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13 현생의 내 남자를 위해
토요일 오전.
알람도 없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하윤은 살짝 몽롱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전날 그렇게 심리적 압박을 받았음에도, 제 연하 남친 건우가 옆에서 술 마시는 걸 맹렬하게 통제한 덕분에 과음을 피해서인지 몸이 찌뿌둥하진 않았다.
습관적으로 베개 맡의 핸드폰을 집어 들자, 화면에 떠 있는 건우의 카톡 알림이 보였다.
[ 나 오늘 도서관 가. 일어나면 전화해. ]
로스쿨 졸업을 앞두고, 3학년 로스쿨생들을 합법적 지옥으로 이끄는, 세 번의 ‘변호사 시험 모의고사’ 준비로 바쁜 나날들. 거기에다 내년 1월에는 살인적인 변호사 시험을 치러야 하는 예비 법조인, 차건우였다.
태생부터 다이아 수저에 지독하게 좋은 머리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제 목표를 향한 노력 역시 미친 듯이 갈아 넣는 녀석이었다.
"하, 진짜... 섹시한 새끼.“
저런 미친 듯한 성실함과 지적인 텐션. 안하무인 폭군 같으면서도 제 영역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주의자인 차건우의 그 숨 막히는 매력에 그녀는, 한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런 놈이 10년 동안 자신만 보고 직진하며 발정이 나 있을까 생각하면, 새삼 아랫배가 찌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 하윤은, 건우가 콘솔박스에서 꺼내 자신의 가방 안에 넣어주었던 '게보린'을 꺼내 생수와 함께 꿀꺽 삼켰다. 그녀의 지랄 맞은 생리통은 생리가 시작된 다음 날, 단 하루만 극심하게 아프고, 약을 먹고 잘 버티면 금세 가라앉는 편이었다. 이 사실을 본인보다 더 잘 아는 건우는 항상 하윤의 집에 게보린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세심하게 신경 썼다.
하윤은 이내 욕실로 들어가 가볍게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오랜만에 건우랑 영화나 한 편 볼까?’
이틀 동안 지은 죄(?)가 워낙 크고 무겁다 보니, 오늘은 하루 종일 잔뜩 뿔이 났을 자신의 연하 남친의 비위를 완벽하게 맞춰주며 기분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살짝 더워지는 날씨 탓에 긴 머리카락이 뒷목에 걸리적거리는 게 싫어, 집게 핀으로 틀어 올릴 생각으로 대충 물기만 털어내듯 드라이를 마치고는 옷장의 문을 열어 입을 옷을 단박에 골랐다. 주말에 학교 도서관으로 향할 때면 건우는 늘 캐주얼한 차림을 고수했기에 하윤 역시 그의 스타일에 맞춰 오늘의 OOTD를 정했다.
몸선이 예쁘게 드러나는 타이트한 골지 민소매 티 위에, 속살이 은근하게 비치는 화이트 시스루 셔츠를 걸치고 밑에는 핏이 딱 떨어지는 블랙 슬랙스를 매치했다. 발끝엔 가벼운 스니커즈. 평소 명품 가방을 수집하거나 요란하게 들고 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앙증맞은 샤넬 미니백을 포인트로 들어주기로 했다.
로스쿨 도서관은 주말 오후 2시쯤 문을 닫는다. 지금 출발해서 1시 30분이나 40분쯤 도착해, 학생 전용 주차장에 세워진 건우의 차를 찾아 그 근처에 숨어 기다리면 시간이 딱 맞을 것이다. 10년의 세월. 그녀 역시 이제 차건우라는 남자의 모든 성격, 생활 패턴, 루틴,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오후 1시 45분.
주말 치고는 학교 주차장엔 차가 꽤 많았지만, 건우의 육중한 외제 SUV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하윤은 그 차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여유롭게 핸드폰을 넘겼다.
굳이 건우에게 미리 도착했다고 언질을 주진 않았다. 이틀 전부터 내내 심기가 바닥을 치고 있을 그를 위해, 오늘은 완벽한 서프라이즈를 시작으로 하루 종일 여우처럼 내조와 헌신을 다할 생각이었다.
특히나 지금 당장은 침대 위에서의 끈적한 텐션을 함께 해 줄 수 없었기에 다른 방향으로라도 그가 자신에게 잔뜩 사랑 받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요리조리 스텝을 밟으며 차 주변을 서성이던 하윤의 시야에, 저 멀리서 걸어오는 차건우의 모습이 훅 잡혔다. 확실히 저 새끼는 사람이 득실거리는 곳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특유의 날티 나면서도 고급스러운 비주얼 덕에 눈에 확 꽂혔다. 하윤의 예상대로 오늘 건우는 핏이 떨어지는 편한 슬랙스에 검은색 무지 티셔츠, 그리고 넓은 어깨를 강조하는 묵직한 가죽 라이더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쳐도 명품 화보로 소화해 버리는 피지컬에 패션 감각까지 미치게 뛰어난 수컷이었다.
건우의 매끈한 걸음걸이를 끈적한 눈길로 감상하던 하윤은, 이내 그의 곁에 바짝 붙어 걷는 한 여자에게로 날 선 시선을 옮겼다. 건우의 옆에 있는 여자는 이유경. 건우의 대학 동창이자, 현재 같은 로스쿨에 재학 중인 동기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1위 로펌이라 할 수 있는 ‘해오름 로펌’의 대표였다.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가는데 흠잡을 데 없이 예쁘장한 얼굴, 거기다 타고난 볼륨감 넘치는 몸매까지. 그야말로 속물적인 수컷들이 환장하고 침을 질질 흘릴 완벽한 스펙의 결정체였다.
하윤은 저 이유경이라는 여자가 제 남자인 차건우에게 노골적으로 흑심을 품고 있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윤의 심기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차건우라는 사내가 오직 '이하윤'이라는 암컷 외에는, 세상 어떤 여자도 시야에 담지 않는다는 걸,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에게 완벽하게 길들여진 맹수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히려 속이 타들어가고 조바심이 나는 건 저 이유경 쪽일 것이다. 확실히 이하윤도 어딜 가나 매력이 철철 넘치고 시선을 쓸어 담는 여자이긴 하지만, 이유경 본인이 판단하기엔 자신이 가진 배경이나, 예비 법조인이라는 동등한 능력, 매일 얼굴을 맞대는 로스쿨이라는 접점을 봤을 때 자신이 차건우의 옆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정실'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테니까.
하윤은 픽, 여우 같은 실소를 흘리며 제 몸보다 훨씬 거대한 건우의 SUV 차량 뒤쪽으로 몸을 스윽 숨겼다. 아직 제 차 앞에 서 있는 하윤을 건우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윤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기왕 오늘 하루 그의 기분을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으니 오늘 하루는 컨셉의 여왕이 되어보기로 했다.
지금의 컨셉은, 질투심에 불타오르는 집착 여친 버전이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구둣발 소리.
이유경의 인위적으로 톤을 높인 교태 섞인 목소리가 꽤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하윤은 숨겼던 몸을 사뿐히 드러내며 건우의 차량 보닛에 나른한 자세로 엉덩이를 걸쳐 기댔다.
자신의 차량 쪽에서 낯선 인기척과 움직임을 감지한 건우의 서늘한 눈빛이 홱, 하고 전방을 향했다.
그리고 제 차에 기대어 요염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하윤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방금 전까지 유경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건우의 표정이 일순간 무너져 내렸다. 세상 그 어떤 여자에게도 지어주지 않는, 오직 이하윤을 볼 때만 입술 끝에 매달리는 그 맹목적이고 다정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나갔다.
제 옆의 차건우의 시선이 어디에 꽂혔는지 단박에 알아챈 이유경 역시 하윤을 발견했다. 유경의 화려한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 아니 명백하게 불쾌하고 재수 없다는 듯 굳어지는 기분 나쁜 낯빛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 왔어?"
건우의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주차장을 울려 퍼졌다. 방금 전까지 옆에서 그 어떤 말을 걸어도 건조하게 단답만 뱉어내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평상시에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그의 끈적하고 다정한 톤에, 이유경이 수치심에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건우는 성큼성큼 긴 다리로 걸어와 단숨에 하윤의 코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자연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려던 찰나, 하윤이 그의 가슴팍을 작은 두 손으로 탁탁 밀어내며 입술을 살짝 비죽였다.
"나는 여기서 한참 전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건우는… 옆에 예쁜 여학우 분이랑 아주 다정하게 세월을 즐기면서 오시네?“
하윤이 요망하게 눈꼬리를 접으며, 건우의 단단한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찌르며 속삭였다. 곁에 선 이유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만큼 나지막했지만, 건우의 이성을 긁어대기엔 충분한, '질투심 폭발한 여우 여친' 버전의 앙칼진 목소리였다.
순간, 건우의 표정에 피식- 하는 바람 빠진 웃음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평소 하윤이, 에테르 딴따라 새끼들에게 쏟는 관심에 질투가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는데, 그녀가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제 옆의 여자 사람을 견제하며 앙탈을 부리다니! 어젯밤 룸에서 분노로 포효하던 통제광 짐승의 모습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랫도리가 빳빳해질 만큼 완벽한 쾌감이었다.
"아, 지하철역 입구까지만 태워 달래서."
"그래서?"
"타. 가자."
건우는 즉각 스마트키로 차 잠금을 해제하고, 손수 조수석 문을 열어 젖히며 하윤이 사뿐히 올라탈 수 있게 에스코트했다. 부드럽게 조수석 문을 닫아준 그는 무심히 운전석 쪽으로 몸을 돌리며, 그제야 뻘쭘하게 서 있던 이유경을 향해 건조하게 툭 내뱉었다.
"역까지 못 데려다 주겠다. 내 여친님이 친히 오셔서."
건우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일말의 미련도 없이 홱 차에 올라타 버렸다.
주차장에 홀로 남겨진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유경.
조수석에 앉은 하윤은 아주 찰나의 순간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 하루 만큼은 어떻게든 뿔이 난 제 남자의 기분을 하늘 끝까지 올려놓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이유경은, 두 사람의 사랑놀음을 위한 완벽한 희생양일지도 몰랐다.
'미안해요, 유경 씨.'
하윤은 속으로 가벼운 위로를 던졌지만, 이내 앙큼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주인 있는 남의 남자한테 함부로 꼬리는 치지 말았어야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포식자를 길들인 유일한 암컷. 하윤은 이유경의 굴욕적인 모습을 은근하게 감상하며, 온몸을 휘감는 짜릿하고도 서늘한 카타르시스를 즐겼다. 제 현생의 남친 위해 변모한, 참으로 영악하고 기막힌 여우, 이하윤이었다.
하윤은 지금.단단히 빡이 쳤다.한 달 전부터 하윤은.[ 차세대 핵심 신소재 공동 개발 프로젝트 ]를 위해,[ 일강그룹 ] 의 R&D 선행연구팀의 연구실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중간 간부급인 하윤과 몇몇 연구원들이 함께 참여하게 된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대기업과 대기업의 협업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모든 것이 잘 갖춰진, 연구비 걱정도 딱히 필요 없는 대기업들의 작업이었기 때문에.아주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하윤 역시.자신의 직장인 이현그룹 연구소보다는, 이 일강그룹의 연구소가 신혼집에서 훨씬 더 가까워, 꽤나 좋아했다.하지만.“아니, 이거. 수치 조작하신 건 아니고?”이 분야에 대해서는 좆도 모르는 일강그룹의 R&D 선행연구팀의 서재익 본부장.그는.얼마 전부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했다.“아니, 본부장님. 이걸 저희가 어떻게 조작을 합니까?”하윤의 미간이 잔뜩 찌푸러졌다.이 본부장 새끼는.일강그룹 회장의 3남이었다.이 분야의 박사학위까지 딴 놈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돈으로 처바른 것 같았다.진짜 좆도 아는 게 없더라고.심지어.긴 유학생활로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분위기 파악도 잘 못했다.여자를 끼고, 약이나 빨던, 철없는 재벌 3세.“이하윤 선임연구원이, 마음만 먹으면 수치 조작 같은 건 쉽게 가능하지 않아요?”비릿한 미소를 짓는.이 일강의 후계자 서재익은.하윤을 협박해서 어떻게든 벗겨 먹고 싶어 발정이 난 상태였다.선임연구원일 뿐이지만.이현그룹 R&D 선행연구팀의 책임자로 온 하윤이었기에.뭔가가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은 이하윤이 져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본부장님이 실무진 쪼아서 저희 쪽으로 중대 과실 만들려고 하시는 거 아니시구요?”이하윤이 눈을 부릅뜨며 서재익에게 대들었다.서재익은 짜릿했다.순순히 넘어오는 여자는 재미가 없으니까.저렇게 팔딱 팔딱 거려야 정복하는 재미가 있지.“좀 위험한 발언인데? 뭐, 증거 있어요? 지금, 이하윤 선임연구원이 뱉어낸 말. 이거 법정까지
맞춤 수트를 꿰어 입은 이태현을 본 하윤과 시은은.움찔-온 몸이 들썩일 정도로 놀랐다.“오... 오빠...”마치.불륜 현장에 있다 들킨 것처럼.두 여자는 숨을 헉 들이키며, 거의 사색이 되었다.“미쳤어?”이태현의 입에서.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이태현은.하윤과 시은을 번갈아 보다.이내 룸 안 전체를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찰나의 순간.룸 안은 고요했다.그 고요함을 깬 건.“하아...”윤채민이었다.윤채민의 깊은 빡침의 한 숨.“아니, 상무님! 왜 하필 지금 들어와요?!”잼민이 윤채민은.지금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겨우.이하윤이 이태현 상무랑 입술만 빨았는지, 혀를 넣고 섞었는지를 알고.저도 똑같이 해볼 참이었다.든든하게 에테르테태의 최시은도 등에 업었겠다,이제 키스만 하면 됐는데?“개새끼야. 내가 뭐, 니 허락 받고 들어와야 돼?”채민의 말에 이태현은.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이태현의 워딩에.채민을 제외한 나머지 에테르 멤버들이 숨을 들이켰다.그는 그들에게 아주 점잖은 상무였다.욕이라는 건 저 바닥 기는 놈들만 쓰는 것이다,라며 부르주아의 삶을 살 것 같았던 이태현 상무가 아니었던가?그런데.값비싼 수트를 입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그의 입에서.욕이 나왔다는 건 둘째 치고.굉장히... 찰진데?“아, 지금 진짜 중요한 순간이었다고요!”채민이 계속 짜증을 냈다.그런 채민의 모습을 보고.또 다시 나머지 에테르 멤버들의 호흡이 멈췄다.저 새끼가 미쳤나?감히 이현그룹의 후계자, 재벌 3세한테 개겨?이태현과 윤채민의 서사를 모르는 나머지 멤버들은.이제 곧 윤채민이 세상에서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윤채민과 같은 편을 먹었던 비운의 남자1, 강태윤 역시.이태현과 윤채민의 서사를 전혀 알지 못했기에.7인조에서 6인조 보이그룹이 될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야... 너... 미쳤어...?”태윤이.태현의 눈치를 보면서 채민을 향 조용하게 말했다.목소리가 조
“차건우는?”“법원 갔다가, 로펌 들려서 마무리하고, 저녁에 접대. 백현민은?”“출장. 대전으로. 내일 온대.”“좋았어!”‘HERA’에 들어가기 전.두 여자는.제 남편들의 동선을 체크했다.반드시.남편들의 움직임을 확인해야 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차건우를 통해.이하윤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에테르 멤버들이.축하 파티의 자리를 만들었다.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차건우의 부인이자, 그들의 네임드팬인 하윤은.에테르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또한.이미 꽤 배가 부른 또 다른 네임드팬, 시은이까지 겸사겸사.징- 징- 징-막 ‘HERA’에 들어섰을 때.시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응, 태윤아.”에테르의 리더인 태윤.여전히 최시은을 마음에 품고 있는 비운의 남자1.--“누나, 어디야?”“우리 막 들어왔어.”--“그래? 데리러 갈게.”“응, 알았어.”누가 보면.“사귀냐?”하윤이 눈매를 좁히며 시은을 쳐다보았다.“아니. 왜?”몰라서 묻나.“그 짧은 대화에도 너무 쏘 스윗해서.”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는다.“우리 윤이는, 너어무 젠틀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이렇게 막...”“지랄을 한다.”하윤의 미간이 좁아졌다.“너, 그거 태윤이한테 못할 짓이야. 그거 진짜 잔인한 거라고.”“내가 뭘 어쨌다고?”하윤의 핀잔에 시은이 투덜거렸다.아니, 그저.에테르 강태윤이 좋으니까 그런건데?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어우. 태윤이 불쌍해서 어째?”“아니, 누가 보면 내가 태윤이랑 사귀다가 백현민이랑 바람 펴서 애 가진 줄 알겠네.”“태윤이 입장에선 그럴걸?”“웃기지마.”“이게 웃기는 걸로 보여? 너, 진짜 태윤이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야.”“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런데?”입구에서.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임산부.“누나!”안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서로 으르렁거리던 두 여자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태윤이와 채민이었다.마치.제 여자를 마중이라도 나온 듯.나란히 두
차건우는 오늘.오전 근무만 하고 개인적인 볼 일을 위해 꽤 멀리 이동했다.서울 외곽의 큰 복합 쇼핑몰.그곳의 상가 1층에 입점 되어 있는 꽤 고급스러운 헤어샵.건우는 그곳으로 당당히 들어갔다.“어, 왔냐?”딸랑- 거리는 방울 소리와 함께.맞춤수트의 멋진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차건우를 본 두 사람.그들은 그의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었다.같은 중학교는 아니었다.한때.축구에 미쳐 있었던 차건우는.중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을 했다.외부 경기에서 만난 라이벌 학교의 선수들.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축구 경기를 펼친 사내들이었지만.결국엔.경기 후,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친한 친구가 되었다.“너, 씨. 축구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내가 엄청 슬퍼했는데. 아니, 씨발, 변호사 돼서 우릴 이렇게 도와줄 줄 어떻게 알았냐고?”남자치고도, 아주 머리를 짧게 자른 성환이, 감격에 겨워했다.“아, 그러게. 거기다 길바닥에서 딱, 만날게 뭐냐고.”단발에 가까운, 남자치곤 꽤 긴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형진이, 건우의 어깨를 툭 치며 반가워했다.차건우는 오늘.오랜 친구들을 도와주러 이곳에 왔다.“내가 준비하라고 한 자료, 다 준비했지?”건우는.무심하게 입을 열고 있었지만.어린시절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에 선뜻 나설만큼, 그 역시 두 친구들이 반가웠다.“그럼, 그럼.”형진이 과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감히. 누구 명인데!“근데... 왜 손님이 없어?”건우는 매장안을 쭈욱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꽤 고급스러운 헤어샵이다.거기다 손님도 많아 돈도 엄청 잘 번다던 녀석들이다.“아. 너 온다고 예약 안 받았어. 스탭들도 다 늦게 출근하라고 했고.”잘나가는 변호사, 차건우를 배려한 두 친구였다.그들은 그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이 헤어샵의 원장으로 있는 두 친구들은.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축구를 그만뒀다.형진은 부상으로, 성환은 집안 사정으로.축구를 그만두고.평생을 운동만 하던 녀석들이 공부를 시작하려니, 뭐 되겠는가?그래서
배가 불러 조금씩 움직이기 힘들어진 시은이를 위해.하윤은, 시은이의 신혼집으로 자주 놀러 갔다.밖을 싸돌아다닐 수 없어 고통스러운 최시은이었지만.찐친이자 소울 메이트인 하윤이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너, 아직도 피임약 먹는다고?”함께 과일을 먹으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다 꺼내본다.“응. 아마... 2년이 좀 넘었지?”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그저 순리를 따르라던 차건우는.두 사람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싹 바꿨다.“미안하다면서, 자기 걸 묶을 수 없지는 않냐. 당분간만 먹어줘라... 하. 언제는 애 가지자고 징징 거리더니, 지금은 입 싹 닦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지잰다.”하윤은 자신의 남편을 씹 듯, 샤인머스캣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다.“하, 너무 힘들어... 결혼 전보다 더 해. 진짜 미친 놈 같아.”한숨을 푹 내쉬는 차건우의 아내, 이하윤.“젊어서 그런가?”시은이 미간을 좁히며 온 몸을 털었다.“그렇게 신나게 할 거면, 지가 콘돔이라도 끼던가. 아휴...”하윤의 말에.시은이 피식- 웃었다.“아는 거지, 차건우는.”“뭘?”“콘돔보다 피임약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아주 그냥 이하윤이랑 떡치고 싶어서 미친놈일세, 차건우 개새끼.”시은은.차건우가 싫다.그냥.“욕하지 마. 애기 들어.”하윤이 인상을 찌푸렸다.“우리 애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님 니 남편 새끼 욕먹는 게 싫은 거야?”시은의 물음에.하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니가 차건우 욕하는 거 한 두 번이냐? 10년을 넘게 욕했는데, 이제 와서 싫을 게 뭐야?”“하긴.”하윤의 팩폭에 시은이 마저 웃어버렸다.“근데... 피임약 이렇게 오래 먹어도 괜찮나?”사실, 하윤은.이제 슬슬 피임약을 그만 먹고 싶다.자신의 몸 걱정 이라기 보다는.시댁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대놓고.내 손주를 낳아도, 라고 하시진 않지만.은근히 기다리고 계시는 게, 자꾸만 눈에 보였다.건
오후 업무를 한참 쳐내던 시간이었다.징- 징- 징-책상 위 한편에 둔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뱉어냈다.[ 백현민 ]“응?”이 시간에 이 형이 웬일이지?건우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뻗어 제 핸드폰을 잡았다.“어, 형.”화면에 손가락을 대고 스와이프 해 바로 통화를 시작했다.--“야, 차건우. 너 지금 이하윤이랑 연락 되냐?”핸드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현민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만.다분히 빡친 기색이 역력했다.건우의 눈매가 확- 좁아졌다.“하...”건우는.현민이 묻는 질문에 대한 상황 파악이 단박에 끝났다.그의 잘생긴 미간이 사정 없이 찌푸러졌다.“아까 점심 때 잠깐 통화하고, 그 이후로는 연락 못해봤어. 최시은. 또 연락 안 돼?”--“나도 점심 이후로 연락이 안돼서. 하, 씨발. 이 기집애가 또 방해 금지 모드 해 놓고, 지금, 전화도 카톡도 다 씹고 앉았어.”현민은 결국 폭발했다.이성적으로 꾹꾹 눌러 담아두었던 분노였다.--“아니, 이제 결혼까지 했으면, 가정에 좀 충실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딴따라 개새끼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면 어쩌겠다는 거야! 홀몸도 아닌 게!”그랬다.백현민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했다.결혼식을 얼마 앞두지 않고 최시은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결혼은 이하윤이 빨랐지만, 임신은 최시은이 빨랐던 셈.다행히 배가 부르기 전이라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지만.그 이후가 문제였다.지독히도 정적인 것을 싫어하는 최시은은.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아니, 내가, 씨발. 그 개새끼들 쫓아다니라고 약국 그만두라고 했어? 지난번에도 유산기 있어서 그렇게 고생을 해 놓고, 또 처 돌아다니고 앉았어.”쉼 없이 분노를 뱉어내는 현민의 말을.건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러게.왜 그렇게 임신을 빨리 해서.우리처럼 피임을 했으면 됐잖아.몸에 좋지도 않은 피임약 따위 먹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했던 차건우는.이하윤과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