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다행히 그날 오후, 신속하게 퇴원 수속이 마무리되었다. 장하늘은 U그룹 관계자들의 깍듯한 배웅과 난데없는 경호원들의 철저한 호위 속에 유환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김 비서님, 잘 부탁드립니다.”“네, 장하늘 군. 회장님의 지시이니 댁으로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어제는 비명 소리와 붉은 사이렌 가득한 응급차에 짐승처럼 실려 왔지만, 오늘은 유환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최고급 전용 세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가죽 시트 너머로 U빌딩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차 안에서 장하늘은 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평생 누려보지 못한 과분하고도 무거운 호강이었다.졸지에 극적인 승리 세리머니를 병원 침대 위에서 제대로 치른 셈이 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장하늘은 유환의 머릿속에 공식적으로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르는 시한부처럼 병약한 존재'로 확고히 낙인찍혀 버렸다.“많이 놀랐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네 몸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 제대로 알게 되어서 말이야.”낮게 가라앉은 유환의 나지막한 음성이 좁은 차안을 무겁게 채웠다. 장하늘은 밀려오는 민망함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듯 응시하는 녀석의 묵직한 호의와 걱정이 오로지 자신을 향한 깊은 집착적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하늘의 가슴팍엔 애틋함과 간지러운 기류가 동시에 밀려들었다.“앞으로 몸 관리 정말 잘할게. 걱정 끼쳐서 미안하고··· 고맙다. 병원비랑 약값도 엄청나게 들었을 텐데.”“지금 그까짓 돈이 문제냐? 네가 내 눈앞에서 숨 쉬고 무사한 게 제일 중요하지. 헛소리할 거면 입 닫아.”장하늘은 제 한 몸 가누기도 벅찬 듯 처방 약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유환을 향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창틈으로 쏟아지는 새하얀 햇살이 도리어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병실 안은 고요했다.꿀 같은 연휴의 시작을 이 삭막한 병원 침대 위에서 망쳐버리다니.장하늘은 가늘게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마른 숨을 내쉬었다. 결국 어제는 유 씨 가문, 정확히는 유도완 회장이 붙여준 서슬 퍼런 간병인들이 장하늘의 곁을 감시하듯 지켰다.제 아비의 등장에 짐승처럼 날뛰며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였던 유환은,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끌려가다시피 퇴장당했다.이제는 언제 아팠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몸으로 널찍한 VIP 병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자니, 장하늘은 도리어 숨이 막히고 좀이 쑤셔 죽을 맛이었다.유도완이라는 존재가 이 공간에 흘리고 간 잔혹한 압박감이 환각처럼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때마침 회진을 돌러 온 주치의의 하얀 옷깃을, 장하늘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붙들며 매달리듯 간청했다.“저 진짜 괜찮습니다, 박사님··· 제발 집으로 보내주세요.”장하늘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맑고 처연한 눈빛을 빛내며 퇴원 허락을 구했다. 그 유약하면서도 절박한 태도에 노련한 의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이제야 안정제와 진통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나 봅니다.”장하늘은 의사의 흰 가운에 선명하게 새겨진 「대한종합병원 원장 강현 박사」라는 자수를 확인하며 다시금 화려한 병실을 둘러보았다.국내 최대 재벌인 U그룹이 운영하는 최첨단 병원,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 들어올 수 있다는 최고급 VIP실에 누워 있다니. 전생의 비참했던 삶을 떠올리면 인생 역전도 이런 호사가 없었으나, 장하늘에게 이 방은 그저 유 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맹수의 우리에 불과했다.&ldq
유환은 병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병상에 앉아 있는 장하늘에게로 사납게 달려들었다.“너! 아프면 아프다고 진작 말을 했어야지!”사실 지금의 그는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며 기적처럼 너무나 멀쩡해진 상태였기에 선뜻 내뱉을 말이 없었다.“별거 아니야··· 미안해, 걱정 끼쳐서.”“경기 분석하느라 무리하게 몸을 써서 이 지경이 된 거 아니겠냐고!”윽, 설마. 장하늘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저 전생의 기억을 치트키처럼 활용해 몇 가지 사소한 데이터를 검색하고 지시했을 뿐인데.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유환의 과분한 칭찬에 장하늘은 뒷덜미부터 귓불까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이 모든 건··· 네가 천재 투수였기에 가능했던 거야.’그렇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유환의 뜨거운 손아귀에 붙잡힌 하늘의 입술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무슨··· 우리 팀 다 같이 고생한 거지.”유환은 장하늘의 손목을 홱 채어 잡으며 사납게 으르렁댔다.“앞으로 너! 내 눈앞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게 묶어둘 줄 알아!”그때, 병실 문이 두드려진 뒤, 나이 지긋한 주치의가 차트를 살피며 두 사람 사이로 다가왔다.***“정말 놀라운 정신력이군요. 이 정도의 쇼크 상태에서 이렇게 단시간에 바이탈이 안정되다니.”의사의 시선이 닿자 하늘은 민망함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강 박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 친구를··· 이렇게 살려 주셔서요.
장하늘은 평생 병원 신세를 질 일이 거의 없었는데, 누워 있는 상태로 제 생사를 저울질하는 대화들을 듣고 있자니 기묘한 갈증이 목구멍을 태웠다.깊은 수면 아래 갇힌 와중에도, 지독한 격통을 잠재워 줄 진통제나 저를 기절시켜 줄 강력한 수면제라도 처방해 주길 바라며 의사의 입술 끝에 온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강 원장. 은인은 무슨 유난이야. 젊은 놈이 갑자기 저 모양으로 고꾸라진 건 분명 숨기는 지병이나 이유가 있을 텐데.”유도완의 가시 돋친 음성이 병실 벽을 날카롭게 때렸고, 주치의는 차트를 거칠게 넘기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MRI도 찍고 정밀 혈액 검사도 방금 마쳤습니다만. 사실, 이 환자는 운동선수를 하기에는 모든 신체 수치가 평균치에 한참 못 미칩니다. 백혈구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무너져 있고 혈압도 지나치게 낮습니다. 언제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빈혈이 심각하고, 간 수치 또한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습니다.”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인가. 뇌리를 강타하는 진단에 장하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번 생은 참혹한 사고사가 아니라, 속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히는 병사(病死) 시나리오였단 말인가.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늘 예측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기에, 질병으로 쓰러진다는 가능성은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만약 오늘 혼자 있을 때 쓰러졌더라면, 차가운 방 안에서 누구의 구원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버둥거리다 그대로 고독사했겠구나 싶어 선득한 소름이 척추를 타고 내달렸다.“아, 이것 보세요! 이 녀석 이렇게나 비실비실하잖아요! 박사님, 그럼 이제 어떻게 됩니까? 고칠 수는 있는 건가요? 예?”유환이 이성을 잃고 비명 섞인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곁에서 할아버지와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고통이 전신을 난도질했다.장하늘은 콘크리트 바닥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밀폐된 지하 주차장의 시린 냉기가 뺨에 닿았고, 그 서늘함의 끝자락에서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다.저 멀리서 제 몸을 부축하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는 유환의 목소리가 점차 아득한 점이 되어 멀어지기 시작했다.“······아버지? 할아버지까지? ······여긴 왜 오셨어요?”유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라면 유도완과 유준철이 온 건가.오장육부를 쥐어짜는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장하늘은 피가 맺힌 눈을 간신히 치켜떴다.지하 주차장의 흐릿한 불빛 아래, 검고 매끄러운 고급 가죽 구두를 신은 형상이 저승사자처럼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순간—.장하늘의 세계는 닫혀가고 있었다.***지금 장하늘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먹먹한 수면 아래의 소음처럼 아득하게만 들렸다.빨리 검사해 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의사들의 덜미를 쥐고 흔들며 절규하는 짐승 같은 목소리. 분명 유환의 것이었다.괜찮다고, 여기 곁에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은 굳어 떨어지지 않았다.그저 잠깐 감은 눈이라 생각했거늘, 지독한 피로와 정체 모를 한기가 골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전신의 근육을 흐물거리게 녹여 내리는 것 같았다. 무겁고 탁한 기운이 신체의 모든 구멍으로 스며들더니, 이내 뱃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격통이 장하늘의 육체를 사정없이 조각냈다.‘왜 내가····
“전생은······ 후우,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아요. 물론,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미래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비틀어지기는 하지만요.”골반을 잘게 흔들며 노골적으로 자극을 재촉하는 서정우의 젖은 속삭임에, 유경호는 낮게 으르릉거리며 그의 골반을 뼈가 으스러질 듯 꽉 움켜쥐었다.“다 거슬려.”여전히 전생이라는 단어는 유경호에게 그저 침대 위에서 분위기를 한껏 달구는 발칙하고 귀여운 농담 정도로 치부되는 눈치였다. 거칠게 몰아치는 그의 롱테이크 속에서 서정우는 쾌락에 허덕이면서도, 문득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불길한 잔상을 지워내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장하늘 말이에요. 아까부터 휴대폰만 계속 보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하흣!”이토록 모든 게 완벽한 날에 대체 무슨 근심이 끼어든 건지, 서정우는 밀려드는 쾌감 사이로 자신도 모르게 장하늘에 대한 걱정을 흘렸다. 유경호는 질투 어린 숨을 내쉬며 서정우의 허리를 더 깊숙이 받쳐 올렸다.“보나 마나 뻔하지. 조기범 선배가 또 연락해서 쑤셔놨겠지.”조기범. 그 역시 전생의 파편을 쥐고 있는 회귀자임이 분명했기에 이토록 집요하게 장하늘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리라. 서정우는 생각했다. 하지만 유경호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궤도 위에 서 있는 인간이었기에, 오히려 그의 앞에서 전생을 말할 때만큼은 기묘한 안전함을 느꼈다.“일단······ 앗, 계속 이기고 나서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