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풀빵을 먹고 싶다고 했다.
채이는 길가의 작은 가게 앞에 섰다. 한정숙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유리 안의 반죽이 익는 모습을 구경했다. 수술 후 유난히 추위를 탔지만, 오늘은 볼에 조금 혈색이 돌았다.
“두 개만 사. 집에 과일 있어.”
“네 개 살 거야. 엄마 두 개, 나 두 개.”
“그럼 뭐 하러 물어봐?”
“안 물어봤는데?”
정숙이 웃었다. 채이는 종이봉투를 받아 반으로 찢었다. 뜨거운 빵 하나를 어머니 손에 올려드리고 다음 진료 예약표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급한 큰 치료는 지나갔지만, 회복을 위해 다닐 곳과 챙길 약은 여전히 있었다.
“회사 반차는 괜찮아?”
“미리 냈어. 팀장님도 알아.”
“그 팀장님 좋아하는 게 뭐니? 내가 뭐라도 해서…….”
“업무 마감 지키는 거. 내가 할게.”
정숙은 딸의 팔을 가볍게 때렸다. 웃던 채이는 봉투를 접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숙부한테 빌린 돈 말이야. 내가 차용증 쓴 오천 말고 다른 건 없어?”
“없지. 왜?”
“갚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서.”
정숙의 걸음이 느려졌다.
“무리하지 마. 엄마 이제 좀 움직이니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엄마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거 식기 전에 먹는 거야.”
채이는 어머니의 손에 빵을 다시 제대로 쥐여드렸다.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말하려다가 멈췄다. 아직 좋은 사람인지 다 알지 못했다. 적어도 결정을 내린 뒤에는 자신의 입으로 말씀드리고 싶었다.
상계동 빌라 앞에 도착하자 정숙이 물었다.
“채이야, 누구한테 안 좋은 부탁 받은 건 아니지?”
딸이 돈 이야기를 꺼내면 어머니가 먼저 의심하는 것이 있었다. 채이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받긴 했어. 그런데 이번엔 내가 조건을 정하고 있어.”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조건이니?”
채이는 답하기 전 한 번 생각했다.
“응. 그건 꼭 넣었어.”
***
장수현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머그잔이 있었다. 채이는 대학 선배에게 소개받은 번호로 직접 예약했고, 상담비도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다. 수현은 계약서를 끝까지 읽은 뒤 첫 질문을 했다.
“윤채이 씨가 이 사람과 혼인신고를 하고 싶은 이유는 뭔가요?”
“돈이요.”
질문에 바로 대답하자 오히려 목소리가 덜 떨렸다.
“그리고…… 제가 거절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같아서요. 그건 며칠 본 걸로는 확신할 수 없지만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부터 하지 않았다.
“기간이 끝나도 혼인 관계가 저절로 정리되지는 않아요. 그 부분은 이해하셨죠?”
“네. 나중에 서로 의사를 확인하는 걸로 고쳤어요.”
“좋아요. 다만 같이 살기 어려워질 때 돈 때문에 못 나오게 되는 구조가 남아 있으면 안 되겠어요.”
수현은 종료와 정산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개인적인 접촉을 거절하거나 결혼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수행한 역할의 보수 전액을 돌려달라고 할 수 없도록, 표현을 더 분명히 했다. 남은 기간의 일과 돈을 어떻게 정리할지도 따로 논의하게 했다.
“그리고 상대가 회사 대표죠. 혼인 관계 신고만 해놓고 평가가 계속 그분 손에 있으면 문장만으로는 부족해요.”
채이는 수첩을 펼쳤다.
“업무 평가는 별도 담당자. 개인 계약과 회사 돈 분리.”
“본인도 원본을 보관하세요. 상대 집에만 두지 말고요.”
종이를 챙기던 채이가 물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세요?”
수현이 안경을 벗었다.
“지금 제 앞에 온 의뢰인은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네요. 그건 잘하고 계세요.”
채이는 그 말을 메모하지 않았다. 대신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뒤 업무가 끝난 저녁, 채이는 회사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닫았다. 바탕화면 구석에 저장한 사직서 파일이 잠깐 보였다. 토요일 밤, 앞으로 회사에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받아둔 양식이었다.
그녀는 삭제하지도 제출하지도 않고 개인 폴더로 옮겼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겁나서 먼저 달아나지는 않기로 했다. 도진이 도착했을 때 채이는 주문한 차를 그의 자리로 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삼 분이니까 괜찮아요. 면접이었으면 탈락이지만.”
“결혼 심사는 더 엄격할 줄 알았습니다.”
“그건 연봉을 많이 제시하셔서 가산점이 있어요.”
그가 코트를 벗으며 웃었다. 채이는 계약서와 별도로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변호사의 검토 의견을 정리한 것이었다.
“문구 수정은 이쪽이고요. 실제로 확인하고 싶은 건 세 가지예요.”
“말씀하세요.”
“돈은 회사에서 나오면 안 돼요. 제 평가에서 대표님은 빠져주시고요. 엄마한테 결혼 얘기는 제가 먼저 할게요.”
도진은 순서대로 답했다. 보수는 개인 계좌에서 지급하고, 업무상 이해관계는 준법 담당자와 확인하며, 어머니 인사 일정은 채이가 정하도록 했다.
“어머니께는 어느 정도 말씀드릴 생각입니까?”
“조건이 있는 결혼이라고는 말씀드릴 거예요. 세부 금액은 지금 다 말씀드리면 잠을 못 주무실 것 같아서요.”
“제가 설명할 부분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먼저 멋있는 사위처럼 나타나시지는 마세요.”
“그 역할은 아직 승인 전이군요.”
채이는 웃다가 차를 마셨다. 돈이 많은 이 남자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었다. 채이는 이번에는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제가 중간에 그만두면 대표님은 손해 보시잖아요.”
“손해가 전혀 없는 계약은 드뭅니다.”
“그래도 저를 묶어놓는 조건은 싫어요.”
“그래서 고치는 중 아닙니까.”
그가 검토 의견 옆에 체크했다. 채이는 그의 표정을 보며 가슴에 걸렸던 질문을 꺼냈다.
“저하고 결혼해도 회사에서는 대표님 편만 들지 않을 거예요.”
“보고서에 제 의견과 다른 숫자를 쓰지 못하면 결혼하는 쪽이 손해겠네요.”
대답을 듣자 토요일의 회의실 같던 호텔 라운지가 떠올랐다. 그는 그때도 그녀가 틀린 숫자를 적는 사람인지부터 물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과 돈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반드시 서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채이는 종이를 손으로 한 번 폈다.
“할게요.”
도진의 펜이 멈췄다.
“최종본을 확인하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확인하고 서명할 거예요. 하지만 제 생각은 정했어요.”
“무엇이 결정에 도움이 됐습니까?”
“고쳐달라고 한 걸 고쳐주신 거요.”
채이는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게 앞으로도 되면 좋겠어요.”
도진은 그녀를 잠시 바라봤다. 그는 쉽게 다 된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고친 종이와 채이가 적은 메모를 차례로 확인한 뒤 대답했다.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대신 윤채이 씨도 말해주세요.”
채이는 컵을 내려놓았다.
“저, 말은 잘해요.”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카페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세리였다. 채이는 도진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너 토요일에 뭐 했어? 비서한테서는 확인 중이라는 말밖에 안 온다는데?”
“내 이름 들켰어. 조건대로 실패야.”
“뭐? 그럼 오천은 그대로야. 알아?”
“알아. 갚을게.”
채이는 통화를 끝냈다. 손가락이 조금 떨렸지만 목소리는 그러지 않았다.
도진이 묻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네. 다음 주부터 제 생활이 좀 많이 바뀔 것 같아서요.”
채이는 가방 끈을 고쳐 메고 길을 건넜다. 도진이 옆에서 보폭을 맞췄다. 이번에는 뒤따라오는 발소리를 피하지 않았다.
사무실 달력에 여름휴가 표시가 하나둘 늘어났다. 채이는 빈자리에 놓인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지난 캠페인의 체험 기록을 열었다. 재출범안에 기존 실적을 인용하기 전에, 문의 유형별로 고객 경험을 나눠보려던 참이었다.민재가 정산 담당자에게 받은 파일을 공유했다. 유성컴퍼니의 체험완료 명세였다.“종료 보고서랑 건별 목록 같이 왔어요. 총 삼천 건이라는데요.”“고마워요. 설치 기록이랑 먼저 맞춰볼게요.”채이는 파일을 내려받아 읽기 전용 사본을 만들었다. 예전에 표본에서 발견했던 이상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때는 서로 다른 집계 기준 때문일 수도 있어 필요한 자료를 추가 요청해둔 상태였다. 이번에는 종료 명세 전체가 들어왔다.첫 화면은 깨끗했다. 체험완료 삼천 건. 건당 십만 원. 청구액 삼억 원. 굵은 글씨 아래로 마스킹된 고객 번호와 접수 번호, 완료일이 이어졌다.채이는 고객 번호로 정렬하다가 스크롤을 멈췄다. 같은 번호가 네 번 나왔다. 제품을 여러 번 썼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이상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설치 번호를 확인했다.설치 번호도 같았다.완료일만 달랐다. 하루 간격으로 두 줄, 다음 주에 두 줄. 채이는 자기 쪽 고객 응대 화면에서 해당 설치 건을 열었다. 방문은 한 번이었다.“민재 씨, 이 접수 번호 기억나요?”그가 의자를 밀고 다가왔다.“어, 이거 취소 사유 분류할 때 봤어요. 설치 공간 때문에.”“그건 다른 번호죠?”“끝 두 자리만 달라요. 같은 고객이 다시 신청해서 묶었거든요.”채이는 두 화면을 나란히 놓았다. 고객이 다시 신청한 건과 이전에 취소한 건이 업체 보고서에서는 각각 체험완료로 남아 있었다. 민재가 자
“돈이 생기면 겁나는 것도 같이 없어질 줄 알았어요.”채이는 도진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리 앞에서는 또박또박 말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첫 문장부터 목이 잠겼다. 도진은 손에 힘을 조금 더해주었다.“그런데 오늘은 좋은 가방 들고 있는 게 들킨 일 같더라고요.”“네가 좋아하는 걸 쓴 건데.”“알아요. 그래서 더 화났어요. 나한테도.”채이는 웃으려다 그만뒀다. 도진이 물잔을 조금 가까이 옮겨줬다. 잠깐 마시고 나니 속도가 늦춰졌다.“엄마 수술할 때요. 병원비도 무서웠는데, 그다음 날이 더 무서웠어요. 회복하는 동안 밥은 어떻게 해드리지, 병원은 누가 같이 가지, 내가 휴가를 다 쓰면 어떡하지.”도진의 표정이 조용해졌다. 채이는 그가 듣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 말을 이었다.“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는 뜻은 아닌데, 돈이 없으면 해결할 방법부터 줄어들잖아요.”그녀는 엄지로 손가락 마디를 문질렀다. 예전에 버스 시간을 계산하던 습관이었다. 도진이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퇴근하고 병원에 가면 저녁 시간이 애매했어요. 엄마는 제가 먹고 왔다고 하면 믿는 척했어요. 나중에는 알더라고요. 제가 늘 같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와서.”“식사할 돈을 아낀 거야?”“처음엔요. 나중에는 그냥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어디 앉으면 그때부터 일어나기 싫을 것 같아서.”도진은 아무 말 없이 그녀 곁으로 조금 가까이 앉았다. 채이는 그의 어깨에 기댔다가 다시 바로 앉았다. 오늘은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숙부한테 부탁하러 가던 날, 문 앞에서 말을 세 번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서 채이는 얇은 여름 이불 두 장을 번갈아 만졌다. 어머니는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춥다며 자꾸 끄곤 했다. 가볍고 세탁하기 쉬운 쪽을 고른 뒤 계산대에 섰다.“윤채이.”익숙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세리가 서 있었다. 새로 산 듯한 선글라스가 머리 위에 얹혀 있었다. 손에 든 쇼핑백은 하나였지만, 시선은 채이의 가방과 신발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세리 언니.”“여기서 다 보네. 이제 생활 수준이 맞아지니까 만나는 데도 바뀐다?”채이는 직원에게 포장을 부탁한 뒤 세리를 보았다.“엄마 이불 사러 왔어.”“큰엄마 것도 여기서 사? 많이 편해졌나 보네.”세리의 말투는 웃고 있었지만 채이는 그 웃음에 맞춰 웃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쇼핑백을 받자 세리가 옆 카페를 가리켰다.“잠깐 앉아. 할 말 있어.”“어떤 얘긴데?”“친척끼리 잠깐 차도 못 마셔?”채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머니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삼십 분 정도 남아 있었다.“십오 분만.”세리는 대답하지 않고 먼저 걸었다. 채이는 그 뒤에서 쇼핑백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예전 같으면 어머니에게 늦는다고 전화부터 했을 것이다. 오늘은 알람을 맞췄다.카페에 앉자 세리가 메뉴판을 밀었다.“네가 사. 잘살잖아.”“내 차는 내가 살게.”그녀는 직원에게 각자 계산을 요청했다. 세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금방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많이 컸네. 옛날에는 이런
성북동 저택의 여름 식사는 해가 기울고 나서야 끝났다. 친척 몇 사람이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채이는 식탁 위에 남은 유리잔을 살폈다. 얼음이 녹아 받침 바깥으로 물이 흘러 있었다. 무심코 냅킨을 접어 닦는데 태석이 그녀를 불렀다.“그건 두고 나와라. 너희 둘은 차나 한 잔 더 마시고.”채이는 접었던 냅킨을 내려놓았다. 도진이 옆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친척 중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다음 모임은 채이가 음식도 하나 정해봐. 이제 집안 안주인 노릇도 배워야지.”채이는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날짜를 먼저 알려주시면 가능한지 보고 말씀드릴게요. 제가 주말 현장 일정이 생길 때가 있어서요.”“회사 일이 아직 그렇게 바빠?”“제가 맡은 일이 아직 많이 남았어요.”덧붙일 설명이 떠올랐지만 채이는 거기서 멈췄다. 도진도 대신 설명하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가 손등으로 그녀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잘 말했어.”채이가 작게 웃었다. 가끔은 길게 이해시키려 하지 않아도 됐다.태석은 응접실이 아니라 작은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화분 몇 개가 놓여 있었고, 낮은 줄기에 토마토가 달려 있었다. 며칠 더 익어야 할 듯한 초록 열매 사이에서 빨간 한 알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이거 직접 키우세요?”채이가 묻자 태석이 턱을 들었다.“물은 내가 준다.”옆에서 차를 놓던 직원이 조용히 웃고 물러났다. 도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물 너무 많이 주셔서 한 번 옮겨 심었다면서요.”“회복 중인 노인한테 그런 것까지 보
“대표님 손에 물고기 있다.”월요일 아침, 민재의 목소리에 팀원들이 고개를 들었다. 채이는 아이스커피를 입에 댄 채 멈췄다. 사내 소식란에 부산 협력사 방문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도진이 센터 대표와 악수하는 사진이 맨 앞이었다.사진 아래 댓글은 업무 성과보다 밴드에 먼저 반응했다. ‘귀여운 거 좋아하시는구나.’ ‘직접 고르셨을까.’ 민재는 화면을 확대하다가 웃었다.“이거 저랑 같은 겁니다. 조카가 맨날 붙이는 거.”유나가 몸을 돌렸다.“채이도 그거 붙였었잖아. 출장 다녀온 날.”채이는 커피를 내려놓았다. 빨대 끝에서 얼음이 달그락거렸다.“센터에서 받았어.”“거기 밴드까지 홍보용으로 뿌렸어?”“아니. 구급함에 있던 거야. 기사님 댁 아이가 좋아해서 사뒀다고 하셨어.”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도진의 손가락에 누가 붙였는지는 사실에 포함하지 않았다. 유나는 제 턱을 괴고 대표 사진을 다시 보았다.“다행이다. 대표님이 물고기 무늬 콕 집어 고르셨으면 오늘 회의 때 집중 못 할 뻔.”현수가 지나가다 화면을 보고 웃었다.“센터 구급함이 아주 알차더라. 나도 파도 붙였어.”그가 팔목 안쪽을 보여주었다. 이미 밴드는 뗐지만 직사각형으로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채이는 하마터면 안도의 한숨을 소리 내 쉴 뻔했다.민재가 대표 사진 옆에 현수의 손을 갖다 댔다.“세트네요. 이번 출장 복지는 밴드였습니까?”“복지는 없고 작업대 모서리는 날카로웠어.”은정이 커피를 들고
일곱 시 이십 분, 채이는 자기 객실에서 출장 가방을 들고 나왔다. 거울을 세 번 확인했지만 남들이 알아볼 만큼 달라 보이는 건 없었다.엘리베이터에서 현수를 만났다. 그는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있었다.“아침 먹었어?”“아직요.”“이거 미숫가루. 조식 먹을 시간 없겠다.”채이가 고맙다며 컵을 받았다. 혹시 표정이 이상한지 눈치를 보았는데, 현수는 휴대폰에 뜬 설치 사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어제 기사님이 보내주셨는데 이것 좀 봐. 이 집은 연결부가 아예 안 보여.”일 얘기가 나오자 채이의 어깨가 저절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컵을 가방 옆주머니에 끼우고 사진을 확대했다.“사진으로 판단 못 하는 집은 전화 상담으로 넘어가는 경로가 있어야겠어요. 사진 안 올리면 다음 화면으로 못 가는 건 빼고요.”“그러면 전화가 늘 텐데.”“방문 취소가 줄어드는지 같이 봐야죠.”호텔 문을 나설 때 휴대폰이 울렸다. 도진이었다.‘잘 내려갔어?’채이는 현수가 차를 찾는 사이 답장을 보냈다.‘네. 현수 과장님과 이동해요.’보내고 보니 회사 메신저와 다를 게 없었다. 한 줄을 더 쓰려는데 현수가 차 문을 열었다. 채이는 휴대폰을 넣고 탔다.센터의 작은 회의실에는 어제 만난 기사 둘과 상담 담당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채이는 새 안내지를 나눠주었다. 기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예상 비용이라고 하면 또 정확히 얼마냐고 물으실 텐데요.”“정확한 비용을 알 수 없는 경우는 왜 그런지 적었습니다. 추가 확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