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햇살이 스며드는 다음 날 아침, 윤아는 타이론의 거대한 품 안에서 눈을 떴다.
그녀는 그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졸린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여보… 나 아직 일어나기 싫어.”
타이론이 낮은 숨을 흘리며 그녀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코트를 찢을 듯한 완력을 지닌 거대한 손이, 윤아의 가녀린 등줄기를 부서지기 쉬운 보물을 다루듯 천천히 쓰다듬었다.
윤아는 그의 가슴팍에 뺨을 비비며 나른하게 웃음을 흘렸다.
“어젯밤에 당신을 내 뜻대로 다루느라 기운을 다 썼나 봐… 온몸이 나른해. 그래도 우리 타이론 품에 누워 있는 건 참 좋네.”
타이론이 그녀의 흩어진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넘기며 어눌한 한국어로 조심스레 물었다.
“미안… 내가 너무… 버겁게 굴었어? 윤아… 많이 피곤해?”
“아니야. 피곤하긴커녕… 당신이 내 명령에 온전히 매달리는 모습, 아주 완벽했어.”
윤아는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얇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창가로 걸어가 부드럽게 커튼을 젖혔다.
투명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내리며 실크 자락 너머로 윤아의 유려하고 매끄러운 실루엣이 은은하게 드러났다.
창가에 서서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녀의 눈부신 자태에,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타이론의 입에서 절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우… 정말… 아름다워, 윤아.”
“고마워. 우리 남편 훈련 가기 전에 든든하게 브런치 만들어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
윤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방을 향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고 능숙한 손길로 식재료를 꺼내어 다듬기 시작했다.
신선한 달걀과 두툼한 베이컨, 잘 익은 아보카도, 그리고 파릇파릇한 채소까지.
윤아의 요리 솜씨는 치어리딩 실력만큼이나 정갈하고 뛰어났다.
팬 위에서 고소한 버터 향과 함께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가 몽글몽글 피어올랐고,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 위에 재료들이 먹음직스럽게 얹어졌다.
잠시 후, 말끔하게 샤워를 마친 타이론이 허리에 커다란 수건 한 장만을 두른 채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물기를 머금은 짙은 피부와 단단한 어깨 근육 위로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빛났다.
윤아는 식탁 위에 정갈하게 접시를 세팅하며 그를 올려다보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빨리 앉아. 정성껏 만든 거니까 식기 전에 먹어야지.”
타이론이 의자에 조심스럽게 거구를 얹자 윤아도 마주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토스트를 우아하게 한 입 베어 물고는, 접시를 순식간에 비워내는 타이론의 먹성을 흐뭇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맛있어? 오늘은 특별히 영양을 더 신경 써서 만들었어. 어젯밤에 내 발치에서 바짝 긴장하느라 진 다 빠졌을까 봐.”
타이론이 볼이 미어지도록 음식을 씹어 삼키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정말 맛있어… 윤아… 최고야.”
아이처럼 순박하게 웃는 그의 어눌한 말투에 윤아는 소리 내어 작게 웃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타이론이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훈련… 가야 해. 늦으면… 감독님한테 혼나.”
그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드레스룸 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찰나, 윤아가 그의 굵은 손목을 낚아채듯 붙들었다.
“잠깐만. 오늘 훈련 일정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타이론이 발걸음을 멈추고 얌전하게 대답했다.
“오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랑 개인 체력 훈련. 그리고 끝.”
“아, 다른 선수들과 부딪히는 단체 전술 연습은 없고, 오전 내내 혼자 개인 훈련만 하고 끝이라는 거지?”
타이론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윤아의 입가에 머물던 다정한 미소의 결이 미묘하게 변했다.
눈빛 깊은 곳에서 서늘하고 은밀한 장난기가 번뜩였다.
“그렇다면 전혀 문제없겠네.”
윤아는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와.”
그녀는 타이론을 이끌고 거실 소파 앞으로 다가갔다.
윤아는 소파에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앉더니, 타이론에게 자신의 바로 앞에 똑바로 서라는 듯 턱짓을 보냈다.
타이론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의 발치 앞에 곧게 섰다.
윤아는 거실 탁자 아래의 작은 서랍을 열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작고 앙증맞은 파스텔 핑크색의 특수 실리콘 잠금 밴드였다.
겉보기에는 귀엽고 산뜻한 색상에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재질처럼 보였지만, 단단한 특수 핀으로 결착하는 순간 신체의 중심부를 빈틈없이 조여 숨통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는 가혹한 족쇄였다.
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타이론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Oh, no…”
거대한 맹수 같던 남자가 그 작고 귀여운 도구 앞에서 겁에 질린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감히 뒤로 물러서거나 거부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윤아는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천사처럼 해맑게 웃었다.
“훈련받느라 땀 흘리면서, 윤아 잊어버리면 돼, 안 돼?”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나… 운동하면서도… 계속… 윤아 생각만 해… 절대로… 안 잊어…”
타이론이 210cm의 거구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속삭였다.
“손, 뒤로.”
윤아의 서늘한 호령이 떨어지자 타이론은 순순히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맞잡았다.
윤아는 귀엽다는 듯 방긋 미소 지으며 타이론의 허리에 둘러져 있던 수건을 단숨에 풀어헤쳤다.
수건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의 전신은 이미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팽팽하게 굳어 있었고, 피부 위로는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윤아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단단한 허리와 골반 라인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비좁은 핑크색 실리콘 밴드를 그의 하복부와 신체 중심부에 빈틈없이 둘러 옭아매기 시작했다.
유연하면서도 질긴 실리콘 재질이 살결을 파고들 듯 강하게 압박하며, 호흡과 근육의 이완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윽…”
타이론의 미간이 고통과 갑갑함으로 일그러지며 굵은 이마 위로 식은땀이 맺혔다.
몸의 중심을 엄격하게 통제당하는 특유의 묵직한 구속감에 숨소리가 가파르게 흩어졌다.
장치가 완벽하게 맞물리자, 윤아는 작은 자물쇠를 딸깍 소리 내어 잠갔다.
“완벽해.”
윤아는 단단히 채워진 핑크색 장치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가벼운 접촉에도 타이론의 거대한 몸이 파르르 경련하듯 떨렸다.
윤아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얌전히 복종하는 그를 올려다보며 더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많이 답답하지? 그래도… 잘 견뎌야 해. 내가 우리 남편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예쁜 색으로 골라준 거잖아.”
타이론이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통제의 무게와 갈증이 뒤섞인 채 애타게 일렁이고 있었다.
윤아는 일어서서 그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착하지. 오늘 이 상태 그대로 혼자 훈련 잘 마치고 와. 다치지 말고, 딴생각하지 말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 내가 직접 풀어줄게.”
윤아는 그의 손을 잡아끌며 현관으로 향했다.
“자, 이제 출발하자. 예쁜 아내가 주차장까지 직접 배웅해 줄게.”
타이론은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낮게 신음을 삼켰다.
하복부의 중심을 묵직하고 가혹하게 옥죄는 낯선 압박감 때문에, 평소의 위풍당당한 보폭은 온데간데없고 걸음걸이가 몹시 부자연스럽고 뻣뻣했다.
윤아는 그의 곁에서 즐거운 듯 생글거리며 팔짱을 끼었다.
“오늘도 파이팅해, 우리 대형견. 저녁에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특식 준비해 둘게.”
타이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는 타이론의 단단한 팔을 품에 안은 채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거대한 SUV 앞에 섰다.
운전석에 올라탄 타이론의 탄탄한 허벅지를 윤아가 창문 너머로 가볍게 쓸어내리더니, 귓가에 서늘한 당부를 얹었다.
“참아야 해. 아무리 답답하고 힘들어도, 내 허락 없이 함부로 손대거나 풀려고 하면 정말 혼날 줄 알아. 내가 온종일 널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타이론은 운전대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힘을 꽉 주었다.
윤아는 그가 억누르는 벅찬 긴장감을 서늘한 눈빛으로 음미하며, 유리창 너머로 소름 돋도록 아름답고 눈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이클의 철저한 착각에 불과했다.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세운 도피 시나리오와 여론 조작 계획에 젖어 있던 그는, 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 현실과 마주쳤다.구단의 법무팀과 프런트 수뇌부는 곧바로 연방 수사 당국과 현지 경찰에 정식으로 고발 조치했다.다른 구단이나 신인 선수들에게 또다시 접근해 사기를 치고 잠적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마이클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단호하게 움직였다.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게이트를 빠져나오려던 찰나, 사복 차림의 연방 수사관들과 현지 경찰들이 마이클의 양팔을 단숨에 낚아채며 제압했다.“마이클 팀장, 당신을 사문서위조 및 공금횡령 미수 혐의로 체포합니다.”반짝이는 차가운 은빛 수갑이 마이클의 손목을 묵직하게 조여 들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이거 놔! 나는 피해자야! 타이론과 그 주치의가 나를 속인 거라고!”마이클은 얼굴이 시뻘개져 고성을 지르며 발악했지만, 수사관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강제로 연행해 공항 밖 차량으로 밀어 넣었다.마이클의 체포 소동으로 공항 입국장 주변의 어수선한 소란이 점차 잠잠해질 무렵, 그 뒤를 이어 서울발 직항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입국장 문이 열리고, 세련된 자태를 뽐내며 윤아와 주연이 나란히 걸어 나왔다.긴 비행에도 묘한 설렘과 여유가 두 사람의 얼굴에 은은하게 감돌았다.게이트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던 타이론과 올리버의 눈에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두 여자가 담겼다.“저기 온다!”타이론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성큼성큼 걸어가 윤아를 번쩍 들어 안아 올렸고, 올리버 역시 다가오는 주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고생했어, 정말 보고 싶었어. 피곤하지?”“우리가 없는 동안 사고 안 치고 말 잘 들었어요, 형부?”서로의 품에 안겨 가볍게 농담을 건네면서도, 네 사람의 눈빛 속에는 서로를 향한 타오르는 욕망과 승리의 쾌감이 진하게 묻어났다.태평양을 건너 보스턴 본토에서 비로소 완전체로 다시 뭉친 네 사람의 가
아침 햇살이 스위트룸 틈새로 쏟아져 들어올 무렵, 올리버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발신인은 어제 비밀 접견을 가졌던 구단 총괄 부사장이었다.숨을 죽인 채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누른 올리버의 귓가로, 정중한 부사장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들어왔다.“올리버 박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밤사이 구단 긴급 이사회와 법무팀 내부 감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구단의 정식 입장은 타이론 선수가 제안한 총액 1억 3천만 달러 규모의 다년 계약 조건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로 최종 의결했습니다.”심장이 발밑으로 내려앉는 듯한 전율 속에서, 부사장의 통보가 이어졌다.“또 위임장을 위조해 거액을 가로채려 한 마이클은 스카우트 팀장 직위에서 즉각 파면 조치되었습니다. 구단 차원에서 사문서위조 및 배임 혐의로 형사 고소와 손해배상 청구 절차에 착수할 방침입니다.”모든 불안과 의혹이 완벽한 환희로 뒤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전화를 끊은 올리버는 침대에서 일어나던 타이론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 안았다. “타이론! 우리가 해냈어! 구단에서 1억 3천만 달러 계약을 전부 받아들였어! 마이클은 해임됐고 고소까지 들어간대!”2미터 10센티의 거구가 환호성을 지르며 올리버의 허리를 번쩍 안아 들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렸다.믿기지 않는 완벽한 승리에 두 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벅찬 감격의 숨을 헐떡였다.올리버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보스턴의 오전 시간은 서울 기준으로 새벽 1시가 갓 넘은 깊은 밤이었다.하지만 이런 엄청난 승전보를 아침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올리버는 곧바로 서울 펜트하우스의 윤아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화면에 나타난 윤아와 주연은 나른한 슬립 차림으로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올리버? 이 야심한 밤에 연락한 걸 보면…… 좋은 소식인 거야?”윤아의 물음에 올리버와 타이론은 구단 이사회의 직계약 수용 결정과 마이클의 해임 소식을 가감 없이 전했다.수화기 너머에서 주연과 윤아가 소리를 지르며 침대 위를 방방 뛰는 것이 느껴졌다. 공식 계약서
서울의 펜트하우스는 고요했다.창밖으로는 한강변을 따라 이어진 대로의 불빛들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었다.모든 것이 계획대로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는 늦은 밤이었다.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가벼운 실크 슬립 차림으로 나온 윤아와 주연은 거실의 푹신한 가죽 소파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주연은 무릎을 가슴팍으로 끌어안은 채 통창 밖의 아득한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옆에 앉은 윤아를 곁눈질하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언니…… 모든 게 너무 계획대로 척척 잘 풀리니까, 난 오히려 조금 불안해요.”“불안하다고? 걱정할게 아니라 좋아해야지. 엄청난 계약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마이클 그 여우 같은 인간이 정말 아무 눈치도 못 챘을까 싶기도 하고, 미국 쪽에서 갑자기 일이 삐끗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서 심장이 자꾸 콩닥거려요.”주연의 잔뜩 긴장한 표정에 윤아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 셀러로 걸어가더니, 레드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를 챙겨 들고 돌아왔다.“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 마이클은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 우리를 너무 얕봤을 뿐이야. 올리버랑 타이론도 현지에서 잘 대처하고 있으니까, 불안해할 시간에 술이나 한 잔 마시자.”능숙한 손길로 코르크를 따낸 윤아가 붉은 와인을 잔에 가득 채워 주연에게 건넸다.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와인이 몇 차례 목을 타고 넘어가자, 팽팽하게 곤두서 있던 주연의 몸도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주연은 손에 든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윤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적당히 술기운이 오른 그녀의 눈동자에 진솔하고 애틋한 감정이 차올랐다.“언니…… 나 사실 언니에게 정말 고마워요. 날 이 네 사람 사이에 불러주고, 끝까지 함께할 수 있게 손잡아 줘서요.”윤아가 잔을 든 채 조용히 미소 짓자, 주연은 참아왔던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우리 사이에 크고 작은 일들도 많았고, 중간에 자칫 헤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잖아요. 내 질투나 욕심 때문에 판이 깨질
호텔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뒤에도 올리버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태블릿 화면에는 보스턴 구단의 이사진 명단과 지분 구조, 그리고 만약 구단 수뇌부가 마이클의 편을 들거나 협상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한 치밀한 플랜 B의 메모가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었다.“구단 이사회가 감사 결과를 언제 발표할지 몰라. 만약 마이클이 눈치를 채고 먼저 선수 협회나 언론에 약물 프레임을 흘린다면, 그땐 윤아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마이애미나 시카고 같은 다른 구단들로 즉각 방향을 틀어야 해.”올리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자,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있던 타이론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진정해, 올리버. 오늘 부사장이 내 무릎을 보며 입을 떡 벌리던 표정 못 봤어? 그 사람들은 이미 마이클의 위임장이 가짜라는 걸 확실히 알았고, 2천만 달러나 아낄 수 있는 1억 3천만 달러 직계약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어. 이미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마치 계약서에 도장이라도 찍은 사람처럼 느긋한 타이론의 태도에 올리버가 기가 차다는 듯 안경을 벗어 던졌다.“그 대책 없는 낙관적인 성격이 네 장점이자 가장 큰 단점이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계약서에 잉크가 마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끝난 게 아니라고!”“알았어, 잔소리 대마왕 선생. 그렇게 종일 머리만 굴리다간 머리카락 다 빠지겠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고. 한국에 있는 윤아랑 주연이도 너 이러는 거 보면 혀를 찰걸?”결국 타이론의 성화에 못 이긴 올리버는 태블릿을 덮고 함께 호텔 지하의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프라이빗한 코너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두툼한 안심 스테이크를 곁들여 와인 잔을 기울였다.묵직한 레드 와인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올리버의 경직되어 있던 어깨 근육도 서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식사가 무르익어 갈 무렵, 타이론이 와인 잔을 천천히 매만지며 올리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장난기가 걷힌 그의 짙은 갈색 눈동자에 진지하고 깊은 감정이 차올랐다.“미국에서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났을 때…… 다들 날
올리버와 타이론은 모두가 깊이 잠든 심야 시간을 택했다.새벽 한 시, 펜트하우스 지하 주차장에서 밴으로 갈아탄 두 사람은 인천공항의 한적한 전용 출입구를 향해 달렸다.검은 후드티와 마스크, 짙은 선글라스로 2미터 10센티에 달하는 타이론의 압도적인 체격을 최대한 가렸지만,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오를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두 사람이 태평양을 건너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게이트 앞에는 현지 글로벌 에이전시의 전용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지체 없이 윤아가 짜놓은 일정표를 따라 시내 외곽의 한적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으로 향했다.철저한 보안 통제 속에 마련된 별채 밀실에는 미국 구단의 실질적인 인사권과 계약 전권을 쥔 구단 총괄 부사장과 수뇌부 핵심 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단상에 선 타이론은 트레이닝복으로 환복한 뒤, 무릎 관절의 유연한 회전과 폭발적인 순발력을 현장에서 가감 없이 선보였다.올리버 역시 자신이 집도했던 무릎 재건 수술 일지와 상세한 재활 경과표, 그리고 도핑 규정상 치료목적사용면책 요건에 부합함을 증명하는 정밀 혈액 검사 및 호르몬 분석 데이터를 테이블 위에 질서정연하게 펼쳐놓았다.“보시다시피 타이론의 무릎은 완전히 재건되었고, 체내 잔여 약물 성분 또한 완벽한 제로 상태입니다. 차기 시즌 NBA 개막전에 선발로 투입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올리버의 명쾌하고 확신에 찬 브리핑에 구단 임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프런트 총괄 부사장의 얼굴에는 깊은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믿기지 않는 완벽한 몸 상태군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리는 마이클 스카우트 팀장으로부터 타이론 선수의 무릎 상태가 여전히 불안정하며, 선수 본인이 계약에 관한 모든 전권을 마이클 팀장에게 일임했다고 보고받았습니다.”부사장은 서류철에서 두툼한 영문 문건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밀어냈다.거기에는 타이론의 영문 자필 서명이 정교하게 위조된 ‘독점 협상 위임장’이 버젓이 첨부되어 있
펜트하우스의 분위기는 차분했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마이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네 사람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 때 거실 식탁 위에서 노트북으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현지 구단 관계자들과 연락하던 윤아에게 메일이 도착했다. 미국 현지 글로벌 스포츠 에이전시의 핵심 라인을 통해 은밀하게 입수한 각 구단의 내부 영입 기획서였다.각 구단별 영입 계획서들 가운데서 타이론의 이름이 언급된 복수의 구단 이름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몇몇 구단들은 비고란에 타이론의 피지컬 테스트에 대한 의문을 언급한 곳도 있었다. 또 구체적인 계약 금액이 표시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문서에 적힌 구체적인 수치와 계약 조항들을 확인하던 윤아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이런 교활한 자식 같으니라고!”윤아의 욕설에 가까운 탄식에, 각자 방에서 자료를 분석하던 올리버와 주연, 그리고 타이론이 서둘러 거실 테이블로 모여들었다.“뭐야, 왜그래, 윤아?”윤아는 태블릿 화면을 테이블 한가운데로 밀어놓으며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마이클이 우리에게 던진 1억 달러 제안,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구단 프런트에서 타이론을 영입하기 위해 최종 책정한 총예산은 1억 5천만 달러야. 마이클이 말한 것보다 무려 50%나 더 많은 금액이라고.”순간 거실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타이론의 몸값을 일부러 낮춰 부르고는, 그 절반을 가져가겠다고 뻔뻔하게 요구했던 마이클의 검은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그자는 독점 협상권을 가지고 타이론의 계약을 1억 달러짜리로 속여 체결한 뒤, 구단이 책정한 차액 5천만 달러까지 뒤로 빼돌려 가로채려 했던 것이다.어쩌면 구단과 타이론 사이에서 보수 명목으로 계약서에 언급되지 않은 금액을 요구하는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타이론에게서 뜯어낼 5천만 달러까지 합치면, 마이클 혼자서 무려 1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가로채려는 흉계였다. 주연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완전히 우리를 눈먼 장님 취급했네요. 독점권을 달라고 했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