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안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하 대표님, 오셨어요?]하승민의 차가운 눈동자는 순식간에 깊은 심연으로 변했다. 그는 두 글자로 답장했다.[왔어.]...파티장에서 유지안은 왔다는 두 글자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하승민이 왔다.그런데 아쉽게도 지서현이 없었다.그녀는 지서현이 이 장면을 보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유지안은 큰 소리로 말했다.“여러분, 생일 파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기다리던 중요한 손님이 오셨거든요.” “유지안 님, 그 중요한 손님이 누구신가요?”“유지안 님, 이제 그만 숨기고 그
이번 생일 파티에 유지안은 여러 언론사 기자들을 초대했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그녀였기에 많은 기자들이 기꺼이 참석하여 그녀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유지안은 원래 이 기회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런데 오희준이 갑자기 나타나 폭탄 발언을 해 버릴 줄이야.현장은 순식간에 난리가 났고 기자들은 즉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마구 찍어 댔다. “유지안 님, 정말 남자친구가 있었군요.”“공사장에서 남자친구가 벽돌 나르는 덕분에 대학에 다닌 거였군요.”“그럼 청순한 이미지는 팬들과 대중을 속인 건가요?”유지안은 상황이
“요즘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데 혹시 뒤에 돈 많은 스폰서가 있는 건 아닌가요?”기자들의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유지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팬들을 바라보았다.팬들의 눈빛에서 애정은 사라지고 대신 비난이 가득했다.“우리가 정말 눈이 멀었었네.”“청순한 스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닳고 닳은 여자잖아!”“우리 가자.”팬들은 그녀를 버리고 떠나갔다.유지안은 자신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생일 파티를 열어 인생의 정점을 찍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무덤을 판 꼴이었다.천국에 있다가 한순간에
하승민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유지안은 엄청난 공포에 사로잡혔다. 일시적인 욕심에 지서현을 사칭한 것이 이제 와서 그녀가 평생 가장 후회하는 선택이 돼버렸으니까.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끝장났다.유지안은 오희준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오희준은 그녀의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그는 비록 집안은 좋지 않았지만 성실하고 근면했으며 지난 몇 년간 그녀에게 2억이 넘는 돈을 썼다. 게다가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오희준이 앞장서서 해결해 주었다. 그러니 그녀는 더 이상 오희준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희준아, 미안
소아린은 경악했다.“아니, 혼전임신? 유지안 뱃속 아이가 하 대표 아이가 아니라 남자친구 아이라고?”지서현은 생일 파티에서 뭔가 일이 벌어졌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런 상황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유지안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니. 게다가 아이 아빠가 남자친구라니. 그렇다면 유지안과 하승민은 도대체 무슨 관계지?’바로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누구?”지서현은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훤칠한 모습의 하승민이 서 있었다.그녀는 잠시 얼어붙었다.‘그가 왜 여기에 왔지? 여긴 여자 기숙사
지서현은 되물었다.“아니면 뭘요?”여자 기숙사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그녀의 흰 피부는 더욱 빛났고 솜털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하승민의 눈가에는 미소가 어렸다.“그날 밤에 대해 할 말 없어?”그날 밤...지서현은 그날 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의 말에 다시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단단한 몸과 부드러운 몸이 소파 위에서 얽히고 땀과 쾌락이 뒤섞여 마지막에는 밤하늘의 불꽃처럼 터져 나가던 밤이었다.그는 그녀의 위에서 ‘서현아’라고 불렀다.지서현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그의 깊은
여자 기숙사 안은 조용해서 지유나의 흥분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고 지서현의 귀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지서현은 물 한 잔을 따라 마셨다.왠지 모르게 물맛이 썼다.하승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잘생긴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승민 오빠,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보고 싶다고. 빨리 와.”하승민은 휴대폰을 든 채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지서현은 고개를 돌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나에게 가는 거겠지.’잠시 잊고 있었다. 유지안은 잠깐의 해프닝일 뿐 지유나가 그의 진짜 사랑이라는 사실을.지유나의 전화
지서현은 그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방금 전 지유나가 전화로 그렇게 떼를 쓰며 오라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니 말이다.지유나는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예전에 약에 취했을 때도 지유나의 전화 한 통에 그는 바로 달려갔었다.이런 적은 처음이었다.지유나의 성격상 오늘 밤 아마 엄청 화를 낼 것이었다.하승민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무슨 생각 했어?”아까 뒤에 서서 그녀를 보니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문득 몇 년 전 동굴 속 소녀가 떠올랐다. 그녀처럼 조용하고 외로워 보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