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이 말했다. “오늘 내 임무는 너랑 동행하는 거야!”그러자 소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소희의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는데 확인해 보니 우청아가 보낸 메시지였다.[우리 지금 도착했는데 너 지금 어디야?]소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난 친구 만나러 갈 건데 넌 혼자 여기서 계속 있을 거야?”심명이 뒤에서 따라오며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건넸다. “오늘은 네 곁을 지키기 위해 온 건데, 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야지!”소희는 심명을 외면하고 계속 아래층으로 향했다. 둘의 뒤에서 오범석이 힘겹게 눈을 떴고, 심명의 뒷모습을 보며 분노의 빛을 드러냈다.소희가 정원에 도착하자 청아는 이미 요요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있었고, 간미연은 성연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연희가 심명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참지 못하고 빨리 나타났네?”심명은 웃으며 대답했다. “드문 기회를 얻어서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임구택도 없으니 기회를 잘 잡아야 하긴 해!”심명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걔가 있든 없든, 내가 소희를 좋아하는 건 변함없어.”연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 너만한 사람도 없네!”심명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소희가 내 마음에 가득 차서 숨길 수가 없거든!”소희는 더 이상 듣지 못하겠다는 듯 연희에게 말했다. “너 참 한가하다? 오늘 왜 여기 왔는지 까먹었나 봐? 누가 보면 수다 떨러 온 줄 알겠네.”연희는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거든!”미연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결혼식 시간이 거의 다 됐어. 연희야, 빨리 웨딩드레스 갈아입으러 가야 해!”연희는 소희의 손을 잡고 룸으로 향했고, 돌아서면서 심명에게 말했다. “잠시 후에 소희를 다시 돌려줄게!”“빨리 좀 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고!”“걱정하지 마!”소희가 연희에게 말했다. “심명 다시 불러온 거, 왜 나한테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청아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엿보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시원이 요요를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요요와 성연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잠시 후에 올게요!”연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기다릴게!”요요가 떠난 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연희 씨, 이제 본식 드레스로 갈아입을 시간이에요!”그때 연희의 휴대폰이 울리자 잠시 휴대폰을 보더니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말했다.“잠시만요!”바로 노명성이 보낸 메시지였다. [강재석 어르신과 도경수 어르신이 도착했어. 뒤쪽 VIP 휴게실에 아버지랑 같이 계시니까 걱정하지 마.]연희는 명성에게 답장을 보낸 후 소희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도착하셔서 지금 뒤쪽에서 쉬고 계세요.”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먼저 할아버지를 뵈러 갈게!”그러자 강솔도 한마디 했다.“나도 갈래, 강재석 할아버지를 오랜만에 뵙는 거라서!”이에 청아가 말했다. “다들 가, 나는 여기서 연희를 기다릴게.”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곧 돌아올게!”“나 대신 할아버지께 안부 전해줘. 나중에 나도 할아버지께 술 한잔 올려야지!”연희가 행복하게 웃으며 말했다.“응.”소희와 강솔이 뒤쪽 VIP 구역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조금 전보다 훨씬 많은 손님이 도착했고, 모든 남녀가 화려하게 차려입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소씨 집안에도 청첩장이 도착했고, 홍해인이 몇몇 며느리들과 소설아만 데려왔다. 소동의 명성이 나빠진 후, 홍해인은 소동을 손녀로 인정하지 않았다. 소시연은 바쁘고 독립적인 성격 때문에 본가 사람들과 친하지 않았기에 설아만이 소씨 집안이 자랑할 수 있는 자원이 되었다.소희가 소씨 집안 사람들 앞을 지날 때,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자 홍해인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그리고는 진연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 교육했는지 모르겠네.”그러자 진연은 억울해하며 말했다. “어
장연경이 바쁘게 말했다. “친구를 만나러 갔네요.”이에 홍해인이 물었다. “임구택도 왔나?”“아니요, 소설아가 말하길 지금 출장 중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임시호도 왔으니, 구택이 직접 올 필요는 없다고 하네요.”홍해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구택이 출장 중이니, 설아더러 자주 전화해서 관심을 보이라고 해.”장연경은 눈빛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어머님.”...소희와 강솔은 로비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 VIP 룸에 들어섰다. 거기에는 강재석, 도경수, 임씨 집안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노씨 집안의 내외가 옆에 있었다.화려한 휴게실 안에서는 여섯 명의 서빙 스태프가 서 있었고, 옆에서는 커피 장인들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소희가 들어서자 방에 들어서자 임시호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야, 오늘은 신부 들러리를 하나 보구나?”“삼촌, 안녕하세요!” 소희가 인사를 하고 나서야 강재석과 도경수에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스승님!”심지어 평소 장난을 좋아하는 강솔도 얌전히 인사했다.“할아버지!”그 자리에는 진석도 있었는데, 신부 들러리 복장을 한 강솔을 보고는 더욱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에 애써 눈을 내리깔고 커피를 조용히 홀짝였다.“오냐!” 강재석이 강솔에게 따뜻하게 응답하고, 소희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 어떻게 삼촌이라고 부를 수 있지?”그러자 임시호가 급히 소희를 대신해 말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까 소희를 탓할 수 없죠.”도경수가 옆에서 말했다. “맞아, 결혼식도 아직 안 했는데, 소희가 뭐라고 부르길 원하는 거야?”소희는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착하게 있었고 임시호는 따뜻하게 소희를 바라보았다.“소희가 어떻게 부르고 싶은지 마음대로 해도 돼.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소희가 딸이나 다름없어.”“임유진도 계속 독촉하고 있는데, 소희가 괜찮다면 올해 말에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는
다시 돌아와 2층의 전당으로 들어서자, 성연희는 이미 결혼식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 드레스는 소희가 디자인한 것으로, 끈 없는 스타일의 상의는 튤립 꽃잎으로 디자인되었고, 아래쪽은 매우 큰 스커트로 진주가 수놓아져 있어 고전적이면서도 단정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오늘 성의 예식장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울렸다.많은 사람이 연희 주변을 둘러싸고 연희의 웨딩드레스가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인지 묻자 연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누구겠어요, 당연히 King이죠!”King의 이름을 듣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감탄했으며, 일부는 실망했다. 이 디자이너를 직접 고용하고 싶었지만, King이라고 들으니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희는 사람들 뒤에서 소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익살스럽게 웃었다.결혼식이 반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어서 모든 하객이 예식장에 도착했다. 강재석과 도경수는 앞줄 주요 자리에 배치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강재석을 알아보고 노씨 집안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왜 강재석을 초대했는지에 대해 수군거렸다.웅장하고 고전적인 성의 예식장 안에서는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로마 기둥들이 균일하게 세워져 있고, 높은 천장의 로비, 웅장한 문, 그리고 방방곡곡에 배치된 신선한 꽃들이 로맨틱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우아한 음악이 천천히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하객이 점점 조용해졌다. 남자 들러리와 여자 들러리들이 대문 양쪽에서 나와 양쪽으로 펼쳐진 회랑을 따라 걸어왔다.심명과 소희는 들러리 행렬의 맨 앞에서 걸어왔다. 심명은 계속 소희를 바라보며 소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지만, 심장은 참을 수 없이 빨리 뛰고 있었다.그 짧은 몇 초 동안 심명은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만남, 서로 경계하며 지낸 시간, 그리고 나중에 생사를 함께 한순간들을 떠올렸다.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니!
임구택의 눈빛은 깊어졌고 말없이 소희를 바라봤다. 구석에 앉아 있던 소씨 집안 사람들도 소희를 주시했다. 홍해인은 소희가 방금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아 면목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화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장연경은 비웃듯이 말했다. “우리 소희가 들러리네!”소설아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며 냉담하게 말했다. “소희는 정말 명문이라면 가리지 않고 들러붙는 것 같아요.”이에 하순희가 비웃으며 말했다. “방금 들었는데, 연희의 웨딩드레스를 King이 디자인했다더군요 아마도 소희를 연희가 특별히 초대한 게 아닐까요?”주위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으며 하순희의 말을 듣지 않은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신랑 신부의 등장을 기다렸다.소희는 구택이 나타난 후로 심란해져 끊임없이 관객석을 살폈고 심명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중 좀 해, 소희야!”소희는 심명을 흘겨보며 말했다. “알겠는데 결혼식 끝나고 나면 넌 바로 가.”“왜, 구택이 나한테 손댈까 봐 걱정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날 신경 써 준다면, 구택의 손에 죽어도 괜찮아!”만약 이곳이 하객들로 가득 찬 장소가 아니었다면, 소희는 심명을 한발에 크리스털 샹들리에에 매달아 버렸을 것이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심명은 소희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걸어갔고, 소희의 손을 잡고 돌아가며 가까이에서 속삭였다.“소희야,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해.”소희는 순간 당황해,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심명은 신사답게 소희의 손을 놓고 옆으로 걸어갔다.들러리들은 양쪽에 서서, 로맨틱한 웨딩 행진곡에 맞춰 서 있었다. 노명성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회전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반대편, 예식장의 큰 문이 서서히 열리고, 눈부신 빛 속에서 연희는 성동일의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왔다. 연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11개의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연희의 아름다운 얼굴이 예식장을 숨죽이게 했다.요요와 또 다른 꽃동은 각각 웨딩드레스의 한쪽을 잡고, 마치 동화
결혼식장 가운데에서 노명성이 성연희에게 걸어갔다. 성동일은 이미 벅차올라 연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27년 동안 우리 딸 연희를 키워왔고 사랑했으니 이제는 자네가 우리 연희를 잘 챙겨주길 바라.”명성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연희를 키우고 보호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연희를 맡겨주신 것에 대한 신뢰에 감사드립니다.”“저도 약속드릴게요. 연희를 영원히 챙기고 사랑할 것이며, 오늘부터 더 사랑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성동일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연희의 손을 명성에게 넘겼다. 그 모습에 연희도 갑자기 목이 메어 겨우 입을 열었다.“저 앞으로 계속 행복할 거고요. 제가 시집간다고 해도 난 영원히 엄마 아빠 딸인 거 잊지 마요.”성동일은 눈물을 급히 닦으며 끄덕였다. “좋아, 명성이와 함께 가렴.”명성은 다시 한번 성동일에게 인사를 한 후, 연희의 손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생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 여정에서, 둘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이며,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인생의 더 많은 희노애락을 즐기게 될 것이다.결혼식장에서, 주례자는 성경을 펼친 채 엄숙하게 서서 물었다. “신랑, 당신은 신부를 아내로 맞아 이곳에서 신부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을 맹세합니까?”“가난하든 부유하든, 병들었든 건강하든, 젊든 늙든, 신부를 영원히 사랑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까?”명성은 연희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저는 제 유일한 사랑인 신부를 아내로 맞아 이곳에서 영원히 사랑하고, 보호하고, 지지하면서 살아갈 것을 하나님께 맹세합니다.”명성의 말에 연희는 눈물이 고였다. 연희의 크고 맑은 눈동자는 명성과 떨어지지 않고 마주 보았다.명성과 연희의 관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희는 감회가 새로웠다. 둘은 어린 나이에 만났고 둘 다 한눈팔지 않고 쭉 상대를 사랑해
방 안의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오범석은 임구택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녹음을 재생하자 곧바로 심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조금만 더 안아도 될까?”“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어?”“나는 그리워서 몸무게까지 줄었어.”“이번에 돌아왔으니 더는 가지 않을 거야.”“아버지 말씀이, 제대로 된 여자친구만 생기면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신대.”“그건 간단해, 나중에 널 아버지에게 소개시켜 주면 되지.”심명의 목소리는 흥분과 애정이 섞인 듯,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마치 소희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내비치고 있었다. 구택은 눈을 반쯤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는데 온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이에 범석은 구택의 얼굴색을 조심스레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 후에 심명이 저를 때렸어요. 저는 기절했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심명이 그 여자를 계속 안고 있었어요.”그 말을 끝내자마자, 구택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일어나서 범석을 발로 찼다. 이에 범석은 공중으로 날아가며 바닥에 ‘퍽’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범석의 가슴은 극심한 통증에 뒤틀렸고, 이빨 두 개가 부러지면서 입에서 피가 흘렀다.구택은 외투를 벗고 검은 셔츠만 입은 채로, 어두운 눈빛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이에 범석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범석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역력했다.“근데 왜 그곳에 있었지?” 구택의 질문에 범석은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일어나서 말해!”범석은 벽에 기대어 힘겹게 일어섰고 너무 놀란 나머지 바지는 이미 젖어 있었다.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이 3층에서 대화하는 동안 거기에 왜 있었는지 말해봐. 우연이라는 개떡 같은 말은 하지 말고.”“그래서 네가 그 여자를 따라갔는지, 아니면 심명을 따라갔는지 말해.”“저, 저.” 범석은 얼굴이 새하얘졌고 소희를 따라간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범석은 심명에게 발길질을 당
“싫어?” 임구택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요, 좋아요!” 오범석은 속으로 떨리면서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해. 내가 듣지 못하면, 앞으로 여자 말고 남자만 상대해야 할 거야.” 구택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지만, 극도로 차가웠다. 이에 범석은 온몸이 떨리면서 본능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할게요, 고백할게요!”구택은 범석보다 키가 한참 더 컸고, 위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심명과 이야기했던 그 여자를 알아?”범석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다시 보면 그 사람에게서 멀리해. 둘이 같이 있는 걸 본다면, 당신 아버지한테 네 가족을 위한 좋은 무덤을 준비하라고 전해.” 그러자 범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나가.” 구택이 냉정하게 말하자 범석은 아픔을 참으며 밖으로 걸어갔다. 구택을 건드린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가능한 한 멀리하고 싶었다.문을 열자마자 장시원이 서 있었고, 시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고백할 때는 좀 더 애절한 표정을 짓는 걸 까먹지 마시고.”시원의 웃음에 범석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달아났다. 시원이 문을 닫고 들어와 구택이 소파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임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왜 다시 담배를 피워?”구택은 속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모금 피웠다가 담배를 꺼뜨리고, 범석이 가져온 핸드폰을 들어 땅바닥에 메쳤다.이에 시원이 물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심명과 소희의 녹음이었나? 둘이 3층에서 무슨 일을 했어?”“그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하지?”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얼굴에는 음침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심명은 소희를 구해준 적이 있었기에 더욱더 구택을 속박하는 듯했다. 구택은 심명을 증오하면서도 손을 쓸 수 없었다. 더욱이 소희도 심명을 보호하고 있었고, 만약 구택이 심명을 건드린다면 소희와의 관계에 금이 갈 것이다. 심명 때문에 소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