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환은 장하늘을 품에 꼭 안온 채 새벽을 맞이했다.
장하늘은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는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연속된 승리의 기쁨보다 더 달콤하고 밀도 있었던 것은 어젯밤 녀석과 나누었던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환을 무엇보다 설레게 하는 것은, 드디어 장하늘의 몸 상태와 그 속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운동선수로서 버티기에는 모든 수치가 평균 이하입니다. 백혈구 수치는 불안정하고 혈압도 낮아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빈혈이 심각하고 간 수치도 위험 수준입니다.]
유환은 장하늘의 그 지독한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얼마나 잔인하게 갉아먹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어쩌면 의사에게 이대로라면 급사할 수도 있다는 시한부 같은 경고를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S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만큼 치열하게 공부했을 것이고, 부모님 없이 홀로 생계를 꾸리며 야구에 모든
유환은 장하늘을 품에 꼭 안온 채 새벽을 맞이했다.장하늘은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는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연속된 승리의 기쁨보다 더 달콤하고 밀도 있었던 것은 어젯밤 녀석과 나누었던 열정적인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유환을 무엇보다 설레게 하는 것은, 드디어 장하늘의 몸 상태와 그 속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사실 운동선수로서 버티기에는 모든 수치가 평균 이하입니다. 백혈구 수치는 불안정하고 혈압도 낮아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빈혈이 심각하고 간 수치도 위험 수준입니다.]유환은 장하늘의 그 지독한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얼마나 잔인하게 갉아먹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어쩌면 의사에게 이대로라면 급사할 수도 있다는 시한부 같은 경고를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S대 경영학과에 합격할 만큼 치열하게 공부했을 것이고, 부모님 없이 홀로 생계를 꾸리며 야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과정에서 녀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그래서 홀로 고통을 견디다 쓰러지는 날이면, 막연하게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혔을 게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강현 박사의 우려 섞인 진단은 유환에게 오히려 역설적인 안도감을 주었다.철저히 관리만 한다면 당장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의사의 확언은, 유환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번뇌로부터 완벽하게 해방해 주었다.“12월 25일에 정식으로 다시 고백하면 되는 건가.”유환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바로 그때였다.Rrrr. Rrrr. Rrrr···.Ummm. Ummm···.적막한 침실 안에 유환과 장하늘의 휴대전화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진동을 울리기 시작했
서정우는 실로 오랜만에 달콤한 늦잠을 만끽했다.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덕분에 S대 야구팀은 전국적인 화제의 중심에 섰고, 서정우 역시 마치 유명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묘한 고양감에 젖었다고나 할까.유경호와 진하게 축배를 든 뒤,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의 푹신한 침구에 파묻힌 덕분에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귀여운 나의 애인, 잘 잤어?”이미 테라스로 나가 있던 유경호가 미니바에서 내린 커피 머그잔을 든 채 다정하게 물었다. 열린 창틈으로 스며든 시원한 아침 공기가 방 안의 나른함을 기분 좋게 흩어놓았다.“선배, 이런 근사한 호텔은 처음이라 그런지 아직도 꿈결 같아요.”유경호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자며 정성껏 준비한 공간이었기에, 서정우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연휴의 시작과 함께 야구 경기도 잠시 휴식기에 접어들었고, 완연한 봄기운은 창밖을 온통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정우는 자신의 인생에도 드디어 찬란한 봄날이 찾아왔음을 실감했다.“아, 연휴라 정말 좋다. 정우 너랑 이렇게 알콩달콩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다니. 이거 절대 꿈이면 안 돼. 무조건 현실이어야 해.”유경호가 장난스레 손짓하자, 서정우도 로브를 걸쳐 입고 미니바로 향했다. 물을 끓여 믹스커피 두 봉지를 머그잔에 털어 넣은 뒤 테라스로 나갔다. 유경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려다본 서울 시내의 전경은 실로 장관이었다.이런 호사가 익숙한 듯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던 유경호는, 서정우의 머그잔을 보더니 이내 인상을 찡그렸다.“어휴, 여기까지 와서 믹스커피야? 룸서비스로 제대로 된 커피 좀 시켜줄까?”“전 달달한 이게 더 좋아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라서요.”유경호는 그런 서정우
하긴, 이제 장하늘은 유환의 불안증에 더 이상 불을 지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처럼 위태롭게 굴고, 녀석에게 흉포한 불안함만 안겨 준 데다가 오늘처럼 제 앞에서 픽 쓰러지기까지 해 버렸으니 유환의 속이 얼마나 까맣게 피폐해졌을까 싶었다.유환이 가장 극도로 싫어하는 유약한 소리였다. 마치 마지막을 고하는 처연한 유언처럼 제 미래를 걱정하며 선을 긋는 장하늘의 오랜 습관에 유환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둡고 사납게 가라앉았다.녀석은 장하늘의 쓸쓸한 입술을 부수어 버릴 듯 막아내며, 얇은 허리를 부러뜨릴 듯 단단히 결착했다. 그리고 더 거칠고 깊숙하게 몸을 겹쳐 왔다. 침대 시트가 비명을 지르며 찢어질 듯 구겨졌다.“벌 좀 받아야겠어, 넌. 그 잘난 머리로 딴생각 못 하게.”유환의 뜨거운 손길과 단단한 육체가 폭풍처럼 장하늘을 집어삼키며 휩쓸었다. 도망칠 구멍 따윈 단 1밀리미터도 주지 않겠다는 듯한, 완벽하고도 지독한 구속의 밤이었다.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며 아찔한 열락의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아··· 하윽! 으응··· 유환, 아···!”간지러우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쏟아지는 치명적인 쾌감에 장하늘은 허리를 뒤틀며 정신을 놓은 채 짐승 같은 신음을 흘렸다. 장하늘의 젖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애절한 비명에 유환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잔인한 호선을 그렸다.그의 거친 숨결이 목덜미와 귓가를 거칠게 스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벌이라더니, 이토록 농밀하고 숨 가쁜 쾌락은 처벌이 아닌 축복에 가까웠다.“장하늘···! 이제 다 왔어, 윽!”속도를 높이는 질척이는
장하늘은 잠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어찌 되었든 조기범의 기억 속에서 자신은 꽤나 장수하며 야구선수로서 정점을 찍었다.서정우와 10년간 호흡을 맞춘 배터리이자,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마흔 살의 베테랑 포수. 전생의 자신이 그토록 찬란하고 긴 인생을 살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차마 조기범에게 유환의 행방까지 물을 수는 없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조차 지독한 고통이라는 사람에게 꼬치꼬치 타인의 안부를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조금 더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제발 유환도 그 전생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제 오래된 곁에 함께 있어 주었다는 확답을 듣고 싶었다.‘만약 유환이 그 생에서도 나를 두고 먼저 떠나고, 나 혼자 외롭게 성공한 거라면···.’그 찬란한 성공조차 비참하리만치 무의미하게 느껴질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아리게 시려 왔다. 가장 두려워하는 잔인한 진실이 조기범의 입에서 나올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어차피 지나간 전생일 뿐이고 현재가 중요하다고 다짐해 보지만, 기묘한 동질감을 느낀 장하늘은 진심을 담아 답신을 보냈다.[답장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내심 기다렸거든요. 메이저리거라니, 전생의 저는 참 행복했겠네요. 선배님의 전생이 힘드셨다니 저도 마음이 무겁습니다.]길게 숨을 내쉬며 전송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장하늘 후배, 대신 내가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전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를 쓰면 돼. 우린 전생을 알기에 대비할 수 있잖아. 이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 아닐까?]일순간 장하늘의 가슴속에 굳게 닫혔던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그 단순하고도 명료한 이치를 왜 지금까지 잊고 두려워만 하며 살았을까. 단 한 번도 전생과 현생이 완벽히
다행히 그날 오후, 신속하게 퇴원 수속이 마무리되었다. 장하늘은 U그룹 관계자들의 깍듯한 배웅과 난데없는 경호원들의 철저한 호위 속에 유환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김 비서님, 잘 부탁드립니다.”“네, 장하늘 군. 회장님의 지시이니 댁으로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어제는 비명 소리와 붉은 사이렌 가득한 응급차에 짐승처럼 실려 왔지만, 오늘은 유환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최고급 전용 세단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가죽 시트 너머로 U빌딩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차 안에서 장하늘은 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평생 누려보지 못한 과분하고도 무거운 호강이었다.졸지에 극적인 승리 세리머니를 병원 침대 위에서 제대로 치른 셈이 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장하늘은 유환의 머릿속에 공식적으로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모르는 시한부처럼 병약한 존재'로 확고히 낙인찍혀 버렸다.“많이 놀랐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네 몸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 제대로 알게 되어서 말이야.”낮게 가라앉은 유환의 나지막한 음성이 좁은 차안을 무겁게 채웠다. 장하늘은 밀려오는 민망함에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듯 응시하는 녀석의 묵직한 호의와 걱정이 오로지 자신을 향한 깊은 집착적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하늘의 가슴팍엔 애틋함과 간지러운 기류가 동시에 밀려들었다.“앞으로 몸 관리 정말 잘할게. 걱정 끼쳐서 미안하고··· 고맙다. 병원비랑 약값도 엄청나게 들었을 텐데.”“지금 그까짓 돈이 문제냐? 네가 내 눈앞에서 숨 쉬고 무사한 게 제일 중요하지. 헛소리할 거면 입 닫아.”장하늘은 제 한 몸 가누기도 벅찬 듯 처방 약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유환을 향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창틈으로 쏟아지는 새하얀 햇살이 도리어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병실 안은 고요했다.꿀 같은 연휴의 시작을 이 삭막한 병원 침대 위에서 망쳐버리다니.장하늘은 가늘게 뜬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며 마른 숨을 내쉬었다. 결국 어제는 유 씨 가문, 정확히는 유도완 회장이 붙여준 서슬 퍼런 간병인들이 장하늘의 곁을 감시하듯 지켰다.제 아비의 등장에 짐승처럼 날뛰며 멱살잡이라도 할 기세였던 유환은,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집으로 끌려가다시피 퇴장당했다.이제는 언제 아팠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몸으로 널찍한 VIP 병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자니, 장하늘은 도리어 숨이 막히고 좀이 쑤셔 죽을 맛이었다.유도완이라는 존재가 이 공간에 흘리고 간 잔혹한 압박감이 환각처럼 전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때마침 회진을 돌러 온 주치의의 하얀 옷깃을, 장하늘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붙들며 매달리듯 간청했다.“저 진짜 괜찮습니다, 박사님··· 제발 집으로 보내주세요.”장하늘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맑고 처연한 눈빛을 빛내며 퇴원 허락을 구했다. 그 유약하면서도 절박한 태도에 노련한 의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이제야 안정제와 진통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나 봅니다.”장하늘은 의사의 흰 가운에 선명하게 새겨진 「대한종합병원 원장 강현 박사」라는 자수를 확인하며 다시금 화려한 병실을 둘러보았다.국내 최대 재벌인 U그룹이 운영하는 최첨단 병원,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 들어올 수 있다는 최고급 VIP실에 누워 있다니. 전생의 비참했던 삶을 떠올리면 인생 역전도 이런 호사가 없었으나, 장하늘에게 이 방은 그저 유 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맹수의 우리에 불과했다.&l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