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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

Author: 실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1 14:13:18

2화.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

‘미친놈인 게 분명하다.’

서연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성북동의 미치광이 수집광.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는데...... 설마 나를 사겠다는 것도 그런 의미야?’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예쁘기는 하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정도는 아닌데요?”

순간 단과 김 실장이 동시에 반응했다.

“큽.”

“하!”

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분 지금 웃으셨어요?”

“크흠!”

김 실장이 황급히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수습했다.

“주인님께서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셔서 심신이 많이 지쳐 계십니다. 조금 전의 무례는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실장.”

단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런 게 아니다.”

“예?”

“저 여자가 필요해.”

단의 말에 김 실장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고통을 잠재웠어.”

김 실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단은 다시 찾아오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닿았을 뿐인데 모든 게 멎었다.”

그의 시선이 서연에게 박혔다.

“그러니까 저 여자가 필요해. 지금 당장.”

“으윽.”

단이 머리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얼마면 되지?”

같은 질문이었다. 그제야 서연도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이 저 남자의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뭐야? 치료사? 진통제?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서연의 머릿속에서 주판알이 빠르게 튕겨졌다.

‘한번 질러봐?’

“저, 엄청 비싼데요?”

“상관없어.”

단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내 전 재산을 다 주더라도 널 곁에 둬야 하니까.”

김 실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주인님. 전 재산은 곤란합니다.”

“김 실장.”

“예.”

“조용히 해.”

“......예.”

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에게 못 박힌 눈빛도, 절박하게 굳은 표정도,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앞으로 기울어진 몸도 모두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천 년을 살아오며 아홉 번의 붕괴기를 겪었지만, 이런 안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이번 붕괴기는 이전과 달랐다.

서연이 없다면 자신이 끝내 고통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단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반면 서연의 머릿속에는 숫자 하나가 떠올랐다.

35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떠안게 된 빚.

그 무게가 서연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50억.”

김 실장이 눈을 크게 떴다.

“예?”

서연은 여기까지 온 이상 눈을 질끈 감고 질렀다.

“일시불로요. 세금 문제까지 깔끔하게 처리해서 제 통장에 50억이 들어오는 거 확인되면.”

잠시 말을 멈춘 서연이 단을 바라보았다.

“오늘부터 시키는 대로 할게요.”

“좋아.”

“네?”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단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부족한가?”

“아, 아니요!”

서연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충분합니다. 아주 충분해요.”

김 실장이 이마를 짚었다.

“두 분 모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어디선가 태블릿을 가져와 능숙하게 화면을 두드렸다.

“아무리 급하셔도 계약 조건부터 정해야 합니다.”

서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그렇죠. 50억인데 계약서는 써야죠.”

김 실장이 단을 바라보았다.

“주인님께 필요한 조건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단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 여자와 떨어지지 않는 것.”

“구체적으로 말씀하십시오.”

단이 잠시 생각하다 서연을 바라보았다.

“반경 1미터. 24시간. 가능하면 항상 접촉하고 있을 것.”

“네? 자, 잠깐만요!”

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서연이 멀어지자 벌써부터 머릿속에서 고통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그 모습을 본 서연의 입이 다물어졌다.

단이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와. 제발.......”

“…….”

서연이 마지못해 한 걸음 다가갔다. 단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거칠던 숨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 실장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정말이군요.”

잠시 후.

50억짜리 기묘한 계약이 체결되었다.

단은 서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나른하게 눈을 감았다.

“하아...... 그래.”

고통에서 벗어난 그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번졌다.

“거래 성립. 도망칠 생각은 마라, 서연. 계약 파기는 없다.”

계약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시점.

거실의 공기는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저기요. 주인님?”

서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연인이라도 된 듯 소파에 나란히 앉아 깍지를 끼고 있었다.

“불편해.”

“네?”

“호칭 말이야. 주인님이라니.”

단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내 노예라도 되나?”

“아니, 돈 주셨으니까 주인님이죠. 그럼 뭐라고 불러요? 회장님? 사장님?”

“단.”

“네?”

“그냥 이름 불러.”

단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조금 더 깊이 끼웠다.

“단이라고. 님 자도 붙이지 마. 늙어 보이니까.”

서연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50억짜리 계약을 덜컥 맺은 남자가 고작 호칭 따위에 예민하게 굴다니.

하지만 을은 갑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법.

“넵! 단 씨. 됐죠?”

그때 서연이 엉거주춤 몸을 움직였다.

“저...... 실은 화장실을 좀 가야겠는데요.”

“아.”

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녀와. 빨리. 아니면 문을 열어놓든가.”

“이 미친……!”

서연은 튀어나오려던 욕을 50억과 함께 꿀꺽 삼켰다.

‘참자, 서연. 넌 자본주의의 괴물이다. 50억! 욕은 안 돼! 언어 순화, 언어 순화…….’

서연이 속으로 열심히 마음을 다스리는 동안,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농담이다.”

“진짜 재수 없네요.”

“문 앞에서 기다리지.”

“그것도 싫거든요?”

“알았다. 하지만 짐을 챙기러 가는 건 같이 가야 해.”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제 자취방에요?”

“그래.”

단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24시간 밀착 치료라고 하지 않았나.”

그가 깍지 낀 손을 가볍게 당겼다.

“네가 가는 곳이 지옥이라도 난 따라가야겠어.”

‘돈 많고, 아프고, 좀 치명적인 미친놈이 확실하다.’

서연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고요했다.

그와 반대로 서연의 속은 시끄러웠다.

‘망했다. 진짜 망했어.’

창밖을 바라보던 서연이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피곤해서 청소도 안 했는데!’

반면 단은 평온해 보였다.

아니, 평온한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서 힘이 빠진 사람처럼 나른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를 괴롭히던 세상의 소음과 날카로운 감각이 서연의 곁에서는 놀라울 만큼 잦아들었다.

차의 진동도, 아스팔트를 스치는 타이어 소리도, 멀리서 울리는 경적도 이제는 부드러운 자장가처럼 들렸다.

“졸려.”

툭. 단의 머리가 서연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서연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묵직한 머리의 무게와 함께 서늘하고 고급스러운 향이 코끝을 스쳤다.

“저기요, 단 씨?”

“.......”

“무거운데요.”

단은 눈조차 뜨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왜요?”

“머리 받침대라고 생각해.”

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50억에 머리 받침대 옵션은 포함 안 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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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i Beum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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