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12 연인의 다른 시선
토요일 새벽 2시가 훌쩍 넘은 시간.
최고급 프라이빗 라운지 ‘HERA’에서 제공하는 VVIP 전용 대리 기사를 대동한 건우의 벤츠 마이바흐 GLS600이 매끄러운 엔진음을 내며 하윤의 오피스텔 입구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이동하는 내내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던 뒷좌석.
하윤이 눈치를 보며 건우를 슥 쳐다보자, 잔뜩 굳은 표정의 건우가 뒷좌석의 차문을 열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열린 차문으로 내리는 하윤의 손을 잡아, 높은 차체에서 그녀가 안전하게 사뿐히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두 사람은 그녀의 오피스텔 공동 현관문 앞까지 바짝 붙어 걸었다. 짧은 거리였지만 마치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듯한 수준으로 꽤 길게 느껴질 만큼 숨 막히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빨리 들어가."
건우의 입에서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낮고 흉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솔직히 말해, 오늘 건우의 입장에선 단단히 야마가 돌 만큼 피가 거꾸로 솟는 하루였다. 눈깔이 뒤집혀도 열 두 번은 더 뒤집힐 만한 아주 좆같은 하루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방해 금지 모드를 켜놓고 잠수를 타질 않나, 오늘 밤 작정하고 쑤시며 즐기려 벼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생리가 터져 침대 위 계획이 다 박살나질 않나, 좆같은 에테른가 뭔가 하는 그 아이돌 개새끼들이랑 들러붙어서 몰래 사진을 찍고 뒤로 꽁꽁 숨기질 않나...
하, 가장 빡치는 건, 차건우가 제일 경계하는 능구렁이 이태현 새끼에게 뽀뽀니 뭐니 요망한 주둥이로 미친 소리를 지껄이며 팬싸 티켓을 뒤로 찔러 달라고 한 것.
그 좁은 차 안에서 자신의 여자친구가 이태현에게 떨었을 그 귀여운(?) 아양 짓거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돌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하윤에 완전히 미쳐 있는 차건우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응... 조심해서 가. 도착하면... 연락하고...“
하윤은 한껏 가라앉은 맹수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공동 현관문 패드에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열리자 하윤은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다.
건우는 그 자리에 오뚝이처럼 서서,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층수 표시기가 그녀의 집 층수에 멈추는 것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집요하게 확인을 하고 나서야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제 차에 올랐다.
다시 캄캄한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듯 뉘인 건우.
알코올 기운과 함께 질투, 분노, 그리고 지독한 소유욕이 뒤엉킨 열기가 그의 하반신으로 뜨겁게 몰려들고 있었다. 쉼 없이 자신을 도발한 제 여자친구 때문에 짜증이 일렁였지만, 그 순간에도 차건우는, 자신의 여자, 이하윤을 눕혀놓고 미친 듯이 사랑한다 속삭이며 잔뜩 괴롭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차창에 머리를 기댄 그가 날카로운 턱선을 굳히며 붉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하… 씨발… 진짜 좆물 터져 뒤지겠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 가학적으로 잔뜩 몰아붙이고 싶었던 밤. 하지만 건드릴 수 없는 제 여자의 몸 상태 때문에 터질 듯이 팽창한 수컷의 원초적인 고통은 어두운 차 안의 어린 수컷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
같은 시각.
현생의 잘난 연하 남친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아랫도리가 터질 듯한 열기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단단히 미쳐 돌아간 이 열성 빠순이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노트북, 노트북. 아이씨, 노트북 어디 갔어?!!”
하윤은 집에 도착해 구두를 벗어 던지자마자 책상으로 달려가 제 개인 노트북을 찾았다. 며칠 전 회사에 가지고 간 탓에 책상 근처 어딘가에 둔 기억이 있었다. 노트북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빛처럼 움직였다.
빠르게 노트북 가방을 열어 노트북을 꺼내고 거칠게 노트북의 상판을 열어젖혔다.
자신의 핸드폰에서는 이미 영구 삭제되어 버렸지만, 혹시나… 아주 혹시나 ‘HERA’에서 이동을 하는 동안 와이파이가 잠깐이라도 연결되어 자신의 클라우드 서버로 자동 동기화되어 저장되어 있는지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노트북의 부팅 속도가 평소보다 느리게 느껴지자, 하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꿎은 모니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아, 빨리 좀 켜져라, 제발!!!”
마침내 바탕화면이 떴다. 그녀는 신들린 듯 빠른 손놀림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빠르게 로그인을 하고 제 덕질의 보물들이 가득 들어찬 클라우드 항목을 클릭했다.
날짜 순으로 정렬. 새로고침. 다시 새로고침. 새로... 고침...
화면을 노려보던 하윤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아… 씨발...“
하윤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아아아아아아악!!”
진심을 담은 절망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시나였다. 자신의 핸드폰 속에서 잠시나마 황홀하게 머물렀던 이시우와 다른 에테르 멤버들의 그 귀하디귀한 용안들은, 동기화될 틈도 없이 차건우와 백현민의 자비 없는 터치 몇 번에 영원히 사이버스페이스의 먼지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 제 남자친구는 정신적 분노와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아주 길고 긴 밤을 지새야 하건만, 핀트가 단단히 나간 이 빠순이는 그저 살리지 못한 사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오피스텔 방구석에서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43 백스테이지의 환희“와, 시야 대박!”에테르의 리더, 강태윤이 시은에게 선물로 준 ‘에테르 VIP 콘서트 티켓’의 좌석은 1층 8구역의 12열이었다. 실질 1열. 심지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도록 연석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태윤의 배려에 두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 못 해, 뜨거워졌다.체조경기장, KSPO DOME의 8구역은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무대 전체를 보기에 상당히 좋은 자리였다. 본 무대와는 꽤 거리가 있긴 하지만 멤버들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을 따라가기 좋고, 전광판까지 정면으로 잘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 바로 앞에 돌출 무대가 있어, 그 무대 앞에 에테르 멤버들이 온다면 플로어 좌석보다 훨씬 더 시야가 좋은 자리였다. 거기다 실질 1열의 좌석이니 멤버들의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최고의 자리.“저기... 시우 부모님.”“와, 진짜 어머니 너무 미인이시다.”“그치? 누나도 엄청 예쁘더라. 근데 오늘은 안 왔나 봐."덕질 5년 차의 짬바는 내 최애의 가족도 괜히 친근해지는 법."어? 저기 저 사람, 태윤이 여동생 아냐?”“어? 어디?"시은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윤이 가리킨 곳에 태윤의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어어, 맞아. 존나 예쁘지?”“응. 진짜 연예인들은 가족들이 다 장난 없네.”“그러니까. 부럽게.”VIP 초대권의 또 다른 혜택. 멤버들의 가족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보통 콘서트의 두 번째 날인 토요일, 중콘에 가족들을 초대하는 경우가 많아 하윤과 시은이 앉아 있는 8구역에서 에테르 멤버들의 가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눈이 즐거워지는 순간들이었다.***"꺄아아아아악!!!"암전과 함께 심장을 강하게 울리는 음악의 비트 소리와 함께 VCR의 화면이 재생되었다.또 다시, 에테르 단독 콘서트 [Luminate]의 두 번째 날 공연이 시작되었다.“시우야~~~!”"강태윤!!!"콘서트가 진행될수록 콘서트장의 열기는 후끈 달아
#42 거짓말의 서막“내일 몇 시에 마치는데?”바쁘게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하윤을 보며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은 건우가 툭- 물었다. 순간, 하윤의 손짓이 멈칫했다. 가만... 막콘이 몇 시에 끝나더라?막콘의 경우에는 앵콜에서 앵앵콜, 앵앵앵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좀 더 넉넉하게 알리바이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 어느때보다 하윤의 머리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음... 8시... 쯤?”“하, 더럽게 늦네. 데리러 가?”“아냐... 후배가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어.”응, 시은이가 태워 주기로 했어.“어디로 가는데?”아차차!이건 생각을 못 했는데...“어... 그... 우리 회사... 연수원 있잖아.”“아~ 용인에 있는 거?”“아, 응!”다행이었다.아주 스무스하게 잘 넘어갔다.“그럼, 집까지 1시간 정도 걸리겠네? 우리 집으로 바로 올 거지?”“음... 피곤할 것 같은데?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고...”하윤은 건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첫콘 때 구매한 콘서트 MD 굿즈는 시은이에게 다 맡겨 놓고 온 상태였다. 마지막 날에는 그 모든 것들을 바리바리 안고 귀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오피스텔로 바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했다. 실제로 피곤하기도 할테고 말이다.“내일은 꼭 껴안고 자야지. 아이씨, 연수 개새끼. 월요일에 학교 가서 그 새끼 보이기만 해봐라. 확 대가리 날려 버릴 거야, 씨발.”하윤의 말은 들을 생각조차 없는 차건우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그였지만, 두 사람의 2,500일인 일요일, 그녀와 하루 종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차건우의 역린을 살살 건들고 있었다.빠...빨리 가야할 것 같다.“바빠도 중간 중간 연락 자주 해.”“응."시우의 우치와와 네임보드, 스케치북, 또 다른 루미들에게 나눔할 커스텀 미니 굿즈들을 잔뜩 넣은 작은 캐리어를 손에 끌고 건우의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혹시나 건우
#41 사랑의 깊이하윤은 건우의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사실, 앵콜곡까지 맛있게 말아줄 에테르의 마지막 모습까지 끝까지 보고 오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에테르 멤버들이 콘서트장의 1층과 2층 사이의 통로에서 토롯코를 타고 등장하기 직전 빠르게 짐을 꾸려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가 진행된 지 약 3분의 2 지점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았다.“포장 주문했는데요.”건우의 집 근처의 건우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덮밥 집에 들려, 미리 앱으로 주문한 포장 주문 음식을 받았다. 어쩌면 피곤함에 쩔어 저녁도 굶고 소파나 침대에 널브러져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난 6월과 8월의 시험 마지막 날에도 그랬으니까.기왕이면 손수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왔음에도 벌써 시간은 오후 10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띠띠띠띠띠띠띡- 띠리리-건우 집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건우가 깨어 있었다면 하윤이 문 따는 소리에 벌써 중문 앞까지 달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과 함께 불조차 켜져 있지 않은 어두움만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거실에는 그가 아무렇게나 옷을 던져 놓은 흔적과 탄산수 한 병을 따서 반쯤 마시다만 흔적이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네.”하윤은 그의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짓고는 이내 정리를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의 옷들은 바르게 펴 스타일러에 넣어 기계를 작동 시켰고, 반쯤 남은 탄산수는 싱크대에 버리고 병은 재활용 통에 넣었다.굳게 닫힌 그의 마스터 룸을 힐끔 보고는 좀 더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들어가 보지 않기로 했다. 만약, 건우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게스트 룸에 가서 잠을 자면 될 것이고, 건우의 그 잘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하윤은 빠르게 욕실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39 콘서트의 빠순이를 위한 정신 나간 아이돌의 빌드업쿵- 쿵- 쿵- 쿵-서초동의 에테르 단독 연습실. 반복 적인 음악의 비트 소리가 끊어지지 않은 지 벌써 7시간째였다. 단독 콘서트를 2주 앞두고 연습실과 숙소만을 오가며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5년 차 아이돌, [에테르].“잠깐, 잠깐, 잠깐!”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거대한 대형 거울 속에서 도현이 춤을 추다 말고 다급하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도현의 손짓에 매니저가 오디오의 스탑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뚝- 음악이 끊기고 잠깐 동안 그곳은 멤버들의 거친 호흡 소리로만 가득 찼다.“하아... 하아...”음악이 끊어진 틈을 타 바닥에 하나 둘 주저앉는 에테르 멤버들. 10월 초. 밖의 날씨는 서서히 가을의 서늘한 날씨로 변하고 있었지만 연습실 안은 여전히 한여름 같았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어도 멤버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이거 진짜 아니야.”도현이 거친 호흡이 조금 정리 되자마자 자신이 음악을 멈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콘서트 셋리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을 때부터 계속 말이 나왔던 부분.“루미들이 좋아할 만한 셋리는 맞는데... 이거 잘못하다간 사고 나. 무대 위에서 누구 하나 죽을 일 있어? 두 곡 다 빼든지, 아니면 곡 하나를 바꾸던지 해야 된다고.”다소 격양된 목소리의 도현. 여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갑내기이자 팀의 맏형들인 태윤과 도현은, 계속 해서 다른 의견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5년간 활동을 하면서 앨범의 곡들 중에는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노래들이 있었다. 지금 셋리에 있는 이 두 곡은 특히나 루미들이 함께 연결해서 보고, 듣는 것을 상당히 좋아 했다.문제는 두 곡 모두 매우 빠른 비트에 안무 동작이 많이 어렵고, 움직임이 많아 한 곡을 소화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에 있었다. 이런 곡을 연속으로 춤추고 노래를 하려고
#38 콘서트를 위한 빠순이의 빌드업[ 에테르 일본 투어 콘서트 ]에 눈이 멀어, 자신들에게 미쳐있는 남친들의 깊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어줍잖은 계획으로 남친들의 고삐를 쥐려 했던 어리석은 빠순이들, 이하윤과 최시은은...주말 내내 남친들의 분노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온 삭신이 쑤시는 쾌락을 주말 내내 즐겼던(?) 그녀들의 현생은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아, 미안해.”수요일의 늦은 저녁.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하윤이와 시은이였지만, 하윤의 갑작스런 야근으로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신, 두 사람은 진한 수다나 떨기 위해, 시내의 24시간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그래도 용케 빨리 빠져 나왔네?”먼저 도착한 시은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이태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며 예쁘고 섹시했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가슴팍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올리고, 급하게 뛰어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원래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 하윤이었지만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못 들여다 본 듯 번들 거리는 유분기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오늘 하루 그녀의 현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었다.“하... 엉망진창이네.”가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 체크를 하던 하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위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기업의 연구원 일이었지만 소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연구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온갖 수치를 문서화하고, 엑셀 창을 열어 서류 작성을 하는 일이 더 많은 주임 연구원의 삶.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온 터라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저녁은? 누구랑 먹었어?”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건만, 오늘 안에 전송해줘야 할 급한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