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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몸조심하시라고 하셨어요

작가: 사흘부탁
고등학교 때, 태경은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 시절의 사랑은 존재감이 거의 없었고, 마치 동화 이야기 속 지나가는 행인처럼 왕자와 공주의 달콤한 사랑 묵묵히 지켜보았다.

언제부터 태경을 짝사랑해왔는지, 사실 사랑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태경이 결혼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3년 동안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사랑은 태경과 말 한마디밖에 한 적이 없었다.

“안녕, 난 강사랑이라고 해.”

그러나 태경은 사랑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그녀가 수줍어하며 자신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사랑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실 불을 켜지 않아, 방안은 무척 어두웠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배를 만졌다.

‘내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니. 그것도 나와 태경의 아이. 아니야, 임신 테스트기도 정확한 건 아니니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야.’

사랑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할 시간이 없었기에, 내일 다른 브랜드의 테스트기를 몇 개 더 사서 검사해 보려 했다.

‘임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만약 정말 아이를 가졌다면... 그건 너무나도 골치가 아픈 일이야.’

태경은 자신의 계획을 벗어난 그 어떤 일도 좋아하지 않았고, 사랑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태경은 매번 주의를 했지만, 유독 지난달 출장 갔을 때 콘돔을 쓰지 않았다.

‘그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지. 태경은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만약 태경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면... 그 사람은 직접 병원에 예약해서 수술 날짜를 잡겠지.’

아무도 태경이 결정한 일을 바꿀 수 없었다.

막 결혼했을 무렵, 사랑은 천진난만하게 태경이 자신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그것이 단지 자신의 환상이란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생각하면 슬플 것이 뻔했기에, 그녀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으며 억지로 잠을 잤다.

그날 저녁,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을 꿈꿨다.

꿈속에서, 태경은 매일 그녀가 앉은 창가를 지나갔다. 그는 심씨 가문의 도련님이었기에,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빼어난 몸매, 훤칠한 키, 양손을 주머니에 넣어 나른하면서도 도도한 기운을 풍겼다. 마치 높이 걸려 있는 달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까칠하고 쌀쌀한 성격이었지만, 사랑은 여전히 그런 태경을 한 번 또 한 번 바라보았다. 깨어났을 때,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날은 이미 밝았고, 사랑은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정원에 태경의 차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제 한밤중에 떠난 게 분명했다.

사랑도 서운함을 느낄 새 없이 아침을 먹은 다음 바로 회사에 나갔다. 가는 길에 또 약국에 들러 임신 테스트기를 몇 개 샀다.

그녀는 오전에 너무 바빠서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었다.

마침내 시간이 나자, 사랑은 가방 속의 테스트기를 꽉 쥐고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사랑은 어제 알아낸 사용방법대로 다시 한번 검사했고, 몇 분 후, 떨리는 손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두 개의 선명한 빨간 줄이 나타난 것을 보며, 그녀의 마음은 덜컹 내려앉았다.

그다지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짧디짧은 몇 분 사이, 사랑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태경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까?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금 바로 사직서를 낸 다음, 아무도 날 찾을 수 없는 나라에 가서 몰래 이 아이를 낳을까? 물론 며칠 휴가를 내서 나 혼자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사랑의 머릿속은 정말 어지러웠다. 사무실로 돌아오고도 그녀는 여전히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때, 현미가 그녀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20층에 임신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사랑은 숨이 멎을 듯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누군데?”

“그건 모르지. 청소 아주머니가 어제 쓰레기통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봤다고 했거든. 이렇게 숨기는 거 보면, 아마도 사내 연애를 한 것 같은데. 대표님께 들키면 당장 해고잖아.”

사랑은 자신이 방금 임신 테스트기를 변기에 던져 바로 물을 내려버린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걸 누가 알겠어. 하지만 사내 연애일 리 없을 거야.”

현미도 이 일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바로 화제를 돌렸다.

“내려가서 밥 먹을까?”

이미 배가 고팠던 사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회사 식당은 사실 맛이 꽤 좋았다.

사랑과 현미는 주문을 한 다음 자리에 앉았는데, 식당이 많이 조용해진 것을 발견했다. 잠시 후, 태경이 갑자기 나타났고, 사람들은 저마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은 태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젓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경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사랑과 현미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갔다.

현미는 무척 당황해 했다.

“대표님, 여기에 앉으세요.”

사랑은 입술을 오므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주문한 스테이크가 다 되었기에, 사랑은 접시를 들고 애써 침착하게 자리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식당의 냄새가 좀 심하네.’

사랑은 구역질을 참으며 빨리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스테이크를 먹자마자 사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입을 막으며 한쪽의 쓰레기통 옆으로 달려가 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하고 나니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물로 입가심을 할 때에야 사랑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태경은 어두운 두 눈으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사랑은 그에게 뭐라도 들킬까 봐 가슴이 떨려 안색이 더욱 하얘졌다.

태경은 생각에 잠기다 입을 열었다.

“왜 토한 거지?”

“요즘 위가 좀 안 좋아서요.”

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강 비서에게 위장병이 있었나?”

사랑은 여전히 침착하게 대답했다.

“며칠 전에 차가운 걸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태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무심코 물었다.

“저번에 약은 먹었어?”

현미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랑은 잘 알고 있었다.

태경은 온천 호텔에 갔을 때의 일을 묻고 있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예리했고, 사소한 일에도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랑은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말을 했다.

“네.”

태경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오후에 사랑은 비서실장 유덕훈이 산 위장약을 받았다.

이 회사에서 오직 태경 곁에 있는 비서실장 덕훈 만이 그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대표님께서 몸조심하시라고 하셨어요.”

덕훈은 사랑을 힐끗 보더니 계속 말했다.

“그리고 건강검진을 예약해 드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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