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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번 생도 망쳤나요?]

Autor: silver구슬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4-04 21:17:50

“헉! 헉! 헉!”

침대 시트마저 눅눅한 비에 젖은 듯 축축한 습기를 머금고 있자, 살갗에 닿는 그 서늘한 감각에 장하늘은 신음 섞인 비명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천천히 일렁이는 시야를 열었다. 오피스텔 천장의 익숙하고도 단조로운 무늬가 망막에 박히자, 그제야 지독한 현실로 생환했음을 깨달았다.

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꿈속에서 유환의 거친 열기가 스쳤던 자리가 화상이라도 입은 듯 뜨거워 장하늘의 등줄기는 전율로 팽팽하게 굳어졌다. 차갑게 젖은 얼굴이 델 듯한 숨결과 함께 코앞까지 다가왔던 그 찰나의 순간. 꿈과 현실의 경계가 처참히 무너져 내린 잔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분명 자신은 폭우 속 불펜에서, 인생 4회 차에도 끝내 끊어내지 못한 연심의 대상인 유환과 위태로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비릿한 열망이 점철된 꿈이 맞았다.

이럴 리가. 설마 유환이 제게 그토록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낼 리 없었다. 그 고고하고 오만한 녀석이, 이름조차 생소할 저에게 무슨 관심을 둔단 말인가.

혼자서 금단에 가까운 상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아랫도리의 뻐근한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꿈의 잔혹한 여운을 붙들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몸이 왜 이토록 정직하게 반응한단 말인가. 수치심도 잊은 채 고개를 든 욕망이 제멋대로 날뛰는 꼴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에취!”

갑작스러운 재채기가 터져 나오자, 꿈속의 차가운 빗물이 아직도 목구멍 깊숙이 걸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꿈에서 맞은 비가 현실의 감기가 되어 돌아오는 이 기묘한 현상조차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이 세상은 이미 장하늘에게 수없이 많은 비상식을 강요해 왔으니까. 

어제 불펜에서 캐치볼을 하다 가랑비에 젖기 시작하자마자, 유환이 서늘한 기운을 남긴 채 먼저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스쳤다. 타고난 신체가 유약하니, 녀석의 그림자만 스쳐도 이토록 저질 체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조만간 ‘마구마구’ 동아리 합격 통보가 오면 녀석과 다시 대면해야 한다.

심장 깊숙이 각인된 영웅이자, 단 한순간도 놓지 못한 탐닉의 대상, 유환.

현실에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군림하던 그는, 꿈속에서 한층 더 파괴적이고 위험한 유혹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취!”

하지만 이번 생만큼은 유환과의 관계가 순탄한 궤도를 그릴 것 같지 않아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다.

이것은 다가올 파국을 알리는 예지몽인가? 아니면 이제는 녀석을 향한 비틀린 연정을 난도질해 정리하라는 신의 계시인가?

서둘러 등교 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불길한 가설들로 들끓었다.

뒤숭숭한 꿈자리 탓인지, 엄습해 오는 예감이 자꾸만 어두운 구석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었다.

‘이번 생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살리고 싶은데.’

그 간절한 염원만이 닳고 닳은 영혼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

다음 날.

강의실 창밖으로 눈부신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오후, 장하늘은 쉴 새 없이 터지는 재채기를 막아내며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에취—!”

꿈의 파편들이 발끝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기어오르는 듯한 불쾌한 감각에 온몸의 기운이 소진되어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어제의 그 기괴하고 선정적인 꿈으로 가득 차 이성을 마비시켰다.

진동음이 짧게 울렸다.

시계 초침이 정확히 4시 45분을 가리키는 순간, 차가운 액정 위로 합격의 소식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S대 야구 동아리 ‘마구마구’ 입부 테스트 합격. 금일 사범대 그라운드 18:00까지 집합.]

전생의 궤적을 고스란히 따르는 수순. 올 것이 왔다는 담담한 체념과 함께 핸드폰을 덮었다. 

유환의 이름 석 자가 뇌리를 스치자 관자놀이가 가늘게 경련했다. 자신의 볼 배합에 자존심이 상해 짐승처럼 으르렁대던 그의 거친 항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꿈의 여운 때문인지, 오늘 그라운드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독 무겁게 느껴져 엉덩이가 자꾸만 들썩였다.

과거를 안다는 것, 그리고 현재가 그 기시감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것을 목도한다는 것.

타인은 신의 축복이라 부르며 부러워할지 모르나, 장하늘에게 그것은 잔혹한 형벌이었다. 무엇보다 무시무시한 사실은, 자신이 또다시 요절하여 이 생을 마감할 날짜까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재 장하늘은 경영학부 1학년, 유환은 체육학부 1학년. 두 사람 모두 재수를 거쳐 스무 살, 동갑내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교수님의 단조로운 강의는 이제 장하늘의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했다.

이 명문 S대에 발을 들인 목적은 단 하나, 유환과의 필연적인 조우를 위해서였다. 그 이후의 삶, 졸업이나 미래 같은 찬란한 단어들은 그의 계획표에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올해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12월 24일, 유환과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신은 왜 내게 이토록 악취미 같은 운명을 선사했을까. 지난 세 번의 삶 모두 유환을 짝사랑하며 그저 먼발치에서 가슴만 태우다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야 했던 비극적인 운명.

그 신을 원망하는 것조차 이미 인생 4회 차다. 이만하면 영혼이 마모되어 지칠 법도 했다.

네 번의 생을 건너오는 동안, 그에게는 부모라는 안식처가 존재한 적 없었다. 첫 번째 삶의 기억은 보육원에서의 시린 학대였고, 그 이후로는 늘 고독한 단독자로 세상에 던져졌다.

차라리 혼자가 안온했다. 전생의 기억을 이정표 삼아 영악하게 모은 재화 덕분에 경제적 빈곤은 없었다. 반복 학습된 지식은 그를 S대라는 상탑으로 가볍게 인도했다.

유환 역시 재벌가의 일그러진 사생아로 태어나, 네 번의 삶 내내 가족이라는 이름의 냉대 속에서 자신만의 견고하고 외로운 성벽을 쌓아온 사내였다.

고교 시절, 찬란했던 야구 천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어깨 부상과 1년여의 가혹한 재활이라는 얼룩진 과거로 점철되어 있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사무치는 고독의 농도가 비슷했다. 그래서 전생에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접점이 있었건만, 이번 생은 시작부터 너무도 노골적이고 거칠게 엉켜버렸으니 앞날이 막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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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70. [이게 꿈일까 봐,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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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67. [4월, 우리들의 쇼타임]

    유환이 선전포고를 하듯 그리 말하자, 장하늘은 속내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뭘 저리도 당당하게,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지. 유환의 포식자 같은 눈빛만 봐도 오늘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도 남을 분위기였다.“뭐? 방까지 바꿨다고?”장하늘은 당황해 눈을 크게 떴지만, 유환은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현신이 준 간식 봉투를 장하늘의 손에 꽉 쥐여주었다.“많이 먹어두고 기운 좀 비축해 놔. 오늘 밤에 제대로 힘을 쓰려면.”유환의 노골적인 속삭임에 장하늘의 얼굴 위로 열기가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너무 행복해 미칠 것 같은 기분은 어찌 되지 않아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4월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바닷바람에 실려 온 짠 내음과 노을이 섞여 드는 강릉 T 호텔의 레스토랑. 통창 너머로 부서지는 파도가 인상적인 그곳에서, 내일 있을 경기를 앞둔 S대 ‘마구마구’ 동아리 부원들은 모처럼의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학교 측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비용 걱정 없이 마주한 식탁 위엔 싱싱한 해산물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장하늘은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이 역시도 지금 S대 야구부가 성적을 제대로 내니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었다.유환은 능숙한 손길로 회 접시를 장하늘의 앞으로 밀어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이게 맛있네."장하늘은 활기찬 팀원들의 모습과 제 곁을 지키는 유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저무는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붉은 화석처럼 굳어가는 풍경.그 옆에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 뜨겁게 갈구하는 유환이 있고, 그들의 승전보는 세상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66. [하루하루 기뻐서 미칠지도]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서정우의 감각은 조기범과는 또 다른 결의 영민함을 풍겼다.유경호는 홈플레이트에 앉아 더그아웃에 있는 장하늘과 유환을 슬쩍 곁눈질했다. 저들은 이제 야구 천재를 넘어선 '괴물'이라는 수식어도 부족해 보였다.비록 아마추어 동아리 팀이라 해도, 엘리트 선수들로 구성된 명문 팀들을 상대로 이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조금 전까지 마운드를 지켰던 유환은 상대 팀에게 17점을 뽑아내는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비록 투구 수 조절을 위해 4이닝 만에 내려왔지만, 그대로 두었다면 A대학을 상대로 퍼펙트게임을 기록했을 기세였다. 유경호는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담아 서정우에게 은밀한 신호를 보냈다.[우리도 저 괴물들처럼 퍼펙트로 가자.]입 모양을 읽은 서정우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잔뜩 위축된 기색으로 배트를 휘두르며 유경호와 서정우를 번갈아 살폈다. 처음 상대하는 투수이니만큼 초구는 지켜보겠다는 심산이 빤히 보였다.“하아··· 너희는 좋겠다. 우린 완전히 망했어.”타자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낮게 읊조렸다. 한때 엘리트 야구의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이들이 S대를 부러워하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선수들 실력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분위기가 너무 죽어 있네.”유경호의 툭 던진 말에 타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유경호는 서정우의 장기인 예리한 체인지업을 주문했다.퍽—!칼날 같은 제구였다. 공은 유경호가 의도한 궤적을 그리며 미트 정중앙에 빨려 들어갔다. 경쾌한 포구음이 경기장에 울려

  •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65. [꽃비 내리는 잠실, 뜨거운 축포]

    뜨겁게 한바탕 주차장에서 열꽃을 피운 장하늘과 유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라운드로 향하게 되었다.그리고 라인업이 전광판에 공개되자 우레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채웠다.『1번 타자 - 장하늘 (포수)』『2번 타자 - 최우현 (3루수)』『3번 타자 - 유환 (투수)』『4번 타자 - 유경호 (우익수)』『5번 타자 - 서정우 (유격수)』···『9번 타자 - 김강무 (좌익수)』오늘도 S대는 압도적인 승리를 위해 최적의 타순을 구성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관중석에서는 경악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고, 그라운드 위에서는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와, 대박! S대 타선 완전히 불붙었는데?”“1회 초, 원아웃인데 벌써 하위 타선까지 한 바퀴 다 돌았어!”보통 대학 야구를 사람들이 이리 보러 오지는 않을 텐데.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잠실 보조경기장은 구름 관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금 전 장하늘과 뜨겁게 열기를 쏟아낸 덕분인지, 유환의 몸에는 넘치는 활력이 가득 차 있었다.터질 듯한 함성과 더그아웃을 감싸는 승리의 기운 때문인지 유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리적 이점 덕분에 수업이 없는 S대 학생들도 대거 몰려와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1회임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은 이미 9회 말 투아웃 풀카운트 같은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아! 또 이기겠다! 오늘 이기면 우리 본선 진출이야. 8강 확정이라고! 하하!”홈을 밟고 들어온 최우현은 전광판의 스코어를 확인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1회 초임에도 점수차는 벌써 5점으로 벌어져 있었다.“선배님, 당연히 이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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