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네가 사라진 지 10년. 그동안 나도 많이 변했어. 어릴적 세상 물정 모르던 귀여운 또라이는 어디가고 생활에 쪼달려도 보고, 남자에게 배신도 당해 보고, 혹독한 사회 생활 중에 갑질도 당해보면서.. 한없이 순진하고 자유로웠던 나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채 겁많은 33살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어. 그런데 10년 만에 안진호가 아니라 안서후가 되어 나타난 너는, 그렇게 말없이 사라졌다 또 예고없이 나타난 너는,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날 쳐다보고 있는데...
View More구두는 선호하지 않는다. 공식 석상에서 의상을 갖추어 입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고 발걸음 가볍게 출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스니커즈는 무채색, 그 중에서도 깔끔하고 심플한 화이트를 즐겨 신는 편이다.
라임은 지난 달, 회사에서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오피스텔로 숙소를 옮겨버렸다.
이전 집에 비해 2배 이상의 전세값으로 일찌감치 포기하려 했다가, 은행님의 자비로 딱! 전세 값을 맞추고, 기분 좋게 입주까지 완료할 수 있었다.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 좋고,
30분 더 잘 수 있어 좋고,
무자비하게 밟히던 스니커즈를 지킬 수 있어 좋아,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다.
물론, 오늘처럼 아침부터 뙤약볕이 태워버릴 듯 쏘아 대면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불평은 접어두기로 했다.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거니까.
드디어 도착한 회사 로비는 천국이 따로 없다
“와~ 죽는 줄 알았네~”
“과장니임~~~”
디자인부 이하영 대리가 쫄쫄쫄 달려와 쓰윽~ 팔짱을 끼며 기대왔다.
“하영아~ 오늘 왜 이렇게 덥냐?”
“그러게요, 저 요 앞 지하철에서 1분 걸어오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니까요”
“아무리 7월이라도, 아침부터 이러는 건 좀 너무한 듯 싶다”
“제 말이요~”
아론그룹 아론리빙. 그중에서도 제품 디자인부에 속해 있는 이들은, 오늘부터 들어갈 크리스마스 신제품 기획으로 한동안 정신없이 바빠질 계획이다.
띡, 띡,
게이트를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아직 시간 널널한데⋯ 아아 콜?”
“아니~ 난 또 왜 그냥 들어가시네 했네~ 빽~!!”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빠져나와 로비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향했다.
“아 맞다! 과장님 그거 들었어요?”
“못 들었어”
“뭔 줄 알고”
“뭔데?”
이상한 대화법이 익숙한 듯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하영이었다.
“그, 아론 어페럴 런던 지사에 부사장님 있잖아요”
“어~”
“이번에 저희 아론 리빙으로 오신대요”
“그래? 오셔서 뭐하시는데?”
“허엇⋯. 일하시지 뭐하셔요?”
“본사로 안 가시고 왜”
“원래 그림이랑 디자인에 조예가 깊으시대요”
“그래서 런던 패션쪽을 맡으셨던 거구나. 뭐⋯ 리빙쪽도 잘 맞겠네”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도 하영의 조잘거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디자인실에서는 조잘거림에 진저리를 치는 고팀장이 있기에, 밖이나 탕비실에서 몰아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놓는 걸수도⋯
그런 하영을 귀엽게 여기는 라임은, 유독 그녀를 잘 받아 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요. 그 부사장님 별명이 뭔 줄 알아요?”
“뭔데?”
“아이스티요”
‘뭐지? 평소에 말을 달콤하게 하는 스타일인가?’
“아이스티 맛있지”
“아니, 아니요~ 티가 그 티가 아니라 대문자 T요. 아이스 + T”
달콤한 아이스티가 아니라, 차가운데 극 T를 자랑하는 성향이라니..
혹시 마주치더라도 절대 고개 들지 말고, 눈은 깔고, 발은 빠르게 스치듯 지나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걸리면 끝장나겠는데?”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대요”
“웃을 일이 없나 보다”
“키랑 몸은 또 운동선수 같아서 진짜 후덜덜 하대요..."
"운동 선수도 종목에 따라 체격이 다 다르지~"
"아니이~ 그 뭐냐... 아! 배구. 꼭 배구선수 같은 몸이라고 하더라니까요"
배구선수라는 말에 라임의 가슴 언저리가 찌릿해졌다.
잠시 할 말을 잃은 라임은 일부러 들고 있던 아메리카노 빨대를 입속으로 쑤셔넣었다.
정말 바보같다. 10년이 흘렀건만, 그 애와 관련된 단어 하나에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 치는 제가…
탁!욕실 문이 열리고, 촉촉한 머리를 탁탁 털며 나오는 서후를 올려다보는 라임의 눈이 일렁거렸다.별일이다. 왜 심장이 이렇게 뛰는건지...1층과 2층에 살았지만, 한 집에서 가족처럼 지냈던 우리 두 사람.함께 밥을 먹고, 올림픽, 월드컵 때는 물론이거니와, 주말 저녁 인기 있는 예능 프로를 볼 때도 한 소파에서 귤을 까먹으며 같은 일상을 보냈던 우리였다.막 샤워를 하고, 물기 묻은 머리를 탁탁 털며 2층에서 내려오던 서후의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었기에, 새삼 제멋대로 뛰어대는 심장 박동 소리에 라임이 조용히 짧은 탄식을 뱉었다.30살 서후에게는 매혹적인 남성미가 진하게 배어있었다꾹꾹 눌러왔던 그간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은 눈빛은 더욱 짙고 깊어져서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려왔고,줄곧 스스로를 괴롭혀 왔던 몸은 더욱 단단해지고, 넓은 어깨는 뭐든 다 품어줄 만큼 든든했다"너두 얼른 씻어 자게.""어...어?!."당황한 라임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 버렸다."왜 그렇게 놀라? 안 잘거야? 벌써 새벽인데?""어? 자야지.. 자는데.. ""나는 이불 하나만 주면 돼 러그가 꽤 넓네""러그 위에서 자겠다고?"순간 라임은 목소리 볼륨 조절에 실패하고 말았다서후는, 웃음을 참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네 옆에서 잘까? 나야 그럼 땡큐지만“"아니..그게 아니라.. 너가 침대서 자, 내가 바닥에서 잘게"그래도 엄연한 부사장님을 바닥에 재울 수는 없다.떨어져 있는 동안, 너무도 크게 달라져 버린 현실을 모른 체하고 예전 진호를 대하듯 서후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었다.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침실로 들어가 옷을 챙겨 욕실로 들어간 라임이 샤워 후 다시 나왔을 때, 서후는 보들보들한 연한 레몬 빛 러그 위에 반듯하게 누워 한 쪽 다리를 구부리고, 한 팔을 이마에 올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벌써 잠든 건가? 침대에서 자라니까...’라임은 여름용 이불 하나를 꺼내 서후가 누워 있는 거실로 천천히 걸어갔다.러그 위에
그러고는 함께 입구 안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를 보고 서후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입구 보안 유리문이 막 닫히려고 할 때 서후가 발로 유리문을 잡았다.재빨리 뒤를 따랐는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라임의 사선 뒤에서 남자가 라임의 얼굴부터 발까지 전체 몸을 음흉한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마침 누군가가 1층으로 타고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이 내림과 동시에 라임이 올라 탔다.그리고 502호 남성도 라임을 힐끔거리며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서후는 긴다리를 뻗어 순식간에 두 사람이 탄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놀란 라임이 서후를 쳐다보았다."왜 들어왔어?"낯선 남자의 등장에 502호 남성이 당황한 듯 심하게 눈빛이 흔들렸다.서후는 라임을 자신의 뒤인 구석으로 밀고 그 앞에 서서 남자를 죽일 듯 쳐다보고 서 있었다.남자는 눈치를 보며 5층을 눌렀고,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흠흠."아무것도 모르는 라임은 서후의 옷깃을 잡으며 다시 한 번 물었다."왜 들어왔냐니까?""내 애인 지켜야 할 것 같아서.""뭐?"다정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남자를 내려다보는 서후의 눈빛은 날카로운 칼처럼 매서웠다.서후의 눈을 피하며 괜히 딴청을 피우는 남자가 5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가버렸다.라임은 문 앞에 서서 서후를 한 번 올려다 보았다."집 까지 들어가려구?""응.""에~이~ 그건 좀....""김유주랑 문성빈은 되는데 왜 난 안돼?""너랑 걔들이랑 같아?""달라? 뭐가 다른데? 말해 봐."그걸 또 굳이 말로 표현하라는 서후의 짓궂은 질문에 라임이 입술을 삐쭉 거리며 문을 열었다."그냥 들어와."서후가 자신의 오피스텔 안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모습에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댄다.유주와 성빈이 함께 집으로 오거나, 유주 혼자 온 적은 많았지만, 성빈 혼자 집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그리고, 나름 연인이라 칭했던 심희준도 이 집엔 단 한 발짝도 들여놓질 못했다.그런데 서후에게는 이렇게 쉽게 열려버린 현관문이라
난데없이 뺨으로 날아온 박태권의 커다란 손에 박샤론은 한 쪽 바닥으로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달려 나온 모친이 기겁을 하며 박태권을 말리고, 헬퍼들은 박샤론을 일으키며 겉옷을 걸쳐주었다"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어디서 그런 저급한 천쪼가리를 입고 미친년처럼 날뛰고 있어!""......흑..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고!! 왜 때리고 난리야! 고소할 거야!""고소?! 해봐 어디! 오냐 오냐 해줬더니 지 애비 얼굴에 똥칠이나 하고!""다른 사람들이 뭐라든 상관없어! 나는 서후 오빠 마음만 흔들면 돼! 서후 오빠만 나 봐주면 된다고!""하이고... 저 저... 생각 없는 것! 너는 오늘 서후가 안 올걸 정말 다행으로 생각해 알겠어?""뭐??!! 서후 오빠가 안왔다고??!!"***"부사장님. 1박 2일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감사했습니다"밤 12시가 되어서야 아론 리빙 건물 앞에 도착한 1팀은 고운 팀장을 필두로 모두 다 서후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서후는 옅은 미소만 지어보일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소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음을 1팀은 알 수 있었다.1박 2일 동안, 새로운 부사장의 모습들을 경험하며 차갑고 냉철하게만 생각했던 부사장을 한참 오해하고 있었구나 반성하게 되었다.특히 라임 앞에서는 무장해제 되는 사랑꾼 면모에 당황과 감동을 동시에 경험했다.고운은 마지막으로 팀원들에게 당부 하기를, 부사장님과 라임의 관계는 절대 발설하지 말것, 라임 앞에서도 아는체 하지 말것.두 가지를 명확히 했다."차 안가지고 오신 분들은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서후가 미리 남비서에게 부탁해 놓은 사항이었다장시간 운전한 기사는 먼저 보내기로 하고 남비서가 운전해 차가 없는 직원들을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 주기로 했다차를 가져온 고운 팀장과 소명호 과장이 먼저 인사 후 주차장으로 향했고,남비서가 차를 가져오자 이하영 대리와 권차준 대리, 김명서 사원이 남비서 차에 올랐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라
"아 왜~ 뭘 더 어떻게 해?""템포가 자꾸만 왔다갔다 하잖아. 메트로놈 연습 안 했지?“"급 떨어지게 무슨 메트로놈 연습이야"혀를 차는 모친은 기껏 돈 들여 최고급 강사를 붙여 줬더니, 강사를 개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다 결국 화를 내고 가버린 탓에 본인이 직접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 화도 나지 않는 지경이다."박샤론 너 진짜 그렇게 칠 생각이야?""누가 보면 엄마가 전공한 줄 알겠어! 엄마 보단 내가 잘 알거든? 그만 좀 해!""하...그래 네 맘대로 해라 중요한 손님들 다 초대해 놓고 너도 참 생각이 없어도 유분수지!"30분 후에 오케스트라 팀이 도착할텐데, 리허설을 잘 마칠 수나 있을는지,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결국 모친은 자리를 박차고 홀을 나와 버렸다."아 씨X 시간 존X 안가네.. 빨리 서후 오빠 보고 싶은데"서후가 싫어하는 머리 빈 여자 1호는 그렇게 혼자서 차려 먹는 김치국에 심취해 연습이고 뭐고 하나도 손에 잡히질 않는 상황이었다.그리고 드디어 저녁 7시.어둡게 암전 되었던 홀 안에 조명과 함께 무대가 열렸다.전체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찾아주신 모든 관객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오늘 독주회의 전체 컨셉과, 내용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그리고, 곧 첫 무대가 시작되었다."박샤론 피아니스트를 소개합니다 박수로 맞아 주......세요.."등장 입구를 향해 몸을 돌리며 한 손을 펼침과 동시에 무대 뒤에서 나설 준비를 하는 박샤론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말 끝을 흐렸다.‘미친거야? 저러고 나온다고?’사회자는 반대쪽 무대 뒤로 들어가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우아하게 걸어오는 발걸음에 비해 그렇지 못한 민망한 의상으로 등장한 박샤론을 보며 객석에서는 낮은 장탄이 쏟아졌다.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박태권은 딸의 민망스러운 모습에 그만 고개를 숙여버렸고, 박샤론의 모친은 너무 놀라 눈 코 입 구멍이란 구멍은 다 벌린 채 얼음이 되어 버렸다.‘괜찮아! 박샤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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