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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적매화
김단이 전에 묵었던 별당은 매화당이었다.

정원에 무수한 매화나무가 심겨 있었는데 꽃샘추위가 찾아올 즈음 핀 매화꽃들은 초봄까지 지지 않았다.

그녀가 어릴 적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매화라는 소리에 진산군은 조선 팔도로 사람을 보내 매화나무를 구해왔고 그 종류는 다양했다.

그 후로 매년 수백 냥의 은자를 들여가며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매화나무를 극진히 돌봤다.

하지만 매화당에 핀 매화꽃이 아름답다는 임원의 말 한마디에 매화당은 곧 임원의 별당이 되었다.

그 순간에는 자기 별당을 빼앗긴 것 같아 분하기도 했으나, 지금 돌이켜보니 이 집안의 친딸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었다. 이 집안의 물건과 사람들은 전부 임원의 것이었다.

김단, 그녀야말로 남의 자리를 꿰찬 외부인이었다.

길을 안내하던 몸종이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아씨를 모셨던 몸종이 혼인하여 출가하는 바람에 마님께서 쇤네를 아씨께 보내셨습니다. 쇤네는 숙희라 하옵고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시거든 쇤네를 불러 말씀하시면 됩니다.”

숙희는 통통한 볼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단은 그녀가 눈에 익었다.

“혹 전에 오라버니를 모시지 않았더냐?”

숙희가 놀란 듯 답했다.

“쇤네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김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전에 임학의 외별당에 드나들면서 몇 번 마주쳤던 기억이 있었다.

그녀는 임학의 몸종을 자기에게 붙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3년 전만 해도 임학은 그녀가 임원을 해치려 한다고 오해하며 그녀에게 적대심을 품었다.

그런 사람의 몸종을 붙인 거로 보아, 감시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새로 안내받은 별당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여름이면 연꽃이 활짝 피어 꽤 아름다웠을 테지만, 지금은 연꽃이 다 지고 시든 가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실내에 불을 지핀 덕에 따뜻했다.

미리 따뜻한 물을 준비해 둔 숙희는 김단의 목욕을 돕기 위해 나섰으나, 김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혼자 하면 된다.”

숙희가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어찌 아씨 스스로 하게 놔둘 수 있겠습니까? 당치 않습니다.”

“혼자 하겠다.”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는 김단의 어투에 숙희는 손에 든 옷가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쇤, 쇤네 밖에 있겠습니다. 혹 시키실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그래.”

김단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녀는 몸종이 밖으로 나가 문을 닫은 뒤에야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시진이 훌쩍 지난 뒤에야 그녀는 조모님이 계시는 안채에 들어설 수 있었다.

허나,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임학이 그녀를 잡아 세웠다.

“어찌하여 옷을 갈아입지 않았느냐?”

임학이 얼굴을 찌푸리며 화난 듯 말했다.

“궐에서 무수리로 지내며 고생했다고 알리고 싶은 게야?”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임학은 그녀를 거칠게 밀어냈다.

“동정심을 살 속셈이거든, 그 마음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너 때문에 편찮으신 조모님 건강이 악화라도 되면 내 용서치 않겠다!”

임학이 거칠게 밀어버린 바람에 아픈 발목으로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한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만하시게!”

마침, 안으로 들어오던 임씨 부인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 급히 몸종에게 그녀를 부축하라고 눈짓했다.

“어머님, 소자 잘못이 아닙니다. 누이가 자기 옷을 놔두고 저 낡은 옷을 입고 조모님을 뵙고자 했단 말입니다. 이 꼴로 들어가면 조모님의 병만 악화할 겁니다.”

그제야 부인의 눈에도 무수리 옷차림을 한 그녀가 들어왔다.

한숨일 길게 내쉰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조모님의 건강이 날로 악화하였단다. 네 오라비도 네 생각을 해서 한 말이니 마음에 둘지 말거라. 이 어미도 옷은 갈아입고 가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김단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옷이 다 작습니다.”

임씨 부인이 미리 준비해 뒀던 새 옷들은 임원의 체형에 맞춰 준비한 것이었다.

임원보다 키가 큰 그녀가 입기엔 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구나, 이 어미가 생각이 짧았다. 새 옷을 마련하겠다.”

그러나 임학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작아봤자 얼마나 작겠느냐? 원이보다 키만 조금 큰 것뿐인데 어찌 못 입는다는 거냐?”

한숨을 길게 내쉰 김단은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가릴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숨죽여 놀랐다.

김단의 두 팔은 시퍼런 멍과 상처들로 가득했다. 동상에 걸려 피부가 찢겨 고름이 나 아물지 못한 피부는 보기 흉측할 정도였다.

가죽이나 나무로 매를 맞은 것 같은 흔적이 가득한 손목은 새로 생긴 흉터와 오래전에 생긴 흉터가 얼기설기 얽혀있었고 그런 자국들은 손등까지 이어져 있었다.

임학은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조모님께 절을 올릴 때 분명 상처가 드러날 것이고 조모님께서 분명 괴로워할 것이기에 작은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이 어미에게 화가 나서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게로구나. 내가 속상해할까 봐 거리를 둔 거였어, 그렇지?”

김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숙희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쇤네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하신 연유가 이것 때문이었군요. 온몸에 난 상처들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지요?”

몸종의 말에, 부인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

한편,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임원이 눈물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어찌...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뻔뻔하게 궁인들을 탓하는 임원의 발언은 김단의 심기를 건드렸다.

“공주자가께서 하명하셨 때문이오. 나를 괴롭히는 궁인들에게 상을 내리겠다 하셨소. 잔인하게 괴롭힐수록 더 큰 상을 내리셨다지. 공주자가의 유리잔을 깨트린 죄를 내게 뒤집어씌운 게 누구였던지…”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은 임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김단을 노려보더니 커다란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다.

‘누가 보면 자기가 궐에서 고생한 줄 알겠구나.’

임원의 뒤를 지키고 있던 몸종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때, 합심하여 김단을 모함한 몸종은 여전히 임원을 모시고 있었다.

결국 말끝마다 사랑한다던 임씨 부인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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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6화

    사람들 사이로 낮은 술렁임이 번졌다.약왕곡은 위아래로 암위를 제외해도 백여 명이 있었다.그중 스무여 명 남짓은 모 선생에게서 기계 장치 제작을 배우는 학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약동들이었다.약동들은 약왕곡에서 약을 심고, 캐고, 만들고, 달였다.대부분이 자질구레한 일들이었다.심월과 말을 섞어 본 이는 드물었다.마주쳐도 고개만 숙여 “심 선생”이라 부를 뿐이었다.그래서 그가 어디로 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숨겨 둔 자리가 있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잠시 사이,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였다.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김단의 마음도 서서히 가라앉았다.그가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였다.사람들 뒤쪽에 서 있던 왜소한 약동 하나가 겁에 질린 듯 손을 들어 올렸다.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가 떨리며 나왔다.“약왕곡의 주인… 저, 저는 어제 새벽에 장작을 주우러 구렁산 바깥쪽에 갔다가…심월께서 약바구니를 지고… 장무연 쪽으로 가시는 걸 본 것 같습니다…”“장무연?” 김단의 눈빛이 움찔했다.그곳은 구렁산에서도 가장 깊고 위험한 구역이었다.온종일 오색의 독한 안개가 깔리고, 짙은 안개는 걷히지 않았으며, 깊은 소용돌이 아래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썩은 늪과 치명적인 독충이 들끓어 평범한 자가 가까이 가면 가볍게는 혼절, 심하면 백골로 변한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곁에 있던 다른 약동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급히 보탰다.“맞아요! 저도 어제 봤습니다. 하늘이 아직 훤하지도 않을 때였는데,그가 혼자 구렁산 쪽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김단이 바로 물었다.“장무연은 범위가 넓어. 정확히 어느 쪽이었는지 아나?가던 길에 이상한 점은 없었고?”사내 약동들과 잡역들이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약왕곡의 주인, 용서해 주십시오… 장무연 쪽 독안개가 너무 매섭습니다. 거긴 들어간 사람이 좀처럼 돌아오지 못합니다. 저희는 감히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심 선생은 무공이 높으시니 그분이 어디로 가셨는지, 저희는 따라갈 수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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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실에 김단의 몸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최지습의 조용히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익숙한 눈썹과 눈매, 한때 그녀에게 가장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입가... 그러나 지금은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깊은 강 줄기를 사이에 둔 듯했다.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것일까?이런 생각은 가장 두꺼운 덩굴처럼 얽혀 올라와 그녀를 질식할 듯이 죄었다.심월의 서신에 적힌 한 글자, 한 구절이 모두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세차게 그어댔다.설마, 최지습이 정말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것일까?그의 몸속에 있는 새끼 독이 정말로 그를 평생 혼수상태로 만드는 것일까?아니다!그럴 리 없다!그가 어찌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나? 매 순간 생사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장을 누비지 않았던가?그 모든 것을 이겨냈는데, 어찌 이번 일로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심월이 그럴 것이라고 하면 정말 그렇게 된 단 말인가?!그는 고작 독을 이용하여 남을 해치는 어설픈 사술을 독학한 망나니에 불과하다. 그런 자가 어찌 남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그녀는 믿지 않았다!그녀를 무너뜨릴 뻔했던 절망은 그 순간 오히려 강한 불길 속에 던져진 마른 장작처럼 김단의 투지를 맹렬하게 불태웠다.그녀의 눈빛 속의 허망함과 공허함은 빠르게 사라졌고, 그 자리를 타오를 듯한 굳건함과 냉철함이 대신했다.그녀는 최지습을 바라보며 입가를 미세하게 올려 웃어 보였다.“오라버니, 들리십니까?”“심월이, 오라버니께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 하더군요.”“저는 믿지 않습니다.”그녀의 손끝이 그의 차가운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길은 다정했으나,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이 세상에, 애초부터 ‘절대’나 ‘영원’은 없습니다.”“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제가 단 하루라도 더 살아 있는 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저를 믿으십시오. 제가 반드시 오라버니를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최지습을 지그시 바라보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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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2화

    이 글을 보자 김단은 그 자리에서 정신이 멍해졌다.그녀는 심월이 이런 수까지 남겨두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심장이 무언가에게 움켜잡힌 듯, 간헐적으로 통증이 밀려왔다.김단은 목울대를 힘겹게 움직이더니, 이내 두 번째 장을 펼쳐 보았다...“만일 제가 소한의 독을 해독하지 않았다면, 어미 독은 제게 남아 있었을 겁니다. 평양원군의 몸이 차츰 회복될 무렵, 이 연결 고리를 통해 그 자를 깨어나게 할 수 있었겠지요. 당장 완쾌시키지는 못할지라도, 그리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허나 이제 어미 독과 새끼 독이 모두 제 몸속에서 결합하여 소멸했으니, 평양원군의 심장 맥에 박힌 그 새끼 독 잔해는 뿌리 없는 부평초와 같이 다시는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다시 말해, 최지습은 영원히 다시 깨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이 판은 결국 제가 반수 이겼습니다. 심월, 드림.”김단의 떨리는 손에서 서신이 나풀거리며 미끄러져, 차가운 바닥에 소리 없이 떨어졌다.그녀는 순식간에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 듯,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렸다. 비틀거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옆의 책장을 붙잡고서야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귓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무너지는 듯했다.그럴 수가... 그럴 수가! 그의 마지막 그 눈빛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그것은 목적을 달성한 후의 보인 냉소, 복수 후의 쾌감이었던 것이다!그는 애초부터 이토록 악랄한 복선을 깔아 두었던 것이다!그는 이미 계산해 두었다. 독을 해독하든, 해독하지 않든, 절대 자신이 패배하지 않을 방도를 말이다!독을 해독하면 소한이 살고, 최지습은 ‘죽는다’.해독하지 않으면 최지습은 살고, 소한이 ‘죽는다’.이 판은 애초부터 막다른 길이었고, 심월은 처음부터 질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다!“푸웁!” 충격이 심장에까지 치민 듯, 김단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피는 그녀 앞 바닥에 흩뿌려져, 붉은 매화처럼 번졌다.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동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1671화

    그 말을 마친 후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김단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아구를 데리고 산길을 따라 약왕곡 너머를 향해 걸어갔다.김단은 그 자리에 서서 크고 작은 두 사람의 뒷모습이 푸르른 산길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본 후에야 시선을 거두었다.그녀는 다시 연못 옆에 쪼그리고 앉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최지습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심월과 아구는 어릴 적부터 약왕곡에서 자랐는데, 이제 이곳을 떠난다니 정말 서글픈 일입니다. 허나 심월이 이토록 많은 일을 저질렀으니, 계속해서 그 자를 약왕곡에 머물게 한다면 사람들이 제가 지나치게 인자하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곡주 노릇 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저 침묵만이 감돌았다.산에서 불어오는 미풍이 마치 그녀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스쳐 지나갔다.김단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고, 미간도 살짝 찌푸려졌다. “오라버니, 너무 오래 주무십니다. 언제쯤 깨어나실 겁니까?”그녀의 한숨 소리에도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김단은 마음이 혼란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문득 방금 전 심월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묵은 일을 정리하기 위한 서신이라니? 왜 그걸 그녀에게 직접 건네지 않은 것일까?왜 굳이 방 안에 남겨두고 직접 가져가게 했을까?심월이라는 자는 생각이 치밀하고, 모든 행동에 반드시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결코 우유부단하거나 일부러 속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정말 중요한 할 말이 있었다면, 방금 전이 절호의 기회였다. 만약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굳이 서신을 남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나?특히... 그가 마지막에 최지습을 보던 그 눈빛은...순간 김단의 심장이 내려앉았고, 서늘한 한기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영칠!” 그녀는 크게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과 공포가 담겨 있었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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