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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Author: 라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21:11:27

#11 비밀은 없다

나른하고 관능적인 공기가 프라이빗 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고급 샴페인과 독한 위스키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얼마 전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다녀온 주환의 화려한 에피소드가 막 마무리되어 갈 때쯤이었다.

"야, 최시은.“

나지막하지만 뼈대가 서늘하게 얼어붙을 만큼 차갑고 낮게 깔린 목소리.

시은의 허벅지를 진득하게 주무르며 나른하게 웃고 있던 백현민의 표정은 어느새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의 커다란 손에는 시은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손가락 내놔."

현민이 무심하게 턱짓하며 시은의 손을 요구했다.

"아, 왜~?“

시은은 애써 태연한 척 콧소리를 내며 반항했다.

"빨리 안 내놔?"

시은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황급히 손을 숨기자, 현민의 눈썹이 삐딱하게 치솟았다.

"분명히 아까 사진첩 봤을 때만 해도 '가려진 항목' 같은 거 없었거든? 근데 하윤이랑 주차장 갔다 오고 나니까 귀신같이 딱 생겼네?"

현민의 서늘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윤과 시은의 심장이 바닥으로 쿵 처박혔다. 쿵쿵쿵쿵쿵- 가슴팍에서 바닥에 처박힌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두 여자의 눈알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혈관을 타고 흐르던 알코올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 내렸다. 머릿속에서는 미친 듯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찰나, 두 사람의 굳어버린 표정을 캐치한 건우의 시선이 느릿하게 하윤을 향했다. 짐승 같은 촉. 그리고는 제 왼손 바닥을 위로 향한 채 하윤에게 내밀며,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를 툭 내뱉었다.

"내놔."

하윤의 왼쪽 편 소파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그녀의 핸드폰.

건우의 명령에도 하윤은 사색이 된 채 그대로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건우가 거칠게 몸을 뻗어 그녀의 핸드폰을 홱 낚아챘다.

건조한 표정의 건우는 한 손으로 익숙하게 잠금 화면을 풀고 사진 앱으로 들어가 스크롤을 쭉 내렸다.

"거기도 떡하니 생겼지?"

건너편의 현민이 당연하다는 듯 비죽거렸다.

건우는 대답 대신, 화면 맨 아래 '가려진 항목'에 자물쇠가 채워진 채 알을 까고 나타난 폴더 창을 그대로 띄워 현민의 테이블 앞으로 스윽 밀어 보여주었다.

"하, 이것들 봐라."

현민의 입술 끝이 비틀리며 피식, 기분 나쁜 실소를 터뜨렸다.

"둘 다 빨리 손가락 내놔. 지문 인식하게."

복잡한 비밀번호 따위 걸어둬 봤자, 핸드폰 주인의 손가락 하나면 가려진 항목쯤이야 0.1초 만에 열리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두 여자 모두 창백해진 얼굴로 덜덜 떨리는 양손을 꾹 말아 쥔 채로 요지부동이었다.

"하아, 누나. 빨리 하자?"

건우의 입에서 서늘한 파찰음이 터져 나왔다.

차건우가 이하윤에게 '누나'라고 부를 때는 딱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침대 위에서 잔뜩 발정이 나서 미친 듯이 이하윤의 구멍에 박아대며 끈적하게 어리광을 부릴 때. 그리고, 살의가 느껴질 만큼 핀트가 나가서 '존나게 빡쳤을 때'.

지금은 명백히, 후자 중에서도 최악의 상태였다.

"최시은, 너도 빨리 하자. 분위기 더 좆창나기 전에."

시은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찍어온 그 귀한 에테르 멤버들의 용안을 제 손으로 내던질 수는 없었다. 차마...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현민이 억지로 시은의 손목을 잡아 끌어 기어이 지문 인식을 시켜버렸다.

딸칵-.

경쾌한 해제음과 함께 철통같이 잠겨있던 '가려진 항목'의 봉인이 풀렸다.

"씨발, 뭐야, 이거?"

하필 현민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진은...

강태윤의 뺨이 시은의 얼굴에 아슬아슬하게 밀착된 채 찍힌 환상의 투 샷 셀카였다.

현민의 턱관절이 부서져라 굳어졌다. 그는 가려진 항목에 들어간 몇 장의 사진을 짜증스레 휙휙 넘겨보더니, 이내 하윤과 시은, 그리고 에테르 4인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 화면을 건우 눈앞에 들이밀었다.

"야, 차건우. 이하윤 개새끼도 있어."

건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렸다. 건우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에 놓인 하윤의 핸드폰을 그녀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당장, 잠금 풀어.'라는 흉흉한 무언의 압박이었다.

하윤은 침을 꼴깍 삼키며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터치해 잠금을 풀어주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차건우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진짜 무서웠다.

잠금이 풀리고, 화면 위로 시우가 하윤의 얇은 실크 블라우스 어깨 위로 다정하게, 아주 자연스럽게 팔을 올리고 짐승처럼 나른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건우의 이성의 끈을 가위로 툭 끊어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치명적인 사진이었다.

"언제 만났어? 어디서 만났어? 뭐 뒤에서 따로 만나자고 약속이라도 잡았어?"

건우의 날 선 목소리가 얼음송곳처럼 하윤의 고막에 날아와 꽂혔다.

"씨발. 일단 면상 좆같이 보기 싫으니까, 형, 싹 다 지워버려."

건우가 마치 오물을 보듯, 하윤의 핸드폰을 거칠게 현민이 쪽으로 휙 밀어 던져버렸다.

"어... 어어어....“

찰나의 순간, 하윤과 시은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었고, 당황과 공포에 휩싸인 입술을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안 돼에에!!!

하윤과 시은의 마음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현생의 포식자들은 자비가 없었다.

현민은 무자비한 터치 몇 번으로 하윤과 시은의 핸드폰에 고이 잠들어 있던 귀하디귀한 오빠들의 사진을 가차 없이 삭제해 버렸다. 심지어 휴지통 비우기까지 깔끔하게 마친, 완벽한 영구 삭제였다.

"씨발, 도대체 어디서 만난 건데?!!!“

마침내 건우가 핏대를 곤두세우며 룸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짐승 같은 고함에 하윤의 뇌가 빛의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당장 '저기 아래 지하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어'라고 이실직고한다면? 차건우와 백현민, 이 미친 새끼들은 당장 다음부터 이 모임의 아지트를 다른 곳으로 바꿔버릴 게 뻔했다. 그러면 앞으로 우연이라도 에테르와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이 짜릿한 행운을 두 번 다시 꿰찰 수 없었다.

지금 저 두 놈은 눈깔이 잔뜩 뒤집혀서, 사진 배경이 지하 주차장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고, 사진도 이미 영구 삭제가 된 상태니, 일단은 그럴싸한 거짓말로 무조건 둘러대야 했다.

"아니… 그게, 차에… 생리대가 다 떨어졌더라고... 그래서 밖에 편의점 가서 생리대 사가지고 들어오는 길에, 쟤네가 근처에서 촬영 마치고 지나가길래 그냥 진짜, 아주 잠깐 겹친 거야.“

“맞어, 맞어!”

하윤의 능청스럽고 유려한 거짓말에, 옆에 있던 시은 역시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 씨발. 뭐, 우연히 길 가다 마주친 건 그렇다 쳐. 근데 뭘 그렇게 대가리를 딱 붙이고 껴안고 사진을 찍고 지랄이야?"

다행히 장소에 대한 거짓말은 먹혀든 모양인지, 현민은 오직 그 스킨십 농도 짙은 투 샷에 대해서만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아니이~ 밖에 막 일반인 사람들이 쳐다보고 지나다니니까, 지들이 디게 친절하고 팬 서비스 좋은 아이돌이다, 뭐 이런 거 보여주기 식으로 어필하고 싶었나 봐. 원래 팬싸에서도 저렇게까지 스킨십은 안 하거든. 아, 아니, 안한다고 그러더라고. 그, 그치, 하윤아?"

"어, 어! 맞아. 쟤네 오늘 진짜 유독 오버하고 쇼가 좀 심하더라.“

두 여자는 환상의 짝꿍처럼 짝짝꿍을 해대며 영혼을 끌어 모아 두 남자를 속이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는 증거물마저 잃어버린 마당에, 이 발정 난 두 수컷의 이성마저 잃게 만들 순 없었다.

"진짜야? 밖에서 만난 거 맞아? 그 새끼들이 억지로 들러붙은 거 맞아?"

건우가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여자를 쏘아보며 다시 한 번 다그쳐 물었다.

"아이씨, 사진을 다 지워버려서... 하, 씨발, 확인도 안 되고...“

이미 제 손으로 완벽하게 영구 삭제를 때려버린 탓에 증거가 사라져 아쉬워하며 짜증을 내는 현민의 반응.

두 여자는 겉으로는 억울한 척 연기하면서도, 속으로는 한시름을 놓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두 여자가 기를 쓰고 수컷들을 달래는 그 가상하고 귀염뽀짝한(?) 사기극을 가만히 지켜보며 홀로 독주를 들이켜던 남자, 이태현.

"야, 차건우."

돌연, 태현이 나직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건우를 불렀다.

건우의 고개가 살기를 띤 채 홱 돌아갔다.

"이하윤 저거, 아까 차 안에서 우리 화장품 전속 모델 된 놈들 팬싸 티켓 빼달라고 존나게 징징거리던데? 그것도 네 장씩이나."

이태현의 나른한 폭로에, 하윤과 시은의 고개가 태현을 향해 홱 꺾였다.

"오빠!!!!!"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터져 나온 두 여자의 찢어질 듯한 사자후.

"모델이 누군데?"

상황 파악을 못 한 경훈이, 아주 해맑고 친절하게 물어주었다. 완벽한 순수함으로 건들인 뇌관.

"누구긴. 에테른가 뭔가 하는 그 기생오라비 샌님 새끼들이지."

태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조소가 섞인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씨발, 이하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낮고 흉흉해진 건우의 목소리가 룸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거 딱 스무 명 한정으로 뽑는 거라, 그 안에서 별의별 지랄 다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태현이 한껏 여유로운 자태로 소파에 기대어 비열하게 씩 웃으며 불 난 집에 석유 한 통을 냅다 부었다.

"오빠, 진짜 미쳤어?!!!"

하윤이 거의 멘탈이 나간 채 절망 어린 목소리로 태현에게 소리쳤다.

"아, 왜? 너, 네 장 다 구해주면 나한테 진하게 뽀뽀도 해준다며? 그래서 지금 존나게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었는데."

태현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며 다시 한 번 결정타를 날렸다.

"뭐? 너, 씨발 진짜 약 처먹고 돌았어?“

건우의 두 눈이 핏발로 붉게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무거운 대리석 테이블을 다 엎어버리고 저 이태현의 멱살을 잡아 뜯거나, 아니면 당장에라도 하윤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 저거, 저거, 이태현 상무가 이간질하려고 뻥 치는 거야!“

하윤이 당황하여 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오빠, 내가 언제 그런 미친 소리를 했어?”

살아야 했다. 소유욕과 독점욕으로 점철된 차건우의 역린을 더 이상 건들여서는 안됐다.

“아까 했잖아. 진하게 뽀뽀해준다고.”

하지만 태현은 이하윤을 도와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보였다.

“아니지! 내가, 그… 그 건우가 허락해 주면, 그때 해준다고 한 거지!”

그녀는 억울하다며 항변을 했지만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내가 좆같이 미쳐서 허락해 주면, 진짜 이태현 주둥이에 뽀뽀라도 할 생각이었단 거야, 지금?"

"아니이?!!! 아, 당연히 니가 죽었다 깨어나도 허락 안 할 거 아니까 그건 그냥 빈말로 던진..."

"시끄러!!! 입 다물어 이하윤! 내가 분명히 회사든 어디서든 저 새끼랑 단둘이 있을 때는 선 지키고 조심하라고 했지? 이게 진짜, 사람 미치게 하네!"

"아니, 내 말 좀 들어봐. 그게 아니라..."

"씨발, 조용히 안 해?!“

건우가 숨이 넘어갈 듯 하윤을 윽박지르고, 하윤은 덜덜 떨며 매달리는 그 파국적인 모습을 보며, 태현은 턱을 괸 채 나른하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현장을 바라보던 주환이 태현을 툭 쳤다.

"아니, 형, 뭐 저러다 둘이 진짜 싸우고 헤어지라고 일부러 이간질하는 거야?"

그 기괴한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주환이, 태현을 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뭐, 헤어지면 나야 땡큐지. 근데, 씨발... 헤어지겠냐? 저 독한 차건우 개새끼가 이하윤을 쉽게 놔주겠냐고...“

태현은 채워지지 않는 지독한 갈증에 시달리듯 자조적으로 읊조리며, 이내 씁쓸하고 끈적한 미소를 지은 채 제 잔에 든 독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속.

건우에게 기어이 뒷목이 잡힌 채 미친 듯이 털리며 사자후를 얻어맞고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하윤은,

그 와중에도 기어코 힘없이 고개를 돌려 태현을 향해 애처로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그리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빠... 그럼, 그냥... 딱 두 장만이라도... 응? 우리 불쌍한 동생들이라도 보내주게...“

현생의 거칠고 포악한 수컷의 아가리에 머리가 반쯤 처박힌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덕질을 향한 빠순이의 그 지독하고도 눈물겨운 열정은 결코 사그라지지 않았다.

비밀은 사라졌어도, 욕망은 영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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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에테르 단독 콘서트 [ Luminate ]“콘서트 퇴근 길도 못 보고 간다고?”채아의 눈이 커졌다.에테르가 데뷔한 이래로 다섯 번째 단독 콘서트였다. 그때마다, 콘서트 기간 3일 내내, 공연을 마치고 퇴근하는 에테르 멤버들과 인사를 하고 가는 것은 그들이 당연히 해야 할 덕질의 룰이었다.이미 채아를 제외한 직장인 셋은, 반차를 내고 에테르의 단독 콘서트 [Luminate]가 열리는 [ KSPO DOME ]에 일찍 도착했다. 줄을 서서 콘서트 MD 제품을 구매하고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은 후, 진작에 공원 입구 쪽의 할리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며 콘서트 시작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응. 마치자마자 바로 튀어가야 돼.”하윤이 아쉬워하는 채아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미안한 듯, 예쁜 미소를 흘렸다.가끔, 이 언니들은 참 이상했다. 에테르의 덕질에 정말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가끔 현생의 일로 에테르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리는 기행을 하곤 했다. 빠순이질에 진심인 이들에게 현생의 일 따위는 감히 에테르보다 앞설 수 없는데 말이다.“시은아, 너는 애들이랑 같이 보고 와.”하윤은 시은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사실 오늘, 하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오늘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차건우의 10월 ‘변시 모고’의 마지막 날이지 않은가. 아무리 늦어도 오후 8시쯤에는 그가 집에 도착할 것이었다. 하지만 금요일의 콘서트는 직장인의 퇴근 시간을 고려하여 주말 콘서트보다 늦게 시작하는 이유로 밤 10시가 넘어야 끝날 판이었다.더군다나 토, 일 이틀 간 선행 연구팀의 연수가 있다고 알고 있는 건우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도 억지로 삼키며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하윤이 보여준 중콘 티켓 취소 내역을 보며, 콘서트 3일 중 하루라도 재밌게 보고 오라며 저 답지 않게, 에테르의 첫콘을 쿨하게 보내준 그였다.그러니... 이하윤의 마음이 편할 턱이 있겠냐고.“나, 중간에 나가야 될 수도 있어.”하윤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39

    #39 콘서트의 빠순이를 위한 정신 나간 아이돌의 빌드업쿵- 쿵- 쿵- 쿵-서초동의 에테르 단독 연습실. 반복 적인 음악의 비트 소리가 끊어지지 않은 지 벌써 7시간째였다. 단독 콘서트를 2주 앞두고 연습실과 숙소만을 오가며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5년 차 아이돌, [에테르].“잠깐, 잠깐, 잠깐!”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거대한 대형 거울 속에서 도현이 춤을 추다 말고 다급하게 손을 휘젓고 있었다.도현의 손짓에 매니저가 오디오의 스탑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뚝- 음악이 끊기고 잠깐 동안 그곳은 멤버들의 거친 호흡 소리로만 가득 찼다.“하아... 하아...”음악이 끊어진 틈을 타 바닥에 하나 둘 주저앉는 에테르 멤버들. 10월 초. 밖의 날씨는 서서히 가을의 서늘한 날씨로 변하고 있었지만 연습실 안은 여전히 한여름 같았다.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어도 멤버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이거 진짜 아니야.”도현이 거친 호흡이 조금 정리 되자마자 자신이 음악을 멈춘 이유에 대해 입을 열었다.콘서트 셋리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을 때부터 계속 말이 나왔던 부분.“루미들이 좋아할 만한 셋리는 맞는데... 이거 잘못하다간 사고 나. 무대 위에서 누구 하나 죽을 일 있어? 두 곡 다 빼든지, 아니면 곡 하나를 바꾸던지 해야 된다고.”다소 격양된 목소리의 도현. 여전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갑내기이자 팀의 맏형들인 태윤과 도현은, 계속 해서 다른 의견으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5년간 활동을 하면서 앨범의 곡들 중에는 같은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노래들이 있었다. 지금 셋리에 있는 이 두 곡은 특히나 루미들이 함께 연결해서 보고, 듣는 것을 상당히 좋아 했다.문제는 두 곡 모두 매우 빠른 비트에 안무 동작이 많이 어렵고, 움직임이 많아 한 곡을 소화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에 있었다. 이런 곡을 연속으로 춤추고 노래를 하려고

  • 덕질녀의 은밀한 이중생활   #38

    #38 콘서트를 위한 빠순이의 빌드업[ 에테르 일본 투어 콘서트 ]에 눈이 멀어, 자신들에게 미쳐있는 남친들의 깊은 사랑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 어줍잖은 계획으로 남친들의 고삐를 쥐려 했던 어리석은 빠순이들, 이하윤과 최시은은...주말 내내 남친들의 분노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온 삭신이 쑤시는 쾌락을 주말 내내 즐겼던(?) 그녀들의 현생은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돌아왔다.“아, 미안해.”수요일의 늦은 저녁.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먹기로 한 하윤이와 시은이였지만, 하윤의 갑작스런 야근으로 저녁 식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대신, 두 사람은 진한 수다나 떨기 위해, 시내의 24시간 프렌차이즈 커피숍에서 만났다.“그래도 용케 빨리 빠져 나왔네?”먼저 도착한 시은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하윤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지난 주 금요일, 이태현과 저녁을 먹기로 했을 때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며 예쁘고 섹시했던 친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가슴팍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대충 묶어 올리고, 급하게 뛰어 오느라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원래도 진한 화장을 하지 않는 하윤이었지만 하루 종일 거울 한 번 못 들여다 본 듯 번들 거리는 유분기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오늘 하루 그녀의 현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었다.“하... 엉망진창이네.”가쁜 숨을 고르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그제서야 가방에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의 상태 체크를 하던 하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새로운 발견과 연구를 위한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기업의 연구원 일이었지만 소망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연구실에 머무르기 보다는 온갖 수치를 문서화하고, 엑셀 창을 열어 서류 작성을 하는 일이 더 많은 주임 연구원의 삶. 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온 터라 허리가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저녁은? 누구랑 먹었어?”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건만, 오늘 안에 전송해줘야 할 급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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