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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Author: 데이지

1화. 먼지와 당신 사이에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Last Updated: 2026-03-10 08:46:43

유리는 오늘도 청소 가방을 등에 메고, 

익숙한 듯 발끝에 힘을 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

‘루체빌 오피스텔 1603호. 오후 3시 예약.’

아침에 확인했던 알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연스레 속으로 중얼거렸다.

“3시. 좋아, 딱 햇살 잘 드는 시간.”

햇볕이 유리창을 타고 떨어지는 오후 세 시의 방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먼지도 반짝이고, 바닥도 더 잘 닦이고,

무엇보다 사람 마음도 괜히 가벼워지는 시간대랄까.

“오늘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드려야지.”

혼잣말을 하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등에 멘 가방 속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과 유리만의 비장의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장비만 보면 거의 탐정 같다는 농담도 가끔 들었지만

그녀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의 공간을 정리해 주는 일,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일.

띵동.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 끝 너머로 넓게 펼쳐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유리님?”

낮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작게 눈이 동그래졌다.

“...아, 네. 안녕하세요.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에서 왔어요.”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사진도 정보도 없는 고객이라는 단어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치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였다.

흰 티에 그레이 니트 하나 걸친 차림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웃을 때 살짝 찌그러지는 눈매가 너무, 너무 좋았다.

‘와... 이게 진짜 가능해?’

그는 유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더... 프로 같으시네요.”

“그런 얘기 자주 들어요. 사진보다 더 잘 치운다고도요.”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꽤 넓었다. 그리고... 제법 어질러져 있었다.

“청소를... 한참 안 하셨나 봐요?”

“네. 아예요. 청소랑은 좀... 거리가 멀어서요.”

“그럼 잘 오셨어요. 제가 가까워질게요. 청소랑.”

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런 농담은 손님들 긴장도 풀어주고, 자신의 긴장도 풀리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를 마주하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쿵 하고 울렸다.

“이거, 다 직접 쓰시는 거예요?”

이현은 유리의 가방에서 나오는 장비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네. 직접 조립한 것도 있어요. 이거는 초미세먼지 전용,

이건 친환경 소재로 만든 세정제, 그리고 이건...”

설명을 하던 유리가 문득 말을 멈췄다.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이건 그냥, 제가 아끼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리야.

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흔들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런데, 그가 웃었다.

“왠지, 그런 거 같았어요.”

“네?”

“이 방을 대하는 손길이... 그냥 일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요.”

유리는 그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닦아야 할 먼지가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었다.

한참 청소를 하던 중,

이현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

가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손등으로 턱 하고 넘기고,

그 손끝엔 언제나 부드러운 리듬이 있었다.

공간이 맑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

청소기 소리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상한 오후였다.

“정말, 다 끝났네요.”

“네. 기분도 좀 나아지셨죠?”

“많이요. 이렇게 맑은 집은 오랜만이에요.”

유리는 옷을 정리하며 마지막 정리정돈을 마쳤다.

이현은 작게 망설이다가 명함을 건네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조그만 카드를 꺼내 건넸다.

“이 앱에서 정기 청소 예약 누르시고, 제 아이디 입력하시면 돼요. 저를 지정하고 싶으시다면요.”

그 말에 이현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청소가 벌써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유리는 그만, 작게 웃고 말았다.

문을 나서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하다... 청소보다 사람이 더 남는 건 처음인데...”

그리고 이현 역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공간을 둘러봤다.

깨끗해진 바닥, 환해진 창, 가볍게 정돈된 테이블 위의 작은 화병.

그리고, 그녀가 남긴 향기 같은 뒷모습.

그건 먼지보다도 오래 남는 무엇이었다. 기억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    *    *    *    *    *    *    *    *   

루체빌 1603호.

그 주소를 다시 확인한 순간,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앱 화면엔 분명 ‘정기 청소 등록됨’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며칠 전, 햇살 가득한 오후에 청소를 마친 그 집.

창가에 먼지가 가볍게 흩날리던 거실.

그리고, 괜히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남자 고객.

‘...그분이 또 요청하신 건가?’

유리는 괜히 목덜미를 한번 긁었다.

특별할 건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얼굴이 조금 화끈해졌다.

아니지. 정기 예약도 흔한 일이고,

다시 방문하는 것도 전혀 드문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청소하러 가는 날에는 늘 입는 편한 베이지 셔츠 대신,

오늘은 크림색 니트에 밝은 연청 바지를 꺼냈다.

그것도 모자라 귀걸이를 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무슨 소개팅 가냐, 유리야.”

입술을 꾹 다물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손끝은 어딘가 들뜬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가방 정리를 꼼꼼히 하고 나서야 드디어 현관문을 나섰다.

이현은 이미 커피를 두 잔 내려두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혹시 몰라서.

"청소하러 오시는 분께 커피 내리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자신에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머리를 한 번 넘겼다.

오늘따라 거실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바닥은 여전히 깔끔했고, 창문엔 지문 하나 없었고,

모든 게 정돈된 상태인데도 어쩐지 허전했다.

그건 아마, 며칠 전 그녀가 떠난 뒤로 그의 일상이 조금 심심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띵동~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괜히 두근거리며 문을 열었고, 그곳엔 환하게 웃으며 선 유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잠깐의 인사. 하지만 그 안에는 어색한 반가움과 말하지 못한 설렘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유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며 익숙한 듯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이현이 두 잔의 커피 중 하나를 자신 쪽으로 미는 걸 보고 당황했다.

“...저, 커피는 괜찮은데요?”

“괜찮으면 마시고요. 괜찮지 않으면, 그냥 봐주세요.”

“후기용 선물인가요?”

“아뇨. 감사의 마음? 오늘도 집을 빛나게 해주실 테니까요.”

그 말에 유리는 못 이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만 받아요.”

그녀는 컵을 들고 잠깐 향을 맡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닐라 향.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청소는 다시 시작되었다.

익숙한 듯 물티슈가 펼쳐지고, 분무기가 작동하며,

바닥은 부드러운 리듬을 따라 닦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유리의 손끝이 자꾸만 느려졌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주 그를 흘끗 보게 되었고,

그의 숨소리나 움직임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녀가 거실 선반을 정리하다 잠깐 균형을 잃었을 때 이현이 무심한 듯 다가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받쳐주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작은 접촉,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리는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심장이, 조금 웃기게도, 먼지 털이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자, 이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음 주 이 시간도... 괜찮을까요?”

“스케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가능해요.”

“그럼 그때도, 오늘처럼 부탁드릴게요.”

유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는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그 대신, 커피는 다음에도 주실 건가요?”

그 말에 이현은 순간 당황하더니, 천천히 웃었다.

“그럼요. 다음엔 더 맛있게 내려둘게요.”

문을 나서는 길. 유리는 발끝에 힘을 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청소하러 간 건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그리고 그 순간, 이현은 그녀가 닫고 나간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웃는 그녀의 옆모습이, 아직 방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청소는 매주 계속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설렘도 조금씩, 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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