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과 진석이 이야기하는 동안, 소희는 자기 식사에만 집중했다. 마치 King의 일이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러다 도경수가 갑자기 강솔에게 물었다. “너 남자친구 사귀었니?”강솔은 놀라며 얼굴이 붉어졌고, 진석을 향해 눈을 흘겼다. “혹시 네가 스승님께 말한 거야?”진석은 안경 너머로 차가운 눈빛을 숨기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니.”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전화해서, 네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고, 내가 널 좀 지켜봐 달라고 하더라.”“뭐가 볼 거 있어요,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 남자 고르는 눈은 틀리지 않을 거예요.” 강솔이 작게 중얼거리자 도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남자친구를 나에게 소개시켜 줄 생각은 없어?”“솔직히 오늘 데려올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중요한 고객이 왔다고 해서 못 왔어요.” 강솔이 웃으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소희한테 물어보세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솔의 말이 사실이에요.“소희가 맞다 하니 믿을게.” 도경수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 남자 이름이 뭐고, 뭘 하는 사람이야?”“이름은 주예형이고, 스스로 창업해서 회사 사장이에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엄청 대단하죠!” 강솔은 예형을 언급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자 진석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처럼 가정 배경이 좋아서 창업한 사람은 차별받는 건가?”“아니 내가 우리 예형 씨 얘기를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자기 얘기를 끼워요?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냐?” 강솔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소희는 진석을 바라보며 그가 받은 ‘공격'에 동정심이 들었다.이에 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니까 조심해야 해.”“아니에요!” 강솔이 서둘러 자신의 남자친구를 감싸고 돌았다.“예형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자수성가이긴 하지만, 하나도 인색하지 않고, 창업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발끈해하는 강솔이
진석은 잠깐 강솔을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없었다.차 안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는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약간의 슬픔을 담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바람 속을 걷네 오늘의 햇살이 갑자기 너무나도 따스해하늘도 땅도 따스하게 마치 네가 나를 안아주듯그런데 네 변화를 알게 되고 외로운 앞날들이추워지면 어떻게 지낼까”……“방해하지 않는 것이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따스함모르겠고 이해할 수 없어 원하지 않아왜 내 마음은가까이하고 싶은데 외롭게 새벽을 맞이할까”……강솔은 창밖을 바라보며 음악에 맞춰 조용히 따라 불렀다. 강솔은 예형을 몰래 좋아했던 날들을 문득 떠올렸고, 진석을 돌아보며 물었다.“사장님, 좋아하는 사람 있어?”진석은 핸들을 꽉 쥐었지만, 표정은 변함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그걸 왜 물어보는 거야?”“예전에 내가 예형 씨를 짝사랑할 때 매일 사장님한테 매달려서 내 말 들어달라고 했잖아.”“거기다가 어떻게 꼬실지도 대신 생각해 주고, 지금 보면 나한테 은인이니까. 만약 좋아하는 사람 있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강솔의 순진한 얼굴에는 진지함이 어렸다. “물론, 소희는 제외하고. 소희는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남의 연애를 방해하려고 해선 안 되잖아.강솔에 말에 진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난 소희를 좋아하지 않아요. 내 눈에는 너희들 모두 똑같아.”“좋아하지 않는다고?” 강솔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었다.“임구택이 나타났을 때, 너 분명히 기분 나빠했어. 그걸 난 눈치챘고!”“그건 임구택이 예전에 소희한테 상처 줬기 때문이야. 만약 주예형이 너에게 상처 준다면,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을 거고.”진석의 말에 강솔은 곧바로 반박했다.“예형 씨는 상처주지 않을 거야!”진석의 옆 얼굴은 서늘하게 변했고, 얇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소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그 사람이 싱글이라면, 내가 꼭 도와줄게.”“괜찮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없다고?” 강솔이 무언가가 생각
인터넷에서 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가 고용한 댓글 알바들과, King의 팬들의 논쟁이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논쟁의 핵심은 스타쉽 매니지먼트가 King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태도가 전혀 없으며, King을 비하하며 소동을 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는 그 어떤 지켜야 할 선도, 존중도 없이 욕설이 난무했고, 말속에는 어떤 마지노선도 없었다.금요일, ‘여신의 옷장’이라는 새 프로그램의 마지막 녹화가 진행되었고, 소동은 놀라운 디자인으로 심사위원들의 칭찬을 받았다.이제 소동은 프로그램의 애정하는 인물이 되었고, 심사위원들도 소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아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심사평이 끝나고, 소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여러분의 지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런 영광과 축하를 받는 동시에, 저는 일부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명확히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는 그 어떤 자리에서도 저를 ‘리틀 King’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또한 제 디자인은 저의 창작이며,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저를 호시탐탐 노리시기 전에 제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고 저의 창작을 지지해주시길 바랍니다.”소동의 이 발언은 제작진팀이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에, 무대 뒤의 감독과 앞줄에 앉은 심사위원들은 모두 당황했다.관객석에서 누군가가 호응을 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초대받은 관객들도 소동을 지지하는 박수를 보냈다.소시연은 소동의 옆에 서 있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인기를 얻고 나니까 발뺌을 하고 있네.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시연의 마이크는 꺼지지 않았기에,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전체 스튜디오에 울러 퍼졌다.시연의 충격적인 발언에 모두가 놀랐고, 소동은 차가운 눈으로 시연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끄고 말했다.“시연아, 또 내 얘기하는 거야? 지금도 내가 King의 인기에 업혀 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King의 팬들이 날 무차별하게 공
“알겠어요, 제가 말할게요!” 감독은 계속해서 소시연의 발언을 제한하겠다고 보장했다.소동을 설득한 후, 감독은 소시연을 설득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아부를 하듯이 달랬고, 시연이 남도록 설득했다.모두가 방송 스튜디오로 돌아와 프로그램 녹화를 계속했다. 시연이 다시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 제작진은 시연의 마이크를 끄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겨우 한 회 분의 녹화를 끝마쳤다.편집을 하고 나자, 모든 출연진은 한 팀처럼 화목하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보여졌다.소동이 처음에 한 ‘King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발언에 대해 감독은 고민한 끝에, 시청률을 위해서 그대로 방영하기로 했다.감독은 프로그램에 논란이 있어야 인기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그 발언은 소동이 직접 한 발언이었기에 본인들과는 상관이 없었으며,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방송이 끝나고, 안단희는 소동과 함께 나가며 말했다. “소시연 그 멍청한게 실력이 안 되니까 괜히 트집 잡잖아. 그것 때문에 애꿎은 소유까지 미운털 박히게 됐으니!”단희의 말에 소동은 웃으며 말했다.“됐어요. 전 이제 걔 신경 안 쓸 거니까. 어차피 온라인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도 없는 나니까, 난 괜찮아요.”“맞아, 온라인에 있는 그런 사람들하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들이 더 난리를 칠수록 당신은 더 유명해질 거니까!” 단희는 말하고는 장시 망설이다가 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동 씨, ‘뷰티풀 클로즈’ 라는 예능 프로그램도 소동 씨를 게스트로 초대하더라고요.”“저희가 계속 협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도 추천해 주면 안 될까요?”“아, 그거요?” 소동이 조금 곤란해하며 말했다. “저 아직 출연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어요.”“같은 유형의 예능 프로그램 두 개를 연속으로 나가면, 팬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결정하고 나서 알려드릴게요.”소동이 그렇게 말하고, 자기를 데리러 온 차에 올라타고 떠났다.단
소정인은 진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소정인은 안정적으로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진연은 항상 강하게 밀어붙여 소정인이 반박할 수 없었다.“그래, 이번 달에 몇몇 고객들이 결제를 늦게 해서 회사의 운영 자금에 문제가 생겼어.”“소동에게 말 좀 해서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알아봐 줘.” 소정인이 화제를 바꾸었다.“그런 사소한 일은 당신이 직접 소동과 말하면 돼요.” 진연은 TV를 보며 움직이길 원하지 않았고 소정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동의 방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소동은 기쁜 얼굴로 일어나 소정인을 맞이했다. “아빠!”소정인은 진연과 한 이야기를 다시 언급했지만 소동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표정도 좋지 않았다.소정인은 소동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소동에게 잠시 자금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소동은 눈을 굴리면서 해맑게 말했다. “제가 예전에 작업실을 운영할 때 부모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죠. 이제 제가 도울 차례예요, 물론 문제없어요.”소정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엄마 말이 맞았어. 넌 정말 훌륭한 아이야!”소동은 더욱 달콤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고 입을 열었다.“지금 바로 6천만원 보내드릴게요!”“6천만원?” 소정인의 얼굴에 미소가 얼어붙었다. 대기업에게 은은 정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표정이 안 좋은 소정인에 소동은 담담하게 물었다. “부족한가요? 아빠, 저도 돈이 많지 않아요. 이건 거의 제 전부예요.”‘여신의 옷장'의 대성공으로 소동의 상업적 가치는 상승했다.더군다나 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한 후 소동은 네 개의 광고를 찍었고, 두 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랬기에 실제 수입은 20억을 넘었다.하지만 소동은 이 돈을 소정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데, 남한테 빌려주겠나?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지 그 누구도 몰랐다.진연이나 소정인에게 선물을 사 주거나, 이천만원이나
마민영은 리스트를 곧 찾아서 소희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봐요!”네티즌이 만든 소동의 디자인 모음 영상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소희는 보면 볼수록 얼굴이 어두워졌다.소희는 잠시 뭔가 생각났다는 듯 민영에게 말했다. “이 영상 나한테 보내줘요!”말을 마친 후, 소희는 급히 휴게실을 빠져나갔다.“소희, 무슨 일이야?” 민영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소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갔다. 그리고 민영은 어리둥절한 채 소희가 부탁한 대로 영상을 보내주었다.소희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GK를 위해 만든 FW 신상 디자인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민영이 보내준 영상을 열어 하나하나 비교하자 충격적이었다.소동이 만든 모든 옷에는 소희의 디자인이 있었다. 한두 개가 우연이라면 몰라도, 모든 옷에 소희의 디자인 요소가 사용된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이미 프로그램이 다섯 회 방영되었는데, 소희는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동이 언제 자신의 디자인을 봤는지 몰랐다.소희는 소동이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간을 떠올리며, 소동이 자신의 디자인을 훔친 시기가 아마도 드라마 촬영 중일 것으로 추측했다. 소동이 그렇게 빨리 촬영장을 떠난 것도 자신의 디자인을 훔쳤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그 와중에 제일 큰 문제는 소동이 분명히 표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피해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소희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소희는 다른 중요한 일을 떠올렸고, 바로 핸드폰을 꺼내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FW 신상 발표회, 언제 시작하죠?”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사장님. 너무 무관심 한 거 아니에요? 바로 오늘 아침이에요. 저 지금 발표회에 있는데 생중계해드릴까요?”하영의 대답에 소희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사장님?” 하영이 불렀음에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불렀다.“괜찮아요, 계속하세요.”소희는 괜찮다는 말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에, 그
소희가 임구택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웃으며 말했다. “당신 곁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뭐든 좋아,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당신이 보고 싶을 때마다 당신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질리지 않을까?” 소희가 묻자 구택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보면 질리나?”“안 그래!” 소희는 구택을 꽉 안자 구택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같이 갈래?”“난 내 일이 있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난 드라마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구택이 소희의 옆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사장 부인으로 회사에 오는 건 어때?”“싫어!” 소희가 즉시 거절하자 구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사장 부인 자리에 나까지 더해져도 당신의 디자인 초안보다 못한 모양이네!”소희는 구택의 무기력한 목소리를 듣고 킥킥 웃었다.“유명해지고 싶어? 소동처럼, 원한다면 어떤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참여시켜 줄 수 있어. 당신의 재능이라면 소동 못지않을 거야.”소희는 구택의 가슴에 편하게 기대며 물었다. “소동의 디자인, 어떻게 생각해요?”“회사에서 Kally가 소동의 팬이야. 심지어 소동을 임씨 그룹의 제품 모델로 추천하려고 했어.”“작품을 나한테 보여줬는데, 괜찮더라고. 물론, 모델 제안은 거절했지만.”소희가 물었다. “정말 괜찮아?”구택은 마치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그냥 그래, 우리 소희 님만 못하겠지만!”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 안 화낼 거니까.”“좋든 나쁘든 나랑 상관없어!”구택은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능에 나가고 싶어? 아니면 자기 이름을 건 작업실을 열고 싶은 거야? 그게 뭐든 다 할 수 있어!”과거에도 구택은 소희가 무엇을 하든 그녀가 행복하기만 하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소희를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어 했다. 소씨 집안 사람들이 더 이상 소희를 경시하지 못하게, 소동 때문에
[소동의 디자인이 GK 이전에 있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어떤 사람들은 재능이 바닥나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표절하는 거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선배라고 하기엔 정말 창피해. 이전에 받은 상들이 모두 표절한 것인지 제대로 조사해 봐야 해!]……이 사건이 터진 후, 사실 가장 충격받은 사람은 소동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 자신을 표절했다고 비난해도 그게 소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King이 문제가 된 걸까?‘디자인 초안은 소희의 컴퓨터에서 인쇄한 것이었는데, 왜 King의 작품이 되어버린 거지?’‘King이 소희에게 보낸 것일까?’‘소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찾아오지 않은 걸까?’소동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다행히 인터넷 여론은 여전히 소동의 편이었다. 소동은 자신이 표절하지 않았다고 단호히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스타쉽 매니지먼트 회사는 이 기회를 이용해 홍보 활동을 벌였다. 상당히 많은 댓글 알바와 소동의 팬들이 GK와 King의 소셜 미디어에 몰려가 욕설과 괴롭힘을 일삼으며 GK 책임자와 King에게 해명을 요구했다.King의 소셜 미디어는 진석이 관리하고 있었고, 그는 댓글 기능을 차단한 후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온라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소희는 대답했다. “제 디자인 초안을 화영에게 보내기 전에 소동이 봤던 것 같아요.”그러자 진석이 깨달았다. “그러니까, ‘여신의 옷장’에서 소동이 선보인 디자인들이 전부 네 것을 베낀 거였어?”“소동도 꽤 똑똑하게 한 것 같아요. 제 중요한 창의적 요소들을 자신의 디자인에 사용해 옷마다 일곱, 여덟 부분이 비슷해요.”진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언제 알게 된 거야?”진석의 물음에 소희가 말을 했다.“어제요, 알게 된 후에 발표회를 미루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어요.”진석이 한숨을 쉬며 비웃었다. “그러니까 소동이 갑자기 재능이 생긴 줄 알았더니, 결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