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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Author: 인가연
정우진이 시계를 들여다보자 어느덧 밤 여덟 시 반이었다.

둘은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는데 그녀는 묵묵히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몇 번이나 뻐근한 어깨와 목을 주무르면서도 퇴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잠든 신시아의 얼굴에는 그 고집스러움이 사라졌고 섬세한 피부 위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밝은 조명 아래,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그녀의 숨결에 맞춰 살짝 움직이며 뺨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남자의 차갑던 시선이 어느새 한결 부드러워졌다.

특히 머리카락 한 올이 코끝을 간지럽히자 잠결에도 연신 코끝을 비비적대는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일렁였다.

정우진은 마디가 선명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귀 뒤로 넘겨주었다.

손끝에 닿은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이 정우진의 심장을 세게 때렸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오던 그때, 신시아가 나지막이 끙 소리를 냈다.

정우진은 마치 감전된 듯 손을 거두고 눈빛은 다시 차가워졌다.

“퇴근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기고 성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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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94화

    신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지만, 정우진의 질문에 대답할 만한 그럴싸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대표님, 그건 제가 농담한 거예요. 신 비서가 무슨 사정이 있겠어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신 비서도 젊은데 백영 그룹에 평생 뼈를 묻을 순 없잖아요.”오혜린이 쭈뼛거리며 급히 수습했다.다만 정우진은 듣는 척도 안 하고 가늘게 뜬 눈으로 신시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신시아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오혜린의 말에 맞장구쳤다.“맞아요. 결혼도 평생 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하물며 직장이 뭐가 대수겠어요.”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 웃어 보였지만 본래부터 유순했던 눈매에 짙게 배어든 서글픔은 끝내 감춰지지 않았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정우진의 눈길에 문득 혐오감이 스쳤다.2년이라는 짧았던 결혼 생활과 이 직장까지, 모든 감정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더 자극을 주었다.정우진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고 시선은 점차 날카롭게 벼려졌다그는 굳게 다문 턱선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걱정 붙들어 매. 신 비서가 다음에 또 그만두겠다고 하면 회사에서도 절대 안 붙잡을 거니까.”말을 마친 남자는 자리를 떠났고 임정현이 한숨을 내쉬며 바짝 쫓아갔다.“점심은 또 물 건너갔네...”정우진이 머무는 동안 식당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가 그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삼삼오오 모인 직원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신시아에게 꽂혔다.자리에 앉아 식판을 내려다보는 그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몹시 허기진 상태였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미안해, 시아 씨.”오혜린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대표님이 구내식당에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 괜히 시아 씨만 곤란하게 만들었네.”“괜찮아요.”신시아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밥 먹어요.”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면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사람들 입방정 떠는 거 봐. 진짜 미안해.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93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은유라의 마음은 이제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그녀는 다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신시아 배 속에 있는 그 아이, 대체 누구 애인지 확실히 밝혀내.”휴대폰 너머로 짧은 잡음이 섞인 뒤, 남자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그 여자 뱃속을 들여다보고 사는 것도 아니고 무슨 수로 알아내?”“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지시나 기다려. 당장 귀국부터 해!”은유라는 창가에 서서 어둠이 깔리는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짙은 밤보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서늘한 어둠이 훨씬 더 깊고 차가웠다....최근 장건우는 매일 신시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날씨가 바뀌니 감기 조심하라는 다정한 안부부터, 아침이면 모닝 인사, 밤이면 잘 자라는 다독임까지...신시아는 머리가 지끈거린 나머지 점심시간을 틈타 오혜린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오혜린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이 귀에 걸렸다.“시아 씨, 우리 이제 진짜 가족 되는 거야?”“안 그래도 건우 때문에 언니를 불렀어요.”신시아는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오혜린의 말투는 신시아와 장건우가 이미 결혼이라도 약속한 듯 들떴다.“왜 그래? 그 녀석이 속상하게 굴었어?”하지만 금세 신시아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맞은편에 앉았다.“언니, 저랑 건우는 진짜 아닌 것 같아요.”신시아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저 당분간 연애나 결혼할 생각 없어요.”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말에 오혜린은 마음이 씁쓸해졌다.애초에 둘을 소개해줄 때 오혜린이 억지로 떠밀다시피 한 면도 있었다.하지만 신시아라면 장건우와 정말 잘 어울릴 거라 확신했기에 더 그랬다.“설마 건우 어머니가 편찮으신 것 때문에 그래?”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실은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요.”오혜린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차분하던 신시아가 남몰래 짝사랑이라니.게다가 이 나이쯤 되면 가슴 뛰는 사랑보다 안정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게 현실 아닌가.“지금 거절하려고 일부러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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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91화

    한채은은 요즘 임보나와 관련된 일들로 정신이 팔려 신시아에게 임신에 관해 물어볼 틈이 없었다.방금 신시아의 말투를 들어보니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낳을 기세였다.주하영은 잔뜩 근심에 잠겨 있는 한채은을 보더니 더 캐묻지 않고 슬쩍 주방을 빠져나와 은유라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이에 은유라는 계속 지켜보라며, 무슨 수를 써서든 한채은의 입을 통해 신시아가 정말 임신했는지 확실한 답을 받아내라고 지시했다.“노인네가 어찌나 까다롭게 구는지. 말 좀 섞으려고 하면 꾀부린다고 타박이라니까요.”주하영은 이곳에 온 첫날부터 어떻게든 정보를 캐내려 애썼다.하지만 한채은은 그녀가 조금만 한가해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일을 시키는 통에 도통 틈이 나질 않았다.방금 나눈 짧은 대화조차 기적에 가까웠다.“계속 지켜봐요.”이 말을 끝으로 은유라는 전화를 끊었다.주하영이 휴대폰을 집어넣고 뒤돌아서려던 찰나, 등 뒤에 서 있는 한채은과 마주치고 말았다.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원, 원장님...”“왜?”한채은이 눈을 치켜뜨며 쏘아붙였다.“집에다 대고 일러바치기라도 하는 거야?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다들 돈 한 푼 안 받고 봉사하러 오는데 월급 또박또박 받으면서 일하는 게 뭐가 불만이야? 애들 좋아한다더니 다 거짓말이었어?”주하영은 속으로는 못마땅하면서도 얼굴에는 애써 웃음을 띠며 비위를 맞췄다.“원장님, 오해세요. 전 정말 아이들을 좋아해요. 다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그래요.”“그래?”한채은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묻자 주하영은 가슴을 치며 맹세했다.“진짜예요! 저 정말 아이들 좋아해요. 너무너무 좋아한다고요!”“잘됐네 그럼. 오늘부터 동쪽 방 애들은 네가 맡아.”한채은은 기저귀 한 팩을 주하영의 품에 턱 안겼다.“마침 기저귀 갈아줄 때 됐으니까 가서 싹 다 갈고 밥 먹여.”동쪽 방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하반신에 장애가 있어 상시 기저귀를 차야 했다.생전 이런 일을 해본 적 없는 주하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90화

    “창고에 뭐 볼 거 있다고 그래?”한채은이 그녀를 붙잡았다.“얼른 들어가서 보나나 봐줘. 애가 퇴원한 뒤로 종일 투정만 부리고 밥도 제대로 안 먹어.”신시아는 창고 쪽을 한 번 더 힐끗거렸지만 한채은이 임보나 이야기를 꺼내자 어쩔 수 없이 방향을 돌렸다.병 때문에 임보나는 방을 따로 쓰고 있었다.하얀색 비니를 푹 눌러쓴 아이는 핑크색 실내복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신시아가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자 임보나도 미소를 지었지만, 예전의 천진난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보나야, 집에 돌아왔는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신시아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창가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아이는 냉큼 기어 와서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언니, 저 언제쯤 학교 갈 수 있어요?”병원에 있을 땐 집에 가고 싶어 몸부림치더니, 막상 집으로 돌아오니 이번엔 학교로 돌아가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싶다며 보챘다.“금방 갈 수 있을 거야.”신시아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얇은 비니 사이로 새로 돋아나는 짧고 까칠까칠한 머리카락이 손끝에 닿았다.임보나의 눈동자는 희망을 잃고 빛이 바랜 상태였다.“학교에 못 가도 공부는 열심히 해야지? 선생님이 매일 수업 녹화해서 보내주시잖아. 다 꼼꼼히 봐야 해.”신시아가 화제를 돌렸다.“그래야 나중에 학교 돌아가서 계속 1등 하지.”임보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열심히 보고 있어요. 못 믿겠으면 테스트해 봐도 돼요, 언니.”“그래?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신시아가 몇 가지 문제를 내자 임보나는 막힘없이 풀었다.그녀는 주머니에서 수제 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자, 이건 보나가 열심히 문제 풀어준 상이야. 다음에 올 때 또 테스트할 거니까 그때는 더 맛있는 거로 사 올게.”임보나의 눈이 조금 반짝였다. 아이는 사탕을 받아 쥐며 물었다.“언니 벌써 가게요? 우리랑 같이 점심 안 먹어요?”“응, 다음에.”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이따가 김지원네 집에 들러야 하니까.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189화

    정우진이 여전히 소파에서 꿈쩍하지 않자 권미희가 그런 손주 녀석을 흘겨보았다.“아니요, 괜찮아요.”신시아는 어느덧 안으로 들어와 과일 바구니를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두었다.“한두 날 있으면 퇴원한다면서요?”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정우진이 짐까지 챙겨오게 한 걸 보니 아무래도 더 있어야 할 모양이었다.두 어르신의 불만 가득한 눈길이 동시에 정우진에게 꽂혔다.“몸 상태가 기준치에 못 미쳐서 퇴원할 수 없어.”그때 정우진이 담담하게 설명했다.그는 정태석의 전신 검사를 진행했는데 몇 가지 수치가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난 상태였다.의사는 최소 일주일은 더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권유했다.“나도 의학 좀 알아. 다 늙어서 생기는 고질병이니 집에 돌아가서 약이나 챙겨 먹으면 금방 나을 거야.”정태석은 퇴원 이야기만 나오면 고집을 피웠다.이에 권미희가 그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달랬다.“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며칠 더 있는 게 나쁠 거 없잖아요. 다 당신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저 녀석은 내가 잘못돼서 결혼식 미뤄질까 봐 그러는 거야.”정태석의 고집은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걱정 말아라! 죽는 한이 있어도 네 결혼식 전까진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틸 테니까.”정적만이 감도는 병실 안,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에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태석이 일방적으로 정우진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이었다.권미희가 서둘러 거들었다.“어디 결혼식뿐이겠어요? 증손주까지 봐야죠...”“맞아요.”신시아가 권미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할아버지, 마음 편히 치료받으세요. 대표님 말씀대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정태석은 콧방귀를 뀌었지만, 화살은 여전히 정우진을 향했다.별안간 정우진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고집을 부리는 할아버지 때문인지 아니면 신시아가 모르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 전혀 가늠이 안 갔지만, 안색이 어두워진 것만은 팩트였다.“할아버지, 할머니. 전 이만 회사로 들어가 볼게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신시아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7화

    조 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 직원 몇 명을 데리고 나갔다.신시아는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조 팀장이 또다시 돌아왔다.“신 비서님, 수고 많으셨어요. 점심 식사 챙겨뒀습니다.”“감사합니다.”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음식을 건네받았다.“오늘 점심은 거르는 줄 알았어요.”정우진이 갑자기 돌아와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전에 최대한 빨리 세부 사항을 확인하고 싶었다.조 팀장은 주머니에서 두유 한 병을 더 꺼냈다.“서두르지 않으셔도 돼요. 방금 언론에서 정 대표님이 은유라 씨와 함께 어느 한 고급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6화

    “사람 잘못 보셨어요.”신시아는 카드를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말씀하신 사람이 아니에요.”직원은 싱긋 웃더니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신시아 씨 사진은 저희 백화점 직원들이 각자 한 장씩 챙기고 있는걸요.”그녀의 이목구비가 워낙 뚜렷해 사진과 실물이 거의 똑같았다.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알아보고 직원 단톡방에 사진을 올린 모양이었다.“죄송해요. 이 신발 안 살게요.”신시아는 신발을 내려놓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이때 직원이 다급히 신발 쇼핑백을 들고 그녀를 따라 나와 손에 쥐여주었다.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5화

    신시아가 ‘하 대표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부르자 하선재는 두 눈을 반짝이며 왠지 모를 흥분을 느꼈다.“너를 이용해서 정 대표 괴롭힐 생각 없어. 그냥 너랑 친구가 돼서 은유라가 힘들게 할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고 뭐 또 그런 김에 구경도 좀 하고, 재밌잖아.”이에 신시아가 고개를 저었다.“친구는 서로가 원해서 하는 거죠. 미안하지만 저는 친구 될 생각 없습니다!”하선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그럼 대시해야겠다. 대시하는 건 네 동의가 필요 없으니.”“차라리 병원 돌아가서 치료나 받으세요.”신시아의 얼굴이 굳어

  • 대표님 아이 아니라고요!   제54화

    “남편분은 같이 안 왔나요?”산부인과 의사는 초음파 사진을 살피며 말했다.“아기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산모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그래도 남편이랑 함께 임신 기간을 보내고 애가 태어난 후에도 육아에 꼭 참여하도록 하세요. 그게 아이한테도 훨씬 좋은 거거든요.”신시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남편이 일이 있어서 못 왔어요.”“이따가 4D 입체 초음파 할 땐 꼭 남편분 모시고 오세요. 아이가 누굴 더 닮았는지 볼 수 있거든요. 아빠랑 아이가 유대감을 형성하는 좋은 기회예요.”산부인과 의사는 40대로 돼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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