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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읽었으면, 이제 깨야지

Author: 유니버쓰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1 12:04:54

새벽 5시 58분.

세아는 휴대폰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참 천장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그 문장이 떠올랐다.

회장님께서 이미 알고 계십니다.

옆에서 도헌이 몸을 뒤척였다. 팔이 허리를 감아 끌어당겼다. 맨살에 닿는 체온이 어젯밤 그대로였다. 그게 더 견디기 어려웠다.

“……읽었지.”

잠긴 목소리가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세아의 몸이 굳었다.

"자는 줄 알았는데요."

“3시에 진동 소리 났을 때부터 깨어 있었어. 당신이 숨을 멈추는 것도 들렸고.”

“…….”

"모른 척해 줄 수도 있었어. 근데 그러면 당신은 나를 더 의심하겠지."

도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앉았다. 시트가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어둠 속에서 어깨와 등의 선이 푸르스름하게 드러났다. 세아의 시선이 그 위를 지나다가, 어젯밤 자신의 손톱이 남긴 붉은 자국에서 멈췄다. 귀가 달아올랐다.

"보지 마."

“……안 봤어요.”

"봤어. 지금 당신 숨이 달라졌거든."

그가 낮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 비서관은 회장님의 사람이야. 내 아버지, 강태성 회장."

세아의 눈이 커졌다.

"당신 아버지 회사를 인수하라고 지시한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든 사람."

“……찍었군요. 결국.”

"찍었어."

변명은 없었다. 세아는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당기며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 따뜻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그럼 어젯밤 잠꼬대는요. 제가 막았어야 했다는 건."

"제3조를 깨는 중이야. 끝까지 들을 수 있겠어?"

“……말해요.”

"당신 아버지는 그 서류를 보기 전에 이미 쓰러지셨어. 나는 그걸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인수 승인서에 서명했어. 그날 병원에 있던 사람이 나였다는 건."

도헌의 목소리가 거기서 끊겼다. 턱 근육이 굳었다.

“……여기까지만. 나머지는 아직 못 해. 내가 확인 못 한 게 하나 있어서.”

"그걸 믿으라고요?"

"믿으라고 안 해. 당신 손으로 찾으라고 했잖아."

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노가 올라오는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원수라고 소리쳐야 하는 순간에, 그의 어깨가 이렇게 작아 보이다니.

“……죄책감이었군요. 저를 곁에 둔 이유.”

"처음엔."

"처음엔?"

도헌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지금은 아니야."

짧은 대답이 방 안을 채웠다. 세아는 대꾸하지 못했다.

“6시까지 2분 남았어.”

“……그게 뭐요.”

“2분은 내 사람이잖아.”

그의 손이 세아의 턱을 감쌌다. 엄지가 입술 가장자리를 눌렀다. 어젯밤과 다르게 급했다. 질문을 막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놓칠까 봐 불안한 사람의 손이었다.

"도망가고 싶으면 지금 말해. 이 문장만 지키면 돼. 안 된다는 말."

세아는 한참 그의 눈을 보았다. 거절하면 끝낼 수 있었다. 그게 맞았다. 그런데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2분이 너무 짧잖아요.”

도헌의 숨이 멎었다. 다음 순간 그가 세아를 시트 위로 눕혔다.

입맞춤은 어제보다 깊고 어두웠다. 숨을 나누고, 틈을 파고들고, 놓아주었다가 다시 물었다. 세아의 팔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의 손이 허리선을 따라 내려가 허벅지 안쪽을 지나갔다. 느리고 정확한 손길에 세아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여기, 어제 내가 놓친 곳."

“……말하지 마요.”

"말해야지.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으니까."

그의 입술이 쇄골을 지나 가슴 위에서 멈췄다. 뜨거운 숨이 피부를 적셨다. 세아가 시트를 움켜쥐며 숨을 삼켰다.

“……도헌.”

"응."

"그렇게, 보지 마요."

"싫어. 당신이 무너지는 얼굴, 아껴 둘 만큼 아깝지 않아."

세아가 팔로 얼굴을 가리려 하자 그가 손목을 붙잡아 베개 위로 눌렀다. 깍지가 엮였다. 허리에 그의 체중이 천천히 얹혔다. 몸이 맞닿는 곳마다 불이 번졌다. 세아의 입술에서 참았던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는 그 소리를 삼키듯 입을 맞췄다. 어둠 속에서 호흡이 엉키고, 이름이 끊어지듯 불리고, 시트가 거칠게 구겨졌다.

그 순간, 세아는 알았다.

분노를 놓친 게 아니었다. 분노가 있는 채로, 이 남자에게서 도망칠 수 없는 거였다.

삐---.

6시 알람이 울렸다. 도헌의 이마가 세아의 어깨에 툭 떨어졌다. 두 사람의 숨이 한참 가빴다.

“……시간 됐네.”

“……네.”

"이제부턴 당신 시간이야."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트로 그녀를 감싸 주고, 협탁 위 물컵을 건넸다. 그러고는 평평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8시 보고. 오늘 이사회는 오 비서관도 참석한다.”

세아가 컵을 쥔 채 눈을 들었다.

“……제가 그 사람을 만나도 됩니까.”

"만나. 대신 하나만."

도헌이 셔츠를 걸치며 등을 보였다.

"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오늘 밤 10시엔 여기로 돌아와. 약속해."

"왜요."

"그 사람은 당신에게 거래를 제안할 거야. 내가 모르는 걸 알려 주겠다고."

세아의 손이 컵 위에서 멈췄다.

“……그게 사실이면요?”

"그럼 나보다 그 사람을 믿어도 돼."

도헌은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문 앞에서 아주 낮게 덧붙였다.

"하지만 세아. 그 사람이 거래를 먼저 꺼낸다면, 그건 내가 모르는 게 아니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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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야간 특약은 100일입니다   13화. 서명 위에 서명을

    "서명하지 마세요, 대표님."서재 문이 열렸다. 문턱에 선 남자는 회색 코트 차림에 오른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세아는 그 얼굴을 알았다. 아버지 곁을 20년 지킨 사람, 최진우 이사였다. 3년 전 사고로 죽었다고 들은 사람이었다.“……최 이사님?”"오랜만입니다, 아가씨. 놀라시는 건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이걸 보셔야 합니다."그가 태블릿을 책상 위에 세웠다. 화면이 켜지고, 가죽 의자에 앉은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강태성 회장이었다. 도헌과 같은 눈매인데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아들아. 새벽부터 부산스럽구나."도헌의 손이 펜 위에서 멈췄다."계약서를 고치려는 모양인데, 그 종이는 원본이 아니다. 원본은 3년 전부터 내 금고에 있어. 너희가 쓰는 건 사본에 불과하지."세아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그렇다면 회장님은 왜 지금 전화를 거셨죠? 사본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을 텐데요."화면 속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영리하구나, 한도식의 딸답게.""사본이 무의미하다면 최 이사님을 이 새벽에 여기 보내실 이유가 없어요. 서명이 무서우신 거죠. 우리가 같은 종이에 이름을 올리는 게."침묵이 흘렀다. 노인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굳었다. 도헌이 세아를 보았다. 놀라움 뒤로 낮은 웃음이 스며들었다.“……이게 내가 반한 사람이야, 아버지.”"도헌, 네가 그 아이 때문에 무엇을 잃는지.""잃을 건 이미 잃었어요. 3년 전에."도헌이 펜을 들어 세아가 적은 부칙 아래에 이름을 휘갈겼다. 세아가 그 옆에 자기 이름을 겹쳤다. 두 사람의 서명이 한 줄 위에서 엉켰다. 시계가 정각 6시를 알렸다.화면 속 강태성이 천천히 몸을 뒤로 젖혔다."좋다. 그럼 이것도 보거라."카메라가 옆으로 돌았다. 병실이었다. 침대에 누운 한도식 회장, 그 곁에 서 있는 여자. 긴 머리를 한쪽으로 넘긴 한서린이 그의 어깨 너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표정이 없었다.세아의 숨이 멎었다."서린 양은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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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조를 읽은 사람이 있어.”도헌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세아는 침대 끝에 서서 휴대폰 화면을 내밀고 있었다. 새벽빛이 그의 맨어깨 위로 차갑게 번졌다."서린이 보낸 거예요. 민재가 봉투를 가져갔대요."“……열었겠지. 그 녀석은 열어.”"조항에 뭐라고 쓰셨어요. 이제 말해 줘요. 읽힌 이상 비밀이 아니잖아요."도헌은 오래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제77조. 본 조항이 계약 당사자 외 제3자에게 열람된 경우, 계약은 그 시점으로부터 24시간 후 자동 종료된다. 종료 후 갑은 을에게 접근하지 않으며, 을의 가족에 대한 보호 권한 일체를 을에게 이양한다."세아의 입술이 벌어졌다.“……접근하지 않는다고요? 당신이?”"당신 아버지가 쓰게 하셨어. 계약이 새어 나가면 강태성의 칼끝이 당신으로 향할 거라고. 그때는 내가 당신 곁에서 떨어져야 당신이 안전하다고.""그래서 77일째 밤이 아니라.""이 조항은 원래 77일째에 읽게 할 생각이었어. 그때쯤이면 당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빨리, 이렇게 읽힐 줄은."시계는 5시 52분을 가리켰다. 세아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24시간이면, 내일 새벽 6시 전까지네요.”"세아.""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계약상으로는.""그래서 보내야 해. 지금이라도 당신을 병원으로 보내고, 나는.""싫어요."대답은 짧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세아가 침대 위로 한 무릎을 올렸다. 가운 끈이 느슨하게 풀리며 어깨선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의 턱을 손끝으로 올렸다."계약이 끝나기 전 24시간이 남았어요. 제1조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였죠. 그건 틀렸어요."“……뭐가.”"오늘은 낮도, 밤도, 전부 당신 거고 내 거예요. 제가 정한 규칙이에요."도헌의 숨이 목에서 걸렸다."세아, 지금 그런 말을 하면.""하면요?"“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내가 당신을 못 보내.”"안 보내면 되죠."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그날 하루는 이상하게 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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