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외골수

천성이 외골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7
By:  은울림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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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지 10년.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어. 어릴적 세상 물정 모르던 귀여운 또라이는 어디가고 생활에 쪼달려도 보고, 남자에게 배신도 당해 보고, 혹독한 사회 생활 중에 갑질도 당해보면서.. 한없이 순진하고 자유로웠던 나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채 겁많은 33살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10년 만에 안진호가 아니라 안서후가 되어 나타난 너는, 그렇게 말없이 사라졌다 또 예고없이 나타난 너는,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날 쳐다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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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 아이스T

구두는 선호하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서 의상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고 발걸음 가볍게 출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니커즈는 무채색, 그 중에서도 깔끔하고 심플한 화이트를 즐겨 신는 편이다. 

라임은 지난 달, 회사에서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겨버렸다.

 이전 집에 비해 2배 이상의 전세값으로 일찌감치 포기하려 했다가, 은행님의 자비로 딱! 전세 값을 맞추고, 기분 좋게 입주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 좋고,

30분 더 잘 수 있어 좋고,

무자비하게 밟히던 스니커즈를 지킬 수 있어 좋아,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다. 

물론, 오늘처럼 아침부터 뙤약볕이 태워버릴 듯 쏘아 대면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불평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니까.

드디어 도착한 회사 로비는 천국이 따로 없다

“와~ 죽는 줄 알았네~”

“과장니임~~~”

디자인부 이하영 대리가 쫄쫄쫄 달려와 쓰윽~ 팔짱을 끼며 기대왔다.

“하영아~ 오늘 왜 이렇게 덥냐?”

“그러게요, 저 요 앞 지하철에서 1분 걸어오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요”

“아무리 7월이라도, 아침부터 이러는 건 좀 너무한 듯 싶다”

“제 말이요~”

아론그룹 아론리빙. 그중에서도 제품 디자인부에 속해 있는 이들은, 오늘부터 들어갈 크리스마스 신제품 기획으로 한동안 정신없이 바빠질 계획이다. 

띡, 띡,

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아직 시간 널널한데⋯ 아아 콜?”

“아니~ 난 또 왜 그냥 들어가시네 했네~ 빽~!!”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빠져나와 로비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맞다! 과장님 그거 들었어요?”

“못 들었어”

“뭔 줄 알고”

“뭔데?”

이상한 대화법이 익숙한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하영이었다.

“그, 아론 어페럴 런던 지사에 부사장님 있잖아요”

“어~”

“이번에 저희 아론 리빙으로 오신대요”

“그래? 오셔서 뭐하시는데?”

“허엇⋯. 일하시지 뭐하셔요?”

“본사로 안 가시고 왜”

“원래 그림이랑 디자인에 조예가 깊으시대요”

“그래서 런던 패션쪽을 맡으셨던 거구나. 뭐⋯ 리빙쪽도 잘 맞겠네”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도 하영의 조잘거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디자인실에서는 조잘거림에 진저리를 치는 고팀장이 있기에, 밖이나 탕비실에서 몰아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놓는 걸수도⋯

그런 하영을 귀엽게 여기는 라임은, 유독 그녀를 잘 받아 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요. 그 부사장님 별명이 뭔 줄 알아요?”

“뭔데?”

“아이스티요”

‘뭐지? 평소에 말을 달콤하게 하는 스타일인가?’

“아이스티 맛있지”

“아니, 아니요~ 티가 그 티가 아니라 대문자 T요. 아이스 + T”

달콤한 아이스티가 아니라, 차가운데 극 T를 자랑하는 성향이라니..

혹시 마주치더라도 절대 고개 들지 말고, 눈은 깔고, 발은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걸리면 끝장나겠는데?”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대요”

“웃을 일이 없나 보다”

“키랑 몸은 또 운동선수 같아서 진짜 후덜덜 하대요..."

"운동 선수도 종목에 따라 체격이 다 다르지~"

"아니이~ 그 뭐냐... 아! 배구. 꼭 배구선수 같은 몸이라고 하더라니까요"

배구선수라는 말에 라임의 가슴 언저리가 찌릿해졌다.

잠시 할 말을 잃은 라임은 일부러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 빨대를 입속으로 쑤셔넣었다.

정말 바보같다. 10년이 흘렀건만, 그 애와 관련된 단어 하나에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 치는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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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시루깨비
시루깨비
다른사이트에도 연재해주심 안될까요?(조이##,tapoo) 여긴 정기구독이 없어요
2026-10-21 22:48:48
1
0
이우찬
이우찬
가슴이 먹먹하네요ㅠㅠ 직진 남주 좋아요
2026-10-13 13:23:15
4
0
라라라
라라라
..............................
2026-10-13 13:10:56
3
0
74 Chapters
1. 아이스T
구두는 선호하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서 의상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고 발걸음 가볍게 출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니커즈는 무채색, 그 중에서도 깔끔하고 심플한 화이트를 즐겨 신는 편이다. 라임은 지난 달, 회사에서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겨버렸다. 이전 집에 비해 2배 이상의 전세값으로 일찌감치 포기하려 했다가, 은행님의 자비로 딱! 전세 값을 맞추고, 기분 좋게 입주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 좋고,30분 더 잘 수 있어 좋고,무자비하게 밟히던 스니커즈를 지킬 수 있어 좋아,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다. 물론, 오늘처럼 아침부터 뙤약볕이 태워버릴 듯 쏘아 대면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불평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니까.드디어 도착한 회사 로비는 천국이 따로 없다“와~ 죽는 줄 알았네~”“과장니임~~~”디자인부 이하영 대리가 쫄쫄쫄 달려와 쓰윽~ 팔짱을 끼며 기대왔다.“하영아~ 오늘 왜 이렇게 덥냐?”“그러게요, 저 요 앞 지하철에서 1분 걸어오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요”“아무리 7월이라도, 아침부터 이러는 건 좀 너무한 듯 싶다”“제 말이요~”아론그룹 아론리빙. 그중에서도 제품 디자인부에 속해 있는 이들은, 오늘부터 들어갈 크리스마스 신제품 기획으로 한동안 정신없이 바빠질 계획이다. 띡, 띡,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아직 시간 널널한데⋯ 아아 콜?”“아니~ 난 또 왜 그냥 들어가시네 했네~ 빽~!!”다시 왔던 길 그대로 빠져나와 로비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맞다! 과장님 그거 들었어요?”“못 들었어”“뭔 줄 알고”“뭔데?”이상한 대화법이 익숙한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하영이었다.“그, 아론 어페럴 런던 지사에 부사장님 있잖아요”“어~”“이번에 저희 아론 리빙으로 오신대요”“그래? 오셔서 뭐하시는데?”“허엇⋯. 일하시지 뭐하셔요?”“본사로 안 가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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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사장님 내려오셨습니다
그렇게 아이스T 부사장 얘기에 열을 올리던 하영은, 엘리베이터를 탐과 동시에 입을 닫았다. 입사 3년 차 대리는 말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너무도 잘 구분하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좋은 아침입니당~”“안녕하세요~”“이과장님, 이대리 하이”“오셨어요~”일찍이 출근해 앉아 있는 권대리와 김사원이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고, 두 사람은 각각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 놓았다.“이과장님, 공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저희 내일 정장 입어야 한다는요”디자인팀은 복장에 대해 자유로운 편이다. 겉이 번지르르 한 것 보다, 제품이 번지르르 하게 나오는 게 더 좋으시다는 회장님만의 배려(?)라고나 할까?그런데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건, 회사 내에 중요한 행사가 생겼다는 뜻이니.. 반가울리 만무했다. “으~ 또 뭐야~~”몸서리를 치며 컴퓨터를 켠 라임은 메신저에 떡 하니 떠있는 공지사항을 확인했다.-내일 오전 10시, 아론리빙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안서후 부사장님의 아론리빙 대표 취임식이 열릴 예정이니⋯⋯-“와~ 하영대리야 너 진짜 정보통 하나는 끝내준다. 좀 전에 들었는데 다음날 바로 취임식 해버리네”“제 말 맞죠? 우리 내일 무조건 뒷 줄 사수해야 해요 아이스T와 최대한 멀~~~~리”그때, 급하게 뛰어 들어 온 고팀장이 입구 기둥을 잡고 숨을 고르기 시작한다. “다들, 책상 정리 하고, 탕비실 정리랑 바닥 좀 닦아야겠어”“네? 무슨 일 있어요 팀장님?”“부사장님이 벌써 출근 하셨거든. 근데⋯ 1시간 후에 디자인부 인사하러 내려 오신대”고팀장의 말에 1팀 사람들은 당황한 나머지 입만 벙긋 버리고 서있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라임이 미간을 좁히며 묻는다“아니, 취임식 내일이람서요”“취임식 전에 보시겠단다~”“디자인부 보러 오시는 거면 다른 팀에게도 전달해야 하지 않아요?”우당탕탕, 끼익~~ 쓱~ “소리 안 들리니? 2,3,4 팀은 이미 행동 개시 했어.”“꺅~~!!!”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소리를 지르며 정신없이 청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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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도 안되는 상황
“아하..하하⋯ 부사장님이 너무 잘생기셔서 우리 이과장이 당황했나보네요⋯ 이과장!”“안녕하십니까 이라임 과장님”지금껏 아무 말 없이 손만 내밀던 그가 처음으로 악수와 동시에 인사를 건넸다.“이과장 뭐해!”“아! 안..안녕하십니까”부장의 호통에 정신이 든 라임이 덥썩 손을 마주 잡았다가 얼른 놓아버렸다.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자신의 손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잡고 있는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라임을 내려보았다.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네가 아닌 것이 없는데⋯ 왜 네가 안진호가 아니라 안서후인지. 왜 넌⋯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그리고, 왜 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마구 어지럽혔다.라임이 손을 빼내려 좀 더 힘을 주자 그제야 손을 놓아주는 부사장 안서후였다.서후는 이하영 대리와 권차준 대리, 김명서 사원까지 아무 말 없이 악수를 하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섰다. 그리곤 남비서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2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갔다. 부장과, 나머지 비서 한 명과 함께 사라진 서후의 자리에는 남비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안서후 부사장님의 비서 남우진입니다. 부사장님께서는 런던에서도 디자인 부서를 따로 관리하실 정도로 관심과 조예가 깊으십니다. 런던과 마찬가지로 아론리빙 에서도 디자인 부서를 따로 관리하시고 돌아보실 계획입니다. 하여, 디자인 부서는 특별히 내일 취임식 시에 지정된 좌석에 착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남비서는 묵례로 간단히 인사를 한 후 그대로 1팀을 빠져나가 2팀실로 넘어갔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 앉은 후에도 라임은 홀로 넋이 나간 채로 멍해져 있었다. “과장님~ 지정된 장소면 가까운 곳이겠죠?? 저 아름다운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겠죠?”“⋯⋯⋯”“과장님?”“⋯.어?”평소 답지 않는 라임의 모습에 하영은 걱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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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존대
“오랜만입니다”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줄만 알았던 서후가 새하얀 벽에 기댄 채 로우한 음성으로 말했다.기대 있던 몸을 바로 하더니,또각 또각..두 발자국 만에 라임의 앞에 섰다.라임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서후를 바라만 보았다.10년이 지났지만, 매끈한 피부와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눈 코 입은 여전히 아름다웠다.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라임이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라임의 어색한 인사에 서후는 말없이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원래 말이 없던 그 애는 30살이 되어 더 말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 버린 듯했다.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시선을 떨구고 있는 라임과, 그런 라임을 바라보고 있는 서후⋯그러고 보니 모두가 업무에 들어갔을 시간이라 화장실에 오가는 이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라임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침묵을 깨뜨렸다.“그럼⋯ 저는 이만..”“여전히.. 소화가 잘 안되나 봅니다”뒤돌아 서며 발길을 떼는 라임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걸어 오는 서후였다.“아닙니다. 그럼 이만”라임은 다시 한 번 꾸벅 인사를 하고 1팀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라임의 뒷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서후는, 이미 문 뒤로 사라져 버린 그녀이지만, 눈에 고이 새겨 두려는 듯 더 오래 그녀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고 서있었다.“후⋯⋯.”슬픔이 내려 앉은 눈을 깊은 한숨과 함께 지긋이 접어두고 조금 더 그곳에 서있었다.이내 천천히 몸을 돌려 걸었다.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또각멀어져 가는 구둣발 소리가 구슬프다.*띵..19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서후가 내려 부사장실을 향해 걸었다.마침, 서후를 기다리고 있던 남비서가 서후를 뒤따랐다.“김비서는요”“잠시 인사과에 갔습니다”부사장실 안에 들어선 서후가 자켓을 벗어 깔끔하게 걸어둔 후 책상 앞에 앉았다.“그분과는 인사 나누셨습니까?”남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서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존대를 하더군요⋯”“그분이 말씀입니까?”“저도 마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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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피아노와 그림
‘안녕하십니까 부사장님’서후는 당황했다.어제 잠들기 전까지 서후의 머릿속은 라임과의 재회를 상상하느라 바빴다.10년 전의 그녀라면, 분명히 눈물을 터뜨리고 주먹으로 자신을 마구 벌주며 따지고 들겠지.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왜 돌아오지 않았냐고, 10년 동안 어떻게 소식 하나 없이 숨어 버릴 수 있냐고..지금 이 모습은 무어냐고.. 마구 쏟아내며 자신을 원망할 것이다.그리고 미안해 한마디에 씩씩 대면서도 마음을 열어 주겠지.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얘기하라고 협박하겠지..그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얘기해 주어야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그 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그럼 그녀는 또 그때처럼 자신을 안아줄 것이다. 억지로 웃겨주려고 기막힌 행동들을 해가며 결국 또 자신을 실없이 웃게 만들어 줄 것이다.그런데⋯.‘그럼⋯ 저는 이만..’10년은 너무 길었고,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다.‘여전히.. 소화가 잘 안되나 봅니다’그녀를 붙잡고 싶어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아닙니다. 그럼 이만’낯선 그녀의 뒷 모습이 창살이 되어 제 심장에 박혀 왔다.아픈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그날 저녁]쿵- 짝- 쿵쿵- 짝, 쿵- 짝- 쿵쿵- 짝,연습실 문을 빼꼼 열고 들어간 라임은 환하게 웃으며 쩡이씨를 불렀다“와~~ 우리 쩡이씨 오늘도 일등으로 오셨네”“호호호호~ 우리 라임은 오늘도 이등으로 오셨네?”올해 75세가 된 쩡이씨는 밴드 “야호”의 정신적 지주 이자 드러머이다.4년 전 라임의 단짝 친구인 유주가 운영하는 실용음악 학원에 드럼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던 쩡이씨는, 지금껏 유주가 경험했던 어떤 수강생 보다 열정이 넘쳤고, 연습량도 많았으며, 실력 또한 일취월장이었다.드럼 강사가 입이 닳게 칭찬을 할 정도였다.라임과는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유주는 라임이 건반을 칠 때, 그 옆에서 베이스를 치며 중, 고등학교 밴드를 함께 이끌었다.라임은 클래식 피아노로, 유주는 베이스로 진로를 결정해 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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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날
라임이 초등학교 6학년, 진호가 3학년 이었던 어느 봄 날 이었다그 날도 먼저 수업이 끝난 진호는, 라임이 끝나는 시간까지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읽었다.그리고 6학년 수업이 끝날 무렵 학교 건물 앞으로 먼저 나가 라임을 기다렸고,라임은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뒤에서부터 헤드락을 걸어오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함께 학교 근처 학원가로 가면, 같은 건물 2층으로 올라가 라임은 피아노 학원으로, 진호는 그 옆 미술학원으로 들어간다.집으로 올 때도 두 사람은 늘 함께 만나서 돌아오고 했다.얼핏 6학년 라임이 3학년 진호를 챙겨 다니는 것처럼 생각 될 수 있으나, 실제로 두 사람의 키 차이는 크지 않았고, 옆에서 조잘조잘 되며 잘 넘어지기까지 하는 라임을 늘 일으켜 주고 흙을 털어주고 가방을 들어주는 쪽은 진호였다.조잘대느라 신호도 제대로 안 보고 그냥 발이 닿는 대로 걷는 라임의 책가방 고리부분을 손으로 붙잡자 라임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당겨 왔다그제야 신호등이 빨간 불 임을 확인한 라임이 민망한 듯 웃었다.“아! 큰일 날 뻔 했네~~ 땡큐 찐호 동생!”“제발 좀⋯..”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 진호였다.말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라임은 입술을 쭉 내밀고 혼잣말로 궁시렁 궁시렁 대며 걷는다.“그럴 수도 있지⋯궁시렁 궁시렁 궁시렁..”초등학교 3학년 밖에 안된 녀석이 어디서 배운 것인지 인도에 들어서면 찻 길 쪽엔 자신이 서고 라임을 안쪽으로 세운다라임이 얘기하다 흥분해 앞도 제대로 안보고 걷다 부딪히기라고 할까봐, 라임의 주위를 살피며 걷는 건 언제나 진호 몫이었고,실제로 사람이나 기둥등에 부딪히려고 할 때마다 진호가 가방을 움켜지고 몸을 붙들곤 했다.집에 거의 다 도착했는데 이상한 상황에 진호의 머리가 갸웃 거린다.라임도 이상하게 느끼긴 마찬가지였다“어? 가게 문이 왜 닫혀 있지?”우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라임은, 아빠가 가게 문도 닫고 어디로 갔는지 몹시 의문스러웠다.한 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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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귀똘
급하게 마련된 빈소에는 라임의 모친 서정과 진호의 모친 해리의 합동 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고, 옆 빈소에는 함께 차에 타고 있던 꽃집 이모의 장례식이 따로 마련되었다.검은 차림의 부친 세훈과 훈종은 상주 완장을 찬 채 장례식장 안으로 어떨떨한 표정을 한 채 들어오는 자신의 자녀들을 꼭 끌어안았다.본격적으로 손님들을 맞이한 빈소에는 함께 사고를 당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입원중에 있는 세 사람의 가족이 찾아와 함께 울었고,6명이 함께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받은 50대 트럭운전사는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두 아이는 손을 꼭 잡고 한시도 떨어지길 싫어했다.지금, 소중한 엄마를 잃은 허망함과 슬픔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서로가 유일했으니⋯.한 아이가 울면 한 아이가 안아주고, 또 한 아이가 울면 반대로 한 아이가 안아주면서.. 그러다 둘다 울음이 터질 때면 서롤 부둥껴 앉고 울기를 반복했다.***[1년 후]2층짜리 주택, 1층에는 라임이네가, 2층은 진호네가 함께 살고 있었다.세훈과 훈종은 아이들을 위해 공간을 합치고 늦게까지 일하는 세훈을 대신해 훈종이 기사식당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일찍 퇴근 후 살림을 맡았다.세훈은 늘 넉넉하게 생활비를 보태왔고, 그러면서도 늘 미안해 했다.그렇게 두 집안은 하나의 집에서 진짜 가족처럼 살아갔다.아이들이 자고 있는 캄캄한 밤. 가끔 두 사람이 그리운 제 아내를 기억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함께 추억을 곱씹었다. 그렇게 두 남자의 우정도 더욱더 두터워져 갔다.라임은 다시 밝고 정의로웠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진호는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이 집 안에서 만큼은 웃음도 표현도 자유로웠다.가끔 라임에게 잔소리를 쏟아 놓을 때면 “얘가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그렇게 1년, 2년, 3년..라임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진호는 중학생이 되었다같은 재단인 하일중, 고등학교는 운동장도 급식실도 다 따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각각 교실 옥상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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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체념
정신 연령은 뭐⋯.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라임 자신이 정신 연령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진호 녀석이 워낙 높은 탓에.. 가끔 보면 저 속에 중년쯤 되는 어른이 들어앉아 있다거나, 인생 3회차 정도 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으니까..***"서후 왔니?""네"나긋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손자를 반기는 서애정 회장은 보던 책을 덮고 돋보기 안경 또한 고이 벗어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서후 쪽으로 다가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손수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였다손주를 처음 만난 장소는 그리웠던 아들 세훈의 장례식장이었다.제발 살아만 있어주길..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라고 또 바래 왔건만..."어? 서후 왔네? 오늘 첫 출근 어땠어?""괜찮았어요""내일 취임식 하고 출근해도 되는데~ 역시 부지런해"고모 안세희는 아론기업 사장으로 현재 본사와 솔의 나라(아론 화장품) 대표직을 오가며 바쁜 나날은 보내고 있었다.오빠이자 서후의 아버지인 세훈의 사망 소식을 제일 먼저 접하고 서애정 회장을 모시고 장례식장을 찾아갔던 사람도 세희였고, 이후 군인 신분인 서후의 자대를 찾아가 서후의 원래 자리를 되찾아 주기 위해 설득했던 사람도 세희였다.세희는 오빠의 빈자리를 홀로 채우며 서회장 곁을 지켰다나이 50이 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일부러 자식도 두지 않은 것은 평범한 행복을 찾아 떠난 세훈이 준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겠다.이렇게 발버둥쳐야, 목숨을 걸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평범하고 자유로운 행복이라면, 제 자식에게는 이런 숨 막히는 재벌가의 삶을 대물림 해주고 싶지 않았다."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제 방으로 올라가는 서후의 뒷모습을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우리 서후 환하게 웃는 모습 한 번만 봤음 좋겠네""우리 잘못이지...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22살. 1월 어느 날 진호는 전역을 하고 부대를 나섰다.그가 돌아가고 싶은 곳과 가야 할 곳은 달랐기에, 진호는 한참이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대 앞에 서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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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가 누구냐고?
"미쳤나봐 진짜. 그 좋은 델 네가 왜 나와?""후... 마주칠 자신이.. 없어.. 옛날 진호는 이미 없더라고.. 날 대하는 말투도.. 지금 그 애 위치도, 걸치고 있는 명품들도.. 그냥 다 낯설고.. 다른 사람 같아서... “유주는 말없이 라임을 안아주었다.***"꺅! 늦었다!"새벽 늦게 잠이든 까닭인지 알람도 못 듣고 20분을 더 자버렸다깜짬 놀라 일어난 라임은 급하게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며 잠에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유주를 향해 말했다"나 먼저 출근한다. 너 알아서 출근해!"유주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손을 훠이 훠이 저으며 얼른 나가라는 제스쳐를 취했다취임식이 있는 날이라 옷을 갖춰 입고 오랜만에 구두를 신었다세상 불편한 발을 빠르게 굴리다 급기야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뛰기 시작한다"헉 헉 헉..."이 더위에 뜀박질까지 하고 보니 앞머리가 살짝 젖어 있었다.천국이 따로 없는 로비의 시원한 공기에 숨을 고르고 게이트 쪽으로 걸었다그때, 로비 끝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는데, 한 젊은 여성이 미화부 아주머니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막말을 해대고 있었다.시간을 확인한 라임은 지금 이 게이트를 넘어야만 출근 시간을 아슬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게이트를 들어서려는데....팍!무언가 바닥에 쳐박히는 소리에 몸을 틀고 소란스러운 쪽으로 걸어갔다."아니..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안 그럼 아줌마가 이거 다시 사 줄 거예요? 이 옷이 얼마짜리인 줄 알아? 아줌마 한 달 월급으로도 안돼“라임은 엄마뻘 아주머니에게 막말을 퍼붓는 젊은 여성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무리 중 한 사람인 2팀 김대리에게 물었다."뭐 어떻게 된 거야?""어? 과장님 안녕하세요? 그게..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고 계셨는데 저 여성분이 휴대폰 보면서 걷다가 아주머니를 못 봤나 봐요. 그래서 부딪혔는데 자기가 들고 있던 커피가 옷에 좀 묻었대요. 그랬더니 계급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일이 어떻고 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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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약.혼.자
순간 라임은 온몸에 힘이 빠지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애써 꽉 붙잡고 섰다.구경 중이던 직원들도 놀랐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라임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떠난 사람, 다시 나타났다고 한들 처음부터 달라질 건 없었는데..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면 그만이었는데.. 어제 새벽까지 안서후 때문에 감정 낭비한 것이 후회스러웠다."그래서. 여기 직원이나 임원은 아니시라는 거네요? 그럼 닦으세요""뭐...뭐? ""당신이 여사님한테 월급 주는 거 아니잖아! 근데 왜 여사님한테 닦으라 마라 명령질이지? 당신이 일부러 저렇게 만들어 놓고는!""이게 진짜..""그리고! 핸드폰 보면서 걷지 마세요. 여사님한테 부딪혀서 망정이지 여기 베너나 벽에 부딪혔으면 쪽팔림은 오롯이 당신 몫이었습니다""무슨 일이죠?"그때, 무리의 밖에서 들리는 또렷한 목소리에 모든 시선들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어? 오빠~ 서후오빠~"좀 전까지 반말로 버럭버럭 막말을 쏟아 내던 여성의 목소리가 희한하게 변하며 서후에게 달려가 팔짱을 낀다.서후는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라임에게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박샤론의 막무가내 행동이 괜찮아서가 아니었다. 박샤론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라임에게 집중해 있던 탓이었다.라임은, 여성의 팔짱을 그대로 받아주는 서후의 모습에 다시 한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그리곤 아무도 알 수 없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충분히 알겠다는 의미었다. 안서후는 더 이상 진호가 아님을, 자신의 머릿속에 이제 진호의 존재는 완전히 덜어내야 함을 스스로에게 다짐시키는 끄덕임이었다.직원들이 일순간 길을 트며 당황스러워하고, 무슨 일이냐 물었던 남비서가 라임의 곁으로 다가왔다."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서후에게서 시선을 거둔 라임이 남비서를 바라본다."부사장님 약.혼.자. 분이 핸드폰 보시며 걸으시다 일하고 계시는 여사님과 부딪혔고, 그러면서 본인이 들고 있던 커피가 옷에 묻었고, 본인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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