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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완료되지 않은 사람들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0 08:01:12

감사실이 보낸 확인표에는 빈칸이 많았다. 설치 완료일, 체험 종료일, 회수 요청일. 채이는 날짜보다 빈칸 옆에 적힌 고객의 말을 먼저 읽었다.

‘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았어요.’

‘취소했는데 후기 써 달라는 문자가 와요.’

같은 사람이 두 번 화를 낸 기록이었다. 첫 번째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두 번째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아서였다.

“윤 대리님, 이분 다시 전화 연결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민재가 헤드셋을 내려놓았다. 채이는 해당 건을 화면에 띄우고 고객지원 담당자가 연결해 준 전화를 받았다.

“하루온 마케팅팀 윤채이입니다. 체험 이후 연락 문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상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체험을 안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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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40화. 끝낸 빚의 바깥

    윤경수의 전화는 토요일 오전에 왔다. 채이는 세탁기에서 꺼낸 티셔츠를 털다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석 달 전 같았으면 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옷을 빨래대에 걸고 손을 닦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네, 작은아버지.”“내가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겠니.”용건보다 한숨이 먼저였다. 채이는 베란다 문을 닫았다.“무슨 일이세요?”“전에 돈 갚았다고 했지? 그 오천 말고 남은 게 있다. 네 엄마 병원에 내가 따로 넣어 준 돈하고 생활비. 이천은 더 줘야 한다.”채이는 빨래집게를 내려놓았다.“따로 빌린 돈이 없는데요.”“네가 모든 걸 알아? 어른들끼리 주고받은 게 있지.”“그럼 빌린 날짜와 송금 내역을 보내 주세요. 누구한테 빌려주신 건지도요.”경수의 목소리가 곧바로 거칠어졌다.“남편 잘 만났다고 장부부터 들이대?”“돈을 갚으려면 확인해야죠. 전에 빌린 오천만 원은 정산서까지 받아서 마쳤습니다.”“그건 안다고! 그러니까 다른 돈이라고 하잖아.”채이는 식탁으로 가서 메모장을 폈다. 다른 돈이라는 말을 그대로 적었다.“자료 보내 주세요. 확인하고 답하겠습니다.”“다음 주 일요일에 집으로 와. 네 엄마도 불렀으니까. 온 가족 앞에서 네 입으로 말해 봐.”통화가 끊긴 뒤에도 채이는 펜을 쥐고 있었다. 창가의 흰 티셔츠가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평범한 오전 한가운데에 낡은 문이 다시 열린 것 같았다.메시지는 십 분 뒤 도착했다. 표 한 장에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9화. 완료되지 않은 사람들

    감사실이 보낸 확인표에는 빈칸이 많았다. 설치 완료일, 체험 종료일, 회수 요청일. 채이는 날짜보다 빈칸 옆에 적힌 고객의 말을 먼저 읽었다.‘오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았어요.’‘취소했는데 후기 써 달라는 문자가 와요.’같은 사람이 두 번 화를 낸 기록이었다. 첫 번째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 두 번째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취급받아서였다.“윤 대리님, 이분 다시 전화 연결해도 된다고 하셨어요.”민재가 헤드셋을 내려놓았다. 채이는 해당 건을 화면에 띄우고 고객지원 담당자가 연결해 준 전화를 받았다.“하루온 마케팅팀 윤채이입니다. 체험 이후 연락 문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지금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상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체험을 안 했다니까요.”“네. 설치가 취소된 뒤에도 체험 완료로 분류돼 연락을 받으신 것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설명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채이는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펜을 움직이지 않았다. 설치 기사와 연락이 엇갈렸고, 결국 취소를 요청했으며, 그 뒤에는 제품을 받은 적 없다는 말이었다.“그럼 제 번호는 이제 빼 주세요. 사과 연락까지 자꾸 오는 것도 싫어요.”“추가 캠페인 연락을 중지하도록 접수하겠습니다. 처리 결과 안내도 원하지 않으시면 문자 없이 마무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채이는 기록 옆에 작은 표시를 했다. ‘추가 연락 원치 않음.’ 숫자 하나를 고치는 데에도 누군가의 피곤함이 달려 있었다.정우가 오후 확인 회의에 들어왔을 때, 유성컴퍼니 쪽 자리 두 개는 비어 있었다.“원자료 담당자가 휴가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8화. 철회의 조건

    명훈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뚜껑도 열지 않은 종이컵 두 개가 테이블에 나란히 놓였다.“어제 고생했어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실망도 크죠.”채이는 맞은편에 앉았다. 사업전략실 옆 회의실은 바깥 복도가 훤히 보였다. 명훈은 유리문까지 반쯤 열어 두었다. 누구든 걱정하는 임원과 위로받는 직원을 볼 수 있었다.“업무 자료 확인이었습니다.”“윤 대리는 늘 그렇게 반듯하게 말하네요.”그가 웃으며 커피 하나를 밀었다.“그런데 사람들은 자료만 보지 않아요. 업체가 친정 식구라는 걸 알면, 잘못이 없어도 피곤해져요. 내가 그게 걱정돼서 그래요.”채이는 컵을 당기지 않았다.“이미 관계는 신고했습니다.”“네, 아주 잘했어요. 이제 적당한 선에서 접으면 더 좋겠죠.”명훈은 흩어져 있던 종이를 반듯하게 맞췄다. 맨 위에 채이의 원자료 확인 요청이 보였다.“기획 건은 해결됐잖아요. 남은 것도 가족끼리 정리할 여지를 두죠. 앞으로 맡을 사업이 많은데 이런 이력이 따라다니면 곤란해요.”“어떤 이력 말씀하시는 건가요?”“친족 업체와 분쟁을 일으킨 담당자라는 인상요. 윤 대리를 위해서 드리는 말입니다.”‘담당자’보다 ‘분쟁’에 힘이 실렸다. 채이는 찻잔 받침 없는 종이컵 밑을 바라봤다. 명훈은 늘 선택지를 두 개 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한쪽 문 앞에는 먼저 불을 꺼 놓았다.“요청을 철회하면 제 업무 이력에 문제가 없도록 해 주신다는 말씀이세요?”“너무 딱딱하게 해석하지 말아요. 내가 중간에서 정리할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7화. 초안의 주인

    세리는 회의실 안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채이가 들어서자 핸드백을 옆 의자로 옮겼다. 초대받지 못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표정이었다.“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네요. 서로 아는 사이인데.”채이는 맞은편 의자를 당겼다.“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셔서 왔습니다.”은정이 나란히 앉았다. 상석에는 준법지원팀장 문지현이, 그 옆에는 감사실장 박정우가 자리했다. 도진의 자리는 없었다. 채이는 빈자리들을 한 번 보고 노트북을 연결했다.“유성컴퍼니가 원본이라고 제출한 자료부터 확인하겠습니다.”지현이 화면에 두 문서를 띄웠다. 세리의 이름이 박힌 파일과 채이가 제출한 첫 초안이었다.“아이디어는 제가 먼저 냈어요. 파일을 늦게 정리했을 뿐이죠.”세리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족끼리 대화하다 보니 채이가 참고했나 봐요. 처음엔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자꾸 우리 회사를 의심하잖아요.”채이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어떤 대화에서 말씀하셨나요?”“그걸 언제 다 기억해? 아니, 기억하겠어요. 평소에 많이 얘기했는데.”“기획 내용 중 하나만 짚어 주세요. 설치비 안내를 첫 화면으로 옮기는 이유라든가요.”“고객 편의를 위해서죠.”세리는 대답한 뒤 지현 쪽을 봤다. 채이는 그녀를 몰아붙이는 대신 다음 화면을 열었다.“첫 초안부터 신청 전에 설치비를 알리자고 제안했습니다. 다만 그때는 추가 비용이 생길 수 있다는 문장만 있었고, 고객이 자기 조건을 확인할 방법은 빠져 있었습니다.”은정의 회신이 아래에 붙었다. ‘경고만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6화. 먼저 쓴 이름

    세리의 주장은 다음 날 오전 열 시, 회사 이름이 찍힌 공문이 됐다. 유성컴퍼니가 하루온 캠페인 기획의 무단 사용을 문제 삼고, 담당자 배제와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초안 첫 장에는 윤채이 대신 윤세리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채이는 마우스를 쥔 손에서 힘을 뺐다. 유나가 옆으로 의자를 당기려다 멈췄다.“야, 이거 네가…….”“응. 내가 쓴 거야.”목소리가 이상할 만큼 작았다. 남이 자기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장면을 보면서도, 저게 정말 내 가방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은정이 메일을 띄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윤 대리, 소회의실로 와요. 원본 들고.”유리문이 닫히자 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세리 씨한테 전화하지 않겠습니다. 외부로 보낸 자료도 없고요. 제가 접근한 경로부터 확인받을게요.”은정은 테이블에 메모장을 놓았다.“응. 그리고 네가 사과부터 할 일도 아니야.”“친척 업체라서 팀까지…….”“그 얘기는 이미 보고했잖아. 지금 필요한 건 네가 미안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누가 뭘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거야.”채이는 가져온 노트북을 열었다. 초안 파일의 생성일만으로 끝낼 수 없다는 건 알았다. 파일명은 바꿀 수 있고, 세리의 첨부물처럼 작성자 칸도 고칠 수 있었다.“첫 검토 메일이 있어요. 입사하고 모아 둔 고객 문의로 방향을 잡았고, 결혼하기 전 봄에 팀장님께 처음 보냈습니다.”“내 답장도 찾을게. 혼자 전부 증명하려고 하지 마.”은정이 자리로 돌아간 뒤, 채이는 가장

  • 대표님, 저는 맞선 대타일 뿐입니다   35화. 지워지지 않은 문장

    세리가 보낸 문서의 표지는 새것이었다. 제목 아래에는 유성컴퍼니 홍보 기획, 담당 윤세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을 넘긴 채이는 손을 멈췄다.‘회수는 경험의 마침표다.’그 아래 괄호 안의 메모까지 낯익었다. 채이가 초봄에 쓰고 스스로 지우려 했던 문장이었다. 문 닫는 손잡이에 빗대면 어떨까 하고 남겼던 생각도 그대로 있었다.현재 최종본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삭제한 문장은 예전 초안과 검토 과정에 남아 있을 터였다. 유나가 가방을 놓으며 화면을 보았다.“그 손잡이 아직 살아 있었어?”채이가 그녀를 돌아봤다.“기억나?”“내가 헷갈린다고 했잖아. 문 닫는 것도 손잡이고 여는 것도 손잡이라고. 근데 왜 유성컴퍼니 이름이 있어?”채이는 새로 도착한 메일을 보여줬다. 세리는 태주가 요청한 원자료 설명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성의 선행 기획을 마케팅1팀이 변경해 사용한 경위부터 확인해달라고 적었다.유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잠깐. 우리가 이걸 가져갔다고?”“일단 그렇게 말하고 있어.”채이는 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손이 떨리는 걸 멈추려는 동작이었다. 세리가 집과 가방을 자기 덕으로 돌릴 때는 밖으로 걸어 나오면 됐다. 이번에는 자기 책상 위의 일이었다.“팀장님 오시면 같이 말씀드리자. 지금 바로 전화해서 따지면 나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유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앉았다.“그럼 내가 네 옆에 있을게. 커피부터 마시자.”채이는 차가운 컵을 쥐었다. 컵의 냉기가 손바닥에 전해지자 시선이 조금씩 돌아왔다.은정은 출근하자마자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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