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민첩하게 한 남자의 팔을 따라 미끄러내려 종아리를 세게 걷어찬 후 손에 든 비수를 힘껏 남자의 목덜미에 꽂았다.살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소희는 여유롭게 덩치가 큰 남자들 사이에서 공격을 날렸다. 그녀는 비록 보기에 많이 수척했지만 순발력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녀의 모든 공격에는 보여주기식이 전혀 없었고 전부 급소만 공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세 명의 남자가 쓰러졌다.불곰은 사람들 뒤에 서서 소희를 차갑게 바라보았다.그는 한 번도 눈앞의 소녀를 얕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비록 C국 경내라는 이유로 이만한 인원들밖에 데려오지 못했지만, 하나같이 정예였고, 목숨을 바칠 마음가짐을 안고 이곳까지 왔다. 그는 오늘 반드시 서희를 이곳에서 죽여야 했다.요 몇 년 동안 서희 수하의 추격 때문에 그는 곳곳에서 제약을 받고, 끊임없이 숨어다니는 바람에 장사와 수하가 전부 격감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소희를 죽이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숨어다니며 살아야 했다.C국을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삼각주에 관한 일에는 절대 관여할 수 없고, 용병들 앞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건 진언이 그녀에게 정한 규칙이다.마찬가지로 C국은 그가 오고 싶다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서희를 죽도록 증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런데 마침내 이번에 누군가가 그에게 이 기회를 제공했으니 그는 위험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체하지 않고 왔다.서희가 직접 그를 죽이고 싶은 만큼 그도 그녀를 죽이고 싶었으니까.자신이 데리고 온 부하가 네다섯 명이나 서희의 손에서 죽어나가자 불곰의 눈에는 순간 포악한 빛이 번쩍였다. 그러더니 손바닥을 치며 입을 열었다."데려와!"방안에서 두 사람이 한 남자를 끌고 나왔다.남자는 온몸에 힘을 잃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서희, 누군지 한 번 봐봐."불곰이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싸우고 있던 쌍방이 모두 멈추었다. 중간에 포위된 소희의 하얀 얼굴에는 피가 잔뜩 튀었다. 그녀는 칠흑
장명원은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발버둥 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결국 꼼짝도 하지 못하고 칼이 자신의 발목을 향해 날아오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땡-소희가 걷어찬 돌멩이 하나가 불곰의 칼에 부딪히자 칼은 순식간에 방향이 틀려 옆의 진흙에 꽂혔다.장명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별안간 고개를 들어 소희를 바라보았다.불곰도 소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냉담하게 말했다."이래도 모른다고?""너희들이 죽이려는 건 나잖아. 다른 사람과는 무관하니 무고한 사람을 연루시키지 마."소희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불곰, 저 사람은 풀어줘. 나 혼자 여기에 온 건 바로 우리의 일을 우리끼리 조용하게 해결하고 싶어서야.""너의 능력은 나도 잘 알아. 이 사람을 살리고 싶으면 무기를 바닥에 버려."불곰이 말했다."그러지."소희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장명원은 그제서야 그를 납치한 사람이 불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바로 소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이 사람의 말을 듣지 마요!""닥쳐요 그냥!"소희가 장명원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고는 불곰을 쳐다보며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 비수를 발밑에 놓았다.그녀가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들어 손에 든 주사기를 소희의 어깨에 세게 박고 힘껏 아래로 눌렀다.하지만 거의 동시에 소희가 손을 들어 그 사람의 손에 있던 주사기를 빼앗고, 그 사람을 장명원을 잡고 있는 남자에게 던졌다.그 후 바로 하늘로 날아올라 한 발로 불곰 앞에 있는 남자의 가슴을 걷어차고 몸을 돌려 다른 사람의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손에 든 주사기를 그 사람의 팔에 꽂아 3분의 2의 약을 전부 주입했다.그녀의 동작은 엄청나게 빨라 불곰 쪽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이미 두 사람이 연달아 죽었다.소희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바로 불곰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녀의 몸에는 이미 3분의 1의 약이 주입되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걱정마세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불곰이 반드시 저 여인을 죽일 겁니다."해가 점점 져가고 있었다. 산비탈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었고, 소녀도 피범벅으로 되었다. 그녀 자신의 것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싸움은 멈추지 않았고 숲 바람은 메스꺼운 피비린내를 휘감고 불어왔다.소희의 체력은 점점 소모되고 있었다. 특히 이름 모를 약물을 맞은 후 체력은 더욱 빨리 소모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통증도 마비시켜 그녀로 하여금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등에는 두 곳 베이고 팔에도 부상을 많이 입었지만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그녀의 동작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목표라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불곰을 죽이는 것이다.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전부 소녀의 발밑에 쓰러지자 불곰은 드디어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는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들어 소희의 목덜미를 향해 힘껏 날렸다.소희가 마침 비수로 한 사람의 명치를 찌르고 있어 미처 뒤로 물러설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겨우 몸을 피했고 칼날은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 그러자 검은 머리카락 한 가닥이 공중에 흩날렸다.불곰은 그녀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소희는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약물이 발작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녀는 더는 피할 수 없었고 칼끝은 순간 그녀의 어깨에 박혔다.불곰이 손에 힘을 주자 소녀의 신음과 함께 선홍색 피가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불곰의 눈에는 순간 피비린 흥분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다시 한번 칼로 힘껏 찌르려 했지만, 소녀가 갑자기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소녀의 손에는 어느새 짧고 날카로운 비수 하나가 나타났고 그 비수는 신속히 불곰의 목덜미를 향했다.불곰은 순간 놀라움에 빠졌다. 소녀가 자신을 미끼로 삼아 고의로 그를 가까이로 유인했던 것이다.그는 급속히 후퇴했다. 하지만 소녀도 양보하지 않고 손에 힘을 주고 다가갔다.그러다 불곰의 등이 굵은 나무에 부딪혔다. 그가 손에 든
심명은 숲속에서 달려 나와 전기 막대기로 불곰의 수하 한 명을 기절시켰다. 그러고는 또 전기 막대기를 휘두르며 불곰의 다른 수하와 뒤엉켰다.소희는 갑자기 목구멍이 뜨거워지더니 바로 피를 토했다. 그러다 몸이 나른해져 땅에 쓰러진 채 이를 악물고 힘주고 있던 눈을 감았다.드디어 불곰을 죽여 백양 그들을 위해 복수했어.시름 놓고 전우들을 만나러 갈 수 있겠네."소희야!"심명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목숨을 걸고 그녀에게 달려갔다.그의 손에 있는 전기 막대기의 강도가 매우 세서, 순간 길을 뚫을 수 있었다.그는 소희의 발 옆에 주저앉았다. 눈빛과 얼굴에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소희를 보며 그는 어디를 먼저 다쳐야 할지 몰라했다.그러다 손을 들어 그녀의 배에 난 상처를 움켜줘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팔마저 덜덜 떨고 있었다."소희야, 소희야, 내가 너무 늦었어!"무지개 촌에서 소희를 찾지 못한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근 산에서 돌아다니다 우연히 겁에 질린 커플을 만났고, 그들이 한 소녀가 이쪽에서 포위되었다고 알려 주었다.그래서 듣자마자 서둘러 왔는데도 늦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소희는 눈을 살짝 뜨고 심명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흐리멍덩해지고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빨리 가, 나를 상관하지 말고.""소희야, 죽지 마. 제발 죽지 마!"심명은 어찌할 바를 몰라 벌떡 일어나 소희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불곰의 수하를 향해 소리쳤다."자, 죽여!"불곰의 수하는 4~5명밖에 남지 않았고 모두 부상을 입었다. 소희가 불곰을 죽인 장면을 목격한 몇 사람은 소희와 심명을 노려보며 다시 달려들었다.심명은 손에 든 전기 막대를 꼭 쥐고 양쪽으로 휘두르며 공격을 막았다. 비록 그에겐 아무런 무공도 없었지만 눈이 돌아간 채 목숨을 걸고 전기 막대기를 휘두르는 탓에 불곰의 수하들은 더는 소희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어느덧 해는 지고 어둠의 장막이 깃든 숲속은 차고 쓸쓸했다.심지어 쌩쌩 불어오고 있는 바람에도 숙연
온 얼굴이 피투성이였지만 유독 별처럼 맑은 소희의 한 쌍의 눈은 장막을 밝혀주고 있었다.......전망대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더는 기다리기 귀찮아 고개를 돌려 Maduro에게 말했다."사람 보내 처리해.""아무렴요."Maduro가 불빛 아래에서 더 조각져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웃었다."절대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먼저 돌아가셔도 되고요.”그의 말에 임구택은 몸을 돌려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귓가에 굉음이 들려왔다. 임구택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열 대 가까이 되는 헬리콥터가 하늘을 가르며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그 헬리콥터들은 마치 먹구름처럼 밀려 와 마지막 한 가닥의 황혼을 가렸고, 하늘은 찰나에 어두워졌다.헬리콥터는 산기슭으로 날아가 살육 현장의 상공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굉음은 천지마저 뒤흔들었다.임구택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Maduro를 바라보았다."누구야?"Maduro의 안색도 순간 변하더니 바로 대답했다."불곰 쪽의 사람은 아닐 겁니다."마침 임구택의 핸드폰이 울렸고, 임구택이 바로 받았다."무슨 상황이야?"고무원을 관리하던 명경이 급급히 대답했다."임 대표님, 진언이 왔습니다!"임구택이 듣더니 순간 멍해졌다.그러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 어두운 얼굴색으로 Maduro에게 물었다."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자들이 대체 누구지?"Maduro가 듣더니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저 여인이 진언이 가장 좋아하는 이를 죽였거든요. 그러니 진언이 직접 저 여인을 잡으러 온 걸 겁니다."임구택의 눈빛이 점점 무거워났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계단 아래로 내려가며 명경에게 말했다."진언 쪽 사람과 통화해. 나 진언을 만나야겠어."명경이 바로 대답했다. "네!"*헬리콥터 프로펠러의 거대한 소리는 산맥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줄 사다리가 헬리콥테에서 밖으로 던져졌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 사다리를 타고 신속히 내려왔다.
시언이 소희를 안고 헬리콥터로 향했다. 그리고 부하더러 상처투성이인 심명도 헬리콥터로 옮기라고 했다.심명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람들을 보고 또 소희를 보았다. 눈에는 복잡함과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오빠!"소희가 갑자기 시언의 팔을 잡고 장명원 쪽을 바라보았다."저 사람도."시언은 차가운 눈빛으로 장명원을 한번 보고는 다시 소희를 보며 말했다."걱정마, 네 사람은 한 명도 버리지 않을 거야."소희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그러자 순간 심한 통증이 온몸을 감쌌다.시언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 사람이 달려와 큰 소리로 말했다."진언, 임구택이 한번 뵙고 싶답니다!"시언이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매서운 빛이 드러났다."그가 나를 매우 실망시켰으니,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전해."말을 마친 후 시언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헬리콥터에 오르자마자 같이 따라 온 의사가 바로 소희와 심명의 상처를 처리했다. 소희는 상체에 속옷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허리에 묶인 티셔츠는 이미 피로 물들었고, 선혈은 그녀의 하얀 피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의사가 티셔츠를 풀자 밖으로 뒤집힌 상처가 흉악하고 무섭게 사람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의사는 신속하게 의용솜으로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처를 막았다.심명은 한쪽에 앉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소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 피를 보더니 안색이 순간 참백해졌다.강적과 죽음 앞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갑자기 두려워 났다. 소희가 정말 죽을까 봐.시언은 소희를 꼭 안고 있었다. 그의 품안 소희가 아픔에 눈을 다시 떴지만 이를 꽉 깨문 채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멍하니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심명은 갑자기 자신이 여태껏 소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오늘 그가 본 소희는 매 순간마다 그를 놀라게 했다.헬리콥터가 너무 심하게 움직였는지
너무 심하게 다쳐서.심지어 그녀에게서 살아있다는 흔적을 느낄 수가 없었다.뒤에는 차가운 살기를 품은 사람들과 일반인한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심각한 상처들을 달고 있는 소녀는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진 의사조차 손을 떨게 만들었다.다행히 시언이 데려온 군의관이 침착하고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걱정마세요, 서 아가씨께서는 죽지 않을 테니 긴장을 푸시고, 일반 환자를 구하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진 의사가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군의관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을 전부 밖으로 모셨다. 진 의사와 그 조수들이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고 서희와 심명을 구조할수 있도록.그렇게 거의 하룻밤 동안 바삐 돌아치다 진 의사가 피곤하게 무균실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밝았다.밖에서 줄곧 지키고 있던 시언은 의사를 보더니 대뜸 물었다."서희는 어떻게 됐습니까?"시언의 물음에 두 의사는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군의관이 앞으로 다가가 심각한 어투로 대답했다."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몸속에 주입된 페린세제는 지극히 자극적인 독이라 아가씨의 시신경에까지 자극을 주었거든요...... 아가씨께서 실명할 수도 있을 겁니다."시언이 잠시 멍해지더니 눈빛에 침통한 기색으로 가득했다."치료할 수는 있습니까?""혼합된 독약이라, 저희도 일시적으로는 해독제를 찾을 수 없습니다."군의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시언이 듣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살았으면 됐습니다. 수고했습니다."그러고는 뒤돌아 부하에게 "진 의사를 모셔다드려"라고 분부했다.한 위장복을 입은 남자가 앞으로 다가와 진 의사를 데리고 떠났다. 그러다 장원을 나선 후 작은 휴대용 금고를 그에게 건네주며 차갑게 말했다."진 의사님, 이건 진 의사님의 보수입니다. 그리고 어젯밤에 겪으신 일에 대해서는 전부 잊어주십시오. 밖에 의사님과 조수를 데려다 줄 차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진 의사가 금고 안의 돈을 보더니 순간 멍해졌다. 그러다 바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길을
숲속에는 한 무리의 용병들이 소희를 포위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를 인질로 소희를 위협했었다. 그러다 소희는 기습당하고 용병 한 명이 그녀에게 불명의 약물을 주입했지만, 소희는 순간 그 용병을 죽이고 나머지 용병들과 뒤엉켰다.당시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소희를 도우러 가려고 했지만 온몸이 나른해져 있었고, 어느 순간에 목덜미를 한 번 맞고 다시 기절해 버렸다.그러다 다시 깨어나니 이미 여기에 있었고.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희를 포위 공격했던 사람은 누구지?불곰인가?그럼 또 누가 그를 강성으로 데려온 거지?머리가 너무 아프고 혼란스러워 전혀 냉정하게 사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손발에 여전히 힘이 없었다. 다행힌 건 전처럼 전혀 걸을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상 쪽으로 걸어가 생수를 집어 들고 급히 마셨다.마시자마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그가 다가가 문을 열자 간미연이 성큼성큼 뛰어들어 그의 옷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소희는? 소희는!"어젯밤 경기를 마치고 핸드폰에 접속한 후에야 그녀는 사고가 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장명원의 몸은 그녀의 힘에 따라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러다 간미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했다."나도 몰라. 아마, 아마......"그 많은 사람들에게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었는데, 아직 살아 있을까?간미연는 힘껏 그를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이를 악물며 그를 노려보았다."이 나쁜 놈아!"장명원은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간미연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이때, 간미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내용을 확인한 간미연의 눈빛은 순간 밝아졌다. 매곡리에 마침내 소희의 위치가 나타났다.그녀는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장명원이 바로 따라와 간미연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간미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남자를 돌아보았다."너 아직도 모르겠어? 왜 임무를 받은 건 보스인데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