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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에서 주인공으로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Author: 노을

제1화

Author: 노을
“소이현! 너 미쳤어!”

박지현의 손만 잡고 있던 나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은 마침내 그 손을 놓고서 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다가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난 주저없이 그를 향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훈은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서 지현은 바로 정훈에게 다가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

여린 몸이지만 자기 힘으로 자기 남자를 지키겠다는 듯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윽고 지현은 연약한 모습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현 언니, 이제 그만 화 좀 푸세요. 우리 오빠 제발 그만 때려요.”

“결혼식도 웨딩드레스도 언니한테 돌려줄 테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저 그냥 홀로 외로이 죽을게요.”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 지현은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정훈이 그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지현아, 이 웨딩드레스의 주인은 처음부터 너였어. 결혼식의 주인공도 오직 너 하나뿐이었고.”

지현의 웨딩드레스를 꼼꼼히 정리해주면서 정훈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에 걸맞은 지현은 같은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뻤다.

맞춤 제작이라도 한듯한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는 지현은 ‘빛’ 그 자체였다.

‘저 웨딩드레스는 내 것인데 왜 쟤한테 어울리는 걸까?’

난 문득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선보려고 했으나 정훈은 맞춤제작한 웨딩드레스라 그럴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박지현을 위한 웨딩드레스였어...’

어느새 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정훈이 보게 되었다.

“소이현, 이제 마음에 들어? 우리 지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

“네 뱃속에 있는 아이부터 생각해!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으면 늘 그래왔듯이 순순히 말 들어!”

순간 결혼진행곡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두 화동이 꽃가루를 뿌리면서 두 사람 앞으로 꽃길을 깔아주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정훈은 그렇게 지현의 손을 잡고서 ‘꽃길’을 걸었다.

행복을 상징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때쯤, 난 산부인과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행복으로만 가득 찬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객들은 나한테 손가락짓을 했다.

마치 내가 불청객인 것처럼 말이다.

사회자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했고 난 하객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서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도망쳐나왔다.

허겁지겁 뒤돌아서서 뛰쳐나가려고 하던 그때 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의 가족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의 신부가 내가 아닌 지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 동생은 무대로 올라가서 칭찬을 서슴치 않았다.

“여러분, 이렇게 화려하고 사랑이 넘치는 결혼식은 처음이죠? 역시 우리 매형!”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지현이야말로 자기 누나인 것처럼 말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동생은 내가 보이지 않자, 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나, 당장 돌아와. 매형 창피하게 하지 말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왜 그렇게 유난이야? 어차피 혼인신고는 누나랑 한 거잖아.]

[얼른 와서 매형한테 진지하게 사과해. 다음 달에 매형이 새 차로 뽑아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계약서까지 다 체결한 상황인데, 매형이 누나 때문에 화나서 계약금 주지 않으면 나 진짜 끝이야!]

순간 난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속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면서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동안 매달 용돈 보냈잖아. 근데 왜 그 비싼 걸 정훈한테 사달라고 한 거야?]

돌아오는 답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다짜고짜 욕부터 들려왔다.

[내가 너 같은 걸 낳고 미역국을 마셨다니! 넌 대체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동생이 큰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깟 차 좀 뽑겠다는 데 순순히 협조 못 해? 돈 많은 시댁으로 시집간다고 좋아했건만 그딴 짓이나 펼치고 말이야! 나도 참 쪽팔려서! 너 때문에 내가 살 수가 없어!]

아빠와 엄마의 욕설 속에서 난 마침내 알게 되었다.

돈만 밝히는 여자라고 시어머니께서 나한테 늘 인상만 쓰셨던 그 이유를.

‘그런 거였어... 내 가족이 나를 팔아 넘긴 거였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순간 난 온몸이 나른해지고 말았다.

예식장 밖에 있는 계단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아빠와 엄마는 마음껏 욕설을 퍼붓고 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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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7화

    1년 후, 난 귀국하자마자 변호사 친구의 격려로 부모님과 동생을 법정에 세웠다.전에 그들이 은행 카드에서 인출한 돈까지 그대로 돌려받았다.그들은 욕설을 퍼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그 욕설들은 나에게 가벼운 바람처럼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그들은 도시에서 집도 돈도 없이 의기소침하게 시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내 세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더는 그들과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다시 해외에 상주하면서 일할 기회를 신청했을 때, 동료가 나에게 담소를 나누듯이 말했다.“네 전남편있잖아... 이제 끝장났어.”난 그녀의 표정이 익살스러운 것을 보고 잠시 듣기로 마음을 먹었다.정훈은 내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귀국하자마자 지현이가 조르는 바람에 다시 동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지현은 임신으로 이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정훈은 내가 지워버린 아이가 떠올라서 술김에 지현을 유산할 정도로 때렸다고 한다.지현은 바로 눈이 돌아가 식칼을 잡아 들어 정훈의 아랫도리를 향해 찔렀다고 한다“앞으로 남자 구실은 다 했다고 그랬어. 취재 부서 동료한테서 들은 건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난 그냥 웃어 넘겨버렸다.정훈 부모님은 원한은 반드시 갚는 성격이라 지현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따라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현은 앞으로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난 줄을 서면서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수많은 인파를 뚫고 난 정훈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방금 소식을 알고 급히 온 듯 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다.의기양양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백발도 몇 가닥 나면서 한 열 살정도는 늙어 보였다.정훈의 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뉴스의 사장인 그로 인해 예전 같지 않게 곤두박질쳤다.인파를 뚫고 정훈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렸으나 난 이미 시선을 거두었다.이윽고 난 단호하게 몸을 돌려 멋지게 떠났다.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6화

    해외에서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회사 상사 역시 다음 시즌 테마 평론을 나에게 맡겨주신다고 약속해주셨다.정훈은 외국까지 쫓아와서 매일 나에게 출근 체크를 했다.매일 신선한 장미를 보내왔고 내가 쥬얼리 매점을 지나다가 우연히 흘끗 본 보석을 사서 주기까지 했다.외국인 동료들조차 내 매력이 뛰어나다면서 놀릴 정도로 말이다.내일은 또 어떤 선물을 안고 올지 서로 내기까지 하면서.그러나 난 매번 그 선물들을 그대로 도로 보냈다.“네 감정과 마찬가지로 값싸고 의미 없어.”그 말에 자극을 받았는지 정훈은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크리스마스 눈 내리는 밤에 정훈은 내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참회했었다.“네가 겪었던 모든 억울함을 나 역시 그대로 받아볼게.”그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초췌해져서 본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흩날리는 눈이 그에게 내려 난 서서히 예전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그날도 오늘과 같은 눈 내리는 밤이었다.운전하다가 실수로 외곽에서 고장이 났었는데, 그때 난 정훈이에게 전화를 걸었었다.그때 정훈은 술에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곧 도착할 것이라고 했었다.그러나 밤새도록 기다려서 거의 기절할 뻔했고 그는 뒤늦게 와서 회사에 일이 있다면서 늦게 왔다고 했었다.알고 보니 그는 내가 어떤 억울함과 상처를 받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여태껏 못 본 척했을 뿐이었다.다만 난 지현처럼 자꾸 아프다고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이제야 날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는 거야...’“이제 곧 파티 시작될 거야. 방해하지 말고 얼른 가.”“무릎 꿇고 싶다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꿇어.”정훈이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집안의 따뜻한 조명 아래서 내가 동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파티를 즐기고 있는 걸 바라보았다.오직 그에게만 있었던 행복이었는데.하지만 지금은 마치 시궁창에 있는 쥐처럼 남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스스로 수없는 모욕을 자초하는 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정도로.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5화

    이혼 후, 난 회사의 해외 연수 프로젝트를 신청했다.예전에 난 정훈을 위해 너무 많은 기회를 포기했고 회사 상사조차도 항상 명문대 출신이 아깝다고 말했었다.난 회사 근처에 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는데, 아빠와 엄마의 스팸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회사로 찾아와서 내가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다고 폭로하겠다고 협박까지 가했었다.난 그들을 고소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뜻밖에도 정훈이가 먼저 그들을 법정에 세웠다.정훈이가 나에게 소식을 전하러 왔을 때, 난 저녁 출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짐을 싸고 있었다.일하느라 나날이 야위어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정훈은 후회와 더불어 안쓰러워했다.“이현아, 이혼한 거 알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서 그래.”“그날 네가 준 건 지금껏 보고 있고 반성도 많이 하고 있어. 앞으로 네 기분부터 생각해주고 더는 속상하지 않게 해줄게. 그러니 다시 한번 기회 주면 안 돼?”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정훈의 차를 타고 함께 온 지현이었다.지현은 눈물을 글썽이며 전과 같은 뉘앙스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오빠, 이미 이혼한 사이에 왜 이렇게 비굴하게 구는 거야?”정훈은 귀찮아하면서 지현을 확 밀쳐냈다.“우리 사이가 어떤지 그건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지현은 그 말을 듣고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쓰러진 척 하려고 했는데, 정훈이가 꺼낸 캡쳐 사진에 놀라 정신을 번뜩 차렸다.그건 정훈이가 그동안 애써서 지현 친구에게 부탁해서 얻은 외국 의사 진찰 기록이다.그 외국 의사는 자기가 내린 진찰이 아니라면서 불치병도 모두 지어낸 일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더 할 말이 남았어? 내가 널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데, 그동안 날 속인 거였어? 그래 놓고서 나랑 이현이 사이를 그렇게 찢어놓은 거야?”지현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오빠, 난 오빠 사랑해서 그런 거야.”“닥쳐! 그게 사랑이야? 그리고 넌 날 사랑한 거야? 내 돈을 사랑한 거지.”정훈은 진작에 지현의 채팅 기록을 보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4화

    정훈은 그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회사의 주가도 하한가로 떨어졌다.경찰의 도움으로 별장에서 구조되었을 때, 난 정원에 서서 오랜만에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경찰이 가족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들은 내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비난하기 위해서 찾아왔었다.“남편을 감옥에 보내?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누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독할 수 있어? 매형이 얼마나 잘해주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그래. 나 원래 독한 사람이야! 이제 알았어?”난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덧붙였다.“아참, 오늘부터 난 더는 당신들 딸도 누나도 아니야.”아빠는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어 날 때리려고 했고 난 바로 경찰 뒤로 몸을 피했다.“잠깐! 그동안 집에서 가져간 돈이 어마어마하지? 부부 공동 재산이니 난 되찾을 권리가 있어.”“그리고 내 은행 카드에 있는 돈 무단으로 가져간 죄까지 받아야 할 거야.”“사위 콩밥 먹이고 싶지 않으면 내 제안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우린 앞으로 그 어떠한 관계도 없고 서로 남남이거든!”그들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경찰이 바로 앞에 있어서 나를 쏘아보고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정훈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그는 비로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줄곧 그를 떠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내 말은 한 번도 진지하게 들은 적이 없지?”난 증거들을 그의 얼굴에 확 뿌리쳤다.그동안 당한 상처와 억울함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 책으로 수록했으니 말이다.정훈은 보면 볼수록 당황스러웠고 과거에 나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알게 되는 듯했다.정훈은 줄곧 나에게 사과를 하면서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이현아, 미안해... 내가 죽일 놈이야... 상처주서 진짜 미안해...”그의 뒤늦은 참회는 그토록 우습게 보일 수가 없었다.난 진작에 경찰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고 그가 서명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내가 이혼하자고 얘기를 꺼내자 정훈은 바로 쩔쩔매며 무릎을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3화

    정훈은 나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기자는 내가 불러줄 테니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서 미동도 없이 그의 포옹을 피했다.과연, 바로 다음 날 기자들이 우르르 찾아왔다.한시도 기다릴 수 없는 듯한 정훈의 모습이었다.‘지현이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날 휘몰아칠 수 있구나.’정훈이 준비해준 대사로 난 읽기만 하고 모든 잘못을 짊어지기만 하면 된다.이번 인터뷰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데, 그동안 내가 일해온 환경이라 두렵지는 않았다.조명이 얼굴을 쏘아올 때, 생방송이 시작되었다.순간 쏟아져 들어온 네티즌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고 하나같이 듣기 거북했다.난 그 모든 걸 못 본 척하고 기자가 취재를 준비하는 동안 두꺼운 대사 아래에서 인쇄된 스크린샷 몇 장을 꺼냈다.전에 지현이가 보내준 그들의 다정한 사진, 그리고 나와 정훈의 결혼 증명서, 내가 그에게 구금되어 협박을 당했었던 증거들이다.정훈은 잘못된 것을 깨닫고 생방송을 끊으려고 허둥지둥했다.그렇게 방송이 끊기기 1초 전, 난 ‘신고해주세요’라고 미친듯이 목청놓아 소리쳤다.

  • 대타에서 주인공으로   제12화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 정훈의 안색은 수척하기 그지없었다.한눈에 봐도 밤새 잠을 못 잔 모습이었다.정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지시하는 듯 말했다.“소이현, 어제 일은 내가 대충 알아봤는데, 제삼자 그 신분 말이야 일단은 네가 좀 짊어지고 있어.”난 그런 정훈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었다.정훈은 내 시선을 피하며 한마디 덧붙였다.“지현이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 지현이 명성에 영향줘서도 안 되고.”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지현을 지지해주리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이가 없었다.“그럼, 내 명성은? 욕 먹어도 싸다는 거야?”정훈은 큰소리를 치면서 별문제가 아닌 것처럼 말했다.“여하튼 넌 이미 나랑 결혼했잖아. 명성 따위가 중요하지도 않잖아.”“게다가 네가 하고 있는 일이 이런 거잖아. 네 일에 영향을 줬다면 그래서 해고라도 됐다면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아. 내가 널 먹여살릴 수 있어.”사실 난 저 미디어회사에서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뉴스 평론가이다.평소에 많은 여론을 겪었지만 그것은 업무상 필요한 위험 요소일 뿐이었다.따라서 지현이보다는 내가 더 잘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욕을 먹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정훈인 듯싶다.정훈은 내 표정이 점점 차가워지자 당황해 하더니 이내 말투를 누그러뜨리고 손을 들어 맹세하며 덧붙였다.“이 일만 지나고 나면, 다시는 지현이랑 만나지 않을게.”그러한 거짓말 역시 정훈의 말뿐이라 생각했다.난 잠시 침묵하며 비웃었다.“그래. 내가 해명할게.”“걔보다는 내가 더 유명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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