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하승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는 하던 일도 멈춘 채 고개를 들어 조현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어디로 도망쳤죠?”“왕우현 씨가 지씨 저택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고우섭 씨가 해성의 36개 언론사를 초청해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 사모님이 양아버지인 왕우현 씨를 학대하고 버렸다고 고발할 계획이라고...”하승민의 안색이 조현우의 말에 점점 어두워졌다.‘고우섭,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조현우에게 쳐다봤다.“당신들은 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한 겁니
“아니요!”지서현은 즉각 부정했다.“어젯밤 전 하 대표님이랑 같이 안 있었는데요?”그녀의 말에 하승민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유정우가 알까 봐 그렇게도 겁이 나는 건가? 남자 앞에서 거짓말을 아주 능숙하게 하네. 사기꾼 같으니.’유정우는 하승민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하승민,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하승민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얼굴로 무심하게 대답했다.“지서현이 다 말해줬잖아.”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는 듯한 태도였다.그러자 지서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님과 유정우 씨는
“전 밥솥 팔고 철물까지 내다 팔면서 저 아이 학교 보냈어요. 가진 거 다 털어서 큰 도시까지 유학 보내줬는데... 이제 와선 자기를 창피하게 만든다고 날 촌으로 쫓아내려고 하네요...”왕우현은 울다가 본인조차 자기 말을 믿을 뻔했다. 이 정도면 연기력 만점이었다.기자들은 ‘찰칵찰칵’ 연신 셔터를 눌렀다. 시골 양아버지를 버린 양녀라니 이건 확실한 사회적 이슈였고 모두가 단독 보도를 원했다.기자들은 왕우현을 몹시 동정하며 지서현을 질타하기 시작했다.“지서현이라는 사람, 너무한 거 아니에요?”“세상에 천성부터 나쁜 사람이 있
기자회견 현장은 분노에 휩싸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지서현을 비난하고 있었다.하승민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이건 전쟁터나 다름없는 자리잖아. 그걸 뻔히 알면서도 혼자 왔다고? 자업자득이지 뭐.’“씨X...”유정우가 낮게 욕을 내뱉더니 당장이라도 앞으로 나가 지서현을 막아주려 했다.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바로 옆에 있던 하승민이었다.“...”‘얘 진짜 내 친구 맞냐? 상황 판단도 못 해?’그러나 그때까지 시끄럽던 현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하승민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몰매를 맞던 지서현이 조용히 고개를
왕우현은 두 눈을 부릅떴다.이제야 알았다.출소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지서현이였다는 걸, 그녀는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들은 모두 믿었다.지서현이 절대 그 어두웠던 과거를 세상에 꺼내놓지 못할 거라고.아무리 그래도 여자애에게는 체면이 중요하니 말이다.사실 그녀는 정말로 말하지 않았다.김옥정에게도 하승민에게도 말이다.왕우현이 돈을 요구했을 땐 돈을 주었고 그가 그녀를 기절시켜 납치했을 때도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간 듯 보였다.정말 지서현이 왕우현에게 휘둘리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완전히 패배했다.이윤희는 즉시 말했다.“서현아, 미안해. 아까는 엄마가 너를 오해했어. 엄마 얘기 좀 들어줘.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지서현이 이윤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그때 경찰이 다가와 이윤희에게 말했다.“이윤희 씨, 왕우현 씨가 도주 중이던 기간 동안 범인을 은닉하고 도운 혐의가 있습니다. 현재 왕우현 씨와 공모한 정황이 있어 수사를 위해 함께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곧바로 두 명의 경찰이 이윤희의 팔을 붙잡았다.이윤희의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다.
고우섭이 여전히 자기편에 서 있다는 사실에 지유나는 마음을 살짝 놓았다....기자회견이 끝나고 하승민은 롤스로이스 비즈니스 차량으로 돌아왔다.그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앞 좌석의 조현우에게 지시했다.“기자들한테 전해. 서현이 관련된 건 그 어떤 기사도 나가지 않길 원한다고.”조비서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건 걱정 마십시오, 대표님. 여성 기자들 몇 분이 현장에서 이미 자발적으로 사모님 관련 사진이나 영상 다 삭제했어요. 사모님에 대한 보도는 없을 겁니다.”하승민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모두가 잔을 들어 술을 비웠다.그때였다.룸 안에 설치된 TV에서 뉴스 한 편이 흘러나왔는데 앵커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오늘 저희는 아동 성추행 및 강간 미수 혐의로 한 명의 범죄자를 체포했으며, 동시에 공범 혐의자도 함께 검거했습니다.”화면 속엔 머리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왕우현이 경찰차에 태워지는 장면이 나왔다.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윤희가 끌려 나왔다.왕우현은 몰라도 이윤희는 알 수 있었다.그리고 세 명의 대표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했다.“지 대표님, 저 용의자... 아무리 봐도 사모님 같은데요?”‘뭐?’술을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