넣고 벽으로 달려갔다.약병을 받치는 금속대가 하나의 축으로 연결돼 있었다. 어느 병이 먼저 깨져도 나머지가 따라 떨어지는 구조였다.병 속 액체는 투명했지만 바닥의 검은 가루와 섞이면 흰 황혼의 증기가 만들어질 터였다.“세이라, 등잔을 꺼요.”세이라가 소매로 불꽃을 덮었다.어둠이 내려앉자 병 표면에 희미한 얼굴이 떠올랐다.네르시아였다.그녀가 다급히 손가락을 움직였다.왼쪽.세 번째.에이슬라는 벽돌을 더듬었다. 세 번째 벽돌만 가장자리에 손때가 묻어 있었다.그것을 밀자 바닥 아래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곧 벽 틈에서 물이 쏟아져 검은 가루를 쓸어갔다.첫 번째 약병이 바닥에 떨어졌다.유리가 깨지며 달콤하고 서늘한 냄새가 퍼졌지만, 액체는 물에 희석돼 연기를 만들지 못했다.“밧줄을 내려라!”천장 너머로 바이렌의 목소리가 울렸다.스물아홉 번째가 밧줄을 붙잡자 세이라가 아이의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먼저 올라가.”“장부는요?”“네가 들고 가야 해.”아이는 장부를 품에 안고 위로 끌려 올라갔다.에이슬라는 남은 병들을 확인했다. 금속대의 움직임이 멈췄지만 언제 다시 작동할지 알 수 없었다.세이라가 밧줄을 잡으며 말했다.“왕비님부터 올라가십시오.”“당신이 먼저 가요.”“저를 아직 믿으십니까?”“아니요.”에이슬라는 세이라의 허리에 밧줄을 묶었다.“그래서 살아서 조사받으라는 거예요.”세이라가 위로 올라간 뒤 에이슬라가 마지막으로 밧줄을 잡았다.위에서 바이렌이 직접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올렸다.에이슬라의 발이 기도실 바닥에 닿자 바이렌은 손을 놓지 않았다.“다친 곳은?”“없어요.”“확실한가.”“네. 아이부터 봐요.”스물아홉 번째는 장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